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커다이어
1. 개요
마이클 커다이어는 은퇴한 미국의 야구 선수로, 외야수, 1루수, 2루수, 3루수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1997년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되어 2011년까지 활약했으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2015년에는 뉴욕 메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013년에는 타격왕을 차지했고, 두 번의 사이클링 히트와 두 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2015년 은퇴 후에는 미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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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우익수 |
|---|---|
| 타격 | 우 |
| 투구 | 우 |
| 출생일 | 1979년 3월 27일 () |
| 출생지 | 버지니아주 노퍽, 미국 |
| 데뷔 리그 | MLB |
|---|---|
| 데뷔일 | 2001년 9월 23일 |
| 데뷔팀 | 미네소타 트윈스 |
| 마지막 리그 | MLB |
| 마지막 경기일 | 2015년 10월 3일 |
| 마지막 팀 | 뉴욕 메츠 |
| 소속팀 | 미네소타 트윈스 (–) 콜로라도 로키스 (–) 뉴욕 메츠 () |
| 올스타 | 2회 (2011년, 2013년) |
|---|---|
| 실버 슬러거 상 | 2013년 |
| 내셔널 리그 타격왕 | 2013년 |
| 미네소타 트윈스 명예의 전당 | 해당 사항 없음 |
| 타율 | .277 |
|---|---|
| 홈런 | 197 |
| 타점 | 794 |
| 종목 | 남자 야구 |
|---|---|
| 대회 |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
| 메달 | 동메달 |
| 장소 | 상크티 스피리투스 |
| 팀 | 팀 |
-
1979년 출생 -
양동근
양동근은 1987년 아역 배우로 데뷔하여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하며 YDG aka Madman이라는 예명으로 힙합 가수로도 데뷔하여 독특한 스타일과 개성 있는 음악으로 입지를 다진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힙합 래퍼이다. -
1979년 출생 -
팀 케이힐
팀 케이힐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축구 선수로, 다양한 클럽과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골 결정력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인 인물이다. -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 -
호세 카페얀
호세 카페얀은 미국과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으며,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15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 -
김병현
김병현은 199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2001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현재는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미네소타 트윈스 선수 -
커비 퍼켓
커비 퍼켓은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활약하며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과 타점왕, 실버 슬러거 상, 골드 글러브 상, 올스타 선정, 챔피언십 시리즈 MVP, 월드 시리즈 우승을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나, 은퇴 후 녹내장과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다 젊은 나이에 사망한 미국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다. -
미네소타 트윈스 선수 -
숀 버로스
숀 버로스는 1998년 MLB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 2000년 하계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마약 중독으로 여러 팀을 전전하다 2024년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의 그레이트 브리지 고등학교 출신으로, 학창 시절부터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1996년과 1997년에는 미국 18세 이하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국제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199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트윈스에서 2011년까지 활약했다. 초기에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다 2006년 주전 우익수 및 중심 타자로 자리 잡았고, 2009년에는 사이클링 히트 및 한 이닝 2홈런을 기록했으며, 2011년에는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2011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콜로라도 로키스와 3년 계약을 맺었다. 로키스 소속이던 2013년에는 타율 .331로 내셔널 리그 타격왕에 오르고 통산 두 번째 올스타로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14년에는 개인 통산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며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양대 리그에서 모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역대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2014년 시즌 종료 후 뉴욕 메츠와 2년 계약을 맺고 이적했으며, 2015년 한 시즌 동안 활약하며 팀의 월드 시리즈 진출에 기여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2023년 미국 18세 이하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1. 아마추어 시절
커다이어는 버지니아주 노포크에서 태어났으며, 체서피크에 있는 그레이트 브리지 고등학교를 1997년에 졸업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야구, 농구, 미식축구에서 뛰어난 운동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학생회장과 전미 우등생 협회 회원이기도 했다.
1996년과 1997년에는 미국 18세 이하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세계 주니어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1997년에는 미국 야구 코치 협회와 롤링스가 선정하는 올아메리카 1군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버지니아 올해의 선수 및 게토레이 전국 야구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USA 투데이가 선정한 올스타와 USA 주니어 국가대표팀 멤버로도 활동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미국 군단 야구에서도 활동했으며, 2014년에는 미국 군단 졸업생으로 선정되었다.
2.2. 프로 경력
마이클 커다이어는 199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되어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 진학 대신 프로행을 선택한 그는 마이너 리그를 거쳐 2001년 9월 23일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으로 초기에는 여러 포지션을 오갔으나, 2006년 주전 우익수 및 중심 타자로 자리 잡으며 24홈런과 109타점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다. 트윈스 시절 2009년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고 같은 해 한 이닝 2홈런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으며, 2011년에는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2011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콜로라도 로키스와 3년 계약을 맺었다. 로키스 이적 후 2013년에는 타율 .331로 내셔널 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통산 두 번째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2014년 8월 17일에는 개인 통산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양대 리그에서 모두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역대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2014년 시즌 종료 후 뉴욕 메츠와 2년 계약을 맺었으나, 2015년 한 시즌을 소화하고 월드 시리즈 진출을 경험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2.1. 미네소타 트윈스 (1997-2011)
커다이어는 199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되었으나, 계약은 8월에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에서 대학 야구를 할 예정이었지만, 트윈스가 계약금을 700에서 1.3로 인상하자 프로 진출을 결정했다. 이로 인해 프로 데뷔는 1998년 싱글 A 미드웨스트 리그의 포트 웨인 틴캡스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유격수로 122경기에 출전했으나 61개의 실책을 기록하며 수비에 약점을 보였다. Baseball America에서 꾸준히 유망주로 평가받으며 마이너 리그를 거쳤고, 1999년 A급 포트마이어스 미라클 소속 시절부터는 3루수로 전향했다.
2001년 더블 A 뉴 브리튼에서 141경기 타율 0.301, 30홈런, 87타점을 기록한 후, 9월 23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8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하여 2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2002년에는 트리플 A 에드먼턴에서 86경기 타율 0.309, 20홈런, 53타점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둔 후 시즌 막판 콜업되었고, 포스트시즌 로스터에도 이름을 올렸다. 시즌 전 신인상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수비 불안과 변화구 대처 능력 부족으로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2003년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어 우익수로 출전했으나 5월 초 타율 부진으로 AAA급 로체스터 레드윙스로 강등되었다가 8월 말에 재승격했다. 2004년에는 주전 2루수 루이스 리바스의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늘어나 내야수(2루수, 3루수)와 외야수를 오가며 115경기에 출전했다. 2005년에는 코리 코스키가 토론토 블루 제이스로 이적하면서 주전 3루수 자리를 맡았으나, 수비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시즌 대부분 백업 역할로 밀려났다. 시즌 후 10월에는 오른쪽 외측 반월판 파열 수술을 받았다.
2006년 1월 21일, 트윈스와 1년 1.3 계약을 맺었다. 이전까지 우익수를 맡았던 잭 존스가 시카고 컵스로 이적하면서, 커다이어는 타격에 전념하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했다. 조 마우어, 저스틴 모어노 등 좌타자들과의 시너지를 고려해 타순에서 주로 4번 타자로 활약했다. 이 해 15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4, 24홈런, 커리어 하이인 109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 잡았다. 2007년에는 14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6, 16홈런, 81타점을 기록했다.
2008년 1월 25일, 트윈스와 3년 24 계약(2011년 10.5 구단 옵션 포함)을 맺었다. 그러나 4월 4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3루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탈구되고 열상을 입는 부상을 당해 4월 25일까지 결장했다. 또한 6월 29일에는 왼손 검지 부상으로 다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라 9월 13일에 복귀하는 등 부상으로 인해 시즌 71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9년 5월 22일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고, 8월 23일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 7회에 홈런 2개를 기록하며 한 이닝 2홈런을 친 53번째 메이저 리그 선수가 되었다. 이 해 저스틴 모노의 부상으로 1루수로도 출전하며 153경기에서 타율 .276, 개인 최다인 32홈런, 94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후 11월 7일 트윈스는 2011년 구단 옵션을 행사했다.
2010년에는 주로 우익수로 뛰었지만 7월 저스틴 모어노의 부상 이탈 후 1루수와 3루수로도 출전하며 157경기에서 타율 .271, 14홈런, 81타점을 기록했다.
2011년에는 부상자가 속출한 팀 내에서 꾸준히 출전했고, 커리어 처음으로 감독 추천을 통해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7월 25일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20-6으로 크게 패하던 경기 8회에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는 트윈스 야수로서는 존 모세스 이후 21년 만의 공식전 등판이었다. 이 시즌 13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84, 20홈런, 70타점, 11도루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10월 30일 FA 자격을 얻었다.
2.2.2. 콜로라도 로키스 (2012-2014)
2011년 12월 16일, 커다이어는 콜로라도 로키스와 3년, 31.5 계약을 맺었다. 그는 미네소타 트윈스 시절 가까웠고 이후 세상을 떠난 명예의 전당 헌액자 하먼 킬리브루를 기리기 위해 등번호 3번을 선택했다.
2013년에는 27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당시 로키스 구단 역사상 최장 기록이기도 했다. 또한 통산 두 번째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커다이어는 2013년 정규 시즌을 13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31, 20개의 홈런, 84타점으로 마쳤다. 그는 애틀랜타의 크리스 존슨을 1푼 차이로 제치고 내셔널 리그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는데, 이는 그의 선수 경력 첫 번째 타격왕 타이틀이었다. 이전까지 커다이어의 한 시즌 최고 타율은 .284에 불과했다.
2014년 8월 17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이로써 그는 두 번 이상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한 30번째 선수가 되었으며, 존 올러루드와 밥 왓슨에 이어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양대 리그에서 모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역대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또한, 2014 시즌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였다.
2.2.3. 뉴욕 메츠 (2015)
커다이어는 2014년 11월 10일, 21 규모의 2년 계약을 뉴욕 메츠와 체결했다. 2015년 7월 24일, 커다이어는 왼쪽 무릎의 뼈 타박상으로 인해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8월 10일에 복귀했다. 2015년 메츠에서 117경기에 출전하여 커다이어는 .259의 타율, 10홈런, 41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선수 경력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에 출전했지만, 팀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에게 5경기 만에 시리즈에서 패했다.
2015년 12월 11일, 커다이어는 더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실린 "열심히 플레이하고 크게 꿈을 꿔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2.3. 국가대표팀 경력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18세 이하)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2023년 2월 22일, 과거 선수로 뛰었던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18세 이하)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대만 타이난에서 열리는 U-18 야구 월드컵에 참가하는 대표팀을 이끌게 되었다.
3. 은퇴 이후
(내용 없음)
4.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우익수였으나, 3루수, 1루수, 2루수, 좌익수, 중견수, 심지어 투수까지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타격에서는 폴 몰리터와 유사하게 콤팩트하면서도 빠른 스윙을 구사했으며, 파워와 선구안을 겸비했다. 이러한 타격 능력을 바탕으로 2013년에는 MLB 수위 타자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다만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바깥쪽 변화구에는 약점을 보였다. 발은 빠르지 않았지만, 외야 수비 시 공까지 최단 거리로 접근하는 능력과 정확한 송구 능력을 갖추어 보살이 많은 편이었다.
5. 개인적인 삶
마이클은 헨리 커다이어와 마르시아 해리스의 아들이며, 케이티라는 여동생이 있다. 2006년 11월 11일, 영어 교사인 클라우디아 렌트와 결혼했다. 슬하에 아들(2008년 6월 20일 출생)과 이란성 쌍둥이 딸(2011년 12월 6일 출생)을 두고 있다. 가족과 함께 체서피크, 버지니아에 거주한다.
어린 시절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11살 때부터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하지만 커다이어는 이러한 부분적인 청력 손실이 경기장에서 동료들의 소리를 듣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으며, 스스로를 청각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6. 수상 및 기록
| 등번호 | 사용 기간 |
|---|---|
| 5 | 2001년 ~ 2011년 |
| 3 | 2012년 ~ 2014년 |
| 23 | 2015년 |
6.1. 수상
* 실버 슬러거상: 1회 (2013년)
6.2. 기록
15시즌 동안 1,536경기에 출전하여 .277의 타율 (5,488타수 1,522안타), 809득점, 3332루타, 423루타, 197홈런, 794타점, 75도루, 527볼넷, .344의 출루율, .461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선수 경력 동안 3개의 외야 포지션과 1루, 2루, 3루에서 뛰며 .986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는 28경기에 출전하여 .306의 타율(85타수 26안타), 5득점, 2홈런, 8타점을 기록했다.
* MLB 올스타전 선정: 2회 (2011년, 2013년)
* 사이클링 히트 달성: 2회 (2009년 5월 22일, 2014년 8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