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펠레이
1. 개요
베르나르 펠레이는 스위스 출신의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성 비오 10세회의 총장을 역임했다.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88년 교황의 사전 승인 없이 주교로 서임되어 파문되었다. 1994년 성 비오 10세회 총장으로 선출되었으며,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파문이 철회되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고, 교황 프란치스코를 현대주의자로 비판하기도 했다. 2018년 총장 임기를 마쳤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베르나르 펠레이 |
|---|---|
| 원어 이름 | Bernard Fellay |
| 출생일 | 1958년 4월 12일 |
| 출생지 | 시에르 |
| 국적 | 스위스 |
| 종교 | 가톨릭 교회 |
| 소속 | 성 비오 10세회 |
| 직함 | 성 비오 10세회 총장 명예 |
|---|---|
| 모토 | (우리의 희망) |
| 서품일 | 1982년 6월 29일 |
|---|---|
| 서품자 | 마르셀 르페브르 |
| 서품 장소 | 성 비오 10세회 국제 신학교, 에콘, 스위스 |
| 서품일 | 1988년 6월 30일 |
|---|---|
| 서품자 | 마르셀 르페브르 |
| 공동 서품자 | 안토니우 데 카스트루 마이어 |
| 서품 장소 | 성 비오 10세회 국제 신학교, 에콘, 스위스 |
| 선임 | 1994년 7월 |
|---|---|
| 임기 종료 | 2018년 7월 11일 |
| 전임자 | 프란츠 슈미트베르거 |
| 후임자 | 다비데 팔리아라니 |
-
시에르 출신 -
미첼 모르가넬라
미첼 모르가넬라는 FC 바젤에서 데뷔하여 스위스 슈퍼 리그와 스위스 컵 우승을 경험하고 US 팔레르모로 이적, 세리에 A에 진출한 최초의 스위스 선수이나 런던 올림픽 인종차별적 행위로 스위스 대표팀에서 퇴출된 후 여러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간 스위스의 축구 선수이다. -
성 비오 10세회 -
마르셀 르페브르
마르셀 르페브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혁에 반대하며 성 비오 10세회를 설립하고 주교를 서임하여 파문되었다가 사후 파문이 철회된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이자 전통주의 운동가이다. -
성 비오 10세회 -
베르나르 티시에 드 마예레
프랑스 출신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성 비오 10세회 주교였던 베르나르 티시에 드 마예레는 1975년 사제 서품 후 성 비오 10세회에서 교수 및 사무총장으로 활동했으며, 1988년 주교 서임 후 파문되었다가 철회되었고, 《이성에 의해 위협받는 신앙: 베네딕토 16세의 해석학》 등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2024년 사망했다. -
로마 가톨릭교회의 반체제 인사 -
리처드 윌리엄슨
리처드 윌리엄슨은 성공회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 후 성 비오 10세회에서 주교가 되었으나 교황청 승인 없이 서품되어 파문, 이후 홀로코스트 부인 발언으로 성 비오 10세회에서 제명된 영국의 전통주의 가톨릭 주교이다. -
로마 가톨릭교회의 반체제 인사 -
마르셀 르페브르
마르셀 르페브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혁에 반대하며 성 비오 10세회를 설립하고 주교를 서임하여 파문되었다가 사후 파문이 철회된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이자 전통주의 운동가이다.
2. 어린 시절과 사제품
펠레이는 1958년 스위스 시에르에서 태어났다. 1977년 10월, 19세에 성 비오 10세회 국제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1982년 6월 29일,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에게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10년 동안 성 비오 10세회의 회계 담당을 맡았다.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에 능통하며 스페인어도 구사할 수 있다.
3. 주교 서임과 파문
1988년 6월,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는 베르나르 펠레이를 포함한 네 명의 성 비오 10세회 사제를 주교로 서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교황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 교회법 제1382조에 따르면 주교 서임에는 교황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르페브르는 자신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황청 주교성 장관 베르나르댕 간탱 추기경은 펠레이에게 교황 허락 없이 주교 서임을 강행하면 자동 파문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88년 6월 30일, 펠레이는 다른 세 명의 사제와 함께 르페브르 대주교에 의해 주교로 서임되었다. 1988년 7월 1일, 간탱 추기경은 르페브르와 그에게 주교로 서임받은 이들이 자동 파문되었다고 선언했다.
1988년 7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의교서 《하느님의 교회(Ecclesia Dei)》를 통해 파문을 재확인하고, 르페브르의 주교 서임은 교황에 대한 불순종이자 교회의 일치를 깨뜨린 중대한 문제이며, 로마 교황 수위권을 거부한 이교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다리오 카스트리욘 오요스 추기경은 공식적인 이교는 아니더라도 교회의 분열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펠레이와 그의 추종자들은 가톨릭교회 내 도덕적·신학적 위기 때문에 주교 서임이 필수불가결했다며 파문의 유효성을 부인했다.
4. 성 비오 10세회 총장
1994년 7월, 에콘에서 열린 성 비오 10세회 총회는 프란츠 슈미트베르거 신부의 뒤를 이어 펠레이를 총장으로 선출했다. 2006년, 펠레이는 12년 임기의 총장으로 재선되었다.
2005년 8월 29일, 펠레이는 카스텔간돌포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다리오 카스트리욘 오요스 추기경과 슈미트버거 신부도 함께했다. 이들은 교회와 성 비오 10세회의 현 상황, 교회의 현대화에 대한 성 비오 10세회의 우려, 트리엔트 미사의 재허용, 성좌의 성 비오 10세회 인가 가능성 등을 논의했다.
2009년 1월 2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펠레이를 포함하여 1988년 마르셀 르페브르가 서임한 네 명의 주교에게 내려진 파문을 철회했다. 이로써 이들 주교 네 명의 교회법적 위치는 성 비오 10세회의 다른 성직자들과 같이 불법이지만 유효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성 비오 10세회 이탈리아 북부 관구장 플로리안 아브라하모비츠 신부는 파문 철회를 ‘모욕적’이라고 비판했는데, 이는 성 비오 10세회가 이들 주교에게 내려진 파문 자체가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아브라하모비츠 신부는 홀로코스트 관련 언급과 함께 이러한 입장 표명으로 인해 성 비오 10세회에서 제명되었다.
펠레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해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관련해서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진리는 타협을 용인하지 않습니다.”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2012년 4월 15일, 펠레이는 교황청에서 제시한 타협안을 거부했다. 같은 해 12월 28일, 펠레이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교회를 반대한 이들을 유대인, 프리메이슨, 현대주의자로 언급했다. 이 발언은 반유대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성 비오 10세회는 펠레이 주교의 발언이 종교적 개념으로서, 선교를 반대하는 단체나 종파를 의미하며, 유대인 단체의 지도자들을 가리킨 것이라고 해명했다.
펠레이의 총장 임기는 2018년 7월 11일 다비데 팔리아라니가 후임으로 선출되면서 종료되었다.
4.1. 파티마 제3의 비밀에 대한 입장
펠레이는 파티마의 제3의 비밀에 대해 세상에 대한 징벌과 교회의 위기를 모두 예견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4.2.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비판
펠레이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진정한 현대주의자’라고 비평하였다. 2013년 7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비오 10세회(SSPX)와 대화를 시작하자, 펠레이는 “현재 우리는 그의 전모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사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2014년 5월, 펠레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의 전기를 읽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교황이 FSSPX에 대해 “나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그들을 방문하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관대한 견해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4.3. 기타 활동
베르나르 펠레이(Bernard Fellay라틴어) 주교는 종교 활동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14년과 2018년에는 브뤼셀 유럽 의회에서 구유 장면을 축복하는 행사를 주관했는데, 이 행사에는 이탈리아 정치인 마리오 보르게지오와 베네토 주지사 루카 자이아가 참석했다.
2017년에는 지역 주교의 허가 없이도 사제를 서품할 수 있도록 바티칸의 승인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같은 해, 펠레이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파된 이단에 대한 자녀의 수정"이라는 문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 문서는 교황의 언행과 누락이 교회에 해를 끼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여러 성직자와 학자들이 함께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