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규
1. 개요
박옥규는 대한제국 초기 거문도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해군 초창기 멤버로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항해사, 선장으로 활동하며 조선인 최초로 갑종 선장 면허를 취득했으며, 해방 후에는 해군에 입대하여 태평양 횡단 항해에 성공하고 해군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대한민국 해군 발전에 기여했으며, 1971년에 사망하여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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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 중장 -
윤광웅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해군 주요 보직을 거쳐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윤광웅은 노무현 정부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했으나 연천군부대 총기난사 사건과 북한 핵실험으로 논란을 겪고 사임 후 대한민국해양연맹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재임 시절 국군기무사령부의 불법 도청 사실이 드러났다. -
대한민국 해군 중장 -
대한민국의 해군참모총장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은 국방부 장관의 명을 받아 해군의 운영과 행정을 총괄하는 최고 지휘관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장 계급의 장교이며 해군의 모든 분야를 관할하고 국제 협력 증진에도 기여한다. -
한국 전쟁 관련자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한국 전쟁 관련자 -
정지용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으며, 시문학 동인과 구인회 활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다. -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
정일권
정일권은 러시아 출생으로 만주군 장교, 육군 참모총장, 국무총리, 국회의장 등을 역임하며 군인, 외교관, 정치인으로 활동했고 친일 행적과 정인숙 사건 관련 의혹을 받았다. -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
백선엽
백선엽은 일제강점기 만주군에서 복무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육군 대장까지 오른 군인으로, 다부동 전투 등을 지휘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 외교관과 장관을 역임하다가 2020년에 사망했다.
2. 생애
박옥규는 대한제국 초기인 1901년에 전라도 거문도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항해 관련 업무를 하다 해군에 입대하여 군인의 길을 걸었다. 해군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으로서, 해군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해군참모총장직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조선선박운항주식회사 사장, 1946년 남조선 과도정부 부산항 도선사, 1947년 부산하역주식회사 사장 및 부산운수국 부국장, 부산항만위원회에 취임했다. 1949년 손원일의 권유로 해군 장교 특별교육대를 거쳐 해군 중령으로 임관했다. 해군본부 작전국장, 감찰감, 인사국장, 작전참모부장 등 해군 요직을 역임했다. 1952년 한국 해상 역사상 최초로 태평양 횡단 항해에 성공했으며, 1953년 제2대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1957년 예비역으로 편입된 후, 해운계에서 활약하였다. 1971년 심장 질환으로 별세, 유해는 국립묘지(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1. 출생과 성장
박옥규는 대한제국 초기인 1901년에 전라도 거문도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는 부산에서 성장했다. 1916년 4월, 간사이 대학 전문부 예과에 입학하여 1919년 3월에 수료했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1920년 4월, 인천해원양성소 제2기 항해과에 입학했다. 본과 3년을 수료하고, 조선총독부 체신국의 실습선에서 3년간 실습을 완료하여 1926년 3월 졸업과 동시에 갑종 2등 항해사 면허를 취득했다. 그는 조선인으로서 최초의 졸업생이었다.
졸업 후, 조선우선이라는 회사에서 3년간 항해사로 근무했다.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사키 기선의 보르도마루에 2등 항해사로 근무하며 약 3년간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다시 조선우선에 들어가 1932년 3월 갑종 1등 항해사 면허를 취득하고, 1934년 11월 16일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갑종 선장 면허를 취득했다. 당시 조선인으로 갑종 선장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박옥규와 유항렬뿐이었다.
2.2. 학력
* 거문공립보통학교
* 간사이 대학 전문부 예과 (1916년 4월 입학, 1919년 3월 수료)
* 인천해원양성소 제2기 항해과 (1920년 4월 입학, 1926년 3월 졸업)
* 조선총독부 체신국 실습선 3년 실습
2.3. 일제 강점기 경력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태어났다. 1916년 4월, 간사이 대학 전문부 예과에 입학하여 1919년 3월에 수료했다. 조선으로 돌아와 1920년 4월, 인천해원양성소 제2기 항해과에 입학했다. 본과 3년을 수료하고, 조선총독부 체신국의 실습선에서 3년간 실습을 완료하여 1926년 3월 졸업과 동시에 갑종 2등 항해사 면허를 취득했다. 조선인으로서 최초의 졸업생이었다.
조선우선이라는 회사에서 3년간 항해사로 근무한 후,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사키 기선의 보르도마루에 2등 항해사로 근무하며 약 3년간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다시 조선우선에 들어가 1932년 3월 갑종 1등 항해사 면허를 취득하고, 1934년 11월 16일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갑종 선장 면허를 취득했다. 당시 조선인으로 갑종 선장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박옥규와 유항렬뿐이었다.
2.4. 해방 이후 경력
1945년 해방 후, 조선선박운항주식회사의 선박 감독관을 거쳐 사장에 취임했다. 1946년 남조선 과도정부의 요청으로 부산항 도선사가 되었고, 1947년 1월 부산하역주식회사 사장, 같은 해 11월 부산운수국 부국장 및 부산항만위원회에 취임했다. 손원일의 권유로 1949년 3월 해군 장교 특별교육대 제5차에 입대, 2주간 훈련 후 4월 1일 해군 중령으로 임관(군번 80479번)했다. 해군본부 작전국장, 감찰감, 인사국장, 작전참모부장 등 해군 요직을 역임했다. 1952년 화물선 "코리아"("고려호", 구 일본 선박 "와우라 마루")의 선장으로서, 한국 해상 역사상 최초로 태평양 횡단 항해에 성공했다. 1953년 6월, 제2대 해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1957년 7월 예비역으로 편입, 해운계에서 활약하며 해양 국가 한국의 초석을 다졌다. 1971년 1월 28일 자택에서 심장 질환으로 별세, 유해는 국립묘지(현충원)에 안장되었다.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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