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방백은 고대 중국에서 제후의 장을 지칭하거나, 신성 로마 제국에서 공작에 준하는 작위를 가진 귀족을 의미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천자(天子)의 통치를 받는 제후의 장을 방백이라 불렀으며, 한나라의 주목, 자사, 당나라 관찰사 등의 아호로 사용되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독일어로 'Landgraf'로 불리며,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에게 직속되어 고유 주권을 행사하는 귀족 작위를 지칭했다. 방백이 통치하는 영지는 방백국이라 불렀으며, 방백의 부인은 여방백이라고 불렀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독일의 귀족 작위 - 훈사
훈사는 독일어 "고귀한"에서 유래한 작위로, 봉건제 사회에서 작은 영지를 소유한 가신을 지칭했으나, 근세에는 국가에 공헌한 이들에게 수여되는 작위로 변화했으며, 오스트리아에서는 귀족제 폐지 후 작위로서의 의미를 잃었지만 독일에서는 이름의 일부로 남고 비공식적 예우 칭호로 쓰이며, '훈'은 가르침을 뜻하는 글자로 학문적 의미도 가진다. - 독일의 귀족 작위 - 성관백
성관백은 중세 시대 성의 군사 지휘관 또는 사령관을 의미하는 작위로, 신성 로마 제국에서 제후와 동등한 지위를 가졌으며, 다양한 국가에서 각기 다른 역할과 지위를 갖기도 했다. - 독일 봉건제 - 아드보카투스
아드보카투스는 다른 사람을 위해 말하도록 요청받은 사람을 지칭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교회나 수도원의 권리를 수호하거나 세속 재판에서 교회를 대변하고 군대를 지휘하는 등의 역할을 했으며, 중세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가 임명한 관료를 지칭하기도 했다. - 독일 봉건제 - 궁정백
궁정백은 중세 유럽에서 유래된 칭호로, 왕의 업무를 보좌하거나 특정 지역을 통치하는 권한을 위임받았으며, 여러 국가와 교황청에서도 사용되었다. - 국가원수 - 포데스타
포데스타는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도시 국가의 최고위 행정관을 지칭하는 용어로, 행정, 사법, 군사 등 다양한 권한을 행사했으며, 도시 내부 갈등 중재를 위해 외부 출신 인사가 임명되기도 했다. - 국가원수 - 총독
총독은 역사적으로 특정 지역이나 식민지를 통치하는 직책을 의미하며, 시대와 국가에 따라 역할과 권한이 달랐고, 현재는 영연방 왕국 등에서 유지되고 있다.
방백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유형 | 작위 |
존속 기간 | 11세기 ~ 1918년 |
지리적 범위 | |
지역 | 신성 로마 제국 |
관련 국가 |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
계급 | |
계급 | 제후 |
서열 | 공작과 백작 사이 |
명칭 | |
독일어 | Landgraf |
네덜란드어 | landgraaf |
스웨덴어 | lantgreve |
프랑스어 | landgrave |
라틴어 | comes magnus, comes patriae, comes provinciae, comes terrae, comes principalis, lantgravius |
관련 작위 | |
독일어 | 변경백, 궁중백, 헤르초크, 그라프 |
2. 어원
고대 중국에서는 제후의 우두머리를 방백이라 불렀다. 예기 왕제 편에 "천리 밖에는 방백을 둔다"는 구절이 있는데, 왕도에서 천리 이내는 "왕기"라 불렀고, 그 바깥 지역을 "방"이라 불렀다. 은(상)은 나라를 구주로 나누고, 각 주에 방백을 두어 제후들을 통솔하게 했다.[1] '백(伯)'은 '패(覇)'와 같은 의미로, 이는 훗날 제후의 맹주를 뜻하는 "패자"로 이어진다.[1]
고대 중국에서는 제후의 장을 방백이라고 불렀다. 예기 왕제편에 "천리 밖에는 방백을 둔다"는 구절이 있듯이, 왕도에서 천리 이내는 '왕기'라고 불렀고, 그 외부를 '방'이라고 했다. 상나라는 중국을 구주로 나누고 각 주에 방백을 두어 제후를 관할하게 했다. 백(伯)은 패(覇)와 같은 뜻이며, 이는 훗날 '패자'(제후의 맹주)로 이어진다.
방백이라는 칭호는 한나라의 주목, 자사, 당나라의 관찰사 등과 같이 후대에도 사용되었다.[1]
3. 동양의 방백
방백이라는 칭호는 한나라의 주목, 자사, 당나라의 관찰사 등 관직의 별칭으로 후대까지 사용되었다.
3. 1. 중국
고대 중국에서는 제후의 우두머리를 '방백'이라 불렀다. 예기 왕제 편에 "천리 밖에는 방백을 둔다"는 구절처럼, 왕도에서 천리 이내는 '왕기'라 불렀고, 그 바깥 지역은 '방'이라 불렀다. 은(상)은 중국을 구주로 나누고, 각 주에 방백을 두어 제후들을 통솔하게 했다.[1] '백(伯)'은 '패(覇)'와 같은 의미로, 이는 훗날 제후들의 맹주를 뜻하는 '패자'로 이어진다.[1]
방백이라는 칭호는 한나라의 주목, 자사, 당나라의 관찰사 등과 같은 관직의 별칭으로 후대까지 사용되었다.[1]
4. 서양의 방백
서양의 방백(Landgrave영어)은 신성로마제국에서 사용된 귀족 작위 중 하나로, 어원은 Landgrafde이며, Landde(영지)와 Grafde(백작)의 합성어이다. 일반적인 백작보다 격이 높고, 공작에 준하는 높은 작위였다. 방백이 통치하는 영지는 방백국(Landgrafschaftde)이라 했으며, 방백의 아내 또는 여자 방백은 방백작부인(Landgräfinde)이라 불렀다.
방백은 본래 제국직접자유권을 가진 백작으로, 공작, 주교, 궁중백 같은 중간자를 거치지 않고 신성 로마 황제에게 직속으로 신성 로마 제국에 직접 봉사하는 봉건적 의무를 지녔다.[1][2]
4. 1. 신성 로마 제국
방백은 신성 로마 제국에서 사용된 귀족 작위 중 하나로, 일반적인 백작보다 격이 높고 공작에 준하는 높은 작위였다. 방백은 제국직접자유권을 가지고 신성로마황제에게 직속으로 보고했으며, 공작, 주교, 궁중백 같은 중간자를 거치지 않았다.[1][2] 때문에 방백은 고유 주권을 행사했고 의사결정에 있어 공작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졌다.
최초로 발견되는 방백 작위는 1086년 니더로타링겐의 하인리히 3세가 브라반트 방백으로 임명된 것이다.
신성로마제국 이후에도 방백 작위는 작센바이마르 대공이 튀링겐 방백을 겸하는 등 20세기 전반까지 작위명으로서 존속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귀족제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소멸했다.
4. 2. 신성 로마 제국 이후
서양의 방백은 신성로마제국에서 사용된 귀족 작위 중 하나이다. "백"이지만 일반적인 백작보다 격이 높으며, 후작보다도 높고 공작에 준하는 높은 작위였다. 방백이 통치하는 영지를 방백국(Landgrafschaft)이라 했으며, 방백의 아내 또는 여자 방백을 방백작부인(Landgräfin)이라 했다.
방백이란 본래 제국직접자유권을 가진 백작, 또는 공작·주교·궁중백 같은 중간자를 거치지 않고 신성로마황제에게 직속으로 딸린 백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때문에 방백은 고유 주권을 행사했고 의사결정에 있어 공작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졌다. 최초로 발견되는 방백 작위는 1086년 니더로타링겐의 하인리히 3세가 브라반트 방백으로 임명된 것이다.
신성로마제국 이후에도 방백 작위는 작센바이마르 대공이 튀링겐 방백을 겸하는 등 20세기 전반까지 작위명으로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귀족제가 완전히 사라지며 소멸하게 된다.[1]
신성 로마 제국 또는 과거 그 영역에 세워진 여러 국가에서, "백작" 대신 신성 로마 황제에게 봉건적 의무를 직접 졌던 자에게 사용된 칭호이다. 그 지배 영역은 공작, 주교, 궁중 백작과 같은 중간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때때로 크게 확대되었다. 저 로타링기아에 대해 1086년 이후 사용되었다는 최초의 기록 이후, 이 칭호는 신성 로마 제국 시대를 통해 존속했다. 방백은 일반적으로 주권을 행사했다. 방백의 의사 결정력은 공작의 그것에 상당했다.[1]
이후,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의 대공이 20세기 초에 튀링겐 방백을 겸임한 것처럼, 귀족의 보조적인 칭호로 때때로 사용되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1]
4. 3. 영국령 북미
Landgrave영어은 영국 통치 시대 캐롤라이나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사용된 칭호로, "영국이 사유한 북미 식민지 캐롤라이나의 백작 귀족으로, 소유주(왕실 봉신의 특징을 지닌) 바로 아래에 위치했다."[1][2]5. 주요 방백령 목록
6. 관련 용어
고대 중국에서 방백은 제후의 우두머리를 뜻했다. 예기 왕제 편에 따르면, 왕도에서 천리 안쪽은 '왕기', 바깥쪽은 '방'이라 불렀다.[1] 은(상)은 중국을 구주로 나누고 각 주에 방백을 두어 제후를 관리했다.[1] '백(伯)'은 '패(覇)'와 같은 의미로, 훗날 제후의 맹주인 '패자'로 이어진다.[1]
방백 칭호는 한나라 주목, 자사, 당나라 관찰사 등 후대에도 사용되었다.[1]
신성로마제국에서 방백은 일반 백작보다 높고, 후작보다는 높으며, 공작에 준하는 작위였다.[2] 방백이 다스리는 영지는 방백국(Landgrafschaft), 방백의 아내 또는 여성 방백은 방백작부인(Landgräfin)이라 불렸다.[2]
방백은 본래 제국직접자유권을 가진 백작이나, 공작·주교·궁중백 같은 중간자를 거치지 않고 신성로마황제에게 직속된 백작을 가리켰다.[2] 이들은 주권을 행사했고, 공작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졌다.[2] 최초의 방백 작위는 1086년 니더로타링겐의 하인리히 3세가 브라반트 방백으로 임명된 것이다.[2]
신성로마제국 이후 방백 작위는 작센바이마르 대공이 튀링겐 방백을 겸하는 등 20세기 전반까지 사용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귀족제가 사라지며 소멸했다.[2]
관련 용어는 다음과 같다.
참조
[1]
참고문헌
Wiktionary definition
[2]
웹사이트
Primary Source: The Fundamental Constitutions of Carolina (1669)
https://www.ncpedia.[...]
2024-05-07
[3]
서적
Kings, Rules and Satesmen, revised edition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