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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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인강은 독일 바이에른주 북부에서 발원하여 헤센주를 거쳐 라인강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유럽 분수계에 속한다. 프랑켄 지역을 관통하며 뷔르츠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등 주요 도시를 지난다. 과거 로마 시대부터 중요한 수송로였으며, 중세 시대에는 정기선이 운행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철도 보급으로 쇠퇴했지만, 증기선 도입과 운하화 사업으로 다시 활성화되었고, 1992년 라인-마인-도나우 운하 개통으로 흑해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내륙 수로가 되었다. 현재는 CEMT V등급 선박이 항해할 수 있도록 운하화되었으며, 34개의 댐과 갑문이 설치되어 있다. 마인강은 수력 발전을 위한 댐 건설로 전기를 생산하며, 주변 지역은 자전거길, 관광 명소, 문화 유적지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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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강 | |
---|---|
지도 | |
기본 정보 | |
명칭 | 마인강 |
로마자 표기 | Main gang |
독일어 표기 | Main |
독일어 발음 | ['maɪn] |
지리 | |
발원지 | 바이에른주 |
발원지 표고 | 895 미터 (바이스마인켈레) |
하구 | 라인강 |
하구 표고 | 83 미터 |
유역 국가 | 독일 |
길이 | 524.9 킬로미터 |
평균 방류량 | 200 세제곱미터 매 초 |
유역 면적 | 27208 제곱킬로미터 |
위치 | [[File:Main-Karte-160710.jpg|300px|마인강의 독일 내 위치]] |
수문학적 정보 | |
수계 | 라인강 |
추가 정보 | |
독일 연방 주로 | 바이에른주 |
2. 지리
마인강은 바이에른주 북부 및 북서부를 관통하여 남부 헤센주를 가로지르며, 헤센주를 따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와 경계를 이루며,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최북단 도시인 베르트하임암마인 동서부를 지난다.
마인강의 상류는 다뉴브강의 유역과 마주하며, 이는 자연 생물학자, 해양 염분 연구 등에서 유럽 분수계로 인정된다.
마인강은 바이에른주와 헤센주를 흘러 내려가며, 베르트하임 부근에서는 약 25km 동안 바이에른주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사이의 주 경계를 이룬다.
마인강은 밤베르크부터 388km가 항행 가능하며[8],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통해 에를랑겐, 뉘른베르크를 경유하여 분수계를 넘어 도나우강에 연결된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주변의 라인-마인 산업 집중 지역에는 많은 대규모 하천 항구가 있다.
마인강을 따라 마인 유보도와 마인 자전거 도로가 있다.
마인강의 주요 지류로는 레그니츠강, 프랑켄 잘레강, 타우버강, 니더강이 있다.[2]
2. 1. 수원


마인강은 화이트 마인강(백마인강)과 레드 마인강(적마인강)이 합류하여 시작된다. Weißer Mainde은 피히텔 산맥에서 발원하며, 길이는 41km이다. Roter Mainde은 프랑켄 알프스 산맥에서 발원하며, 길이는 50km이고, 크로이센과 바이로이트를 통과한다.[2] 이 두 강은 쿨름바흐 인근에서 합류한다.
백마인강은 바이로이트에서 북동쪽으로 20km, 피히텔베르크 북서쪽의 피히텔 산지에서 발원한다. 해발 1,024m의 옥젠코프 산 동쪽 사면, 해발 887m 지점에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수원이 있다. 해발 679m에 위치한 비쇼프스그륀이 백마인강이 처음으로 통과하는 마을이다. 백마인강의 수원 지역은 흰빛을 띤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물이 하얗게 보이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적마인강은 바이로이트 남쪽 10km, 크로이센 서쪽 5km의 프렌키셰 알프에서 발원한다. 헬라스로이트(크로이센의 한 지구)에서 2km 북서쪽의 린덴하르트 숲 속에 수원이 있다. 이 강이 흐르는 퇴적암으로 만들어진 로움질 토양이 물에 붉은색을 띠게 하여 강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헬라스로이트는 적마인강이 처음으로 만나는 작은 마을이며, 크로이센은 처음으로 만나는 더 큰 마을이다. 적마인강은 리하르트 바그너 축제 음악제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바이로이트까지 북쪽으로 흐른다. 강줄기는 여러 번 굽이치면서 좁은 계곡을 따라 북서쪽으로 나아간다.
두 원류는 쿨름바흐 서쪽 외곽에 있는 슈타이넨하우젠 성 부근에서 합류하며, 이곳이 마인강의 출발점이다.
좌안 지류 | 우안 지류 |
---|---|
원류 | |
2. 2. 유로
마인강은 오버프랑켄, 운터프랑켄, 헤센 남부를 지나며, 뷔르츠부르크, 아샤펜부르크, 프랑크푸르트암마인과 같은 주요 도시를 통과한다. 특히 운터프랑켄에서는 인구 밀집 지역을 흐르며, 아샤펜부르크에서 하구까지는 산업 집중 지대 및 교통로를 형성한다. 마인강은 쿨름바흐 인근에서 레드 마인강과 화이트 마인강이 합류하면서 시작된다.[2]2. 3. 지형
마인강은 프랑켄의 쿨름바흐 인근에서 레드 마인강(''Roter Main'')과 화이트 마인강(''Weißer Main'')이 합류하면서 시작된다. 레드 마인강은 프랑켄 알프스 산맥에서 발원하며, 길이는 50km이고, 크로이센과 바이로이트를 통과한다. 화이트 마인강은 피히텔 산맥에서 발원하며, 길이는 41km이다. 마인강은 상류 및 중류 구간에서 독일 고지대의 계곡을 통과한다. 하류 구간은 하나우-젤리겐슈타트 분지와 북부 오버라인 평원을 가로질러 비스바덴까지 흐르며, 여기서 라인강으로 유입된다.[2]길이 41km의 백마인강은 마인강 우안, 즉 북쪽의 원류이다. 이 강은 피히텔 산맥에서 발원한다. 해발 1,024m의 옥젠코프 산 동쪽 사면, 해발 887m 지점에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수원이 있다. 백마인강의 수원 지역은 흰빛을 띤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물이 하얗게 보이는 데서 이 이름이 유래했다.
전장 73km의 적마인강은 마인강 좌안, 즉 남쪽의 원류이다. 이 강은 프렌키셰 알프에서 발원한다. 퇴적암으로 만들어진 로움질 토양이 물에 붉은색을 띠게 하여 강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두 원류는 쿨름바흐 서쪽 외곽에 있는 슈타이넨하우젠 성 부근에서 합류한다. 이곳이 마인강의 출발점이다.

수원지에서 밤베르크까지를 오버마인란트라고 부른다.
마인강의 원형은 약 3500만 년 전 시신세 초기에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 것은 밤베르크까지였으며, 거기서는 현재의 레그니츠강/레드니츠강의 강줄기를 따라 알프스 전산 지방에 넓게 펼쳐져 있던 바다인 테티스해로 아우크스부르크 부근에서 흘러 들어갔다. 1470만 년 전, 운석 낙하 (뇌르틀링겐 리스 분지 형성)로 날아온 잔해 덩어리에 의해 원 마인강은 트로이힐링겐 북쪽에서 막혀 거대한 호수를 형성했지만, 이윽고 그곳에서 흘러나오게 되었다.
약 200만 년 전 신생대 말기까지 마인 지역은 남쪽으로 향하는 강줄기를 통해 도나우강으로 배수되었다. 우선 오버라인 지구대가 생기면서 분수계가 남동쪽으로 이동했다. 이에 따라 먼저 마인 하류역이 그 강줄기를 서쪽으로 돌렸고, 이윽고 마인 중류역도 이에 따랐다. 마인 상류역은 도나우/귄츠 간빙기에 하스푸르트의 코이퍼층을 돌파하여 서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홍적세 초까지 마인강의 유로는 전역이 현재의 그것과 거의 일치하는 형태가 되었다. 이 이후 마인강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100m나 되는 계곡을 새겼다. 간빙기와 빙기의 교체로 비교적 폭이 넓고 평평한 계곡이 생겨났고, 후에 좁고 깊은 골짜기가 새겨졌다. 빙기가 되면 냉각 풍화 작용으로 대량의 암석 쇄설물이 퇴적되고, 간빙기에 그것이 휩쓸려 내려갔다. 이러한 기후 변동과 이에 따른 강의 흐름의 거듭된 변화로 인해 계곡은 테라스 형태의 단구가 되었다.
단구 내부에서 계곡이 메워져 있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9] . 고홍적세 말기에는 마인강 계곡에 60m나 되는 대량의 퇴적물이 있었다. 그 원인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 퇴적물층은 빙기-간빙기의 반복 동안에도 그대로였으며, 중홍적세 말기 이후 마인강은 이를 현재의 수준까지 침식해 갔다[10][11] .
마인강의 특징 중 하나는, 마인강이 조개암의 땅과 분테르 사암의 땅을 흐르는 것에 기인하는 굴곡의 많음이 꼽힌다.
3. 역사
로마 시대에 마인강은 로마 제국의 게르마니아 침공 루트 중 하나로 활용되었다.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마인강은 북독일의 리페 강과 함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로마인들은 마인강이 라인강으로 흘러드는 하구 맞은편에 마인츠를 건설하여 이 강줄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1]
작은 지류인 니다 강(현재 프랑크푸르트 헤델른하임 구역 내)에서는 보트 항구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니다 강이나 마인강을 통해 라인강 우안 지역과 마인츠 사이에서 상품 수송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1]
중세 시대에도 마인강의 항행은 매우 중요했다. 많은 정착지가 짐 하역, 상거래, 통행세 징수를 통해 발전했다. 카롤루스 대제는 마인강과 도나우강을 연결하는 운하 건설을 시도했으나, 당시 기술적 한계로 실패했다. 이 계획의 흔적인 Fossa Carolina(카롤루스의 도랑)는 트로이히틀링겐 부근에서 발견된다.[1]
12세기부터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 사이에 마르크트시프(Marktschiff)라는 정기선이 운행되기 시작했다. 14세기부터는 2척의 배로 격일 운항되었다. 이 배는 사람, 화물, 우편을 운송했다. 프랑크푸르트 파르토어 앞에서 매일 10시에 출발하여 마인츠까지 약 7~9시간이 소요되었다. 1391년 황제 벤첼은 마르크트시프에 관한 재판권을 자유 도시 마인츠에 부여했고, 1474년에는 마인츠 선제후가 소유했다. 프랑크푸르트는 마르크트시프에 대한 권리를 상실했다.[1]
1337년 이후 프랑크푸르트에는 선원 길드가 없었고, 소수의 선원은 과일 상인을 겸했다. 1602년부터 봄(장미의 일요일)부터 가을(성 미카엘의 날)까지 하나우-프랑크푸르트 간 마르크트시프가 운행되었는데, 이 권리는 하나우 백작이 소유했다.
3. 1. 고대 ~ 중세
로마 시대에 마인강은 로마 제국의 게르마니아 침공 루트 중 하나로 활용되었다.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마인강은 북독일의 리페 강과 함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로마인들은 마인강이 라인강으로 흘러드는 하구 맞은편에 마인츠를 건설하여 이 강줄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1]니다 강(현재 프랑크푸르트 헤델른하임 구역 내)에서는 보트 항구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니다 강이나 마인강을 통해 라인강 우안 지역과 마인츠 사이에서 상품 수송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1]
중세 시대에도 마인강의 항행은 매우 중요했다. 많은 정착지가 짐 하역, 상거래, 통행세 징수를 통해 발전했다. 카롤루스 대제는 마인강과 도나우강을 연결하는 운하 건설을 시도했으나, 당시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패했다. 이 계획의 흔적인 Fossa Carolina(카롤루스의 도랑)는 트로이히틀링겐 부근에서 발견된다.[1]
중세 시대의 배는 배수량 10~20t으로 하루에 100km 정도 항행할 수 있었다. 배는 돛이나 끌어주는 방식으로 조종되었으며, 30km 간격으로 숙영지가 설치되었다. 야간 항행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뱃사람들은 뭍에 배를 대야 했다.[1]
3. 2. 근대 ~ 현대
19세기 철도 보급으로 마인강의 선박 수송은 쇠퇴하였다. 증기선이 도입되었지만, 적재량 1000첸트너(50t)의 소형 선박이었다. 19세기 중반, 라인강에는 적재량 16,000첸트너(800t)의 배가 항행하고 있었고, 마인강으로 수송할 때에는 짐을 마인츠 또는 구스타프스부르크에서 옮겨 실어야 했다. 게다가 계절마다 하구 부근이 모래로 얕아져 배의 항행이 자주 방해받았다. 비스바덴으로 가는 타우누스 철도(1839년), 프랑크푸르트-하나우 철도(1848년), 마인츠로 가는 마인 철도(1863년)가 개업하면서, 마인강의 선박 수송은 연평균 20만t 정도에서 급격히 감소하여 1879년에는 93,400t까지 떨어졌다. 같은 해 철도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화물은 140만t에 달했다.
1868년 프랑크푸르트의 상급 시장 맘 폰 슈바르첸슈타인의 주도로 마인츠와 프랑크푸르트 사이에 길이 36km의 마인강 우회 운하 굴착 계획이 제창되었다. 이 계획은 여러 번 수정되었고, 1875년 마인강 자체를 운하화하고 수위를 1.5m 높여 2.2m로 하여 마인강 선박 수송에 맞추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1882년부터 1885년까지 마인강 하류의 마인츠에서 프랑크푸르트 사이에 5개의 댐(코스트하임, 프뢰어스하임, 오크리프텔, 훼흐스트, 니더라트)이 건설되었다. 1886년에는 마인강 북안, 프랑크푸르트 서부에 대규모 항구인 베스트하펜(서항)이 개항했다. 동시에 맞은편에는 콜레하펜(탄항)이 설치되어 1912년까지 가동되었다. 1905년까지 서항의 화물 취급량은 1,565,000t이었으며, 그 절반은 루르 지방에서 온 석탄이나 코크스였고, 돌아갈 때는 모래나 자갈이 운반되었다. 서항은 준공 10년 후 과부하가 걸렸고, 1912년에는 더 크고 새로운 항구인 오스트하펜(동항)이 개항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문 시설을 갖춘 5개의 댐만으로는 마인강을 항행하는 선박을 처리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27년부터 수력 발전 기능과 대규모 수문 시설을 갖춘 3개의 댐(코스트하임, 에더스하임, 그리이스하임)이 건설되었다.

사슬 예인선 도입과 함께 댐 건설을 통한 마인강 운하화가 추진되었다. 확장은 여러 단계를 거쳐 상류로 연장되었다. 190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펜바흐 항까지 확장되었고, 동시에 프랑크푸르트 동항 건설이 시작되어 1912년에 조업을 시작했다. 1921년 아샤펜부르크까지 구간이 운하화되었으며, 1949년에는 뷔르츠부르크-밤베르크 간 오버마인으로의 확장도 시작되었다. 역사적인 교량과 마리엔부르크 요새 바로 앞 수로에 뷔르츠부르크 수문을 건설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1962년 5월 29일 밤베르크까지 확장 공사가 완료되었다.
밤베르크에서는 서유럽 수로와 도나우강을 연결하는 마인-도나우 운하가 운용 개시되었다.

마인강은 마인츠 인근 라인강 어귀에서 밤베르크까지 396km 구간에서 선박 운송이 가능하다. 1992년부터 마인강은 라인-마인-도나우 운하와 알트뮐강을 통해 도나우강과 연결되었다. 마인강은 CEMT 등급 V 선박(길이 110m, 폭 11.45m)이 강 전체 구간을 항해할 수 있도록 300m 크기의 대형 갑문 34개가 설치되어 운하화되었다. 인접한 라인-마인-도나우 운하와 도나우강 자체의 갑문 16개도 동일한 크기이다. 마인강의 항행 수로로 지정된 전장 388km, 표고차 147m 사이에는 밤베르크 근교의 퓌르트에서 마인강 하구까지 34개의 댐이 있다. 댐은 5km에서 19k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갑문의 크기는 길이 300m, 폭 12m이다. 코스트하임, 에더스하임, 글리스하임 및 오펜바흐의 댐에는 각각 2개의 갑문이 있으며, 길이는 약 340m, 폭은 각각 12m와 15m이다. 모든 댐에는 물고기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도록 물고기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이 댐들의 총 수력 발전량은 172.55MW이다.
4. 수문 및 생태
마인강의 평균 수량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초당 200세제곱미터(m³/s)이다. 그러나 이 수량은 연간 크게 변동하며, 1월부터 3월까지 가장 많고 여름 말 무렵에 가장 적다. 1970년대부터 바이에른주는 알트뮐강의 물을 마인-도나우 운하를 통해 마인강 유역으로 보내는 "위벌라이퉁(Überleitung)" 시스템을 구축하여 레그니츠강의 수량을 늘렸다. 이 프로젝트는 바이에른 주 의회의 만장일치로 결의되었으나, 환경 단체들은 도나우강 수계에서 라인강 수계로 물을 이동시키는 것이 자연계의 수분 평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한다. 반면 프로젝트 지지자들은 수질 개선 및 홍수 위험 감소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초까지 마인강은 물고기가 풍부했지만, 산업화와 인구 증가로 수질이 악화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영장이 폐쇄되고, 1970년대에는 수질 등급이 매우 낮았다. 그러나 오염 처리 시설 개선 등으로 수질이 점차 회복되어, 2000년에는 헤센 주 내 전역에서 수질 등급 II (상당한 부하)로 평가되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생물 감염 가능성 때문에 물놀이는 여전히 주의가 필요하다.[1]
19세기까지 마인강은 동식물 종이 풍부했다. 그러나 하천 개수와 수질 오염으로 물고기 종류가 줄었다. 수질 개선과 함께 물고기들이 돌아오고 있지만, 이는 사육 방류된 것이다.[11] 유럽뱀장어, 잉어 등 다양한 어류가 서식하며, 대서양 연어와 철갑상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마인-도나우 운하 개통 이후, 도나우 수계 물고기들이 마인강으로 서식지를 확대했다.[11] 마인강 상류 유역의 초원은 물총새, 꼬마물떼새 등 희귀한 동물의 서식지이며, 자연 보호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11]
마인강의 범람은 과거에 큰 피해를 입혔다. 뷔르츠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의 다리가 여러 차례 파괴되었으며, 17세기 이후 대규모 홍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13] 1342년 7월의 마그달레나 홍수는 기록된 최악의 범람이다.[13]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평균 수위는 177cm이며, 300cm가 되면 선박 항행이 제한되고, 370cm에서는 금지된다. 19세기에는 40번, 20세기 이후에는 35번의 침수가 있었다.[13] 주요 침수는 다음과 같다.
연도 | 날짜 | 수위 |
---|---|---|
1845년 | 3월 | 약 6.4m |
1882년 | 11월 27일 | 6.33m |
1896년 | 2월 21일 | 6.2m |
1882년 | 12월 31일 | 5.7m |
1920년 | 1월 16일 | 6.18m |
1909년 | 2월 | 5.96m |
1995년 | 1월 30일 | 5.47m |
1970년 | 2월 27일 | 5.4m |
하천 개수로 인해 강이 깊어진 후에는 홍수가 감소했다.[13]
과거에는 더 큰 홍수가 있었으며, 1342년 마그달레나 홍수는 7.85m에 달했다. 다른 역사적인 홍수는 다음과 같다.[13]
연도 | 날짜 | 수위 |
---|---|---|
1682년 | 1월 17일 | 약 6.9m |
1784년 | 1월 27일부터 3월 4일 | 약 6.59m |
마인강의 범람은 주로 겨울에 발생하며, 눈이 녹을 때 강우 후에 발생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유빙과 홍수가 동시에 일어나 큰 피해를 입혔다.[13] 20세기 이후 수온 상승으로 결빙은 거의 없어졌으며,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지막으로 얼음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962년부터 1963년 겨울이었다.[13]
4. 1. 수문
마인강의 평균 수량은 프랑크푸르트에서 200m³/s이다. 그러나 이 수량은 연간 크게 변동한다. 가장 수량이 많은 시기는 1월부터 3월이며, 여름 말 무렵이 가장 적다.1970년대부터 바이에른주는 "위벌라이퉁(Überleitung)"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알트뮐강의 물을 마인-도나우 운하를 통해 마인강 유역으로 보내는 것으로, 이를 통해 수량이 적은 레그니츠강의 수량을 15m³/s까지 상승시켰다. 프랑켄 호수 지방 전체에서는 연간 1500만 m³가 프랑켄 방면, 나아가 마인강으로 할당되었다. 위벌라이퉁은 바이에른 주의 수리 경제상 최대의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1970년 바이에른 주 의회의 만장일치로 결의되었다.
이에 대해 비판자들은 환경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들은 위벌라이퉁이 도나우강 수계에서 라인강 수계로 유럽 분수계를 넘어 대량의 물을 이동시키는 것은 자연계의 수분 평형에 허용할 수 없는 막대한 간섭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지지자들은 이 시스템이 특히 수량이 줄어드는 하절기의 수질을 개선하는 등 마인강의 환경 개선에 기여하고, 알트뮐강 및 도나우강의 홍수 위험을 경감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4. 2. 수질
20세기 초까지 마인강은 중앙 유럽에서 물고기가 풍부한 강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산업화와 인구 증가로 인해 수질이 악화되었다. 예를 들어,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882년 이후 오수 처리 시설 건설이 진전되지 않았다.[1]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강에 설치되어 있던 수영장이 잇따라 폐쇄되었다. 1960년대에는 강에 물고기 사체가 떠다녔고, 1970년대 수질 검사에서는 수질 등급 III (매우 심하게 오염됨)에서 IV (과도하게 오염됨)라는 평가를 받았다. 운터마인에서의 오염은 1976년 여름에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학생들은 금붕어를 수질 측정 모니터로 이용하여 실험을 했는데, 회흐스트사(Hoechst AG) 하류에서 채취한 물의 금붕어가 죽는 결과가 나타났다.[1]
그러나 지방 자치 단체와 기업이 오염 처리 시설을 개선하거나 새로 짓고, 기업 배수 개선에 힘쓴 결과 수질은 점차 회복되었다. "헤센 주의 하천의 생물학적 수질" 활동 보고에 따르면, 2000년 마인강의 헤센 주 내 전역의 수질 레벨은 등급 II (상당한 부하)로 평가되었다. 남아있는 오염은 상류 지역의 배수, 예를 들어 대량의 강우나 농업 배수에 의한 것이 많아, 이를 줄이는 것은 어렵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인강에서의 물놀이는 미생물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계속 경계가 요구되고 있다. 2004년에는 트라이애슬론 아이언맨 저머니를 마인강에서 실시하기 위해 오펜바흐 댐과 글리스하임 사이에 100000m3의 음용수를 투입하여 일시적으로 수질을 개선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1]
4. 3. 동식물
19세기까지 마인강은 동식물 종이 풍부한 강이었다. 강을 따라 있는 많은 마을과 촌락에서는 중세 시대부터 어부 길드가 조직되어 있었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는 945년부터였다. 그러나 선박 항행에 필요한 하천 개수(예: 호안 공사 등)로 인해 수질 오염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물고기 종류가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운터마인에서는 30종에서 35종 정도였던 물고기가 4종으로 급감했다. 산업으로서의 어업은 기능 정지에 빠졌다. 수질 개선과 함께 원래 그곳에 있던 물고기들이 돌아오고 있지만, 이는 그들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사육 방류된 것이다.[11]어류 환경상, 마인강은 브림 지역 또는 바벨 지역에 속한다. 관찰할 수 있는 어류는 유럽뱀장어, 바벨, 브림, 차브, 농어, 실버 브림, 데이스, 노던 파이크, 잉어, 네이즈, 아스피우스 아스피우스, 로치, 라드, 텐치, 브리크, 유럽메기, 파이크퍼치이다. 한편, 아직 돌아오지 않은 물고기도 있으며, 대서양 연어와 철갑상어가 그 대표적인 존재이다. 2020년까지 라인 수계에 연어가 서식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Lachs 2020(Lachs=연어)라는 프로젝트가 창설되었다. 그 활동은 하천 부지의 초원이나 강줄기를 개량하여 적절한 산란 장소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마인강 수계에서의 이러한 장소에는 이전 연어가 서식했던 강, 예를 들어 로다흐 강이나 킨치히 강이 후보가 되고 있다.[11]
마인-도나우 운하가 개통된 1992년 이후, 약 20종의 도나우 수계 물고기가 마인강으로 서식지를 확대했다. 그 중에는 예를 들어, 참붕어, 튜브노즈고비, ''Proterorhinus marmoratus'', 아우피우스 아스피우스, 빔바 브림, 화이트 아이 브림이 있다.[11]

마인강 상류 유역의 초원은 물총새, 꼬마물떼새, 오가와코마도리, 유럽 쇠부엉이, 실잠자리과의 잠자리 등 희귀한 동물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자연 하천 바닥으로 되돌리는 등의 시도가 이루어지며, 지역을 넘어선 중요한 생물 보호가 시작되고 있다.[11]
1992년의 유럽 동식물 서식지 지침에 따라, 연방 정부는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환경 상황이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서식지에 대해 브뤼셀에 보고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정부의 제안에 의해 채택된 지역은, EU의 조류 보호 지침에 보고된 조류 보호 지역과 함께 유럽 자연 보호 지역 시스템 Natura 2000을 형성하게 되었다. 바이에른 주는 이러한 프로젝트의 틀 안에서 마인강을 따라 있는 지역도 몇 군데 보고하고 있는데, 카우엘른도르프에서 트레프가스트 사이의 마인강 초원 및 석회암 경사면, 타이제나우에서 리히텐펠스 사이 및 슈타펠슈타인에서 할슈타트 사이의 마인 계곡, 에르트만과 하스포르트 사이의 초원이 그것이다.[11]
4. 4. 홍수 및 유빙
수 세기 동안 마인강의 범람은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인명을 앗아간 사례가 여러 번 기록되었다. 뷔르츠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의 마인강에 놓인 다리는 홍수로 인해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13] 중세 시대의 기록은 단편적이지만, 17세기 이후의 대규모 홍수에 관해서는 기록 문서와 측정값이 남아 있다. 뷔르츠부르크에는 14세기에 뷔르츠부르크를 덮친 가장 심각했던 홍수의 기록이 있다. 홍수의 피해 범위는 각각 달랐다. 예를 들어, 2003년 1월의 홍수에서는 뷔르츠부르크의 수위 측정소에서 1995년 1월의 홍수보다 약 30cm 더 높은 침수가 있었지만, 프랑크푸르트는 간신히 홍수의 재난을 피했다.[13]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평균 수위는 수위계의 0점(해발 90.64m)에서 177cm이다. 수위가 300cm가 되면 선박의 항행이 제한되고, 370cm에서는 모든 선박의 항행이 금지된다. 게다가 수위가 올라가면 제방을 넘어 침수가 발생한다. 이러한 침수는 평균 3년에 한 번 발생한다.[13]
1826년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수위는 처음에는 물리학 협회에서, 1845년부터는 시의 측량국에서 상시 측정하고 있다. 19세기에는 침수가 발생한 해가 40번 있었다. 많은 해에는 2번, 1845년에는 3번이나 침수를 겪었다. 규모가 큰 침수는 다음과 같다.[13]
연도 | 날짜 | 수위 |
---|---|---|
1845년 | 3월 | 약 6.4m |
1882년 | 11월 27일 | 6.33m |
1896년 | 2월 21일 | 6.2m |
1882년 | 12월 31일 | 5.7m |
20세기부터 21세기(2007년 10월 현재)에는 침수를 겪은 해가 35번 있었다.[13]
연도 | 날짜 | 수위 |
---|---|---|
1920년 | 1월 16일 | 6.18m |
1909년 | 2월 | 5.96m |
1995년 | 1월 30일 | 5.47m |
1970년 | 2월 27일 | 5.4m |
전반적으로, 마인강의 하천 개수로 인해 강이 깊어진 후에는 홍수의 감소가 인정된다.[13]
수 세기 전 시대에는 훨씬 더 대규모의 홍수가 전해지고 있다. 기록된 최악의 범람은 1342년 7월에 발생한 이른바 마그달레나 홍수이다. 이 때는 바이스프라우엔 교회의 1.71m 높이인 지벤 슈(sieben Schuh)까지 물이 찼었다. 이는 현재 수위로는 7.85m에 해당한다. 이 외의 역사적인 홍수는 다음과 같다.[13]
연도 | 날짜 | 수위 |
---|---|---|
1682년 | 1월 17일 | 약 6.9m |
1784년 | 1월 27일부터 3월 4일 | 약 6.59m |
마인강의 범람은 주로 겨울에 발생한다. 또한, 눈이 녹을 때의 강우 후에 발생하기도 한다. 전 세기 이전에는 특히, 녹아내린 얼음이 흘러나오는 것과 홍수가 동시에 일어나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례가, 예를 들어 1306년, 1784년, 1882년의 기록에서 나타난다.[13] 19세기 말까지 라인강은 약 2년에 한 번꼴로, 가장 빠른 시기는 11월(1513년 11월 13일), 늦을 때는 1월에 전역이 결빙되었다. 이 얼음은 1월 말부터 3월 말(1845년 3월 25일이 가장 늦은 기록)에 깨졌다. 이렇게 흘러나온 유빙은 다리와 둑에 종종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13]
가장 오랫동안 결빙되었던 해는 1768년으로 79일간(1월 3일부터 3월 22일까지)이었지만, 괴테가 『부활절 산책』(『파우스트』 제1부)에서
"봄의 은혜로운, 만물을 깨우는 눈에 비추어,
큰 강에도 작은 시냇물에도, 이제 얼음이 없어졌네."[13]
라고 쓴 것처럼, 동부에서는 이보다 더 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부활절은 보통 3월 말에서 4월 중순).[13]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하천 개수나 발전소 또는 공업 폐수의 영향으로 수온이 상승하여 혹한기에도 결빙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지막으로 얼음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962년부터 1963년에 걸친 겨울이었다. 상류부에서는 이 이후에도 특히 추운 해, 예를 들어 1984년부터 1985년 겨울이나 1995년부터 1996년 겨울에는 강이 결빙되어 선박 운항이 중단되었다. 얼음 때문에 선박 운항이 방해받은 것은 2002년 1월, 2006년 1월부터 2월에도 있었다.[13]
5. 항행 및 교통
마인강은 밤베르크부터 388km 구간에서 선박 운송이 가능하며[8],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통해 도나우강과 연결되어 유럽 내륙 수로망의 일부를 구성한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주변의 라인-마인 산업 집중 지역에는 많은 대규모 하천 항구가 있어 수상 교통의 요지이다.
마인강은 CEMT 등급 V 선박이 강 전체 구간을 항해할 수 있도록 운하화되었으며, 34개의 보와 갑문이 설치되어 수심과 유속을 조절한다.
마인강을 따라서는 과거 배를 끌기 위한 길이 있었고, 주변에 마을이 발달했다. 마인 계곡 주변은 산지가 많아 강변에 교통로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에도 철도와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5. 1. 항행 시설
마인강은 마인츠 인근 라인강 어귀에서 밤베르크까지 396km 구간에서 선박 운송이 가능하다. 1992년부터 마인강은 라인-마인-도나우 운하와 규제가 심한 알트뮐강을 통해 도나우강과 연결되었다. 마인강은 CEMT 등급 V 선박이 강 전체 구간을 항해할 수 있도록 운하화되었으며, 300m 크기의 대형 갑문 34개가 설치되어 있다.[3] 인접한 라인-마인-도나우 운하와 도나우강 자체의 갑문 16개도 동일한 크기이다.마인강의 380km에 달하는 항해 가능한 구간(밤베르크 근처 레그니츠 강 합류 지점부터 라인 강까지)에는 34개의 보와 갑문이 있다.[3]
No. | Name | Location | Year built | Main-km | Distance between locks (km) | Altitude (m) | Height (m) | Lock length (m) | Lock width (m) |
---|---|---|---|---|---|---|---|---|---|
1 | 비어트 | 비어트-트룬슈타트 | 1925 | 380.699 | align="right"| | 230.86 | 6.00 | 289.80 | 12.00 |
2 | 림바흐 | 엘트만 | 1951 | 367.176 | 13.523 | 224.86 | 5.36 | 299.10 | 12.00 |
3 | 크네츠가우 | 크네츠가우 (하스푸르트) | 1958 | 359.781 | 7.395 | 219.50 | 4.24 | 298.85 | 12.00 |
4 | 오텐도르프 | 게트하임 | 1962 | 345.263 | 14.518 | 215.26 | 7.59 | 301.60 | 12.00 |
5 | 슈바인푸르트 | 슈바인푸르트 | 1963 | 332.037 | 13.226 | 207.67 | 4.67 | 300.60 | 12.00 |
6 | 가르슈타트 | 베르크레인펠트 | 1956 | 323.503 | 8.534 | 203.00 | 4.69 | 299.75 | 12.00 |
7 | 비프펠트 | 비프펠트 | 1950 | 316.289 | 7.214 | 198.31 | 4.31 | 300.15 | 12.00 |
8 | 게를라흐샤우젠 mit 폴크하 | 폴크하 (슈바르차흐 암 마인) | 1957 | 300.506 | 15.783 | 194.00 | 6.30 | 300.00 | 12.00 |
9 | 데텔바흐 | 데텔바흐 | 1959 | 295.398 | 5.108 | 187.70 | 5.50 | 299.35 | 12.00 |
10 | 키칭겐 | 키칭겐 | 1956 | 283.979 | 11.419 | 182.20 | 3.66 | 299.80 | 12.00 |
11 | 마르크트브라이트 | 마르크트브라이트 (프리켄하우젠 암 마인) | 1955 | 275.681 | 8.298 | 178.54 | 3.31 | 296.40 | 12.00 |
12 | 고스만스도르프 | 옥센푸르트 | 1952 | 269.028 | 6.653 | 175.23 | 3.40 | 296.90 | 12.00 |
13 | 란더스아커 | 뷔르츠부르크 (란더스아커) | 1950 | 258.885 | 10.143 | 171.83 | 3.30 | 299.60 | 12.00 |
14 | 뷔르츠부르크 | 뷔르츠부르크 | 1954 | 252.512 | 6.373 | 168.53 | 2.75 | 293.10 | 12.00 |
15 | 에를라분 | 에를라분 (튕거스하임) | 1935 | 241.204 | 11.308 | 165.78 | 4.15 | 299.20 | 12.00 |
16 | 힘멜슈타트 | 힘멜슈타트 | 1939 | 232.290 | 8.914 | 161.63 | 4.30 | 299.50 | 12.00 |
17 | 하르바흐 | 카를슈타트 (게뮌덴 암 마인) | 1939 | 219.466 | 12.824 | 157.33 | 4.90 | 299.45 | 12.00 |
18 | 슈타인바흐 | 로어 암 마인 | 1939 | 200.673 | 18.793 | 152.43 | 5.14 | 299.10 | 12.00 |
19 | 로텐펠스 | 로텐펠스 (마르크트하이덴펠트) | 1937 | 185.887 | 14.786 | 147.29 | 5.26 | 298.45 | 12.00 |
20 | 렝푸르트 | 트리펜슈타인 | 1937 | 174.508 | 11.379 | 142.03 | 3.99 | 300.08 | 11.98 |
21 | 아이헬 | 베르트하임 | 1937 | 160.467 | 14.041 | 138.04 | 4.50 | 299.92 | 12.00 |
22 | 파울바흐 | 베르트하임 (파울바흐) | 1935 | 147.065 | 13.402 | 133.54 | 4.51 | 299.80 | 12.10 |
23 | 프로이덴베르크 | 콜렌베르크 (프로이덴베르크) | 1934 | 133.948 | 13.117 | 129.03 | 4.51 | 300.00 | 12.00 |
24 | 호이바흐 | 그로스호이바흐 (밀텐베르크) | 1932 | 122.360 | 11.588 | 124.52 | 4.00 | 300.00 | 12.00 |
25 | 클링겐베르크 | 클링겐베르크 암 마인 | 1930 | 113.050 | 9.310 | 120.52 | 4.00 | 300.71 | 12.05 |
26 | 발슈타트 | 클라인발슈타트 (그로스발슈타트) | 1930 | 101.203 | 11.847 | 116.52 | 4.00 | 299.93 | 12.00 |
27 | 오버나우 | 니더른베르크 (아샤펜부르크) | 1930 | 92.909 | 8.294 | 112.52 | 4.01 | 299.18 | 12.00 |
28 | 클라인오스트하임 | 클라인오스트하임 (슈톡슈타트 암 마인) | 1920 1972 | 77.905 | 15.004 | 108.51 | 6.80 | 298.36 298.22 | 12.04 12.02 |
29 | 크로첸부르크 | 하인부르크 (그로스크로첸부르크) | 1920 1983 | 63.850 | 14.055 | 101.71 | 2.74 | 302.30 300.01 | 12.00 12.00 |
30 | 뮐하임 (과거 케셀슈타트) | 마인탈 (뮐하임 암 마인) | 1920 1980 | 53.185 | 10.385 | 98.97 | 3.77 | 299.90 | 12.04 |
31 | 오펜바흐 |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오펜바흐 암 마인) | 1901 1957 | 38.514 | 14.671 | 95.20 | 3.18 | 344.03 230.07 | 12.09 13.05 |
32 | 그리에스하임 |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 1934 | 28.687 | 9.827 | 92.02 | 4.49 | 344.05 344.38 | 12.00 15.00 |
33 | 에데르스하임 | 하터스하임 암 마인 (켈스터바흐) | 1934 | 15.551 | 13.136 | 87.53 | 3.61 | 345.46 344.26 | 12.05 15.05 |
34 | 코스트하임 | 호흐하임 암 마인 (긴스하임-구스타프스부르크) | 1886 1934 | 3.209 | 12.342 | 83.92 | 2.36 (MW 라인강) | 341.90 339.02 | 15.00 문: 12.00 갑문: 20.00 |
5. 2. 댐 및 수력 발전
마인강의 항해 가능한 380km 구간에는 34개의 보와 갑문이 있다.[3] 대부분의 댐에는 발전용 터빈이 설치되어 있다. 마인강의 댐과 수력 발전소 정보는 다음과 같다.No. | 이름 | 높이 (m) | 출력 (MW) | 터빈 | 운영사 |
---|---|---|---|---|---|
1 | 비어트 | 6m | 프란시스 (3), 카플란 (1) | E.ON 바서크라프트 | |
2 | 림바흐 | 5.36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3 | 크네츠가우 (하스푸르트) | 4.24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4 | 오텐도르프 | 7.59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5 | 슈바인푸르트 | 4.67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6 | 가르슈타트 | 4.69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7 | 비프펠트 | 4.31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8 | 게를라흐샤우젠 미트 폴카흐 | 6.3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9 | 데텔바흐 | 5.5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10 | 키칭겐 | 3.66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11 | 마르크트브라이트 (프리켄하우젠 암 마인) | 3.31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12 | 고스만스도르프 | 3.4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13 | 란더스아커 | 3.3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14 | 뷔르츠부르크 | 2.75m | 카플란 (3) | E.ON 바서크라프트 | |
15 | 에를라분 (튕거스하임) | 4.15m | 카플란 (1) | E.ON 바서크라프트 | |
16 | 힘멜슈타트 | 4.3m | 카플란 (1) | E.ON 바서크라프트 | |
17 | 하르바흐 (게뮌덴 암 마인) | 4.9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18 | 슈타인바흐 | 5.14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19 | 로텐펠스 (마르크트하이덴펠트) | 5.26m | 카플란 (2) | E.ON 바서크라프트 | |
20 | 렝푸르트 | 3.99m | E.ON 바서크라프트 | ||
21 | 아이헬 | 4.5m | E.ON 바서크라프트 | ||
22 | 파울바흐 | 4.51m | E.ON 바서크라프트 | ||
23 | 프로이덴베르크 | 4.51m | E.ON 바서크라프트 | ||
24 | 그로스호이바흐 (밀텐베르크) | 4m | E.ON 바서크라프트 | ||
25 | 클링겐베르크 암 마인 | 4m | E.ON 바서크라프트 | ||
26 | 클라인발슈타트 (그로스발슈타트) | 4m | E.ON 바서크라프트 | ||
27 | 니더른베르크 (아샤펜부르크) | 4.01m | E.ON 바서크라프트 | ||
28 | 클라인오스트하임 (슈톡슈타트 암 마인) | 6.8m | E.ON 바서크라프트 | ||
29 | 크로첸부르크 | 2.74m | align="right"| | ||
30 | 뮐하임 (과거 케셀슈타트) | 3.77m | E.ON 바서크라프트 | ||
31 | 오펜바흐 | 3.18m | E.ON 바서크라프트 | ||
32 | 그리에스하임 | 4.49m | 카플란 (3) | 아샤펜부르크 수로국 | |
33 | 에데르스하임 (켈스터바흐) | 3.61m | 3.84MW | 카플란 (3) | 아샤펜부르크 수로국 |
34 | 코스트하임 (긴스하임-구스타프스부르크) | 2.36m | 4.9MW | 카플란 피트-로어터빈 (2) | WKW Staustufe Kostheim/Main GmbH & Co. KG (건설 및 운영: 울름/노이울름 시립 기업) |
마인강의 총 수력 발전량은 172.55MW이다.
5. 3. 주요 항구 및 도시
프랑크푸르트 주변에는 여러 개의 대규모 내륙 항구가 있다. 그러나 마인강의 상류 지역은 폭이 좁아 대형 선박과 예인선이 항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2]마인 강을 따라 위치한 주요 도시로는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오펜바흐암마인, 뷔르츠부르크가 있다. 이 외에도 마인 강은 부르크쿤슈타트, 리히텐펠스, 바트 슈타펠슈타인, 엘트만, 하스푸르트, 슈바인푸르트, 폴카흐, 키칭겐, 마르크트브라이트, 옥센푸르트, 카를슈타트, 게뮌덴, 로어, 마르크트하이덴펠트, 베르트하임, 밀텐베르크, 오버른부르크, 에를렌바흐/마인, 아샤펜부르크, 젤리겐슈타트, 하인부르크, 하나우, 하터스하임, 푈르스하임, 뤼셀스하임을 지난다.[2]
5. 4. 교통로
마인강을 따라서는 배를 끌기 위한 길이 있었고, 주변보다 마을이 발달했다. 마인 계곡 주변은 산지가 많아 강변에 교통로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에도 철도와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1]철도는 마인 계곡의 대부분을 동서로 연결한다. 단, 간선은 마인드라이에크나 마인피어에크 부분에서는 지류를 경유하여 단축 연결한다.[1]
노선 | 경로 |
---|---|
860계통 | (뉘른베르크 - ) 크로이센 - 바이로이트 |
852계통 | 바이로이트 – 노이엔마르크트=빌스베르크 |
루트비히 남북 철도 (850계통) | (호프 - 시페 에베네 - ) 노이엔마르크트=빌스베르크 - 쿨름바흐 - 리히텐펠스 |
820계통 | 리히텐펠스 - 밤베르크 |
810계통 | 밤베르크 - 슈바인푸르트 - 뷔르츠부르크 중앙역 |
마인-슈페사르트 철도 (800계통, 마인강 우안) | 뷔르츠부르크 중앙역 - 카를슈타트 - 게뮌덴 - 롤 (롤강 및 아샤프강의 계곡을 경유) 아샤펜부르크 - 하나우 |
920계통 | (안스바흐 -) 마르크트브라이트 - 옥센푸르트 - 뷔르츠부르크 중앙역 |
마인탈 철도 (781계통) | 베르트하임 - 밀텐베르크 - 아샤펜부르크 |
프랑크푸르트-하나우 철도 (640계통, 마인강 우안) | 하나우 - 프랑크푸르트 동역 |
베브라 철도 (마인강 좌안) | 하나우 - 오펜바흐 - 프랑크푸르트 남역 -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
마인 철도 (마인강 좌안) |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 뤼셀스하임 - 마인츠 중앙역 |
타우누스 철도 (마인강 우안) |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 회흐스트 - 마인츠-카스텔 (- 비스바덴) |
마인강은 전역에 걸쳐 연방 도로가 병주하고 있으며, 이는 두 개의 원류도 예외는 아니다.[1]
적 마인강은 크로이센에서 바이로이트를 거쳐 쿨름바흐까지 연방도 B85호선이 병주하고 있다. 백 마인강은 수원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위치에서 연방도 B303호선과 만나 운터슈타이나흐까지 병주한다. 이 마을부터는 B289호선이 쿨름바흐까지 이를 이어받는다.[1]
이러한 도로들은 리히텐펠스에서 합류하여, 체트리츠에서 밤베르크까지 B173이 마인강 좌안을 달린다. 밤베르크에서 슈바인푸르트까지 B26호선은 에르트만에서 좌안에서 우안으로 위치를 바꾸면서 병주한다. 마인탈 아우토반이라고도 불리는 아우토반 A70호선도 밤베르크에서 슈바인푸르트까지 마인강을 따라 통과하며, 밤베르크 근교, 에르트만, 슈바인푸르트에서 강을 건넌다.[1]
슈바인푸르트 하류에서는, 드문드문 강가에 도로가 없는 구간이 있다. B26호선은 마인드라이에크를 따라 우회하지 않고 바로 칼슈타트로 이어지며, 이와 교차하는 B19호선은 마인드라이에크 중앙부를 수직선으로 통과하여 바로 뷔르츠부르크로 향한다. 옥센푸르트부터 다시 연방도가 마인강 우안에 나타난다. 뷔르츠부르크까지는 B13호선, 칼슈타트까지는 B27호선, 롤까지는 다시 B26호선이다. 취락이 적은 마인피어에크의 동부 및 남부는 주도가 이를 연결하고 있다. 밀텐베르크에서 아샤펜부르크까지 연방도 B469호선이 마인강 좌안을 달린다.[1]
아샤펜부르크에서 하나우 및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경유하여 프랑크푸르트-회흐스트까지 마인 우안을 (일부는 대안을 통과하지만) 연방도 B8호선이 달리고 있다. 또한, 이 도로에서 하나우에서 갈라지는 B43호선은 오펜바흐 및 뤼셀스하임을 경유하여 마인츠까지 때때로 (특히 프랑크푸르트-작센하우젠에서 켈스터바흐까지) 마인강에서 멀어지면서도 그 좌안을 따라간다. 대안의 우안은 연방도 B40호선이 하터스하임에서 마인츠까지 마인강의 마지막 몇 km를 연결하고 있다.[1]
지난 40년 동안 적자 운영으로 인해 많은 페리가 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인강에는 12개의 페리가 남아 있다(2007년 10월 현재). 이 페리들은 지방 자치 단체로부터 유지 운영에 대한 보조금을 받으며 운영되고 있다. 많은 페리는 자가용차나 트럭을 규정 적재량까지 실어 운항하고 있지만, 사람과 자전거만 운송하는 페리도 있다. 페리는 교통상,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기관이다. 특히 농업 종사자에게는 다리까지 20km를 우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1]
위치 (하구로부터의 거리, km) | 발 | 착 | |
---|---|---|---|
1 | 17.82 | 하터스하임=오크리프텔 지구 | 켈스터바흐 - 연방도 B43호선 |
2 | 24.82 | 프랑크푸르트=회히스트 지구 | 프랑크푸르트=슈반하임 지구 |
3 | 48.06 | 오펜바흐=룸펜하임 지구 | 마인탈=비쇼프스하임 지구 |
4 | 50.63 | 마인탈=델니히하임 지구 | 뮐하임 |
5 | 69.60 | 젤리겐슈타트 | 카를슈타인 암 마인=그로스 벨츠하임 지구 |
6 | 144.60 | 슈타트프로첼텐 | 베르트하임=몬트펠트 지구 |
7 | 290.61 | 마인슈토크하임 | 알바츠호펜 |
8 | 294.36 | 마인존트하임 | 데텔바흐 |
9 | 307.30 | 노르트하임 암 마인 | 폴카흐=에셸른도르프 지구 |
10 | 311.15 | 폴카흐=파르 지구 | 아이젠하임=칼텐하우젠 지구 |
11 | 313.45 | 아이젠하임=오버아이젠하임 지구 | 콜리츠하임=슈탐하임 지구 |
12 | 317.20 | 비프펠트 | 콜리츠하임=린다하 지구/뢰트라인=힐슈펠트 지구 |
6. 문화 및 관광
마인강을 따라 마인강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ADFC에서 5성급을 받은 최초의 장거리 자전거길이다. 길이는 약 600km이며,[7] 크로이센 또는 비스호프스그륀에서 시작하여 마인츠에서 끝난다. 강변에는 마르크트브라이트 로마 진지 등의 역사 유적지가 있다.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179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10연으로 구성된 시 ''Der Main''(『마인강』)을 썼다.[8]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Fuhren wir hinab den Main''(『마인강을 내려가다』),[8] 요제프 빅토르 폰 셰펠의 ''Die Wanderfahrt''(『먼 길』, 1859년, 발렌틴 베커가 곡을 붙여 『프랑켄의 노래』 또는 『프랑켄 찬가』로 불림),[8] 마리 루이세 카슈니츠의 ''Rückkehr nach Frankfurt''(『프랑크푸르트로의 귀환』, 1947년,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의 모습을 그림),[8] 펠리키타스 쿠쿡(1914년 - 2001년)의 ''Es führt über den Main eine Brücke von Stein''(『마인강의 석교를 건너』, 오래된 전승시를 보완하여 작곡, 가장 잘 알려진 가곡)[8] 등이 마인강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이다.
빌헬름 하인리히 바켄로더, 루트비히 티크,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약혼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 클레멘스 브렌타노, 프리드리히 슈톨체, 루돌프 게오르크 빈딩, 알폰스 파케트, 에바 뎀스키 등은 마인강에 관한 산문을 남겼다.[8]
콘라트 파버, 마테우스 메리안, 데모니코 쿠아글리오, 귀스타브 쿠르베, 막스 베크만 등은 마인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8] 카를 프리드리히 밀리우스는 마인강의 오래된 사진 중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8]
6. 1. 문화적 의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에서 마인강은 주로 가톨릭 신자가 많은 남독일의 북쪽 경계선으로 여겨진다. 이 강은 1867년 프로이센 왕국의 지도 하에 설립된 북독일 연방의 남쪽 경계를 대략적으로 표시했으며, 이는 독일 제국의 전신이었다.[5]이 강의 흐름은 또한 중부 독일어와 상부 독일어 방언 사이의 슈파이어 선과 일치하며, 때로는 ''바이스부르스트적도''라고 조롱받기도 한다.[5][6]
6. 2. 관광 명소
마인강을 따라 마인 유보도와 마인강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마인강 자전거길은 ADFC에서 5성급을 받은 최초의 장거리 자전거길로, 그 길이가 약 600km에 달한다.[7] 이 자전거길은 크로이센 또는 비스호프스그륀에서 시작하여 마인츠에서 끝난다.마인강변에는 마르크트브라이트 로마 진지 등의 역사 유적지가 있다.
6. 3. 예술 작품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179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10연으로 구성된 시 ''Der Main''(『마인강』)을 썼다.[8]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Fuhren wir hinab den Main''(『마인강을 내려가다』)를 썼고,[8] 요제프 빅토르 폰 셰펠의 ''Die Wanderfahrt''(『먼 길』)는 1859년에 창작되었으며, 발렌틴 베커가 곡을 붙여 『프랑켄의 노래』 또는 『프랑켄 찬가』로 불린다.[8] 마리 루이세 카슈니츠의 ''Rückkehr nach Frankfurt''(『프랑크푸르트로의 귀환』)은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1947년에 발표되었다.[8] 펠리키타스 쿠쿡(1914년 - 2001년)은 오래된 전승시를 보완하여 ''Es führt über den Main eine Brücke von Stein''(『마인강의 석교를 건너』)를 작곡했는데, 이 곡은 그녀의 가장 잘 알려진 가곡이다.[8]빌헬름 하인리히 바켄로더, 루트비히 티크,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약혼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 클레멘스 브렌타노, 프리드리히 슈톨체, 루돌프 게오르크 빈딩, 알폰스 파케트, 에바 뎀스키 등은 마인강에 관한 산문을 남겼다.[8]
콘라트 파버, 마테우스 메리안, 데모니코 쿠아글리오, 귀스타브 쿠르베, 막스 베크만 등 많은 화가들도 마인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8] 카를 프리드리히 밀리우스는 마인강의 오래된 사진 중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8]
참조
[1]
웹사이트
Main River {{!}} river, Germany
https://www.britanni[...]
2021-02-04
[2]
서적
Rivers of Europe
Academic Press
2009
[3]
웹사이트
Daten und Fakten
http://www.wsd-sued.[...]
Wasser- und Schifffahrtsdirektion Süd
2003-06
[4]
웹사이트
NoorderSoft Waterways Database
http://www.noorderso[...]
2007-10-24
[5]
서적
From St Jerome to Hypertext: Translation in Theory and Practice
Routledge
2014-05-12
[6]
서적
Dictionary of Contemporary Germany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3-04-11
[7]
웹사이트
Main-Radweg
http://www.mainradwe[...]
2013-04-23
[8]
링크
http://www.wsd-sued.[...]
[9]
문서
KÖRBER 1962 - Die Entwicklung des Maintals
[10]
간행물
Zur Reliefentwicklung im Main-Tauber-Bereich
Frankfurt a. M.
1981
[11]
간행물
Untersuchungen zur ältest- bis mittelpleistozänen Terrassen- und Sedimententwicklung im Mittelmaintal
Würzburg
1988
[12]
웹사이트
特選魚類辞典(増補改訂版)
http://www.bmkberlin[...]
[13]
웹사이트
森鷗外 訳
http://c-faculty.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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