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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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배터리는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를 지칭하는 용어로, 1860년대 헨리 채드윅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이후 투수와 포수의 협동 작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야구 역사에서 스타 투수들은 종종 한 명의 포수와 꾸준히 호흡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몇몇 배터리 조합은 뛰어난 기록을 세웠다. 최다 선발 출장 기록은 애덤 웨인라이트와 야디어 몰리나가 가지고 있으며, 노히터 경기를 두 번 합작한 배터리도 존재한다. 또한, 형제 배터리, 부자 배터리 등 다양한 형태의 배터리가 존재하며, 마리아노 리베라와 호르헤 포사다는 배터리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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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야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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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배터리 |
2. 역사
야구에서 '배터리'라는 단어는 1860년대 헨리 채드윅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당시 미국 남북 전쟁에서 사용되던 포병 부대에서 영감을 받아 팀의 투수진의 화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2] 이후, 이 용어는 투수와 포수의 협동 작전을 나타내는 의미로 발전했다.[2]
야구 역사에서 팀은 일반적으로 여러 명의 포수를 기용했지만, 스타 투수들은 종종 한 명의 배터리 메이트와 꾸준히 호흡하는 것에 대한 친숙함을 선호했다.[3]
20세기 초, 일부 저명한 투수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수를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작가 프레드 리브는 크리스티 매튜슨 / 프랭크 보우어먼 (1899년 뉴욕 자이언츠에서 시작), 잭 쿰스 / 잭 랩 (1908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서 시작), 사이 영 / 루 크리거 (1901년 보스턴 아메리칸스(후에 레드삭스)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음), 그리고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 빌 킬리퍼 (1911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시작)의 배터리를 회상한다.[7] 다른 성공적인 배터리로는 에드 월시 / 빌리 설리번 (1904년 시작), 월터 존슨 / 머디 루엘 그리고 데이지 밴스 / 행크 데베리가 있으며, 두 배터리 모두 1923년에 시작되었다.[4][5][6]
1976년, 몇몇 메이저 리그 투수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포수를 선택했는데, 이는 수십 년 동안 실천에서 벗어난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포수 밥 분은 당시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었지만, 투수 스티브 칼튼의 요청으로 팀 맥카버로 교체되었다. 칼튼/맥카버 조합은 그 시즌 칼튼의 35경기 중 32경기와 한 번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둘은 이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4년(1966–69) 동안 배터리 메이트였다.[7] 또 다른 선택에 의한 배터리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새로 합류한 미신적인 신인 투수 마크 피드리치였는데, 그는 포수 자리에 신인 포수 브루스 킴을 고집했다. 피드리치/킴 조합은 1976년 시즌 피드리치의 29경기를 모두 선발 출전했다. 둘은 1977년까지 배터리로 함께했다.[7]
너클볼 투수들은 흔히 특이한 공을 잡는 어려움 때문에 "개인적인" 배터리 메이트를 선호했다.[8] 주목할 만한 예시는 보스턴 레드삭스 투수 팀 웨이크필드와 그가 선호하는 포수 더그 미라벨리였다.[9][10][11]
2. 1. 용어의 기원
야구에서 '배터리'라는 단어는 1860년대 헨리 채드윅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당시 미국 남북 전쟁에서 사용되던 포병 부대에서 영감을 받아 팀의 투수진의 화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2] 이후, 이 용어는 투수와 포수의 협동 작전을 나타내는 의미로 발전했다.[2]2. 2. 선호하는 배터리 메이트
야구 역사에서 팀은 일반적으로 여러 명의 포수를 기용했지만, 스타 투수들은 종종 한 명의 배터리 메이트와 꾸준히 호흡하는 것에 대한 친숙함을 선호했다.[3]20세기 초, 일부 저명한 투수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수를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작가 프레드 리브는 크리스티 매튜슨 / 프랭크 보우어먼 (1899년 뉴욕 자이언츠에서 시작), 잭 쿰스 / 잭 랩 (1908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서 시작), 사이 영 / 루 크리거 (1901년 보스턴 아메리칸스(후에 레드삭스)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음), 그리고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 빌 킬리퍼 (1911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시작)의 배터리를 회상한다.[7] 다른 성공적인 배터리로는 에드 월시 / 빌리 설리번 (1904년 시작), 월터 존슨 / 머디 루엘 그리고 데이지 밴스 / 행크 데베리가 있으며, 두 배터리 모두 1923년에 시작되었다.[4][5][6]
1976년, 몇몇 메이저 리그 투수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포수를 선택했는데, 이는 수십 년 동안 실천에서 벗어난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포수 밥 분은 당시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이었지만, 투수 스티브 칼튼의 요청으로 팀 맥카버로 교체되었다. 칼튼/맥카버 조합은 그 시즌 칼튼의 35경기 중 32경기와 한 번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둘은 이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4년(1966–69) 동안 배터리 메이트였다.[7] 또 다른 선택에 의한 배터리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새로 합류한 미신적인 신인 투수 마크 피드리치였는데, 그는 포수 자리에 신인 포수 브루스 킴을 고집했다. 피드리치/킴 조합은 1976년 시즌 피드리치의 29경기를 모두 선발 출전했다. 둘은 1977년까지 배터리로 함께했다.[7]
너클볼 투수들은 흔히 특이한 공을 잡는 어려움 때문에 "개인적인" 배터리 메이트를 선호했다.[8] 주목할 만한 예시는 보스턴 레드삭스 투수 팀 웨이크필드와 그가 선호하는 포수 더그 미라벨리였다.[9][10][11]
3. 기록
3. 1. 최다 선발 출장 배터리
1914년 이후 200번 이상 함께 선발 출장한 배터리 메이트는 다음과 같다.[12][13]선발 출장 경기 | 투수 | 포수 | 연도 | 팀 |
---|---|---|---|---|
328 | 애덤 웨인라이트 | 야디어 몰리나 | 2007–2022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324 | 미키 로리치 | 빌 프리한 | 1963–1975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316 | 워런 스판 | 델 크랜달 | 1949–1963 | 보스턴 브레이브스 / 밀워키 브레이브스 |
306 | 레드 파버 | 레이 셜크 | 1914–1926 | 시카고 화이트삭스 |
283 | 돈 드라이스데일 | 자니 로즈보로 | 1957–1967 | 브루클린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282 | 레드 러핑 | 빌 디키 | 1930–1946 | 뉴욕 양키스 |
270 | 스티브 로저스 | 게리 카터 | 1975–1984 | 몬트리올 엑스포스 |
264 | 밥 레몬 | 짐 헤건 | 1946–1957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250 | 얼리 윈 | 짐 헤건 | 1949–1957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248 | 톰 글래빈 | 자비 로페즈 | 1994–2002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247 | 레프티 고메즈 | 빌 디키 | 1931–1942 | 뉴욕 양키스 |
240 | 밥 펠러 | 짐 헤건 | 1941–1956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239 |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 마이크 시오시아 | 1981–1990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237 | 스탠 코벨스키 | 스티브 오닐 | 1916–1923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237 | 톰 시버 | 제리 그로테 | 1967–1977 | 뉴욕 메츠 |
230 | 루 버데트 | 델 크랜달 | 1953–1963 | 밀워키 브레이브스 |
228 | 스티브 칼튼 | 팀 맥카버 | 1965–1969, 1972–1979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
224 | 레프티 그로브 | 미키 코크란 | 1925–1933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221 | 폴 데린저 | 어니 롬바디 | 1933–1941 | 신시내티 레즈 |
212 | 화이티 포드 | 요기 베라 | 1950–1963 | 뉴욕 양키스 |
208 | 샌디 쿠팩스 | 자니 로즈보로 | 1957–1966 | 브루클린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208 | 마이크 플래너건 | 릭 뎀프시 | 1976–1986 | 볼티모어 오리올스 |
207 | 잭 모리스 | 랜스 패리쉬 | 1978–1986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207 | 콜 해멀스 | 카를로스 루이스 | 2006–2015 | 필라델피아 필리스 |
203 | 루브 왈버그 | 미키 코크란 | 1925–1933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203 | 빌리 피어스 | 셔럼 롤러 | 1952–1961 | 시카고 화이트삭스 |
202 | 데이브 스티브 | 어니 휘트 | 1980–1989 | 토론토 블루제이스 |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배터리 중에는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서 1925년부터 1933년까지 활약한 레프티 그로브와 미키 코크란,[12] 1950년부터 1963년까지 뉴욕 양키스에서 여러 월드 시리즈에 함께 출전한 요기 베라와 화이티 포드가 있다.[16][17][18]
선발 배터리 팀 최다 승 기록은 애덤 웨인라이트와 야디어 몰리나가 세운 213승이다.[45]
애덤 웨인라이트와 야디어 몰리나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배터리로서 328번의 선발 출장 기록을 세웠으며, 선발 배터리 팀 승리 기록(213승)도 보유하고 있다.
미키 로리치와 빌 프리한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배터리로서 324번의 선발 출장 기록을 세웠다.
명예의 전당 투수인 돈 드라이스데일과 샌디 쿠팩스는 각각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배터리 메이트 자니 로즈보로와 200경기 이상 선발 출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