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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 (상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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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경은 상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의 아들이다. 주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은에 봉해졌으나, 주 무왕 사후 삼감(관숙, 채숙, 곽숙)과 함께 주공 단의 섭정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은 진압되었고, 무경은 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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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 (상나라)
무경/녹보에 대하여
자(子)
이름경(庚)
작위무경(武庚)
봉호녹보(祿父)
국적상나라
출생미상
사망기원전 1042년
아버지주왕
친척미자계, 미중 (숙부)
생애
주요 활동주나라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킴
최후주나라에 의해 처형당함

2. 생애

상(商)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의 아들이다. 무경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다. 기원전 1046년 무렵 아버지인 상나라 주왕이 하남성(河南省)의 목야(牧野)에서 주(周)나라무왕(武王)에 패하고 죽었다.

상나라가 멸망한 뒤, 주 무왕은 상나라 지역의 민심을 달래고 유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상나라의 왕자였던 무경을 은(殷)에 봉하였다. 그러나 무경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자신의 형제들인 관숙, 채숙, 곽숙을 보내 무경을 감시하게 하였다. 이를 '삼감의 감시'라고 한다.

기원전 1043년, 무왕이 죽고 성왕(成王)이 즉위하자 섭정을 맡은 주공(周公)에 대항하여 삼감은 무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삼감의 난). 그러나 반란은 3년 만에 진압되었고, 무경은 주살되었다.[4]

무왕은 은 주왕을 타도했지만, 은 왕조의 제사는 은나라의 옛 영토에 봉해진 무왕의 아들 무경과 녹보에게 계승하게 했다. 무경은 은나라의 옛 수도(안양)에 봉해졌고, 녹보는 량산 출토의 동기명문으로 보아 량산에 봉해졌다. 무경은 주 왕조에 반란을 일으켰고, 녹보도 가담했지만, 주공 단소공 석에게 평정되었다.

2. 1. 삼감의 감시

무왕(武王)상(商)나라 지역의 민심을 달래고 유민(遺民)들을 통제하기 위해 주왕(紂王)의 아들 무경(武庚)을 상(商)의 도읍이었던 은(殷)에 봉하였다. 무왕은 무경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 주위에 자신의 형제인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姬處)을 봉하여 무경을 감시하도록 하였다.

관숙(管叔)은 셋째 희선(姬鮮)으로 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 지역에, 채숙(蔡叔)은 다섯째 희도(姬度)로 하남성(河南省) 상채(上蔡) 지역에, 곽숙(霍叔)은 여섯째 희처(姬處)로 산서성(山西省) 곽주(霍州) 지역에 봉해졌다. 이들은 봉해진 지역명을 따서 관숙, 채숙, 곽숙으로 불렸는데, 숙(叔)이라는 접사는 형제들 중 막내를 제외한 셋째 이하에 붙는 접사다.[3]

이들은 무경(武庚)과 상(商)의 유민들에 대한 감시를 맡았기에, 세 명의 감시자라는 '''삼감'''(三監)이라고 불렸다.[4]

2. 2. 삼감의 난과 최후

상(商)이 멸망한 뒤 무왕(武王)은 상나라 지역의 민심을 달래고 유민(遺民)들을 통제하기 위해 상나라의 왕자였던 무경(武庚)을 상나라의 도읍이었던 은(殷)에 봉하였다. 주나라 무왕은 무경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그 주위에 자신의 형제인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姬處)을 봉하여 무경을 감시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무경과 상나라 유민들에 대한 감시를 맡았기에, 세 명의 감시자라는 뜻의 '''삼감'''(三監)이라고 불렸다.[4]

기원전 1043년 무렵, 무왕은 주나라를 건국한 지 3년 만에 죽고 성왕(成王)이 즉위하였는데, 나이가 어렸으므로 무왕의 넷째 동생인 주공(周公) 희단(姬旦)이 섭정(攝政)이 되었다. 왕이 갑자기 죽고 숙부 등이 섭정을 하면 왕실의 권력 다툼으로 인한 음모가 있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고 관숙(管叔)과 채숙(蔡叔), 곽숙(霍叔)은 주공 희단과 성왕 즉위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삼감은 주공이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는 말을 사방에 퍼뜨리고, 상나라의 왕자였던 무경을 끌어들여 삼감(三監)의 난(亂)을 일으켰다.

주공은 제후들을 단속하며 반란의 진압에 나섰지만, 무경을 필두로 한 상나라 유민들의 저항이 거셌기 때문에 반란을 진압하는 데에는 3년이 걸렸다. 무경은 주나라의 군대에 사로잡힌 뒤 주살(誅殺), 관숙(管叔) 희선(姬鮮)은 처형, 채숙(蔡叔)은 유배, 곽숙(霍叔)은 벼슬에서 쫓겨났다.

무왕은 은 주왕을 타도했지만, 은 왕조의 제사는 은나라의 옛 영토에 봉해진 무왕의 아들 무경(武庚)과 녹보에게 계승하게 했다. 무경은 은나라의 옛 수도(안양)에 봉해졌고, 녹보는 량산 출토의 동기명문으로 보아 량산에 봉해졌다. 무경은 주 왕조에 반란을 일으켰고, 녹보도 가담했지만, 주공 단소공 석에게 평정되었다.

3. 역사서 기록

후한서』 동이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관, 는 주에 반역하여 곧 이적을 불러들였다. 주공은 이를 정벌하여 마침내 동이를 평정하였다. 강왕 때에 숙신이 또 이르렀다. 뒤에 서이(徐夷)가 참칭하여 곧 구이를 이끌고 종주(宗周)를 쳐 서쪽으로 황하에 이르렀다. 목왕은 그 기세가 맹렬함을 두려워하여 곧 동방 제후를 나누어 서언왕에게 명하여 이를 주관하게 하였다"[2] 관은 허난성정저우 지역으로, 주 무왕의 동생인 관숙선이 봉해진 곳이다. 허난성상채현 지역으로, 관숙선의 동생인 채숙도가 봉해졌다. 관숙선과 채숙도는 주 무왕 사후, 은 주왕의 아들 무경록보와 함께 주 성왕과 주공 단에게 반란을 일으켰으나 평정되었다.[2]

4. 대중문화 속 무경

무경의 멸망 이후의 삶은 만화 《봉신기(封神記)》와 《봉신기 2》에서 허구화되었다. 전자의 만화는 모친이 그의 영혼을 뽑아 죽음을 위장했을 때, 그가 굴욕을 주고 눈을 멀게 한 노예의 몸을 사용하여 주(周)를 지지하는 신들에 대항하는 무경의 싸움에 초점을 맞춘다. 후자는 신들과의 추가적인 싸움을 다룬다. 《무경기(武庚紀)》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 각색이 2016년에 방영되기 시작했다.[1]

참조

[1] 서적 徐の偃王物語と夫余の東明王物語 追手門学院大学文学部アジア文化学科 1999-11-01
[2] 서적 徐の偃王物語と夫余の東明王物語 追手門学院大学文学部アジア文化学科 1999-11-01
[3] 문서 백중숙계
[4] 문서 삼감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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