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애
1. 개요
백신애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 여성운동가였다. 1908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고 교원으로 재직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나의 어머니'가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했고, 여성동우회, 여자청년동맹 등 독립운동 및 여성 계몽 운동에 참여했다. 일본 유학 후 결혼과 이혼을 겪었으며, 상하이에서 활동하다 췌장암으로 1939년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꺼래이', '적빈' 등이 있으며, 한국 전쟁 중 유고가 소실되어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 한글 | 백신애 |
|---|---|
| 한자 | 白信愛 |
| 히라가나 | 하쿠 신아이 |
| 가타카나 | 페쿠 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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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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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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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생애
1908년 5월 19일,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면(현재의 영천시) 창구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천의 대 상인으로, 미곡을 취급했다. 백신애의 아버지는 외동딸을 매우 귀여워하는 한편, 교육에는 엄격하여 5세부터 한문을 배우게 하고, 여학교의 강의록을 공부하게 했다. 신학문을 가르치지 않고 근대식 학교에는 보내지 않았으나, 백신애는 학교에 가고 싶어했고, 1924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에 입학하는 것이 허락되어 그곳을 1년 만에 졸업했다. 1925년, 17세에 영천공립보통학교에 교원으로 부임하여 교편을 잡았다. 다음 해인 1926년, 자인공립보통학교로 전근했다. 여기서 첫사랑을 하고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슬픔에 못 이겨, 수료식에는 아이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학교를 떠났다고 하며, 백신애는 도망치듯이 상경했다. 1927년, 「여성동우회」나 「여자청년동맹」 등에 가입하여,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운동에 매몰된다.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고, 조선총독부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한때 시베리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작품 모집에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한국어"라는 작품을 투고, 당선된다. 박계화는 백씨 어머니의 자매의 딸 이름인 박계화를 본뜬 것이다. 백씨는 "이 작품은 하룻밤에 써서 응모했다"고 회고했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일본대학예술과에 입학한다. 거기서 처음에는 문학과 연극을 공부하고, 이윽고 문학에만 집중하게 된다. 같은 해 가을, 아버지로부터 국제전화로 즉시 귀국하라는 말을 듣고, 본가로 돌아가 보니, 집에서 결혼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어, 곧 결혼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백씨는 동의할 수 없어, 입으로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곧 집을 뛰쳐나와 도쿄로 돌아간다. 1932년, 도쿄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귀국. 집에서는 끈질기게 결혼을 설득하여, 1933년 봄에, 마지못해 밀양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던 이씨와 결혼한다. 결혼식에는 많은 내빈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백씨는 결혼에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아버지가 사망한 다음 해인 1935년에는 이혼하고 만다. 이혼 후, 다시 상경하여, 신문사에서 일하며 창작 활동을 한다. 이때부터 백씨의 몸은 약해진다. 1938년 가을, 백씨는 형이 일 때문에 상하이로 간다고 하여 동행한다. 거기서 강로향을 만난다. 또한, 상하이에서는 일본 당국의 미행을 받았다. 1939년 봄, 결국 병상에 눕게 되고, 5월에는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병명은 췌장암. 1939년 6월 25일,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백씨는 방대한 양의 유고를 남겼다고 하지만, 백씨 사망 후 누군가가 출판하려고 꺼내갔다가, 한국 전쟁의 혼란으로 친족이 사망하여,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2.1. 유년 시절과 교육
1908년 5월 19일,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면(현재의 영천시) 창구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천의 대 상인으로, 미곡을 취급했다. 백신애의 아버지는 외동딸을 매우 귀여워하는 한편, 교육에는 엄격하여 5세부터 한문을 배우게 하고, 여학교의 강의록을 공부하게 했다. 1924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에 입학하여 1년 만에 졸업하였다.
2.2. 교원 생활과 초기 문학 활동
1925년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부임하였고, 1926년 자인공립보통학교로 전근하였다. 여기서 첫사랑을 하고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한국어'가 당선되었다. 박계화는 백신애 어머니의 자매의 딸 이름인 박계화를 본뜬 것이다.
2.3. 독립운동과 여성운동 참여
1927년 상경하여 여성동우회와 여자청년동맹 등에 가입하여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조선총독부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2.4. 일본 유학과 결혼, 이혼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하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다. 1932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다. 집안의 강요로 1933년 봄에 결혼했으나, 1935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이혼했다.
2.5. 창작 활동과 사망
이혼 후, 백신애는 다시 상경하여 신문사에서 일하며 창작 활동을 했다. 이때부터 백신애의 몸은 약해졌다. 1938년 가을, 백신애는 형이 일 때문에 상하이로 간다고 하여 동행했다. 거기서 강로향을 만났으며, 상하이에서는 일본 당국의 미행을 받았다. 1939년 봄, 결국 병상에 눕게 되었고, 5월에는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명은 췌장암이었다. 1939년 6월 25일,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백신애는 방대한 양의 유고를 남겼다고 하지만, 백신애 사망 후 누군가가 출판하려고 꺼내갔다가, 한국 전쟁의 혼란으로 친족이 사망하여,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3. 주요 작품
* 나의 어머니 (1929년)
* 꺼래이 (1934년)
* 적빈 (1934년)
* 박해석 역 "적빈" 『20세기 민중의 세계 문학』 삼우사출판, 1990년
백신애의 유고는 한국 전쟁 중 소실되어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4. 평가
4.1. 문학적 평가
4.2. 사회적 평가
5. 연보
* 1908년 5월 19일, 경상북도 영천면 창구동에서 출생.
* 1924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 입학.
* 1925년, 대구사범학교 졸업 및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원 근무.
* 1926년, 자인공립보통학교로 전근 및 상경.
* 1927년, 여성동우회, 여자청년동맹 가입.
*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나의 어머니/나의 어머니한국어 당선.
* 1930년, 도일, 일본대학 예술과 입학.
* 1932년, 귀국.
* 1933년, 이씨와 결혼.
* 1934년, 부친 사망.
* 1935년, 이씨와 이혼.
* 1938년 가을, 상해 방문.
* 1939년 5월,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 입원.
* 1939년 6월 25일,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