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매시니
1. 개요
마이크 매시니는 은퇴한 메이저 리그 포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 밀워키 브루어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활약하며 통산 4번의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을 맡아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으며, 이후 캔자스시티 로열스 감독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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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70년 9월 22일 |
|---|---|
| 출생지 | 미국오하이오주콜럼버스 |
| 포지션 | 포수 / 감독 |
| 타석/투구 | 우타/우투 |
| 데뷔 리그 | MLB |
|---|---|
| 데뷔 일자 | 1994년 4월 7일 |
| 데뷔 팀 | 밀워키 브루어스 |
| 마지막 리그 | MLB |
| 마지막 일자 | 2006년 5월 31일 |
| 마지막 팀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 선수 경력 (팀) | 밀워키 브루어스 (1994년–1998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9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0년–2004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05년–2006년) |
| 골드 글러브 수상 | 4회 (2000년, 2003년–2005년) |
|---|
| 타율 | 0.239 |
|---|---|
| 홈런 | 67 |
| 타점 | 443 |
| 감독 경력 (팀)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12년–2018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2020년–2022년) |
|---|---|
| 감독 성적 | 756승 693패 |
| 승률 | 0.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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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출생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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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출생 -
제이슨 리
제이슨 리는 1980년대 후반부터 프로 스케이트보더로 활동하다 1990년대 초 배우로 전향하여 케빈 스미스 감독 영화에 다수 출연하고 NBC 드라마 《마이 네임 이즈 얼》에서 주연을 맡은 미국의 배우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2007년 2월 1일, 매시니는 지속적인 뇌진탕 후유증으로 인해 35세의 나이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그 직후, Protégé Sports의 야구 멘토가 되었고, 스코츠데일에 기반을 둔 회사를 위해 포구 팁과 훈련을 촬영했다.
13년간의 메이저 리그 경력 동안 매시니는 1,305경기에 출전하여 3,877타수에서 925개의 안타를 기록, 통산 타율 0.239를 기록했으며, 67개의 홈런, 443타점, 그리고 출루율 0.293을 기록했다. 그는 내셔널 리그 포수 중 수비율 1위를 두 번 기록했으며, 통산 0.994의 평균 수비율로 선수 생활을 마쳤는데, 이는 그의 선수 생활 동안 리그 평균보다 4포인트 높은 수치였다. 그의 통산 0.994 수비율은 메이저 리그 포수 중 역대 10위에 해당한다. 매시니는 또한 내셔널 리그 포수 중 도루 저지 1위를 두 번 기록했다.
(2005년 8월 20일)
(2004년 8월 7일)
2.1. 아마추어 시절
매시니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교외인 레이놀즈버그에서 자랐다. 그는 야구와 미식축구 팀의 주장을 맡았던 레이놀즈버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로부터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미시간 대학교 코치인 버드 미도가 제공한 장학금을 받아들였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매시니는 울버린스 야구팀의 공동 주장을 맡았다.
매시니의 수비 능력과 송구 능력은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고,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그를 1988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31라운드에서 지명했다. 하지만 매시니는 프로 선수가 되기보단 대학 진학을 선택하였고, 단장 팻 길릭의 계약 제안을 거절하였다.
매시니는 1989년 코니 맥 선수권 대회 팀의 일원이었다. 1990년에는 대학 하계 야구에서 케이프코드 야구 리그의 코튜잇 케틀러스에서 뛰었고 리그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2.2. 밀워키 브루어스 (1994–1998)
밀워키 브루어스는 1991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매시니를 지명했고, 그는 3년 동안 마이너 리그 시스템을 거쳤다. 1994년 4월 7일, 23세의 나이로 브루어스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다음 시즌 초반에 주전 포수가 되었다.
1998년 5월 26일 1998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매시니는 9회말 타석에서 리치 로아젤의 공에 얼굴을 맞았다. 그는 꼿꼿이 서서 손을 엉덩이에 얹었고, 파이리츠 포수 제이슨 켄달과 홈 플레이트 심판 제리 크로포드는 브루어스 트레이너를 급히 불렀다. 그는 피를 한 입 뱉으며 경기장을 나섰다.
1991년 대학 4학년 때 MLB 드래프트 8라운드(전체 208위)에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 계약 후 산하 파이오니어 리그의 루키급 헬레나 브루어스/Helena Brewers영어에서 프로 데뷔했다. 1992년에는 A+급 스톡턴 포츠, 1993년에는 AA급 스프링필드 카디널스로 순조롭게 승격했다. 1996년부터는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그 시즌이 끝나고 연봉 조정 자격을 얻었고, 브루어스는 몇 달 후 그에게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부여했다.
2.3.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9)
밀워키 브루어스는 1991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매시니를 지명했고, 그는 3년 동안 마이너 리그 시스템을 거쳤다. 23세이던 1994년 4월 7일에 브루어스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다음 시즌 초반에 주전 포수가 되었다.
1998년 5월 26일 1998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매시니는 9회말 타석에서 리치 로아젤의 공에 얼굴을 맞았다. 그는 꼿꼿이 서서 손을 엉덩이에 얹었고, 파이리츠 포수 제이슨 켄달과 홈 플레이트 심판 제리 크로포드는 브루어스 트레이너를 급히 불렀다. 그는 피를 한 입 뱉으며 경기장을 나섰다. 그 시즌이 끝나고 그는 연봉 조정 자격을 얻었고, 브루어스는 몇 달 후 그에게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부여했다.
그를 드래프트한 지 10년 만인 1998년 12월 23일, 토론토 블루 제이스는 1999년 시즌을 위해 그를 영입했다. 대린 플레처의 백업 선수 역할을 했다. 토론토는 그 시즌 후에 그를 방출했고, 그는 1999년 12월 15일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했다.
2.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0–2004)
마테니는 스프링 트레이닝 훈련 이후 간신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로스터에 합류했지만, 2000년 시즌에 주전 포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는 통산 최고인 .261의 타율을 기록했고, .993의 수비율과 리그 평균인 32%를 훨씬 넘는 53%의 도루 저지율을 기록하며 카디널스의 뛰어난 수비를 이끌었다. 마테니는 카디널스가 1999년 4위에서 내셔널 리그 중부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고, 그 과정에서 생애 첫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시즌 후 카디널스는 그와 3년 9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2002년 8월 1일부터 2004년 8월 4일까지 마테니는 252경기 연속 무실책을 기록하며 포수 부문 메이저 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또한 2004년에 1,565번의 연속된 찬스를 무실책으로 처리하며 또 다른 포수 부문 메이저 리그 기록을 세웠다. 카디널스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는 동안 마테니는 611경기에 출전해 4,938.1 이닝을 소화했고, 단 14개의 실책만을 기록했다. 그의 .997의 수비율은 세인트루이스에서 2,000이닝 이상을 소화한 모든 포수들 중 최고 기록이다.
대릴 카일의 2002년 여름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마테니는 팀이 이를 극복하고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을 도우며 "영감을 주는 리더"임을 보여주었다. 2003년 시즌 이후, 세인트루이스와 휴스턴 지부의 BBWAA는 카일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을 마테니를 초대 수상자로 선정했다.
최고의 수비형 포수로서의 명성을 더욱 높이며, 마테니는 2003년과 2004년에도 카디널스에서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의 수비 기여는 세인트루이스가 팀에서 활약한 5년 중 4번이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2004년에는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2004년 월드 시리즈 이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는데, 주로 신인 포수 야디어 몰리나의 등장 때문이었고, 이후 다시 팀에서 재회하게 된다.
(2004년 8월 7일)
2.5.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05–2006)
(2005년 8월 20일)
매시니는 2004년 12월 13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3년 계약을 맺었다. 다음 시즌 그는 이례적인 파워를 보여주며, 개인 최고 기록인 13개의 홈런, 34개의 2루타, .406의 장타율, 59개의 타점을 기록했다. 매시니는 수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팀 기록인 .999의 수비율을 기록했고, 내셔널 리그 포수 중 13개의 병살타, 77개의 보살, 39개의 도루 시도를 도루 실패로 막아내며 통산 4번째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는 또한 그 해 윌리 맥 어워드를 수상했는데, 이 상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 중 정신력과 리더십을 보여준 선수에게 매년 수여된다.
2006년 5월 31일, 마스크에 연이은 파울볼이 맞으면서 심각한 뇌진탕 증세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7월, 자이언츠는 그가 시즌 잔여 경기에 복귀하지 못할 것이며, 그의 선수 생활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발표했다. MLB.com의 자이언츠 담당 기자 리치 드레이퍼는 매시니가 지속적인 뇌진탕 후 증후군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마감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3.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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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4일, 월드 시리즈 우승 후 은퇴한 친정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니 라 루사의 후임으로 2012년부터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5년, 취임 후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달성한 MLB 역사상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 팀 | 연도 | 정규 시즌 | 포스트시즌 | |||||||
|---|---|---|---|---|---|---|---|---|---|---|
| 경기 | 승 | 패 | 승률 | 순위 | 승 | 패 | 승률 | 결과 | ||
| |2012 | 162 | 88 | 74 | .543 | NL 중부 2위 | 7 | 6 | .538 | NLCS 패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SF)) | |
| |2013 | 162 | 97 | 65 | .599 | NL 중부 1위 | 9 | 8 | .529 | 월드 시리즈 패배 (보스턴 레드삭스(BOS)) | |
| |2014 | 162 | 90 | 72 | .556 | NL 중부 1위 | 4 | 5 | .444 | NLCS 패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SF)) | |
| |2015 | 162 | 100 | 62 | .617 | NL 중부 1위 | 1 | 3 | .250 | NLDS 패배 (시카고 컵스(CHC)) | |
| |2016 | 162 | 86 | 76 | .531 | NL 중부 2위 | – | – | – | ||
| |2017 | 162 | 83 | 79 | .512 | NL 중부 3위 | – | – | – | ||
| |2018 | 93 | 47 | 46 | .505 | 해고 | – | – | – | ||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합계 || 1065 || 591 || 474 || .555 || || 21 || 22 || .488 || | ||||||||||
| |2020 | 60 | 26 | 34 | .433 | AL 중부 4위 | – | – | – | ||
| |2021 | 162 | 74 | 88 | .457 | AL 중부 4위 | – | – | – | ||
| |2022 | 162 | 65 | 97 | .401 | AL 중부 5위 | – | – | – | ||
| 캔자스시티 로열스 합계 || 384 || 165 || 219 ||.430|| || – || – || – || | ||||||||||
| 총계 || 1,449 || 756 || 693 || .522 || || 21 || 22 || .488 || | ||||||||||
2018년 7월 14일, 존 메이브리 타격 코치, 빌 밀러 타격 코치 보좌와 함께 해임되었다. 47승 46패로 지구 선두와 7.5 게임차 3위였다. 총 7시즌 동안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했지만,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지는 못했다.
카디널스 감독 해임 후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구단 어드바이저를 맡았다. 2020년 시즌부터는 로열스의 감독을 맡았다. 2022년, 3시즌 연속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3.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12–2018)
2011년 11월 14일, 월드 시리즈 우승 후 은퇴한 친정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니 라 루사의 후임으로 2012년부터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5년, 취임 후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달성한 MLB 역사상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2018년 7월 14일, 존 메이브리 타격 코치, 빌 밀러 타격 코치 보좌와 함께 해임되었다. 47승 46패로 지구 선두와 7.5 게임차 3위였다. 총 7시즌 동안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했지만,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지는 못했다.
카디널스 감독 해임 후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구단 어드바이저를 맡았다. 2020년 시즌부터는 로열스의 감독을 맡았다. 2022년, 3시즌 연속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3.2. 캔자스시티 로열스 (2020–2022)
2019년 10월 31일, 매시니는 네드 요스트의 은퇴 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감독으로 고용되었다. 로열스는 2022년 3월 31일 계약 옵션을 행사하여 2023시즌까지 매시니를 유임시켰다. 2022년 10월 5일, 로열스는 매시니가 2023 시즌 감독으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4. 수상 내역
골드글러브(포수 부문) 4회 (2000년, 2003년 - 2005년)
5. 개인 생활
마이크 매시니의 아내 크리스틴은 미시간 대학교의 전 필드 하키 선수였다.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장남 테이트는 미주리 주립 대학교에서 대학 야구를 했으며, 2015년 MLB 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되었다. 딸 케이티는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에서 아이스 하키를 했다. 마이크 매시니의 두 아들 루크는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에서, 블레이즈는 미주리 주립 대학교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마이크 매시니는 스포츠 경영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으며, 스페인어를 부전공했다. 그는 자신의 삶의 경험을 정기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리더십과 유소년 스포츠 문화 변화를 포함한 주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종종 사인할 때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