루이니콜라 보클랭
1. 개요
루이니콜라 보클랭(Louis Nicolas Vauquelin)은 176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화학자이다. 그는 크로뮴과 베릴륨을 발견하고 아스파라긴을 분리하는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으며, 대기압에서 액체 암모니아를 얻는 데 성공했다. 파리 국립 고등 광업 학교, 파리 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식물 속, 광물, 요리 등에 그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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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화학자 -
윌리엄 하이드 울러스턴
영국의 과학자 윌리엄 하이드 울러스턴은 의학에서 과학으로 전향하여 팔라듐과 로듐을 발견하는 화학적 업적과 더불어 태양 스펙트럼 흑선 발견, 카메라 루시다와 윌러스턴 프리즘 발명 등 물리학 및 광학 분야에도 기여했으며 왕립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나, 체계적인 발표 부족으로 덜 알려졌다. -
18세기 화학자 -
마르틴 하인리히 클라프로트
마르틴 하인리히 클라프로트는 독일의 화학자로, 우라늄, 지르코늄, 세륨을 발견하고 텔루륨과 티타늄의 발견을 확인 및 명명하는 등 원소 발견과 화합물 조성 규명에 기여했으며, 베를린 대학교 초대 화학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했다. -
칼바도스주 출신 -
알랭 투렌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투렌은 산업 사회학 발전에 기여하고 사회 운동론 연구와 탈산업 사회 개념 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
칼바도스주 출신 -
윌리엄 1세
윌리엄 1세는 노르망디 공작이자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여 봉건제 확립과 행정 및 사법 제도 정비 등 잉글랜드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763년 출생 -
칼 14세 요한
칼 14세 요한은 프랑스 출신 군인으로 스웨덴 왕세자가 되어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즉위하여 동군 연합을 이루고 중립 외교와 근대화를 추진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 -
1763년 출생 -
장 파울
장 파울은 요한 파울 프리드리히 리히터라는 본명을 가진 독일 작가로, 낭만주의 소설 형식 파괴를 시도하며 풍자, 유머, 감상주의를 결합한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하여 사회 모순을 비판하고 인간 내면을 탐구했다.
2. 생애
보클랭은 1763년 5월 16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생앙드레데베르토(Saint-André-d'Hébertot)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777년에서 1779년 사이에 루앙의 한 약제상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화학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앙투안 프랑수아 푸르크루아를 만나 친해지게 되었고, 1783년에서 1791년 사이에는 그의 실험실 조수가 되기도 하였다. 1829년에 고향을 방문하던 중 사망하였다.
파리로 이주한 그는 왕립 정원의 실험 조수가 되었고 화학 교수와 친분을 쌓았다. 1791년 그는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이후 학술지 화학 연보(Annales de Chimie)의 편집을 도왔지만, 프랑스 혁명이 절정에 달했을 때 잠시 프랑스를 떠났다. 1794년에 귀국하여 국립 광산 학교에서 화학 교수를, 1809년부터는 파리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798년 보클랭은 에메랄드(녹주석의 일종)에서 추출하여 베릴륨 산화물을 발견했다. 클라프로트는 이 산화물로부터 원소를 분리했다.
3. 주요 업적
보클랭은 1790년부터 1833년까지 376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다양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대부분의 논문은 분석 작업에 대한 기록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베릴륨과 크로뮴이라는 두 가지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다. 또한 대기압에서 액체 암모니아를 얻는 데 성공했다.
아스파라긴, 펙틴, 말산(사과산), 캄포르산, 키나산 등을 발견하거나 분리하기도 하였다.
3.1. 크로뮴 발견
1797년 시베리아산 홍연석에서 크로뮴을 발견하였다. 이듬해에는 녹주석에서 단맛이 나는 베릴륨 염을 최초로 발견하였다. 그는 또한 대기압에서 액체 암모니아를 얻는 데도 성공했다.
3.2. 베릴륨 발견
1797년 보클랭은 시베리아산 홍연석에서 크로뮴을 발견하였으며, 1798년에는 녹주석(에메랄드)에서 단맛이 나는 베릴륨 염을 최초로 발견하고 베릴륨 산화물을 추출했다. 클라프로트는 이 산화물로부터 원소를 분리했다.
3.3. 아스파라긴 분리
1806년 루이니콜라 보클랭은 조수인 피에르 로비케(Pierre Jean Robiquet)와 함께 아스파라거스를 연구하여 최초로 발견된 아미노산인 아스파라긴을 분리하였다.
3.4. 기타 연구
1797년 시베리아산 홍연석에서 크로뮴을 발견하였고, 이듬해에는 녹주석에서 단맛이 나는 베릴륨 염을 최초로 발견하였다. 또, 대기압에서 액체 암모니아를 얻는 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1806년에는 조수인 피에르 로비케(Pierre Jean Robiquet)와 함께 아스파라거스를 연구하여 최초로 발견된 아미노산인 아스파라긴을 발견하였다. 보클랭은 이 밖에도 사과에서 펙틴과 말산(사과산)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이후 푸르크루아와 함께 백금 잔류물에서 금속을 확인하고 이를 'ptène'이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은 오스뮴의 초기 동의어로 보고되었다.
그의 덜 알려진 공헌과 발견 중에는 알려진 양의 미네랄을 먹인 닭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닭에게 먹인 귀리의 석회질을 모두 계산한 결과, 계란 껍질에서 더 많은 석회질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물질의 창조가 일어난다.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806년 피에르 장 로비케와 함께 아스파라거스를 연구하면서 최초로 발견된 아미노산인 아스파라긴을 분리했다. 그는 또한 사과에서 펙틴과 사과산을 발견했고, 캄포르산과 키나산을 분리했다.
4. 학문적 영향 및 유산
보클랭은 1809년부터 파리 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했다. 1811년 미국 철학회의 회원이 되었고, 1816년에는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 되었다. 1806년, 아스파라거스를 연구하면서 피에르 장 로비케(당시에는 젊은 화학자이자 그의 조수)와 함께 최초로 발견된 아미노산인 아스파라긴을 분리했다. 그는 또한 사과에서 펙틴과 사과산을 발견했고, 캄포르산과 키나산을 분리했다.
식물 속인 보클랭속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분자 요리와 관련된 달걀 흰자 거품인 보클랭과 보클랭이 크롬을 분리한 크로코아이트와 같은 광산에서 발견된 광물인 보클랭석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5. 기타
1809년부터 파리 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했다. 1811년 미국 철학회의 회원이 되었고, 1816년에는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 되었다. 1828년에는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806년, 아스파라거스를 연구하면서 알리자린이라는 유명한 붉은 염료를 발견한 피에르 장 로비케(당시에는 젊은 화학자이자 그의 조수)와 함께 최초로 발견된 아미노산인 아스파라긴을 분리했다. 그는 또한 사과에서 펙틴과 사과산을 발견했고, 캄포르산과 키나산을 분리했다.
고향을 방문하던 중 사망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저서 중 하나는 "Manuel de l'essayeur" (검사관의 수첩)이다.
식물 속인 보클랭속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분자 요리와 관련된 달걀 흰자 거품인 보클랭과 보클랭이 크롬을 분리한 크로코아이트와 같은 광산에서 발견된 광물인 보클랭석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