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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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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건원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 외과 조수, 강원도지사, 전라남도지사를 역임했으며, 6.25 전쟁에 참전하여 동성훈장을 수여받았다. 또한, 대한외과학회 창립에 참여하고, 대한의학협회 이사장과 부회장을 지내는 등 의료계에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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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원

2. 생애

박건원은 함경남도 이원군 출신으로, 본적은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 웅기동이었다. 강원도 강릉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졸업 후 의사, 대학교수, 군의관, 정무직 공무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라이온스 클럽 회장, 대한외과학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1963년 대한의학협회 이사장, 1964년 대한의학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자연합회 창립 발기위원이 되고, 같은 해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 1. 일제 강점기 활동

1921년 경성의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4년 졸업하였다. 같은 해 대학 예과 시험 이과에 응시하여 3위로 합격하였고,[1]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의 제1기 입학생이 되었다. 경성제대 재학 중 성대오케스트라에 가입, 트럼본 주자로 활동하였다. 1925년 홍난파, 조선축구단 단장 백명곤(白明坤) 등과 함께 재즈 경음악단 설립에 참여하였다. 1930년 3월 26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7등으로 졸업하였으며,[2] 같은 해 9월 논문 <복막염문제>를 발표하였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외과를 졸업한 뒤, 경성제대 의학부의 외과 부수, 의학부 외과 조수를 역임하고, 체질인류학도 연구하였다. 그 후 강원도립 강릉의원의 외과 과장으로 부임하였다.

1936년 6월 13일 강릉사우회(江陵寫友會) 월례회에 작품을 출원, 〈단오〉1점으로 입선상을 받았다.[3] 5월 13일에 열린 강릉사우회 제1회 사진전에는 <나팔수선화>, <공중곡예>, <발원(發願)>, <주걱> 등을 출품하여 입선을 받았다. 1938년 9월 22일 강릉에서 신라 때의 고분과 유골들을 발견하였는데, 고분에는 대규모 순장의 흔적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 일본군 항공대에 징집되었다가 귀국했다. 1945년 1월 조선은행에 입사, 출납계에서 근무했다.

2. 2. 해방 이후 정치, 행정 활동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 산하 강릉군자치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45년 9월 2일 미군정 주둔 후 미군정 강원도 민정관으로 참여하였다.

1946년 1월 1일 군정청 임명사령 제73호에 의해 강원도지사에 임명되었다. 다시 조선은행에 복귀했다가 1947년 3월 좌익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조선은행에서 해고당하고 종로경찰서에 15일간 구금되었다가 풀려났다.

1947년 5월 10일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서 백인제(白麟濟), 김성진(金晟鎭), 이용설(李容卨), 고병간(高秉幹), 정구충(鄭求忠), 최상채(崔相彩), 전성관(全聖寬) 등 10여 인과 함께 조선외과학회(대한외과학회의 전신) 창립에 참여하였다.

1947년 7월 10일 전라남도지사로 임명되었고, 8월 15일 유임되었다. 그러나 10월 17일 윤치영 내무부 장관은 그를 면직처리했다. 10월 19일 휴직계를 신청하여 받아들여졌다.[4] 1949년 1월 21일 대한적십자사 춘천지사에서 설립한 춘천적십자의료소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 3. 한국전쟁 참전과 군 복무

1950년 6.25 전쟁에 장교로 참전하였다.[5] 1954년 6월 9일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동성훈장을 수여받았다.[5] 제1군사령부 작전처 차장을 역임했다. 1956년 9월 28일 공군 대령으로 진급했고,[6] 1957년 10월 7일 공군 준장으로 진급했다. 1958년 헌병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2. 4. 의료계 활동

1947년 5월 10일 백인제, 김성진, 이용설, 고병간, 정구충, 최상채, 전성관 등 10여 명과 함께 경성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서 조선외과학회(대한외과학회의 전신)를 창립하였다.[4] 1949년 1월 21일 대한적십자사 춘천지사에서 설립한 춘천적십자의료소 원장을 역임하였다.

1961년 10월 대한외과학회 자문위원을 역임하였고, 1963년 대한의학협회 이사장, 1964년 대한의학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3. 가족 관계

관계이름
장남박금준
차남박호준
장녀박은숙
차녀박화순
삼녀박남희
누이박순복
매부허인갑
손자박인수
손녀박수련


4. 기타

그의 매부 허인갑은 1956년 당시 남파간첩으로 월남해 조선호텔에 있다가 그의 제보로 검거되었다.[1]

5. 경력

참조

[1] 뉴스 豫科入格者 동아일보 1924-04-01
[2] 뉴스 今春各校 卒業生 동아일보 1930-03-26
[3] 뉴스 강릉사우회(江陵寫友會) 월례회 개최 조선신문 1936-06-19
[4] 뉴스 四道知事만 異動 동아일보 1948-10-19
[5] 뉴스 美銅星勳章 張朴兩空軍大領에 동아일보 1954-06-09
[6] 뉴스 政府人事 경향신문 195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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