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시타 모토하루
1. 개요
모리시타 모토하루는 1922년 도쿠시마현에서 태어나 임업에 종사하다가 1963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어 정치에 입문했다.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고노 이치로, 나카소네 야스히로 파벌에 속했으며, 1981년 스즈키 젠코 내각에서 후생 대신을 역임했다. 이후 자민당 국대위원장과 나카소네파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1990년 정계를 은퇴했다. 2008년에는 도쿠시마현에 산림을 기부했고, 2014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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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22년 4월 12일 |
|---|---|
| 출생지 | 도쿠시마현 가이후군 가이요정 |
| 사망일 | 2014년 3월 11일 |
| 학력 | 도쿄고등농림학교 (현 도쿄농공대학)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고노파 → 나카소네파) |
| 칭호/훈장 | 종3위 (종7위에서 진계) |
| 직책 | 제61대 후생대신 |
|---|---|
| 내각 | 스즈키 젠코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 | 1981년 11월 30일 |
| 임기 종료 | 1982년 11월 27일 |
| 퇴임 사유 | 내각 총사직 |
| 직책 | 중의원 의원 |
| 선거구 | 도쿠시마현 전현구 |
| 당선 횟수 | 8회 |
| 임기 시작 | 1963년 11월 22일 |
| 임기 종료 | 1990년 1월 24일 |
| 퇴임 사유 | 정계 은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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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농공대학 동문 -
박경원 (비행사)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중 한 명인 박경원은 일본에서 비행 기술을 습득하여 조종사로 활동했으나, 일제강점기 활동으로 친일 논란이 있다. -
도쿄 농공대학 동문 -
다케야마 유타로
농상무성 관료 출신 정치인 다케야마 유타로는 일본 협동당 소속 중의원 의원 9선, 건설대신, 시즈오카현 지사를 지냈으며, 다고노우라항 헤드로 공해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중일 국교 회복에 기여했다. -
훈1등 욱일대수장 수훈자 -
혼마 마사하루
혼마 마사하루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했으나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재판은 지휘자 책임 적용 및 맥아더의 복수심 작용 등의 논란이 있다. -
훈1등 욱일대수장 수훈자 -
도고 시게노리
도고 시게노리는 조선인 도공 후손으로 도쿄 제국대학 졸업 후 외무성에 들어가 만주, 스위스, 독일, 소련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소일 중립 조약 체결에 기여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외무대신으로서 미일 관계 개선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전범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며, 종전 과정에서 포츠담 선언 수용을 주장하여 일본 항복에 기여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다. -
자유민주당 (일본)의 정치인 -
사토 에이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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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일본)의 정치인 -
이케다 하야토
이케다 하야토는 일본의 대장성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총리대신 재임 시절 '소득 배증 계획'을 추진하여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며, 미일 관계 강화와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등 외교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2. 생애
1922년 4월 12일, 도쿠시마현 가이후군 가이요정에서 태어났다. 모리시타 가문은 대대로 임업에 종사했으며, 모리시타 역시 도쿄 고등 농림학교 (현 도쿄 농공대학)를 졸업하고 임업 경영에 종사했다.
1963년 총선에서 옛 도쿠시마현 전현구에 출마하여 처음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당선 동기로는 오부치 게이조, 하시모토 류타로, 코미야마 시게시로, 이토 마사요시, 타나카 로쿠스케, 와타나베 미치오, 사토 타카유키, 후지오 마사유키, 나카가와 이치로, 미하라 아사오, 쿠지라오카 헤이스케, 니시오카 타케오, 오쿠노 세이스케 등이 있다. 이후 통산 8회 당선되었다.
소속 정당은 자유민주당이었으며, 당내에서는 고노 이치로의 춘추회에 속했다가 이후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정책과학연구소로 옮겼다. 1981년 11월부터 1년간 스즈키 젠코 내각 (개조)에서 후생대신으로 임명되어 처음 입각했다. 이후 자유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나카소네파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1990년에 정계를 은퇴했다. 은퇴 후인 2008년에는 "숲의 생명과 자연의 섭리를 많은 사람들이 알길 바란다"는 뜻을 밝히며 모리시타 가문이 소유한 삼림을 도쿠시마현에 기증했다.
2014년 3월 11일, 노쇠로 사망했다. 향년 91세였다. 사후 종7위에서 종3위로 추서되었다.
3. 역대 선거 기록
모리시타 모토하루는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총 9회 출마하여 8회 당선되었다. 1963년 제3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도쿠시마현 전현구에 무소속으로 처음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1967년 제3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자유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1969년 제3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부터 1986년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까지 같은 선거구에서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7회 연속 당선되었다.
3.1. 1963년 제30회 총선거
1963년 제3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도쿠시마현 전현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52,698표(득표율 13.4%)를 얻어 3위로 당선되었다.
3.2. 1967년 제31회 총선거
1967년에 치러진 제3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도쿠시마현 전현구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 이 선거에서 40,725표를 얻어 득표율 10%를 기록했으나, 6위에 그쳐 낙선하였다.
3.3. 1969년 제32회 총선거
1969년 제3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도쿠시마현 전현구에 출마하여 66,883표(득표율 16.5%)를 얻어 2위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3.4. 이후 선거
| 연도 | 선거 종류 | 회차 | 직책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결과 |
|---|---|---|---|---|---|---|---|---|---|
| 1972년 | 총선거 | 33회 | 중의원 의원 | 도쿠시마현 전현구 | 자유민주당 | 62,709 | 14.8 | 3위 | 당선 |
| 1976년 | 총선거 | 34회 | 중의원 의원 | 도쿠시마현 전현구 | 자유민주당 | 61,464 | 13.1 | 3위 | 당선 |
| 1979년 | 총선거 | 35회 | 중의원 의원 | 도쿠시마현 전현구 | 자유민주당 | 71,935 | 15.9 | 4위 | 당선 |
| 1980년 | 총선거 | 36회 | 중의원 의원 | 도쿠시마현 전현구 | 자유민주당 | 67,409 | 15 | 4위 | 당선 |
| 1983년 | 총선거 | 37회 | 중의원 의원 | 도쿠시마현 전현구 | 자유민주당 | 56,855 | 12.6 | 4위 | 당선 |
| 1986년 | 총선거 | 38회 | 중의원 의원 | 도쿠시마현 전현구 | 자유민주당 | 60,212 | 14.12 | 4위 | 당선 |
4. 평가
대대로 임업에 종사한 집안 출신으로, 도쿄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임업 경영에 종사한 배경은 그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63년 정계에 입문하여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8선 중의원 의원을 지냈으며, 1981년 스즈키 젠코 내각 (개조)에서 후생대신을 맡고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 나카소네파 사무총장 등 당내 요직을 역임했다.
1990년 정계를 은퇴한 후인 2008년, "숲의 생명, 자연의 섭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자신이 소유한 산림을 도쿠시마현에 기증한 것은 환경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