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준
1. 개요
백홍준은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이다. 1874년 만주에서 선교사들에게 한국어와 서구 문물을 배우고, 1876년 한국 최초로 개신교 세례를 받았다. 이후 성경 한글 번역 사업에 참여하여 1887년 신약성경을 완역했고, 새문안교회 장로로 활동했다. 1892년 평안도관찰사의 체포령으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다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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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개신교도 -
이수정 (1842년)
이수정은 조선 말기 관료이자 개신교 신자, 성경 번역가로, 고종의 허락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 개신교로 개종한 후 한국어 성경 번역에 힘썼으며, 《현토한한신약전서》 발간과 《신약마가전복음서언해》 출판 등의 업적을 남겼다. -
조선의 개신교도 -
서상륜
서상륜은 조선 말기 기독교 전도자이자 성서 번역가로, 스코틀랜드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한국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 번역 및 출판에 기여하고 한국 최초의 자생 개신교 교회인 소래교회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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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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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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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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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생애
백홍준은 일찍이 개화사상에 눈을 떠 1874년 만주 우장(牛莊)에서 로스 목사 등 선교사들과 교류하며 서구 학문을 접했다. 1876년 한국 최초로 개신교 세례를 받은 후, 성경 한글 번역에 참여하여 1882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간행하고, 1887년에는 신약성경을 완역한 《예수교 성교전서》를 간행하였다.
1887년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새문안교회 창립 예배 때 서상륜과 함께 장로로 추대되었고, 1889년에는 만주에서 33명의 교인에게 세례를 받도록 주선했다. 이후 모펫 선교사 등의 안내자가 되어 국내 순회 전도 집회를 주선하기도 했다.
1892년 평안도관찰사 민병석의 체포령으로 구속되어 고문을 받다가 이듬해 옥사하여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가 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개종
1874년 만주 우장(牛莊)에 가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매킨타이어와 로스 목사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치며 서구 과학과 영어를 배웠다. 1876년 이응찬·이성하·김진기 등과 함께 한국 최초로 개신교 세례를 받고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세례를 같이 받은 동료들과 두 선교사와 함께 성경 한글 번역 사업에 착수하여 1882년에는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한 후 간행하였다.
2.2. 성경 번역과 출판
1874년 만주 우장(牛莊)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매킨타이어와 로스 목사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치며 서구 과학과 영어를 배웠다. 1876년 이응찬·이성하·김진기 등과 함께 한국 최초로 개신교 세례를 받고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이들은 세례를 같이 받은 동료들과 함께 두 선교사와 성경 한글 번역 사업에 착수, 1882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하여 간행하였다.
이후 번역 범위를 넓혀 1887년 신약성경을 완역, 영국과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재정 지원을 받아 《예수교 성교전서》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이는 최초의 신약성경 완간으로, 외국 선교사들이 국내에서 번역한 것보다 13년이나 빠른 것이었으며, 선교사들의 한글 공부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2.3. 초기 선교 활동과 순교
1874년 만주 우장(牛莊)에 가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매킨타이어와 로스 목사에게 한국어와 한국역사를 가르치며 서구과학과 영어를 배웠다. 1876년 이응찬·이성하·김진기 등과 함께 한국 최초로 개신교 세례를 받고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세례를 같이 받은 동료들 그리고 두 선교사와 함께 성경 한글 번역 사업에 착수하여 1882년에는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한 후 간행하였다.
이후 점차 범위를 넓혀 1887년에 신약성경을 완역하였고, 영국과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재정지원속에 《예수교 성교전서》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이는 최초로 신약성경 완간으로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국내에서 번역된 것보다 13년이나 일찍 진행된 일이며, 선교사들의 한글 공부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887년 언더우드가 서울 정동의 자기 집에서 14명의 신자와 함께 진행한 새문안교회 창립 예배때 서상륜과 함께 장로로 추대되었다. 1889년에는 언더우드와 함께 만주로 건너갔으며 그때에 교인 33명에게 세례를 받도록 주선했다. 이후 모펫과 J.게일 선교사 등의 안내자가 되어 국내에서 순회전도집회를 주선하였다.
평안도관찰사 민병석이 내린 체포령에 따라 1892년에 구속되었다. 사악한 서적을 간행하고 불법적인 순회집회 등을 주선했다는 혐의로 고문을 받고 고생을 하다가 다음해에 옥사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