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사 마이어
1. 개요
머리사 마이어는 1975년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난 미국의 기업인으로,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구글에 입사하여 13년간 엔지니어, 디자이너, 제품 관리자, 임원 등으로 활동하며 구글 검색, 지메일 등 핵심 서비스 개발에 참여했다. 2012년 야후!의 CEO로 취임했으나, 재택근무 폐지, 성과 평가 시스템 도입 등 논란을 겪었으며, 2017년 야후!가 버라이즌에 매각된 후 CEO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인공지능 및 소비자 미디어 스타트업인 Sunshine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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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출생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75년 출생 -
코코 리
코코 리는 홍콩 태생의 미국 가수로, 만도팝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아시아의 머라이어 캐리'로 불렸고, 1993년 데뷔 후 아시아에서 베스트셀러 앨범을 발매하고 영화 《와호장룡》 주제가를 불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연했으며, 《뮬란》 만다린어 더빙판에서 뮬란 역을 맡았고, 2016년 《나는 가수다》 시즌 4에서 우승했으나 2023년 우울증으로 사망 후 《싱! 차이나》 출연 당시 부당 대우 의혹이 제기되었다. -
위스콘신주 출신 -
윌리엄 렌퀴스트
윌리엄 렌퀴스트는 미국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며, 보수주의 성향으로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대한 좁은 해석, 연방 정부 권한 축소 및 주 정부 권한 확대를 주장했으며, `부시 대 고어` 사건과 빌 클린턴 탄핵 재판에 관여했다. -
위스콘신주 출신 -
잭 스나이더
잭 스나이더는 2004년 《새벽의 저주》로 데뷔하여 《300》, 《왓치맨》 등 그래픽 노블 원작 영화와 DC 확장 유니버스 영화들을 연출하며 이름을 알린 미국의 영화 감독, 각본가, 제작자로서, 슬로 모션과 스피드 램핑 기법을 활용한 영상미와 폭력 묘사가 특징이며 자살 예방 및 정신 건강 인식 개선을 위한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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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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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어린 시절 및 교육
머리사 마이어는 1975년 위스콘신주 워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마거릿 마이어는 핀란드계 미술 교사였고, 아버지 마이클 마이어는 독일계 환경 공학자였다. 그녀의 할아버지 클렘 마이어는 위스콘신주 잭슨의 시장으로 32년간 재임했으며,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마이어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십 대 시절을 "몹시 수줍어했다"고 회상하며, 발레, 스케이트, 피아노, 수영, 토론, 걸스카우트 브라우니 등 매일 방과 후 활동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특히 발레를 통해 비판 수용, 규율, 침착함, 자신감을 배웠다고 언급했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에 관심을 보였다.
워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3년 위스콘신 주지사 타미 탐슨에 의해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열린 전국 청소년 과학캠프에 위스콘신주 대표로 참가했다.
원래 소아 신경외과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던 마이어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예과 과정을 밟았으나, 이후 철학, 인지 심리학, 언어학, 컴퓨터 과학을 아우르는 기호 시스템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스탠퍼드 재학 중 대학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 참여하고, 의회 토론 멤버로 활동했으며, 어린이 병원 자원봉사와 버뮤다 학교 컴퓨터 과학 교육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3학년 때는 에릭 S. 로버츠 교수의 기호 체계 수업 조교를 맡기도 했다. 마이어는 1997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기호 시스템 학사 학위를, 1999년에는 컴퓨터 과학 석사 학위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두 학위 과정 모두 인공지능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으며, 학부 논문으로는 자연스러운 인간 언어로 사용자에게 조언하는 여행 추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학업 중 SRI 인터내셔널과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UBS의 연구소 Ubilab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2009년에는 웹 검색 엔진 분야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1. 학창 시절 활동
와우소 웨스트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컬링 팀과 정밀 댄스 팀에서 활동했으며, 화학, 미적분학, 생물학, 물리학 등 학업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다양한 특별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여러 직책을 맡았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식료품점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위스콘신 주지사였던 토미 톰슨에 의해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열린 전국 청소년 과학 캠프에 참석할 위스콘신주 대표 2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다.
3. 경력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후 스위스 취리히의 UBS 연구소(Ubilab)와 캘리포니아주 멘로 파크의 SRI 인터내셔널에서 경력을 쌓았다.
1999년에는 직원 20명 규모였던 구글에 20번째 직원이자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로 합류했다. 이후 13년 동안 구글에서 엔지니어, 디자이너, 제품 관리자, 임원으로 활동하며 구글 서치, 구글 맵스, 지메일 등 여러 핵심 서비스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인공지능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 전문가로서 역량을 발휘했으며, 구글의 상징적인 검색 홈페이지 레이아웃 디자인을 감독하기도 했다. 구글에서의 마지막 시기에는 로컬, 맵스 및 지역 서비스 부문 부사장을 역임했다.
구글 재직 중이던 2008년, 포춘이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렸으며, 2009년에는 검색 사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7월 16일, 야후!의 최고경영자(CEO) 겸 이사로 임명되어 다음 날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야후 재직 중에는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축소하는 정책 변경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육아휴가 제도를 확대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2017년 1월, 야후의 핵심 사업을 버라이즌에 매각하는 계약이 체결된 후 야후 임원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CEO 퇴임 시 받기로 한 23 상당의 퇴직금은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핵심 사업 매각과 관련하여 약 186를 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3.1. 구글 (1999–2012)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후, 마이어는 카네기 멜론 대학교 교직, 맥킨지 앤 컴퍼니 컨설턴트 등 14개의 일자리 제안을 받았으나, 1999년 구글에 20번째 직원이자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입사 초기에는 코드를 작성하고 소규모 엔지니어 팀을 감독하며 구글의 검색 서비스를 개발하고 설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세부 사항에 대한 주의력을 인정받아 제품 관리자로 승진했고, 이후 소비자 웹 제품 이사가 되었다. 구글에서 13년간 엔지니어, 디자이너, 제품 관리자, 임원으로 활동하며 구글 서치, 구글 이미지, 구글 뉴스, 구글 맵스, 구글 도서, 구글 상품검색, 구글 툴바, 아이구글, 지메일 등 핵심 서비스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구글의 상징적인 간결한 검색 홈페이지 레이아웃을 감독했으며, 기업이 검색어 기반 광고를 할 수 있는 구글 애드워즈 플랫폼 개발팀의 일원이었다. 애드워즈는 2011년 1분기 구글 수익의 96%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서비스였다.
2002년에는 신입 직원을 채용하고 리더로 육성하기 위한 멘토십 프로그램인 APM(Associate Product Manager)을 시작했다. 매년 선발된 직원들은 2년 동안 과외 활동과 집중적인 야간 수업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브렛 테일러, 저스틴 로젠스타인과 같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2005년, 마이어는 검색 제품 및 사용자 경험 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2010년 말에는 당시 CEO였던 에릭 슈미트의 요청으로 로컬, 지도 및 위치 서비스 부문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1년에는 설문 조사 사이트 자가트를 125에 인수하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구글 재직 중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입문 과정을 가르치고, 이스트 팔로 알토 차터 스쿨 학생들을 멘토링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로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센테니얼 교육상과 포사이스 상을 받았다.
3.2. 야후! (2012–2017)
2012년 7월 16일, 마이어는 야후!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로 임명되어 다음 날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그녀는 또한 야후 이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마이어가 임명될 당시 야후는 1년 넘게 구글에 뒤처진 실적을 보이고 있었고, 여러 차례 최고 경영진 교체를 겪었다. 마이어는 관료주의적 절차를 간소화하고 조직 문화를 개선할 목적으로 PB&J라는 새로운 온라인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은 직원들의 불만 사항과 사무실 문제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투표를 통해 50표 이상을 얻은 문제는 온라인 관리자가 자동으로 조사하도록 했다.
2013년 2월, 마이어는 모든 원격 근무 직원이 사무실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요 인사 정책 변경을 단행했다. 임신 말기에 재택근무를 했던 마이어 자신이 출산 후 사무실 옆에 수유실을 만들고 복귀했기에, 이러한 원격 근무 금지 조치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야후의 출산 휴가 정책을 변경하여 휴가 기간을 늘리고 부모에게 현금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했다. CNN은 이 정책이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같은 다른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정책과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마이어의 여러 경영 결정은 뉴욕 타임스와 뉴요커 등에서 비판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3년 5월 20일, 마이어는 야후가 텀블러를 1.1에 인수하는 결정을 주도했다. 하지만 2016년 2월, 야후는 텀블러의 가치가 인수 이후 230 하락했음을 인정했다. 2013년 7월 야후는 매출 감소를 보고했으나, 전년 동기 대비 이익은 증가했다. 당시 월가의 반응은 미미했고 주가는 1.7% 하락했다. 2013년 9월에는 마이어가 CEO로 임명된 지 14개월 만에 야후 주가가 두 배로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은 마이어의 재임 이전에 이루어진 중국 전자 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그룹 지분 투자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2013년 11월, 마이어는 직원 성과 평가에 정규 분포 곡선(벨 커브)을 적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관리자가 직원을 평가하여 하위 성과자를 해고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일부 관리자들이 이 평가 방식을 의무적인 해고 기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직원들의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2016년 2월, 한 전직 야후 직원은 이러한 해고 관행이 캘리포니아 및 연방법을 위반했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마이어는 포춘의 '40세 이하 영향력 있는 인물 40인(40 under 40)' 목록에서 6위에 올랐으며, 같은 해 같은 매체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사업가' 16위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2016년 3월, 포춘은 마이어를 '세계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리더'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실제로 야후 주가는 2015년 한 해 동안 30% 이상 하락했으며, 12명의 주요 임원이 회사를 떠났다.
2015년 12월, 뉴욕의 헤지 펀드 스프링아울(SpringOwl)은 야후 주주로서 마이어의 CEO 교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다른 행동주의 투자 회사인 스타보드 밸류(Starboard Value) 역시 마이어의 경영 성과에 대해 비판적인 서한을 보냈다. 2016년 1월에는 야후의 핵심 사업 가치가 사실상 0달러 미만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결국 2016년 2월, 마이어는 야후가 핵심 사업 매각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2017년 3월, 야후가 버라이즌에 매각될 경우 마이어가 23의 퇴직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마이어는 2017년 6월 13일 공식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CEO 재임 5년 동안 야후의 광고 수익이 크게 감소하고 직원의 50%가 감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어는 주로 주식과 스톡옵션을 통해 총 239에 달하는 보수를 받았다. 사임 당일 마이어는 재임 기간 동안 시가 총액 430억 달러 창출, 야후 주가 3배 증가, 모바일 사용자 6억 5천만 명 이상 확보, 1.5 규모의 모바일 광고 사업 구축, 야후 문화 혁신 등의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마이어의 재임 기간 동안 야후 홈페이지의 월간 방문자 수는 약 100억 명에서 45억 명 미만으로 감소한 반면, 경쟁사인 구글의 방문자 수는 170억 명에서 560억 명 이상으로 크게 증가했다.
2017년 11월 8일, 마이어는 다른 여러 전현직 기업 CEO들과 함께 2013년과 2014년에 발생한 야후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하여 미국 상원 상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증언했다.
3.3. 선샤인 (2018–현재)
2017년 야후!를 떠난 후, 마이어는 전 동료 엔리케 무노즈 토레스와 함께 Lumi Labs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팔로 알토에 위치하며 인공 지능과 소비자 미디어 분야에 중점을 두었다. 2020년 11월 18일, 마이어는 Lumi Labs의 사명을 Sunshine으로 변경하고 첫 번째 제품인 Sunshine Contacts를 발표했다. Sunshine Contacts는 지능형 알고리즘, 연락처 데이터, 공개 소스 등을 활용하여 사용자의 아이폰 연락처 및 구글 연락처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4. 이사회 활동
마이어는 다음 기업 및 비영리 단체의 이사회에서 활동했거나 현재 활동 중이다.
| 구분 | 기관명 |
|---|---|
| 기업 이사회 | AT&T |
| 넥스트도어 | |
| 월마트 | |
| 메조네트 (Maisonette) | |
| 자본 (Jawbone) | |
| 비영리 단체 이사회 | 쿠퍼-휴잇 국립 디자인 박물관 |
| 뉴욕 시티 발레단 | |
| 샌프란시스코 발레단 | |
|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
5. 투자
마이어는 크라우드 소싱 디자인 소매업체 민티드, 라이브 비디오 플랫폼 에어타임닷컴, 무선 전력 스타트업 유빔, 온라인 DIY 커뮤니티 및 전자 상거래 회사 브릿 앤 코., 모바일 결제 처리업체 스퀘어, 홈 데코 사이트 원 킹스 레인, 유전자 검사 회사 나테라, 그리고 노오트로픽스와 바이오해킹 회사 누트로박스 등 기술 회사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6. 수상 및 평가
메이어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포춘 매거진이 선정하는 '비즈니스 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50인' 목록에 꾸준히 포함되었다. 2008년에는 33세의 나이로 해당 목록에 오른 최연소 인물이기도 했다. 각 연도별 순위는 다음과 같다.연도 순위 2008 50위 2009 44위 2010 42위 2011 38위 2012 14위 2013 8위 2014 16위
2009년에는 글래머 매거진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 중 한 명으로 뽑혔으며, 검색 사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포브스 매거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연도 순위 2012 20위 2013 32위 2014 18위
2013년 9월에는 포춘 500대 기업 CEO로서는 처음으로 보그 매거진에 소개되었다. 같은 해 타임 100에 선정되었고, 포춘이 발표하는 '40세 미만 최고의 비즈니스 스타 40인' 목록에서 여성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2013년에는 포춘 매거진 역사상 처음으로 '비즈니스 인물'(10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8위), '40세 미만 40인'(1위) 세 목록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2015년 12월에는 영국 회사 Richtopia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CEO 500인' 목록에서 14위에 올랐다.
그러나 2016년 3월, 포춘은 메이어를 '세계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리더'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포춘 500대 기업 여성 CEO 목록에 포함되었으나, 순위는 498위에 머물렀다.
7. 개인사
머리사 마이어는 위스콘신주 와우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마거릿 마이어는 핀란드계 미술 교사였고, 아버지 마이클 마이어는 수자원 회사에서 일했던 환경 공학자였다. 그녀의 할아버지 클렘 마이어는 일곱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으며, 위스콘신주 잭슨의 시장으로 32년간 재임했다.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마이어는 어린 시절과 십 대 시절을 "몹시 수줍어했다"고 회상하며, 발레, 스케이트, 피아노, 수영, 토론, 걸스카우트 브라우니 등 다양한 방과 후 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발레를 통해 "비판과 규율, 침착함, 그리고 자신감"을 배웠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에 관심을 보였다.
마이어는 2000년대 초반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교제한 바 있다. 2009년 12월 12일, 변호사이자 투자자인 자카리 보그와 결혼했다. 야후! CEO로 임명된 직후인 2012년 7월 임신 사실을 밝혔고, 같은 해 9월 30일 아들 맥캘리스터를 낳았다. 2015년 12월 10일에는 쌍둥이 딸 마리엘과 실바나를 출산했다.
마이어는 루터교 신자이지만, 자신의 우선순위에 대해 빈스 롬바디의 말을 인용하며 "신, 가족, 그리고 야후!입니다. 단, 저는 그렇게 종교적이지 않아서, 실제로는 가족과 야후!입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2021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 선거에서 개빈 뉴섬 주지사의 소환에 반대하며 200를 기부했다. 이는 뉴섬 주지사의 실리콘 밸리 지지 기반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되었다.
7.1. 성차별 논란
2013년 11월, 마이어는 직원에 대한 정규 분포 기반의 성과 검토 시스템을 도입하여 관리자가 직원을 종 모양 곡선으로 평가하고 하위 직원을 해고하도록 제안했다. 직원들은 일부 관리자가 이 과정을 의무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2015년 야후!에서 해고된 전 주요 편집 이사 스콧 아드(Scott Ard)는 마이어가 남성 직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도록 성과 평가 시스템을 운영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마이어가 "경영진의 주관적인 편견과 개인적인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 시스템을 남성에게 불리하게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아드는 2011년 야후! 홈페이지 편집 프로그래밍 책임자로 입사한 이후 해고되기 전까지 "완전 만족" 평가를 받았으나, 최근 채용된 여성에게 자신의 역할을 맡게 되어 해고되었다고 덧붙였다. 이 소송은 2018년 3월 기각되었다.
한편, 2014년에 해고된 그레고리 앤더슨(Gregory Anderson)도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회사의 성과 관리 시스템이 임의적이고 불공정하며, 주 및 연방 WARN 법 적용을 회피할 목적으로 해고를 종료로 위장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2016년 야후!와 마이어가 직면한 첫 번째 WARN 법 및 성차별 관련 소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