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립간
1. 개요
마립간은 신라에서 지증왕 이전까지 왕을 칭하던 호칭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지증왕 4년(503년)부터 '왕'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립간의 어원에 대해서는 김대문은 '마립'을 '말뚝'의 방언으로, 화백 회의의 좌석을 의미한다고 보았고, 스에마쓰 야스카즈는 고구려의 최고 집정관 막리지를 어원으로 추정했다.
| 훈민정음 표기 | 마립ᄀᆞᆫ |
|---|---|
| 로마자 표기 | Maripkan |
| 영어 | Maripgan |
| 유형 | 칭호 |
|---|---|
| 사용 국가 | 신라 |
| 존속 기간 | 356년 ~ 503년 |
| 이전 칭호 | 이사금 |
| 다음 칭호 | 왕 |
| 설명 | 신라의 역대 군주 칭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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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
지증왕
지증왕은 신라의 제22대 왕으로, 국가 체제 정비, 순장 금지, 국호 및 왕의 칭호 통일, 주·군·현 제도 정비, 동시전 설치 등을 통해 왕권 강화와 국가 기틀 확립에 기여하고 이사부를 등용하여 우산국을 복속시켜 영토를 확장한 왕이다. -
마립간 -
내물 마립간
김씨 성으로 첫 즉위한 신라 17대 왕 내물 마립간은 재위 기간 동안 주변국들과 외교 및 군사적 충돌을 겪었으며 고구려의 도움으로 왜의 침입을 막아냈고 능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지도자 칭호 -
카이저
카이저는 로마 황제 칭호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독일어 단어로 황제를 의미하며,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독일 제국 군주의 칭호로 사용되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최고 수준을 나타내는 접두사로, 일본 천황 지칭, 제왕절개의 어원으로도 쓰인다. -
지도자 칭호 -
정이대장군
정이대장군은 에미시 정벌을 위해 임명된 일본 열도 태평양 방면 군 통솔 직책으로, 무사 정권의 시작과 함께 쇼군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일본을 통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왕족 칭호 -
카이저
카이저는 로마 황제 칭호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독일어 단어로 황제를 의미하며,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독일 제국 군주의 칭호로 사용되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최고 수준을 나타내는 접두사로, 일본 천황 지칭, 제왕절개의 어원으로도 쓰인다. -
왕족 칭호 -
차트라파티
차트라파티는 인도 마라타 제국의 군주들이 사용한 "황제", "왕", "지도자"를 의미하는 칭호로, 시바지 1세가 마라타 제국 건국 시 처음 사용한 이후 그의 후계자들이 계승하였으며, 현재는 우다얀라제 보살레가 칭호를 이어받고 있다.
2. 역대 마립간
신라의 역대 마립간과 재위 기간은 아래 표와 같다.
| 왕조명 | 대수 | 칭호 | 시호 | 휘 | 재위 기간 | 기타 |
|---|---|---|---|---|---|---|
| 김씨 왕조 | 17 | 내물 마립간 | 내물(奈勿), 나밀(那密) | 356년 ~ 402년 | 각간 말구(末仇)의 아들. | |
| 18 | 실성 마립간 | 실성(實聖) | 402년 ~ 417년 | 이찬 대서지(大西知)의 아들. | ||
| 19 | 눌지 마립간 | 눌지(訥祗) | 417년 ~ 458년 | 내물 마립간의 장자. | ||
| 20 | 자비 마립간 | 자비(慈悲) | 458년 ~ 479년 | 눌지 마립간의 장자. | ||
| 21 | 소지 마립간 | 소지(炤知) | 479년 ~ 500년 | 자비 마립간의 장자. | ||
| 22 | 지증 마립간 | 지증대왕 | 지대로(智大路), 지도로(智度路 / 智度盧) 또는 지철로(智哲盧) | 500년 ~ 514년 | 습보 갈문왕의 아들. | |
| 23 | 모즉지매금왕(牟卽智寐錦王) 또는 무즉지매금왕(另卽智麻立干) | 법흥대왕 | 원종(原宗), 모즉지(牟卽智) 또는 무즉지(另卽智) | 514년 ~ 540년 | 지증 마립간의 아들. |
신라에서는 건국 후 오랫동안 "마립간" 호칭을 사용했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지증왕 때인 503년부터 "왕"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1. 김씨 왕조
김씨 왕조는 내물 마립간을 시작으로 법흥왕까지 이어졌다. 각 마립간의 칭호, 휘, 재위 기간, 기타 정보는 아래 표와 같다.
2.1.1. 내물 마립간
356년 ~ 402년까지 재위한 김씨 왕조 최초의 마립간이다. 휘는 내물(奈勿) 또는 나밀(那密)이며, 각간 말구(末仇)의 아들이다.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1.2. 실성 마립간
402년부터 417년까지 재위한 실성 마립간(實聖麻立干)은 이찬 대서지(大西知)의 아들이다. 실성(實聖)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高句麗중국어와의 외교 관계에서 갈등을 겪었다.
2.1.5. 소지 마립간
소지 마립간은 자비 마립간의 장자로, 479년부터 500년까지 신라를 다스렸다. 그는 백성들의 생활 안정에 힘썼다.
2.1.7. 법흥왕
법흥왕(法興大王중국어)은 원종(原宗), 모즉지(牟卽智) 또는 무즉지(另卽智)라고도 불리며, 지증왕의 아들이다. 514년부터 540년까지 재위하였다.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여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을 완성했다.
3. 어원 및 해석
신라에서는 건국 후 오랫동안 왕을 칭하는 데 "마립간" 호칭을 사용했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지증왕 때까지를 "마립간"으로 칭하고, "왕" 호칭 사용은 503년에 시작되었다.
'마립간'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김대문의 해석과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해석이 있다.
3.1. 김대문의 해석
김대문은 "마립"을 "말뚝"을 의미하는 한국어의 방언으로 보았다. 그는 "마립"이 화백 때 참가자들의 좌석을 나타내는 표목이라고 해석했다. 왕은 화백의 최상석을 차지하므로 그 좌석을 "마립"이라 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문의 설명은 "마립"이 말뚝 그 자체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왕이 앉는 자리를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3.2.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해석
스에마쓰 야스카즈는 고구려의 최고 집정관인 막리지를 "마립간"의 원어로 보았다. 그는 "막리"와 "마립" 모두 "마카리"로 읽으며, 《석일본기》에 있는 "상신(마카리다로)"과 "정부인(마카리오리쿠쿠)"의 고훈을 채택하여 "마카리"에는 상(上)·대(大)·정(政) 등의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4. 마립간 시대의 정치와 사회
내물 마립간부터 신라 법흥왕까지 신라에서는 왕의 칭호로 '마립간'을 사용하였다. 마립간 시대의 정치와 사회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왕 | 휘 | 재위 기간 | 기타 |
|---|---|---|---|
| 내물 마립간 | 내물(奈勿), 나밀(那密) | 356년 ~ 402년 | 각간 말구(末仇)의 아들. |
| 실성 마립간 | 실성(實聖) | 402년 ~ 417년 | 이찬 대서지(大西知)의 아들. |
| 눌지 마립간 | 눌지(訥祗) | 417년 ~ 458년 | 내물 마립간의 장자. |
| 자비 마립간 | 자비(慈悲) | 458년 ~ 479년 | 눌지 마립간의 장자. |
| 소지 마립간 | 소지(炤知) | 479년 ~ 500년 | 자비 마립간의 장자. |
| 지증 마립간 | 지대로(智大路), 지도로(智度路 / 智度盧) 또는 지철로(智哲盧) | 500년 ~ 514년 | 습보 갈문왕(習寶)의 아들. |
| 모즉지매금왕(牟卽智寐錦王) 또는 무즉지매금왕(另卽智麻立干) | 원종(原宗), 모즉지(牟卽智) 또는 무즉지(另卽智) | 514년 ~ 540년 | 지증왕의 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