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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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장륭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왕음의 천거로 관직에 진출하여 간언과 직언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성제 말년에 애제를 태자로 세울 것을 상주했으며, 애제 즉위 후 경조윤, 집금오를 역임했다. 동현의 총애를 받은 애제의 행동을 간언하고 부태후의 비리를 지적했으나, 결국 좌천되었다. 왕망이 집권한 후 기주목 시절의 일로 탄핵당해 파면되고 합포로 유배되었다.

무장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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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무장륭은 대사마거기장군 왕음의 천거로 관직에 진출하여 성제애제 시기에 걸쳐 여러 요직을 거쳤다. 그는 황제에게 직언하는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좌천과 유배를 겪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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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임기전임자후임자
전한경조윤기원전 4년 ~ 기원전 3년왕가신도박
전한집금오기원전 3년 ~ 기원전 2년소육신도박


무장륭은 애제에게 총애받던 동현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간언하고, 부태후의 부당한 요구에 맞섰으나, 이로 인해 애제의 미움을 사 패군도위, 남군태수로 좌천되었다.

왕망은 젊은 시절 무장륭을 존경했으나, 무장륭은 왕망을 멀리했다. 훗날 왕망이 집권하면서 무장륭은 기주목 시절의 잘못을 빌미로 합포로 유배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생활

대사마거기장군 왕음의 천거로 무장륭은 종사중랑(從事中郞)·간대부(諫大夫)를 역임하였다. 성제 말년에 정도왕 유흔을 태자로 삼을 것을 상주하였고, 이후 기주·영천태수를 역임하였다. 유흔이 즉위한 후(애제) 고제(高第)로 경조윤이 되었고, 집금오로 전임되었다. 이때 시중 동현이 애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애제는 중황문을 시켜 무고(武庫)의 병기를 10여 차례나 자신의 유모와 동현에게 가져다 주었다. 무장륭은 이를 간하였으나, 애제는 불쾌하게 여겼다.

얼마 후, 부태후가 알자(謁者)를 시켜 집금오에게 배속된 관비(官婢) 여덟 명을 싼 값에 사들였다. 무장륭은 제 값을 받게 해 달라고 상주하였으나, 애제는 승상·어사대부에게 조서를 내려 무장륭을 힐책하였다. 다만 예전에 충언을 한 것을 감안하여 패군도위로 좌천시켰고, 이후 남군태수로 전임시켰다.

왕망은 젊었을 때 무장륭을 흠모하였으나, 무장륭은 왕망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애제가 죽고 왕망이 집권하였을 때, 왕망은 대사도 공광을 시켜 무장륭이 기주목 시절에 옥사를 그르쳤다고 상주하였다. 결국 무장륭은 중태복(中太僕) 사립(史立)·태산태수 정현(丁玄)·하내태수 조창과 함께 파면되고 합포로 유배되었다.

2.2. 동현과의 갈등과 좌천

대사마거기장군 왕음의 천거로 종사중랑(從事中郞)·간대부(諫大夫)를 역임하였다. 성제 말년에 정도왕 유흔을 태자로 삼을 것을 상주하였고, 이후 기주·영천태수를 역임하였다. 유흔이 즉위한 후(애제) 고제(高第)로 경조윤이 되었고, 집금오로 전임되었다. 이때 시중 동현이 애제의 총애를 받았는데, 애제는 중황문을 시켜서 무고(武庫)의 병기를 10여 차례나 자신의 유모와 동현에게 가져다 주었다. 무장륭은 이를 간하였으나, 애제는 불쾌하게 여겼다.

얼마 후, 부태후가 알자(謁者)를 시켜 집금오에게 배속된 관비(官婢) 여덟 명을 싼 값에 사들였다. 무장륭은 제 값을 받게 해 달라고 상주하였으나, 애제는 승상, 어사대부에게 조서를 내려 무장륭을 힐책하였다. 다만 예전에 충언을 한 것을 감안하여 패군도위로 좌천시켰고, 이후 남군태수로 전임시켰다.

2.3. 왕망과의 관계와 유배

왕망은 젊었을 때 무장륭을 흠모하였으나, 무장륭은 왕망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애제가 죽고 왕망이 집권하였을 때, 왕망은 대사도 공광을 시켜 무장륭이 기주 시절에 옥사를 그르쳤다고 상주하였다. 결국 무장륭은 중태복(中太僕) 사립(史立), 태산태수 정현(丁玄), 하내태수 조창과 함께 파면되고 합포로 유배되었다.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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