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서 (기업인)
1. 개요
박태서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1928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대학교 예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수료했다. 1957년 삼성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하여 2대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며,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 제일제당, 중앙개발, 전주제지 등의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6.25 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산업포장과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2010년 사망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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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박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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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름 | 호: 운암 (雲巖) |
| 출생일 | 1928년 11월 20일 |
| 출생지 |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
| 사망일 | 2010년 3월 16일 |
| 사망지 | 삼성서울병원 |
| 매장지 | 대전 국립현충원 |
| 국적 | 대한민국 |
|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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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 삼성 ‘구조본 7인방’, 신세계, 제일제당 (현 CJ), 중앙개발 (현 에버랜드) 사장, 제일탄소공업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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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역 | 6‧25전쟁에 중위로 참전, 화랑무공훈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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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 | 기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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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훈장 수훈자 -
김만중 (기업인)
김만중은 1918년 울주군에서 태어나 섬유, 건설, 전자, 교육 분야에서 활동한 한국의 기업인으로, 삼도물산을 설립하여 한국 최초로 제조 의류 수출을 시작하고 삼도종합개발과 삼도건설을 통해 건설 사업에도 진출했으며, 여성 인력 활용에 대한 선구적인 통찰력과 수출 증진 기여로 대통령 표창 및 훈장을 다수 수상했다. -
산업훈장 수훈자 -
삼도그룹
삼도그룹은 1960년 삼도물산을 모태로 창립되어 섬유 산업을 선도하며 전자, 무역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으나, 외환 위기로 1995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2002년 해체된 대한민국의 기업 집단이었다. -
화랑무공훈장 수훈자 -
이한림
이한림은 일제강점기 만주군 장교로 복무하고 한국 전쟁에서 제9사단장으로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5·16 군사정변 당시 강제 예편 후 건설부 장관, 한국관광공사 사장, 대사를 역임하고 2012년에 사망한 인물이다. -
화랑무공훈장 수훈자 -
최석채
최석채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현대사의 언론인, 칼럼니스트로, 해방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 언론 자유를 수호하고 부정을 비판했으며, 화랑무공훈장과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하고 국제언론인협회에 의해 세계언론자유영웅 50인에 선정되었다. -
1928년 출생 -
프란체스코 코시가
프란체스코 코시가는 이탈리아의 내무부 장관, 총리,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알도 모로 납치 사건과 비밀 조직 글라디오 등의 논란을 거치며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중요한 논쟁을 남긴 인물이다. -
1928년 출생 -
데즈카 오사무
일본의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는 700권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무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2. 생애
박태서는 1928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나 진주공립 중학교, 경성대학교 예과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수료했다. 6.25 전쟁에 참전한 후, 1957년 삼성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하여 그룹 비서실장과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 제일제당, 중앙개발, 전주제지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이후 제일산업개발 회장 등을 지냈다. 또한 삼성문화재단, 성균관대학교, 중앙일보 이사로 활동했으며, 조선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신문 등 여러 언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2.1. 초기 생애 및 학력
박태서는 1928년 11월 20일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박승완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1946년 진주공립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1948년 경성대학교 예과를 졸업하였다. 195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수료하였다.
2.2. 삼성그룹 경력
2.3. 기타 경력
1953년 6.25 전쟁에 중위로 참전하였다.
1964년에는 제일모직 공업주식회사 이사를 지냈으며, 1965년에는 성균관대학교 이사, 재단법인 삼성문화재단 이사, 중앙일보 이사를 역임하였다.
언론 활동에도 참여하여 1973년 조선일보에 <일사일언> 칼럼을, 1974년 한국일보에 <천자춘추>를, 1983년 매일경제신문에 <매경춘추>를 기고하였다. 평소 폭넓은 지식과 유려한 문장으로 경제계와 일상을 아우르는 글을 일간지와 잡지에 많이 기고하였다. 호는 운암(雲巖)이었다.
4. 가족 관계
부인은 남한산성 출신인 이종원 씨이다. 이종원 씨는 이익재의 3남 1녀 중 외동딸이며, 슬하에 3남 1녀(찬영, 찬열, 찬준, 윤정)를 두었다. 이종원 씨의 친정은 만석꾼으로 부유했으며, 한국 최초의 '흥보가' 영화에서 흥부가 부자가 된 집의 촬영 장소이기도 했다.
5. 사망
2010년 3월 18일 10시경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소재 삼성서울병원에서 향년 83세로 타계하였다. 현재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