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 자갈루
1. 개요
마리우 자갈루는 선수와 감독 모두로서 FIFA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브라질의 축구 인물이다. 선수 시절에는 플라멩구와 보타포구에서 활약하며, 1958년과 1962년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감독으로서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수석 코치로서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199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과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브라질 대표팀을 우승시켰다. 클럽팀 감독으로는 보타포구, 플루미넨시, 플라멩구 등을 이끌었으며, 2024년 1월 5일, 향년 92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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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마리우 조르지 로부 자갈루 |
|---|---|
| 출생지 | 아탈라이아, 알라고아스주, 브라질 |
| 출생일 | 1931년 8월 9일 |
| 사망일 | 2024년 1월 5일 |
| 사망지 |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
| 키 | 1.67m |
| 포지션 | 인사이드 포워드, 왼쪽 윙어 |
| 유소년 클럽 | 1948–1949: 아메리카 1950–1951: 플라멩구 |
|---|---|
| 클럽 | 1951–1958: 플라멩구 (99경기, 11골) 1958–1965: 보타포구 (115경기, 46골) |
| 총 출장 및 득점 | 214경기, 57골 |
| 국가대표팀 | 1958–1964: 브라질 (33경기, 5골) |
| 감독 클럽 | 1966–1970: 보타포구 1967–1968: 브라질 1970–1974: 브라질 1971–1972: 플루미넨시 1972–1974: 플라멩구 1975: 보타포구 1976–1978: 쿠웨이트 1978: 보타포구 1979: 알힐랄 1980–1981: 바스쿠 다 가마 1981–1984: 사우디아라비아 1984–1985: 플라멩구 1986–1987: 보타포구 1988–1989: 방구 1989–1990: 아랍에미리트 1990–1991: 바스쿠 다 가마 1991–1994: 브라질 (코디네이터) 1994–1998: 브라질 1999: 포르투게자 2000–2001: 플라멩구 2002: 브라질 (감독대행) 2003–2006: 브라질 (코디네이터) |
|---|
| FIFA 월드컵 | 1958 스웨덴 우승 1962 칠레 우승 |
|---|---|
| 코파 아메리카 | 1959 아르헨티나 준우승 |
| FIFA 월드컵 | 1994 미국 우승 |
|---|---|
| 코파 아메리카 | 2004 페루 우승 |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2005 독일 우승 |
| FIFA 월드컵 | 1970 멕시코 우승 1998 프랑스 준우승 |
|---|---|
| 코파 아메리카 | 1997 볼리비아 우승 1995 우루과이 준우승 |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1997 사우디아라비아 우승 |
| CONCACAF 골드컵 | 1996 미국 준우승 1998 미국 3위 |
| 올림픽 | 1996 애틀랜타 3위 |
| 아라비안 걸프컵 | 1976 카타르 우승 |
|---|---|
| AFC 아시안컵 | 1976 이란 준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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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CONCACAF 골드컵 참가 감독 -
보라 밀루티노비치
세르비아 출신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보라 밀루티노비치는 멕시코 리그 선수 시절 후 지도자로 변신, 여러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FIFA 월드컵 진출 업적을 세웠고, 멕시코 8강 진출, 중국 월드컵 첫 본선 진출 등 다양한 국가의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199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감독 -
테리 베너블스
테리 베너블스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첼시, 토트넘 홋스퍼 등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크리스털 팰리스, FC 바르셀로나 등을 지휘하며 라리가 우승 등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9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감독 -
빅토르 푸아
빅토르 푸아는 우루과이 출신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우루과이 U-20 대표팀을 이끌고 1997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1999년 코파 아메리카 2위를 기록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우루과이 대표팀을 이끌었다. -
1997년 코파 아메리카 참가 감독 -
다니엘 파사레야
다니엘 파사레야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아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끌고 리버 플레이트에서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7회 우승을 달성했으며, 감독으로서도 리버 플레이트와 몬테레이 리그 우승,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팬아메리카 게임 금메달과 하계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선수와 감독 모두로서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
1997년 코파 아메리카 참가 감독 -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콜롬비아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인 프란시스코 마투라나는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에서 선수와 감독으로서 리그 우승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경험했으며, 콜롬비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월드컵 16강 진출과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아메리카 FC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한 자갈루는 1950년 플라멩구로 이적하여 1950년대 중반 3년 연속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선수권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왼쪽 윙어로 활약하면서도 수비 가담에 적극적이었던 그는 1958년 FIFA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합류했다.
30대 초반, 자갈루는 잦은 부상으로 1964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술과 왕성한 활동량, 깊은 지역에서의 공격 가담 능력을 겸비한 왼쪽 윙어였던 자갈루는 스트라이커나 인사이드 포워드로도 활약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작은 개미'를 뜻하는 Formiguinha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1. 클럽 경력
아메리카 FC 유소년팀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자갈루는, 1950년 플라멩구에 합류하여 프로 선수로 전향, 1군에 자리 잡았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3년 연속 카리오카 주 선수권 대회 우승에 기여했으며, 1950년대 전반 CR 플라멩구의 왼쪽 윙으로 활약하며 플라멩구에서 총 3회의 리우 주 선수권 우승을 차지하였다.
1958년 보타포구로 이적한 그는 가린샤, 닐톤 산토스, 디디 등 브라질 국가대표팀 주전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토르네이우 리우-상파울루에서 두 번, 카리오카 주 선수권 대회에서 두 번 우승을 거두었고, 1965년 은퇴할 때까지 "오 포구"를 대표했다. 이로써 자갈루는 보타포구 시절 2회의 리우 주 선수권 우승을 추가하며, 선수 경력 통산 5회의 리우 주 선수권 우승을 기록했다.
그의 선수 시절 클럽 기록은 다음과 같다.
2.2. 국가대표 경력
1958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기 몇 주 전 파라과이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58년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6개 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브라질이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때 개최국 스웨덴을 상대로 펠레와 바바의 각각 2골과 함께 1골을 득점하였다.
1962년 FIFA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두 번째로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데 기여했으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2 대 0으로 승리한 첫 골을 득점하였다. 그는 1958년 대회와 달리 전통적인 좌측 윙어로서 활약하는 데 더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
자갈루는 1958년부터 1964년까지 브라질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총 33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연속 우승을 달성한 팀에서 윙으로 항상 선발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체격적으로는 그리 유리하지 않았지만, 발밑 기술은 물론이고, 수비 시에는 최전방에서 가장 먼저 돌아와 자기 진영을 굳히는 헌신적인 선수였다. 대표 선수로서 37경기에 출전하여 30승 4무 3패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3. 감독 경력
1966년, 자갈루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던 보타포고에서 감독직을 시작했다. 이후, 1970년 FIFA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에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셀레상(Seleção)을 이끌고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우승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38세의 나이에 알베르토 수피치 다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두 번째로 어린 감독이 되었다.
서독에서 열린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자갈루는 펠레의 국제 무대 은퇴와 토스탕, 카를로스 알베르토 토레스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브라질은 스코틀랜드보다 골득실 1점 차로 간신히 조별 예선을 통과했고, 네덜란드에게 2-0으로 패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폴란드가 3위 결정전에서 브라질을 물리쳤다.
1989년에는 1990년 FIFA 월드컵 예선(AFC)을 위해 아랍에미리트에 고용되었다. 그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이끌고 예상치 못한 첫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지만, 월드컵 시작 며칠 전에 바스쿠 다 가마로 이적하여 카를로스 알베르토 파레이라가 그를 대신했다.
그 후 그는 브라질 국가대표팀 코디네이터 겸 수석 코치로 복귀하여 1994년 FIFA 월드컵 우승을 거들었다. 다시 한번 1998년 FIFA 월드컵을 위해 브라질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호나우두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개최국 프랑스에게 3-0으로 패했다.
2002년 11월, 자갈루는 그 해 월드컵 우승 후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가 떠난 후 브라질 감독직에 복귀했다. 11월 20일, 그의 유일한 경기에서 팀은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원정 3-2 승리를 거두었다.
1965년에 현역에서 은퇴한 후 지도자로 전향하여, 선수로 뛰었던 보타포고 등 브라질 국내 유력 클럽 감독을 역임했다. 또한 여러 차례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1970년 FIFA 월드컵 멕시코 대회에서는 히벨리누, 펠레 등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하여 선수와 지도자로서 모두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감독 시절 눈부신 업적을 남겼지만, 수비적인 전술 때문에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브라질 국내에서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FIFA 월드컵과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볼 수 있듯이, 두 명의 볼란치와 양쪽 풀백이 공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축구는 볼 점유율을 중시하는 현대 축구를 구현한 것이며, 우승과 준우승이라는 결과로 그 이념을 증명해 보였다.
2001년 플라멩구를 끝으로 감독직에서 은퇴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한일 대회에서 브라질 대표팀이 5번째 우승을 거머쥔 직후인 2002년 11월 20일,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브라질 대표팀 감독으로 일시적으로 복귀하여 3-2 승리를 거두며 자신의 대표팀 감독 100승을 장식했다.
2024년 1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사망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표되었다. 그는 전술적 이해와 벤치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때문에 선수들로부터 그의 감독 경력 내내 "교수(The Professor)"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그의 성인 "로보(Lobo)"가 포르투갈어로 "늑대"를 뜻하기 때문에 "벨료 로보(Velho Lobo)"("늙은 늑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3.1. 클럽 감독 경력
1965년 현역에서 은퇴한 자갈루는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선수 시절 몸담았던 보타포고를 비롯해 플루미넨시 FC, CR 플라멩구, CR 바스쿠 다 가마 등 브라질 명문 클럽 감독을 역임했다. 1970년 FIFA 월드컵 직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어 펠레를 비롯한 선수들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에서 우승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1974년 FIFA 월드컵에서는 펠레의 은퇴와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4위에 그쳤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는 중동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1976년 걸프컵 우승을 차지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알힐랄 FC을 1979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1984년 AFC 아시안컵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1989년에는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여 199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 팀을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로 이끌었다.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 코치로 브라질의 우승에 기여했다. 대회 후 대표팀 감독에 복귀하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위를 차지했다.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지쿠를 수석 코치로 임명하고 다시 브라질 대표팀을 이끌었으나, 결승전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2년 11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사임 이후 잠시 브라질 대표팀 감독직을 맡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3-2 승리를 거두었다.
자갈루는 수비적인 전술 때문에 브라질 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현대 축구의 흐름을 읽는 선구안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그가 중용한 카푸, 호베르투 카를루스 등은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클럽 감독 경력
| 팀 | 기간 |
|---|---|
| 보타포고 | 1967-1970, 1975, 1977-1978, 1986-1987 |
| 플루미넨시 FC | 1971, 1979-1980 |
| CR 플라멩구 | 1972-1973, 1984-1985, 2001 |
| 알힐랄 FC | 1978-1979 |
| CR 바스쿠 다 가마 | 1980-1981, 1990-1991 |
| 포르투게자 | 1999 |
3.2.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
자갈루는 1966년 선수 은퇴 후 보타포구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하여 1967년부터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선수권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1968년에는 타사 브라지우 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경기에서 가장 재치 있고 빈틈없는 감독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1967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잠시 맡았던 그는 1970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자갈루는 브라질 대표팀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지만, 팀에 자신의 전술을 적용했다. 그의 시스템은 함께 뛸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던 선수들에게 독특한 재능을 부여했다. 브라질 내에서는 그의 스타일이 너무 방어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수비에서 힘을 얻으면서 공격적인 선수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줄 수 있었다. 그의 팀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팀 중 하나였다. 조별 리그 3경기를 모두 승리하고, 페루와 우루과이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4:1로 꺾고 6경기에서 19골을 기록하며 대회를 마쳤다.
브라질의 세 번째 우승으로 쥘 리메 컵을 영구 소장하게 되면서 자갈루는 축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는 1974년 FIFA 월드컵까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성공적인 클럽 경력과 병행했다. 1971년 플루미넨시를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타이틀로 이끌었고, 1972년에는 자신의 이전 팀 플라멩구로 돌아와 같은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주요 선수들의 은퇴로 인해 자갈루는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성공을 재현하지 못했다. 그의 팀은 1970년 팀의 희미한 그림자였고, 첫 라운드에서 고전한 후 네덜란드에 의해 탈락되었다. 대회가 끝난 후 그는 국가대표팀을 떠나 브라질과 중동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자갈루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중동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쿠웨이트 대표팀 감독으로서 1976년 걸프컵 우승을 이끌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알힐랄을 1979년 리그 타이틀로 이끌었다. 1981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을 맡아 1984년 AFC 아시안컵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1989년에는 아랍에미리트 대표팀 감독이 되어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지만, 본선에서 팀을 감독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1991년 브라질은 또 다른 월드컵 우승을 위해 20년 이상 기다려왔다. 1994년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자갈루는 파헤이라 감독과 함께 팀을 지도하기 위해 다시 합류했다.
우승 후보로 대회에 참가한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24년 만에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자갈루는 4번의 월드컵 우승팀에 모두 관여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파헤이라 감독이 떠난 후, 팀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인정되어 다시 한번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브라질이 1998년 FIFA 월드컵에 자동 진출하면서 코파 아메리카는 자갈루가 팀을 준비할 주요 기회였다. 그는 1995년 대회까지 선수나 감독으로 이 대회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첫 시도에서 그는 결승에 진출했지만 개최국 우루과이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그러나 1997년 볼리비아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더 나은 결과를 얻었다. 브라질은 다시 결승전에서 개최국을 만났고, 이번에는 3:1로 승리하며 자갈루에게 또 다른 국제 대회 우승을 안겨주었다.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우승한 브라질은 1998년 FIFA 월드컵 우승 후보로 꼽혔다. 조별 리그를 통과하고 8강에서 칠레를 꺾었다. 덴마크를 상대로 접전 끝에 승리하고 네덜란드를 승부차기 끝에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전 전날 스타 스트라이커 호나우두가 발작을 일으키면서 기회가 무산되었다. 논란 끝에 자갈루는 호나우두를 선발했지만, 최고의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브라질은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개최국 프랑스에 3:0으로 패했다.
자갈루는 브라질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뛰어난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은 변함없었다. 클럽 팀에서 몇 번 더 감독을 맡은 후, 2003년 조정관으로 국가대표팀에 복귀했다.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다시 파헤이라 감독 아래 수석 코치로 팀과 함께했다. 76세의 나이로 은퇴한 자갈루는 브라질 축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로 남아있다.
자갈루는 브라질 대표팀 감독으로 재직하는 동안 주로 4-2-3-1 포메이션을 채택했다. 그는 1970년 FIFA 월드컵을 포함한 장기간의 토너먼트를 앞두고 선수들의 체력 훈련에 집중한 최초의 감독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는 전술적 이해와 벤치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때문에 선수들로부터 그의 감독 경력 내내 "교수(The Professor)"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그의 성인 "로보(Lobo)"가 포르투갈어로 "늑대"를 뜻하기 때문에 "벨료 로보(Velho Lobo)"("늙은 늑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4. 감독 스타일
자갈루는 경기에서 가장 재치 있고 빈틈없는 감독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감독 시스템은 팀으로서 함께 활약할 선수들의 독특한 재능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브라질 내에서는 그의 스타일이 지나치게 방어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수비에서 힘을 얻으면서 공격적인 선수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자갈루가 이끈 브라질 대표팀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팀 중 하나였다. 조별 리그 3경기를 모두 승리하고, 페루와 우루과이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를 4 대 1로 대파하고 우승을 차지하며, 6경기에서 19골을 넣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과 함께 수석 코치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파헤이라 감독이 떠난 후에는 다시 대표팀 감독을 맡아 1998년 FIFA 월드컵에서 팀을 결승전까지 이끌었으나, 프랑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자갈루는 수비적인 전술 때문에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브라질 국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과 1998년 월드컵에서 보여준 것처럼,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와 양쪽 풀백이 공격과 수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축구는 볼 점유율을 중시하는 현대 축구를 구현한 것이었고, 우승과 준우승이라는 결과로 그 정당성을 증명했다. 그가 중용한 카푸, 로베르투 카를루스 등은 이후 현대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브라질 대표팀 감독 및 코치로서 총 154경기를 치렀으며, 110승 33무 11패라는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선수와 지도자로서 네 번의 월드컵 우승에 기여한 자갈루는 많은 후배들에게 "교수"라는 존칭으로 불리며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5. 사망
2024년 1월 5일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92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짧은 입원 치료 후 여러 기관의 기능 부전으로 사망했는데, 이는 여러 기저 질환의 악화로 인한 것이었다. 2022년 7월에는 호흡기 감염으로 입원했고, 2023년 8월에는 요로 감염으로 22일간 입원했다.
6. 수상 내역
| 구분 | 대회 | 소속팀 | 연도 |
|---|---|---|---|
| 선수 | 리우데자네이루 주 선수권 대회 | 플라멩구 | 1953년, 1954년, 1955년 |
| 리우-상파울루 토너먼트 | 보타포구 | 1962년, 1964년 | |
| 리우데자네이루 주 선수권 대회 | 보타포구 | 1961년, 1962년 | |
| FIFA 월드컵 | 브라질 | 1958년, 1962년 | |
| 감독 | 브라질 세리에 A | 보타포구 | 1968년 |
| 리우데자네이루 주 선수권 대회 | 보타포구 | 1967년, 1968년 | |
| 플루미넨시 | 1971년 | ||
| 리우데자네이루 주 선수권 대회 코파 두스 캄페오이스(Copa dos Campeões) | 플라멩구 | 2001년 | |
| 1972년 | |||
| 사우디 프로리그(Saudi Premier League) | 알 힐랄 | 1978–79년 | |
| FIFA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브라질 | 1970년 1997년 1997년 | |
| 감독 | 아랍 걸프컵 | 쿠웨이트 | 1976년 |
| 수석 코치 | FIFA 월드컵 | 브라질 | 1994년 |
| 개인 | IFFHS 세계 최고 국가대표 감독 | 브라질 | 1997년 |
| 월드 사커 매거진 역대 최고 감독 9위 | 2013년 | ||
| 포포투 역대 최고 감독 27위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 2020년 |
6.1. 선수
1950년대 전반, CR 플라멩구의 왼쪽 윙으로 두각을 나타낸 자갈루는 플라멩구와 보타포구 시절 통틀어 5회의 리우 주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브라질 대표팀에 선발되어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팀에서 윙으로 항상 선발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체격적으로는 그리 유리하지 않았지만, 발밑 기술은 물론이고, 수비 시에는 최전방에서 가장 먼저 돌아와 자기 진영을 굳히는 헌신적인 선수였다.
대표 선수로서는 37경기에 출전하여 30승 4무 3패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6.2. 감독
1965년에 현역에서 은퇴한 후 지도자로 전향하여, 선수로 뛰었던 보타포고 등 브라질 국내 유력 클럽 감독을 역임했다. 또한 여러 차례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1970년 FIFA 월드컵 멕시코 대회에서는 리벨리노, 펠레 등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하여 선수와 지도자로서 모두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이후 선수와 지도자 모두 월드컵에서 우승한 인물은 프란츠 베켄바워와 디디에 데샹이다).
1989년에는 아랍에미리트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여 1990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 아랍에미리트 대표팀을 월드컵 첫 출전으로 이끌었다.
이후 1994년 FIFA 월드컵 미국 대회에서는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카를로스 알베르토 파레이라 감독을 수석 코치로 삼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회 후 대표팀 감독에 복귀하여 올림픽 대표팀 감독도 겸임했다. 1995년 코파 아메리카 이후 다음 1998년 FIFA 월드컵을 대비하여 연령을 고려한 선수 선발이라는 명확한 방침을 세워, 그동안 발탁되었던 일부 베테랑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1998년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회에서는 지쿠를 수석 코치로 맞이하여 다시 지휘봉을 잡고, 결승에서 프랑스에 패했지만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브라질 대표팀 감독 및 코치로서 총 154경기를 치렀는데, 그중 110승 33무 1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마이애미의 기적이 기적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선수와 지도자로서 네 번의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자갈루는 많은 후배들로부터 "교수"라는 존칭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감독 시절 눈부신 업적을 남겼지만, 수비적인 전술 때문에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브라질 국내에서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과 1998년 월드컵에서 볼 수 있듯이, 두 명의 볼란치와 양쪽 풀백이 공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축구는 볼 점유율을 중시하는 현대 축구를 구현한 것이며, 우승과 준우승이라는 결과로 그 이념을 증명해 보였다. 그가 중용했던 수비적인 포지션의 선수인 카푸, 호베르투 카를루스 등은 이후 현대 축구를 대표하는 명수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2006년 7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자갈루의 팀에서 오랫동안 주장을 역임했던 둥가가 대표팀을 지휘하기도 했다.
2001년 플라멩구를 끝으로 감독직에서 은퇴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한일 대회에서 브라질 대표팀이 5번째 우승을 거머쥔 직후인 2002년 11월 20일,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브라질 대표팀 감독으로 일시적으로 복귀하여 3-2 승리를 거두며 자신의 대표팀 감독 100승을 장식했다.
클럽 감독
국가대표 감독
수상
;보타포구
* 타사 데 브라질: 1968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967, 1968
;플라멩구
* 코파 두스 캄페오이스: 2001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972, 2001
;브라질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1970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1997
* 코파 아메리카: 1997
6.3. 수석 코치
자갈루는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수석 코치를 맡았다.
6.4. 개인
* IFFHS 세계 최고 국가대표 감독: 1997년
* 월드 사커 매거진 역대 최고 감독 9위: 2013년
* 포포투 역대 최고 감독 27위: 2020년
*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