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카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메시카는 멕시코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었으며, 멕시코 시티가 위치한 계곡의 정착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들은 톨텍의 후손으로 쿨후아-메시카로 불리기도 했으며, 테노치티틀란의 메시카는 테노차로도 불렸다. 아즈텍이라는 명칭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오늘날에는 테노치티틀란의 메시카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1200년경 톨테카가 쇠퇴한 후, 메시카는 멕시코 계곡에 정착하여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했으며, 아즈텍 삼국 동맹을 통해 중앙 멕시코를 지배했다. 1521년 스페인에 정복된 후, 메히카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스페인 문화에 동화되었으며,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다. 멕시코 독립 이후 메히카 이름은 부활했으며, 21세기에는 멕시코 정부가 언어에 따라 민족성을 인정함에 따라 멕시카 인구 추정은 어려워졌다. 2020년 미국 인구 조사에서는 "아즈텍"을 미국 원주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메시카는 나와틀어를 사용했으며, 현재도 160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나와족 - 치치메카
치치메카는 16세기 스페인 기록에서 멕시코 북부 지역의 토착 부족들을 지칭하는 나와틀어 단어로, 스페인 정복에 저항했으나 치치메카 전쟁 후 스페인 문화에 동화되었다. - 나와족 - 틀락스칼란
틀락스칼란은 멕시코 중부에 위치했던 도시 국가로, 아스텍 제국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으며, 스페인 정복 당시 스페인 군대와 동맹하여 아스텍을 정복하는 데 기여했다. - 아즈텍 - 아즈텍 제국
아즈텍 제국은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까지 중앙 멕시코를 지배한 강력한 제국으로, 메시카족을 주축으로 테노치티틀란을 중심으로 건설되었으며, 군사력과 조공 체계를 바탕으로 번성했지만 스페인 침략과 내부 불안, 천연두로 멸망했고, 엄격한 계급 사회와 종교 의식, 발달된 도시 건설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 아즈텍 - 아즈텍 문명
아즈텍 문명은 14세기부터 16세기 초 멕시코 계곡에서 번성한 나와틀어 사용 민족의 문명으로, 테노치티틀란을 중심으로 아즈텍 삼국 동맹을 결성하여 멕시코 중부를 지배했으며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멸망했다.
메시카인 | |
---|---|
일반 정보 | |
![]() | |
민족 명칭 | 메시카 |
로마자 표기 | Mexica |
단수형 | 메시카틀 |
로마자 표기 (단수) | Mēxihcātl |
언어 | 나와틀어, 스페인어 |
종교 | 가톨릭교와 전통 메시카 종교의 혼합 |
관련 민족 | 다른 나와족 |
거주 지역 | 멕시코 계곡 |
인구 | |
멕시코 | 100만 명 이상 (나와족으로) |
미국 | 387,000명 (아즈텍으로) |
2. 명칭
'''메시카'''는 멕시코(Mēxihco|meːˈʃiʔkoˀnah)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었으며, 원래는 현재의 멕시코 시티에 있는 계곡의 상호 연결된 정착지를 가리켰다. 이 집단은 또한 이웃한 쿨우아와의 친족 관계를 인정하여 쿨우아-메시카라고도 불렸는데, 그들은 수세기 동안 톨텍의 수도인 툴라를 점령했던 존경받는 톨텍의 후손이었다.[6][7] 테노치티틀란의 메시카는 또한 "테노차"라고 불렸으며, 이는 그들의 ''알테페틀''(도시 국가)인 테노치티틀란과 테노치티틀란의 창립 지도자인 테노치의 이름과 관련된 용어이다.[6][7]
메히카는 아스틀란이라는 전설적인 고향에서 멕시코 계곡으로 이주해 온 나와어를 사용하는 여러 부족 중 하나였다. 그들은 우이칠로포치틀리 신의 인도에 따라, 뱀을 부리에 문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 있는 곳에 정착하라는 신탁을 받았다. 오랜 여정 끝에 테스코코 호의 한 섬에서 이 표식을 발견하고, 1325년(혹은 1345년)에 테노치티틀란을 건설했다.
아즈텍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신화적 고향인 ''아스틀란''("백로의 땅")과 ''tec(atl)'' ("사람들")을 결합한 알렉산더 폰 훔볼트에 의해 만들어졌다.[6] 오늘날 "아즈텍"이라는 용어는 테노치티틀란의 메시카 사람들, 즉 메시카 테노차(Mēxihcah Tenochcah)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테노치티틀란의 메시카만을 지칭하는 부족 명칭으로, 틀라텔롤코 또는 ''cōlhuah''는 제외한다.[9][10] 아즈텍이라는 용어는 메시카뿐만 아니라 나우아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인 멕시코 계곡과 인접 지역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된다.[6][11]
3. 역사
1337년에는 테노치티틀란에서 분리된 일파가 북쪽 섬에 틀라텔롤코를 건설하여, 두 도시는 경쟁 관계가 되었다. 아즈텍 삼국 동맹 결성 이후, 테노치티틀란의 메히카는 테스코코(알테페틀), 틀라코판을 제치고 주도권을 잡았다. 메히카는 1519년 스페인과 그 동맹군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중앙 멕시코의 정치적 패권을 장악했다.
테노치티틀란에 정착한 메히카는 템플로 마요르를 비롯한 웅장한 신전들을 건설했다. 템플로 마요르는 우이칠로포치틀리와 틀랄록에게 바쳐진 이중 피라미드 신전으로, 정치적, 종교적 목적이 결합된 대규모 희생 의식 장소였다.
1521년, 메히카는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틀락스칼라 동맹군에 의해 멸망했다. 테노치티틀란은 파괴되고 약탈당했으며, 멕시코 시티로 재건되었다. 메히카는 스페인에 복종하고 기독교로 개종해야 했으며, 고유의 종교 의식은 금지되었다. 살아남은 메히카인들은 아시엔다 등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고, 일부는 과테말라의 스페인 정복 등 다른 정복 활동에 징집되기도 했다.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과 같은 일부 스페인 선교사들은 메히카의 기독교 개종이 진정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메히카 인구는 스페인 정복 이후 질병, 과로 등으로 급감했다. 멕시코 독립 전쟁 이후에도 메히카를 비롯한 원주민 문화는 소외되었다.
식민지 시대에 억압되었던 메히카의 이름은 19세기에 부활하여, 몬테수마, 쿠아우테목, 테노치와 같은 이름들이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21세기 멕시코 정부는 메히카의 민족 정체성을 조상이 아닌 언어 사용(나와어)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정확한 인구 수를 파악하기 어렵다. 2020년 기준 멕시코에는 160만 명이 넘는 나우아어 사용자가 있으며, 미국에도 수천 명의 나와어 사용 이민자가 있다. 2020년 미국 인구 조사에서는 "아즈텍"을 미국 원주민으로 인정했으며, 387,122명이 자신을 아즈텍으로 분류하여 미국 내 가장 큰 단일 원주민 집단이 되었다.
3. 1. 테노치티틀란 건설 이전
톨테카가 1200년경 쇠퇴한 후, 다양한 나우아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들이 멕시코 계곡으로 들어왔는데, 아마도 모두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아스틀란에서 왔을 것이다.[12] 메히카는 이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집단이었다.[13] 그들은 그곳에서 "톨텍 제국의 잔재와 마주쳤다(Hicks 2008; Weaver 1972)."[14]
전설에 따르면, 메히카는 그들의 주요 신 중 하나인 우이칠로포치틀리가 알려준 표식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부리에 뱀을 물고 선인장에 앉아 있는 독수리"를 찾아 그곳에 도시를 건설해야 했다.[6] 결국 그들은 테스코코 호에 도착했고, 마침내 호수 섬에서 독수리와 선인장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피난처를 찾았고... 그들의 정착지를 테노치티틀란(돌-선인장 열매 사이)이라고 불렀다."[6] 테노치티틀란은 1325년에 건설되었지만, 다른 연구자들과 인류학자들은 그 해를 1345년으로 보기도 한다.[6]
디에고 두란의 『누에바 에스파냐지』에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메히카는 신관 메시(Meci)의 인솔하에 이동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34]
낙원인 아스틀란에 비해 멕시코 분지로의 여정은 길고 고되었다.[34]
멕시코 분지에 도착한 후에도 메히카는 이미 이곳에 살고 있던 다른 집단과 대립하여 여러 번 정착지를 옮겼다. 먼저 서쪽의 마리날코에 살았지만 우이칠로포치틀리의 누이인 여신 마리날쇼치틀에게 공격받았다. 다음으로 차풀테펙(메뚜기 언덕)에 살았지만 인근 집단에게 공격받았다. 이어서 코르와칸의 영주에게 종속되어 티사아판이라는 곳에 살았다. 우이칠로포치틀리는 코르와칸 영주의 딸을 산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했고, 메히카는 명령에 따라 딸을 산 제물로 바쳤다. 코르와칸 사람들은 분노하여 멕시카를 쫓아냈다.[35][36]
마침내 메히카는 테스코코 호반에 이르러 섬의 선인장에 독수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을 테노치티틀란(선인장의 땅)이라고 이름 짓고 1325년에 도시를 건설했다.[37]
일부 사람들은 후에 테노치티틀란에서 갈라져 그 북쪽에 틀라텔롤코를 건설했다.
3. 2. 테노치티틀란 건설
1200년경 톨테카 문명이 쇠퇴한 후, 다양한 나와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들이 멕시코 계곡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아마도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아스틀란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12] 메히카는 이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집단이었다.[13] 그들은 멕시코 계곡에서 톨텍 제국의 잔재와 마주쳤다.[14]
전설에 따르면, 메히카는 그들의 주요 신 중 하나인 우이칠로포치틀리에게서 받은 "부리에 뱀을 물고 선인장에 앉아 있는 독수리" 표식을 찾고 있었다. 이 표식을 찾은 곳에 도시를 건설해야 했다.[6] 마침내 그들은 테스코코 호의 한 섬에서 이 표식을 발견하고, 그곳에 피난처를 마련하여 테노치티틀란(돌-선인장 열매 사이)이라는 정착지를 건설했다.[6] 테노치티틀란은 1325년에 건설되었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1345년으로 보기도 한다.[6]
디에고 두란의 『누에바 에스파냐지』에 따르면, 메히카는 신관 메시(Meci)의 인솔하에 이동했기 때문에 '메히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34] 멕시코 분지로의 여정은 낙원이었던 아스틀란에 비해 길고 험난했다.[34]
멕시코 분지에 도착한 후에도 메히카는 이미 정착해 있던 다른 집단들과 갈등을 겪으며 여러 차례 정착지를 옮겨야 했다. 처음에는 서쪽의 마리날코에 정착했으나, 우이칠로포치틀리의 누이인 여신 마리날쇼치틀의 공격을 받았다. 이후 차풀테펙(메뚜기 언덕)으로 이동했지만, 인근 집단의 공격으로 다시 쫓겨났다. 그 후 코르와칸 영주에게 종속되어 티사아판에 살게 되었는데, 우이칠로포치틀리의 명령에 따라 코르와칸 영주의 딸을 산 제물로 바치면서 코르와칸 사람들의 분노를 사 또다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35][36]
마침내 메히카는 테스코코 호반에 이르러, 섬의 선인장에 독수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을 테노치티틀란(선인장의 땅)이라 명명하며 1325년에 도시를 건설했다.[37]
3. 3. 아즈텍 삼국 동맹과 제국 발전
톨테카가 1200년경 쇠퇴한 후, 여러 나우아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들이 멕시코 계곡으로 들어왔는데, 아마도 모두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아스틀란에서 왔을 것이다.[12] 메히카는 마지막으로 도착한 집단이었다.[13] 그들은 그곳에서 "톨텍 제국의 잔재와 마주쳤다."[14] 전설에 따르면, 메히카는 그들의 주요 신 중 하나인 우이칠로포치틀리가 그들에게 준 표식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부리에 뱀을 물고 선인장에 앉아 있는 독수리"를 찾아 그곳에 도시를 건설해야 했다.[6] 결국 그들은 테스코코 호에 도착했고, 마침내 호수 섬에서 독수리와 선인장을 보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피난처를 찾았고... 그들의 정착지를 테노치티틀란(돌-선인장 열매 사이)이라고 불렀다."[6] 테노치티틀란은 1325년에 건설되었지만, 다른 연구자들과 인류학자들은 그 해를 1345년으로 본다.[6]
1337년에 메히카의 반대 세력이 본대에서 분리되어 테노치티틀란 북쪽 섬에 또 다른 도시를 건설했다. 그들은 새로운 고향을 틀라텔롤코(구형 지구 제방의 장소)라고 불렀고, 틀라텔롤카는 멕시코 계곡에서 테노치티틀란의 끊임없는 경쟁자가 되었다.[16] 아즈텍 삼국 동맹이 부상한 후, 테노치티틀란의 거주자인 테노차 메히카는 동맹 도시 국가인 테스코코(알테페틀)와 틀라코판보다 우위를 점했다. 테노치티틀란이 건설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메히카는 1519년 스페인과 그들의 원주민 동맹(주로 메히카의 적)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중앙 멕시코의 정치적 지형을 지배했다.[14]
테스코코 호 주변에는 동쪽의 테스코코를 수도로 하는 아콜와와 서쪽의 아스카포찰코를 수도로 하는 테파네카의 두 주요 집단이 있었다. 멕시카는 테파네카의 지배자인 테소소모크에 종속되었다.[39]
발전한 테노치티틀란에서는 1372년에 콜와칸 영주의 딸을 어머니로 둔 아카마피치틀리가 첫 번째 지배자로 즉위했다. 그의 아들 위칠리위틀은 테소소모크의 딸과 결혼하여 제3대 지배자가 되는 치말포포카가 태어났다. 위칠리위틀은 또한 쿠아우나와크의 지배자의 딸과 결혼하여 제5대 지배자가 되는 모테크소마 1세가 태어났다.[40][36]
테파네카에서 테소소모크가 사망하자 후계자 분쟁이 일어났다. 치말포포카는 분쟁에 휘말려 살해되었고, 위칠리위틀의 동생 이츠코아틀이 그 뒤를 이었다. 테파네카에서 새로 즉위한 마슈틀라에 대항하여 멕시카(테노치티틀란), 아콜와(테스코코), 웨쇼친카, 그리고 테파네카의 반 마슈틀라 세력(트라코판)이 1428년에 동맹하여 아스카포찰코의 테파네카를 무찔렀다. 웨쇼친카를 제외한 3개의 집단은 이후에도 동맹을 유지하며, 정복지로부터의 공납품은 테노치티틀란: 2, 테스코코: 2, 트라코판: 1의 비율로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아스텍 삼국 동맹, 즉 아스텍 제국이다.[41] 제국이 확대됨에 따라 삼국 동맹 중 테노치티틀란의 비중이 점차 높아져 실질적으로 멕시카 제국이 되었다.[42]
3. 4. 스페인의 침략과 멸망
톨테카가 1200년경 쇠퇴한 후, 여러 나우아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들이 멕시코 계곡으로 들어왔는데, 이들은 모두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아스틀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12] 메히카는 이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집단이었다.[13] 전설에 따르면, 메히카는 그들의 주요 신 중 하나인 우이칠로포치틀리가 지시한 "부리에 뱀을 물고 선인장에 앉아 있는 독수리"를 찾아 그곳에 도시를 건설해야 했다.[6] 결국 그들은 테스코코 호에 도착하여 호수 섬에서 독수리와 선인장을 발견하고, 그곳에 테노치티틀란이라는 도시를 건설했다.[6] 테노치티틀란은 1325년에 건설되었지만, 다른 연구자들은 1345년으로 보기도 한다.[6]
1337년, 메히카의 반대 세력이 분리되어 테노치티틀란 북쪽 섬에 틀라텔롤코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틀라텔롤코는 멕시코 계곡에서 테노치티틀란의 끊임없는 경쟁자가 되었다.[16] 아즈텍 삼국 동맹이 부상한 후, 테노치티틀란의 테노차 메히카는 동맹 도시 국가인 테스코코(알테페틀)와 틀라코판보다 우위를 점했다. 테노치티틀란이 건설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메히카는 1519년 스페인과 그들의 원주민 동맹들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중앙 멕시코의 정치적 지형을 지배했다.[14]
메히카는 1521년 틀락스칼텍-스페인 동맹에 의해 전복되었다.[6] 테노치틀란은 파괴되고 약탈되었으며, 승리한 스페인과 틀락스칼텍 군인들에 의해 보물이 도난당했지만, 스페인이 기대했던 만큼의 금은 아니었다.[20] 많은 메히카 여성들이 침략자들에게 납치되어 강간당했고, 고위 군인들은 더 매력적인 여성들을 차지했다.[21] 파괴된 고향에 재정착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멕시코 시티로 재건된 메히카는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하고,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해야 했다. 메히카 의식과 숭배는 금지되고 가혹하게 억압되었으며, 그들의 신들의 이미지는 스페인 수도승에 의해 파괴되었다.[22] 메히카 아이들은 새로 설립된 기독교 학교로 강제로 끌려가 기독교 신념과 스페인 문화에 세뇌되었으며, 살아남은 메히카 남녀는 아시엔다로 알려진 새로 설립된 스페인 영지, 광산, 운하 건설과 같은 다른 토목 공사에 보내졌다. 마지막 황제 쿠아우테목을 포함한 일부 남아있는 군대와 귀족들은 반란 가능성을 막기 위해 과테말라의 스페인 정복과 같은 스페인의 추가 침략을 지원하도록 징집되었다.[23]
메히카의 기독교 개종의 진정성은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과 같은 일부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의문을 제기받았다. 그는 1576년 또 다른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멕시코에 영구적인 기독교의 존재에 대해 의심한다고 썼다.[24]
메시카는 테스코코 호수에 치난파라고 불리는 개척지를 건설하고 운하를 건설했다. 카누와 배로 주변 마을과 교역을 하여 마을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테스코코 호는 타국의 침략으로부터 테노치티틀란을 지키는 방벽으로도 작용했다.[39]
테스코코 호 주변에는 동쪽의 테스코코를 수도로 하는 아콜와와 서쪽의 아스카포찰코를 수도로 하는 테파네카의 두 주요 집단이 있었다. 멕시카는 테파네카의 지배자인 테소소모크에 종속되었다.[39]
발전한 테노치티틀란에서는 1372년에 첫 번째 지배자로, 콜와칸 영주의 딸을 어머니로 둔 아카마피치틀리가 즉위했다. 그의 아들 위칠리위틀은 테소소모크의 딸과 결혼하여 제3대 지배자가 되는 치말포포카가 태어났다. 위칠리위틀은 또한 쿠아우나와크의 지배자의 딸과 결혼하여 제5대 지배자가 되는 모테크소마 1세가 태어났다.[40][36]
테파네카에서 테소소모크가 사망하자 후계자 분쟁이 일어났다. 치말포포카는 분쟁에 휘말려 살해되었고, 위칠리위틀의 동생 이츠코아틀이 그 뒤를 이었다. 테파네카에서 새로 즉위한 마슈틀라에 대항하여 멕시카(테노치티틀란), 아콜와(테스코코), 웨쇼친카, 그리고 테파네카의 반 마슈틀라 세력(트라코판)이 1428년에 동맹하여 아스카포찰코의 테파네카를 무찔렀다. 웨쇼친카를 제외한 3개의 집단은 이후에도 동맹을 유지하며, 정복지로부터의 공납품은 테노치티틀란: 2, 테스코코: 2, 트라코판: 1의 비율로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아즈텍 삼국 동맹, 즉 아스텍 제국이다.[41] 제국이 확대됨에 따라 삼국 동맹 중 테노치티틀란의 비중이 점차 높아져 실질적으로 멕시카 제국이 되었다.[42]
3. 5. 식민지 시대와 그 이후
톨테카가 1200년경 쇠퇴한 후, 여러 나우아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들이 멕시코 계곡으로 들어왔는데, 아마도 모두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아스틀란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12] 메히카는 이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한 집단이었다.[13] 그들은 그곳에서 "톨텍 제국의 잔재와 마주쳤다(Hicks 2008; Weaver 1972)."[14] 전설에 따르면, 메히카는 그들의 주요 신 중 하나인 우이칠로포치틀리가 그들에게 준 표식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부리에 뱀을 물고 선인장에 앉아 있는 독수리"를 찾아 그곳에 도시를 건설해야 했다.[6] 결국 그들은 테스코코 호에 도착했고, 마침내 호수 섬에서 독수리와 선인장을 보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피난처를 찾았고... 그들의 정착지를 테노치티틀란(돌-선인장 열매 사이)이라고 불렀다."[6] 테노치티틀란은 1325년에 건설되었지만, 다른 연구자들과 인류학자들은 그 해를 1345년으로 보기도 한다.[6]
1337년에 메히카의 반대 세력이 본대에서 분리되어 테노치티틀란 북쪽 섬에 또 다른 도시 틀라텔롤코를 건설했다. 틀라텔롤카는 멕시코 계곡에서 테노치티틀란의 끊임없는 경쟁자가 되었다.[16] 아즈텍 삼국 동맹이 부상한 후, 테노치티틀란의 거주자인 테노차 메히카는 동맹 도시 국가인 테스코코(알테페틀)와 틀라코판보다 우위를 점했다. 테노치티틀란이 건설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메히카는 1519년 스페인과 그들의 원주민 동맹(주로 메히카의 적)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중앙 멕시코의 정치적 지형을 지배했다.[14]
테노치티틀란에 정착한 후, 메히카는 다양한 목적으로 웅장한 신전을 지었다. 템플로 마요르(주요 신전)와 인근 건물은 비와 풍요, 전쟁, 희생, 제국주의를 태양과 우주의 질서를 보존하는 신성한 사명과 연결하는 아즈텍 우주론의 상징으로 가득 차 있었다.[17] 템플로 마요르는 "정치적, 종교적 목적이 얽혀 있는 대규모 적 전사 희생 장소였다(Berdan 1982: 111–119; Carrasco 1991)."[17] 그것은 고대 중앙 멕시코의 비의 신인 톨록과, 멕시코에서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신으로서 태양과 연관된 메히카 부족의 이름인 우이칠로포치틀리에게 헌정된 이중 피라미드 신전이었다.[18]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메히카는 더 널리 숭배되는 또 다른 신인 테스카틀리포카로부터 우이칠로포치틀리를 분리하여, 그들의 상대적인 권력 영역을 재정의하고 신화를 재구성했으며, 그를 정치적으로 우위에 두었다.[19]
메히카는 1521년 틀락스칼텍-스페인 동맹에 의해 전복되었다.[6] 이 지역은 아즈텍 제국의 스페인 정복 이후 확장되었고, 이전 아즈텍 수도에서 누에바 에스파냐로 관리되었다. 테노치티틀란은 파괴되고 약탈되었으며, 승리한 스페인과 틀락스칼텍 군인들에 의해 보물이 도난당했지만, 스페인이 기대했던 만큼의 금은 아니었다.[20] 많은 메히카 여성들이 침략자들에게 납치되어 강간당했고, 고위 군인들은 더 매력적인 여성들을 차지했다.[21] 멕시코 시티로 재건된 메히카는 스페인 국왕에게 복종하고,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해야 했으며, 파괴된 고향에 재정착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메히카 의식과 숭배는 금지되고 가혹하게 억압되었으며, 그들의 신들의 이미지는 스페인 수도승에 의해 파괴되었다.[22] 메히카 아이들은 새로 설립된 기독교 학교로 강제로 끌려가 기독교 신념과 스페인 문화에 세뇌되었으며, 살아남은 메히카 남녀는 아시엔다로 알려진 새로 설립된 스페인 영지, 광산, 운하 건설과 같은 다른 토목 공사에 보내졌다. 마지막 황제 쿠아우테목을 포함한 일부 남아있는 군대와 귀족들은 반란 가능성을 막기 위해 과테말라의 스페인 정복과 같은 스페인의 추가 침략을 지원하도록 징집되었다.[23]
그러나 메히카의 기독교 개종의 진정성은 수도승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과 같은 일부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의문을 제기받았는데, 그는 1576년 또 다른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멕시코에 영구적인 기독교의 존재에 대해 의심한다고 썼다.[24] 그들의 패배, 복종, 과로 및 수많은 전염병의 결과로, 메히카 인구는 극적으로 감소하여 1600년까지 90%나 감소했을 것이다.[25] 이 숫자는 1821년까지 다소 회복되었지만, 멕시코 독립 전쟁 이후, 메히카와 다른 원주민들은 스페인-멕시코 혼합 유산을 선호하여 원주민 멕시코 문화를 최소화하려는 정부 정책에 의해 다시 한 번 소외되었다.[26]
비록 메히카 이름은 기독교 이전의 신념과 연관되어 식민지 시대에 광범위하게 억압되었지만, 멕시코 독립 이후 19세기에 부활했다. 그 이후로, 몬테수마, 쿠아우테목, 테노치와 같은 이름이 이름과 성으로 멕시코 문화와 미국과 같은 멕시코 이민자 공동체에서 더 널리 퍼지게 되었다.[27]
21세기에는 멕시코 정부가 조상에 의한 민족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용되는 언어에 따라 인정하므로, 멕시코의 메히카 인구 수를 추정하기가 어렵다.[28] 대신 그들은 나우아로 알려진 모든 나우아어 사용자와 광범위하게 함께 묶여 있다. 2020년에는 멕시코에 160만 명이 넘는 나우아어 사용자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며,[29] 미국에는 수천 명의 나우아어 사용 이민자가 살고 있다.[30] 2020년 미국 인구 조사에서, 미국 정부는 "아즈텍"을 미국 원주민 인종 범주에 속하는 민족으로 인정했다. 387,122명이 인구 조사에서 아즈텍으로 자신을 식별했으며, 아즈텍은 미국에서 가장 큰 비혼합 원주민 집단이 되었다.[31]
4. 사회와 문화
메시카인은 고대 아즈텍 제국의 중심 민족으로, 풍부한 문화와 사회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이들의 사회는 엄격한 계급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종교와 예술이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메시카 사회는 크게 귀족, 평민, 노예 계층으로 나뉘었다. 귀족은 정치, 군사, 종교적 권력을 독점했으며, 평민은 농업, 수공업, 상업 등에 종사했다. 노예는 전쟁 포로, 범죄자,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주로 가사 노동이나 농업 노동에 투입되었다.
메시카인의 종교는 다신교였으며, 태양신, 비의 신, 옥수수 신 등 다양한 신들을 숭배했다. 이들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의식을 거행하여 풍요와 안녕을 기원했다. 특히 인신 공양은 메시카 종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였는데, 이는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고 신들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메시카인은 예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들은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테노치티틀란의 거대한 신전과 피라미드는 메시카 건축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한, 메시카인들은 정교한 달력을 사용하고 천문학 지식을 발전시키는 등 과학 분야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였다.
오늘날 메시카인의 후손들은 멕시코 중부 지역에 거주하며,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메시카 문화는 멕시코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5. 언어
멕시카인들은 주변의 많은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나와틀어를 사용했는데, 아즈텍 제국의 팽창과 함께 다른 지역에서도 공용어가 되었다.[32] 16세기에 스페인인들이 도입한 라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나와틀어는 고전 나와틀어로 알려지게 되었다. 2020년 기준으로 160만 명 이상의 멕시카인과 기타 나후아족 사람들이 나와틀어를 사용하며, 그 중 거의 7%는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33]
6. 현대의 메시카
'''메시카'''는 멕시코(Mēxihco|메시코nah)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었으며, 원래는 현재의 멕시코 시티에 있는 계곡의 상호 연결된 정착지를 가리켰다.[6] 이 집단은 또한 이웃한 쿨후아와의 친족 관계를 인정하여 쿨후아-메시카라고도 불렸는데, 그들은 수세기 동안 톨텍의 수도인 툴라를 점령했던 존경받는 톨텍의 후손이었다. 테노치티틀란의 메시카는 또한 "테노차"라고 불렸으며, 이는 그들의 ''알테페틀''(도시 국가)인 테노치티틀란과 테노치티틀란의 창립 지도자인 테노치의 이름과 관련된 용어이다.[6][7]
아즈텍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신화적 고향인 ''아스틀란''("백로의 땅")과 ''tec(atl)'' ("사람들")을 결합하여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만들었다.[6] 오늘날 "아즈텍"이라는 용어는 테노치티틀란의 메시카 사람들, 즉 메시카 테노차(Mēxihcah Tenochcah)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테노치티틀란의 메시카만을 지칭하는 부족 명칭으로, 틀라텔롤코 또는 ''cōlhuah''는 제외한다.[9][10] 아즈텍이라는 용어는 메시카뿐만 아니라 나우아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인 멕시코 계곡과 인접 지역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된다.[6][11]
참조
[1]
웹사이트
Aztec summary |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
웹사이트
https://www.washingt[...]
[3]
웹사이트
Nahuatl Dictionary.
http://whp.uoregon.e[...]
Wired Humanities Project. University of Oregon
2012-08-29
[4]
웹사이트
An Indigenous reframing of the fall of the Aztec empire
https://www.britishm[...]
2024-05-19
[5]
웹사이트
The Aztecs
https://www.eliwhitn[...]
2024-03-29
[6]
간행물
Mesoamerica: Mexica
Routledge
[7]
서적
The Aztecs: A Very Short Introduction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012-01-26
[8]
서적
Chimalpahin's Conquest: A Nahua Historian's Rewriting of Francisco Lopez de Gomara's La conquista de Mexico
https://books.google[...]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0-07-19
[9]
문서
1997
[10]
문서
1992
[11]
서적
Carnage and Culture: Landmark Battles in the Rise to Western Power
https://books.google[...]
Knopf Doubleday Publishing Group
2007-12-18
[12]
서적
World History
Pearson Education Inc.
[13]
서적
The Oxford Encyclopedia of Mesoamerican Cultures
https://www.oxfordre[...]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14]
간행물
Biodistances Among Mexica, Maya, Toltec, and Totonac Groups of Central and Coastal Mexico / Las Distancias Biológicas Entre Los Mexicas, Mayas, Toltecas, y Totonacas de México Central y Zona Costera
[15]
서적
The Aztecs: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16]
간행물
Nahua Rulers, Pre Hispanic
Routledge
[17]
서적
Encyclopedia of Prehistory: Volume 5: Middle America
Springer US
[18]
간행물
Antiques, Revivals, and References to the past in Aztec Art
[19]
간행물
Tezcatlipoca and Huitzilopochtli: Political Dimensions of Aztec Deities
University Press of Colorado
[20]
웹사이트
What the Textbooks Have To Say About the Conquest of Mexico: Some Suggestions for Questions to Ask of the Evidence
https://www.historia[...]
2024-04-01
[21]
웹사이트
The Fall of Tenochtitlan: Part 4
https://medium.com/t[...]
2024-04-12
[22]
학술지
Spanish Society in Mexico City After the Conquest
https://read.dukeupr[...]
2024-04-01
[23]
학술지
Aztecs Before and After the Conquest
http://www.tandfonli[...]
1992-01
[24]
문서
Florentine Codex: Introduction and Indices
[25]
학술지
Collapse of Aztec society linked to catastrophic salmonella outbreak
https://www.nature.c[...]
2017-02-01
[26]
웹사이트
Modern-Day Conquistadors: The Decline of Nahuatl, and the Status of Mexican Bilingual Education
https://hir.harvard.[...]
2024-03-29
[27]
웹사이트
Mexicolore
https://www.mexicolo[...]
2024-04-01
[28]
웹사이트
Ethnic Identity in the 2020 Mexican Census
https://www.indigeno[...]
2024-03-29
[29]
웹사이트
Ethnic Identity in the 2020 Mexican Census
https://www.indigeno[...]
2024-04-12
[30]
웹사이트
Nahuatl
https://www.elallian[...]
2024-03-29
[31]
웹사이트
Census Bureau Releases 2020 Census Data for Nearly 1,500 Detailed Race and Ethnicity Groups, Tribes and Villages
https://www.census.g[...]
2024-03-29
[32]
간행물
Postclassic Cultures of Mesoamerica
Elsevier Science & Technology
[33]
웹사이트
Ethnic Identity in the 2020 Mexican Census
https://www.indigeno[...]
2024-04-01
[34]
문서
2000
[35]
문서
2000
[36]
서적
2001
[37]
서적
1996
[38]
서적
1996
[39]
서적
1996
[40]
서적
1996
[41]
서적
1996
[42]
서적
199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