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후
1. 개요
민진후는 조선 시대의 문신으로, 민유중과 은진 송씨의 아들이다. 인현왕후와 민진원의 형제이며,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숙종 때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등 정치적 격변 속에서 부침을 겪었다. 숭록대부, 예조판서 등을 지냈고, 경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지재집》이 전해지며, 김창집, 이이명 등과 친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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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 -
인현왕후 (드라마)
1988년 드라마 인현왕후는 박순애, 강석우, 전인화 등이 출연하여 인현왕후, 숙종, 장희빈을 중심으로 궁중 암투와 권력 다툼을 그린 신봉승 극본의 작품이다. -
인현왕후 -
김만기 (조선)
김만기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로, 1653년 문과 급제 후 효종과 숙종 대에 걸쳐 요직을 역임하며 서인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고, 딸이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가 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저서로는 《서석문집》이 있다. -
1720년 사망 -
숙종 (조선)
숙종은 1674년부터 1720년까지 재위하며 환국 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대동법 확대와 상평통보 발행으로 민생 안정에 기여했으며, 당쟁 격화와 외교적 성과를 보인 조선의 제19대 국왕이다. -
1720년 사망 -
골웨이 백작 앙리 드 마스
골웨이 백작 앙리 드 마스는 프랑스 출신으로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활동한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찰스 2세와의 협상, 윌리엄 3세 휘하 복무, 아일랜드 최고 사령관 역임 등의 활동을 했으며 오그림 전투 공훈으로 작위를 받았으나 알만사 전투 패배는 오점으로 남았다. -
1659년 출생 -
희빈 장씨
희빈 장씨는 조선 숙종의 총애를 받은 후궁이자 경종의 생모로, 뛰어난 미모와 숙종 시대의 당쟁 속에서 왕비까지 올랐으나, 결국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
1659년 출생 -
이아생트 리고
이아생트 리고는 1659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루이 14세 시대에 궁정 화가로 활동하며 부르봉 왕가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으며, 대표작으로는 루이 14세의 초상화가 있고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2. 생애
민진후는 민유중과 은진 송씨 (송준길의 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인현왕후와 민진원은 그의 동생들이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81년(숙종 7) 생원이 된 뒤, 1686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나, 기사환국으로 삭탈관직되어 귀양을 갔다.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복직되었다. 이후 여러 요직을 거쳤고, 1705년에는 김종서의 복권을 청했으나 무산되었다. 1706년에는 세자모해설 관련 옥사 때의 일로 탄핵받아 파직되었다가 복직되기도 했다. 소론의 탄핵으로 귀양을 갔다가 1717년 다시 기용되었으며, 1718년 숭록대부에 올랐다. 1720년 개성부 유수로 재직 중 사망했다.
인품이 뛰어나 문집으로 《지재집》(趾齋集)이 전하며,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경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와도 친분이 깊었다.
2.1. 초기 생애
민유중과 송준길의 딸인 은진 송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현왕후와 민진원은 그의 동생들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 민유중과 백부 민정중의 스승이기도 한 송시열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1681년(숙종 7) 생원이 되었고, 1686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가 되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관직에서 삭탈되어 귀양을 갔다. 이후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세자시강원 설서(說書)로 복직되었다.
2.2. 관직 생활
1681년(숙종 7) 생원시에 합격하고, 1686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가 되었으나,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삭탈관직되어 귀양 갔다. 1694년(숙종 20년)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되자 세자시강원 설서(說書)로 복직되었다. 이후 사간원 정언, 부응교, 헌납, 시독관, 수찬, 검토관, 북평사를 거쳐 승지가 되었다. 홍문관부제학을 지낸 뒤 1697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대사간, 강화부유수, 장례원판결사, 형조참의, 병조참판, 호조참판을 거쳐 한성부판윤으로 승진, 형조판서를 거쳐 우참찬이 되었다. 예조판서, 좌참찬, 한성부판윤, 지경연사를 역임했다. 예조판서, 지의금부사, 수어사를 거쳐 한성부판윤, 예조판서, 우참찬, 지의금부사를 다시 역임했다.
1705년 조선 초기 좌정승 김종서의 죄를 회복하고 관작을 복구할 것을 청했으나 무산되었다. 1706년 의금부 지사(知事)로서, 유생 임부(林溥)가 세자모해설(世子謀害說)을 발설하여 일어난 옥사 때 왕 앞에서 함부로 논죄하다가 탄핵받아 파직되었다. 그러나 복직되어 판의금부사, 좌참찬, 수어사, 판중추부사,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했다. 형조판서, 수어사, 판돈녕부사, 제조,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예조판서를 거쳐 판의금부사, 수어사, 좌참찬,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예조판서, 지경연사,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좌참찬 등을 역임했다. 소론의 탄핵으로 귀양을 갔다가 1717년 다시 기용되어 여러 요직을 거쳐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돈령부판사, 예조판서, 공조판서를 거쳐 1718년 숭록대부에 올랐다. 내국제조(內局提調)로서 홍문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719년 의정부 우참찬, 의정부 좌참찬을 거쳐 1720년에 개성부 유수로 재직 중 사망했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조부 | 민광훈(閔光勳) | |
| 조모 | 연안 이씨(延安李氏) | 이광정(李光庭)의 딸 |
| 아버지 | 민유중(閔維重) | |
| 어머니 | 은진 송씨(恩津 宋氏) | 송준길(宋浚吉)의 딸 |
| 누나 | 여흥 민씨(驪興 閔氏) | 이만창(李晩昌)에게 출가 |
| 남동생 | 민진원(閔鎭遠) | |
| 제수 | 파평 윤씨(坡平 尹氏) | 윤지선(尹趾善)의 딸 |
| 여동생 | 인현왕후 | |
| 매제 | 숙종 | 조선 19대 국왕 |
| 여동생 | 민정성 혹은 민정제 | |
| 매제 | 신석화(申錫華) | 신정(申晸)의 아들, 장렬왕후 조씨의 언니의 손자이자 숭선군의 처남의 아들 |
| 계모 | 풍양 조씨(豊壤 趙氏) | |
| 이복 남동생 | 민진영(閔鎭永) | 1682년 ~ 1724년 |
| 이복 여동생 | 여흥 민씨(驪興 閔氏) | 이선의 아들 이장휘(李長輝)에게 출가 |
| 이복 여동생 | 여흥 민씨(驪興 閔氏) | 홍우조(洪禹肇)에게 출가 |
| 초실 | 연안 이씨 | 판서 이단상(李端相)의 딸 |
| 장녀 | 여흥 민씨(驪興 閔氏) | 조규빈(趙奎彬)에게 출가 |
| 외손자 | 조영진(趙榮進) | |
| 계실 | 연안 이씨 | 현감 이덕로(李德老)의 딸 |
| 아들 | 민익수(閔翼洙) | 1690년 ~ 1742년 |
| 손자 | 민백분(閔百奮) | |
| 손녀 | 여흥 민씨(驪興 閔氏) | 홍지해(洪趾海)에게 출가, 홍상간(洪相簡)의 어머니 |
| 손녀 | 여흥 민씨(驪興 閔氏) | 윤일복(尹一復)에게 출가, 윤지술(尹志述)의 아들이자 둘째 며느리 윤씨의 친정 조카 |
| 아들 | 민우수(閔遇洙) | 1694년 ~ 1756년 |
| 자부 | 칠원 윤씨(漆原 尹氏) | 윤지술(尹志述)의 누나이자 구성필(具成必)의 생질녀 |
| 손자 | 민백첨(閔百瞻) | |
| 손자 | 민백겸(閔百兼) | |
| 차녀 | 여흥 민씨(驪興 閔氏) | 김광택(金光澤)에게 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