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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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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연구소는 1892년 콜레라 창궐 이후 함부르크의 보건 개혁의 일환으로 설립된 독일의 열대 의학 연구 기관이다. 1900년 개소하여 해군 군의관 베른하르트 노흐트의 주도로 열대병 연구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분자생물학, 면역학, 역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며, 세계보건기구(WHO) 협력 센터로 지정되어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부터는 외래 진료만 제공하며, 2008년 라이프니츠 협회에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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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연구소

2. 역사

1892년 함부르크에서 콜레라가 발생하여 수천 명이 사망하자, 보건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이에 독일 제국 정부는 항해병과 열대병 연구, 선박 및 식민지 의사 교육을 위한 연구소 설립을 지원했다.[1] 1893년 해군 군의관 베른하르트 노흐트|베른하르트 노흐트de가 함부르크 항구 전담 의사로 임명되었고, 성 게오르크 종합병원에 선원 병동이 설치되었다.[1] 로베르트 코흐는 다른 지역을 연구 중심지로 고려했으나, 노흐트는 교역이 활발한 함부르크가 다양한 열대병을 연구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함부르크를 연구 중심지로 만들었다.[1] 1900년 10월 1일, 24명의 직원을 둔 항해병·열대병 연구소가 문을 열었다.[1] 2006년부터 연구소는 외래 진료만 보고 있으며, 에볼라 환자와 같이 입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1]

2. 1. 설립 배경

1892년 함부르크에서 콜레라가 창궐하여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함부르크 의회와 시민들은 보건 개혁을 요구하였다. 이에 중앙정부는 항해병과 열대병을 연구하고 선박 의사 및 식민지 의사를 교육하기 위한 연구소 건립을 지원하였다.[1] 1893년 해군 군의관이었던 베른하르트 노흐트|베른하르트 노흐트de가 새롭게 만들어진 항구 전담 의사직을 맡게 되었고, 성 게오르크 종합병원(Allgemeines Krankenhaus St. Georg)에는 선원들을 위한 병동이 설치되었다.[1] 1899년 로베르트 코흐의 계획과는 달리, 노흐트는 교역이 활발하여 다양한 질병을 접할 수 있는 함부르크를 열대병 연구 중심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1]

2. 2. 초기 발전

1892년, 함부르크에서 콜레라가 발생하여 수천 명이 사망하자 함부르크 의회시민들은 보건 개혁을 실시하기로 결정했고, 중앙정부는 항해병과 열대병 연구 및 선박 의사와 식민지 의사 교육을 위한 연구소 건립을 지원했다. 1893년 해군 군의관이었던 베른하르트 노흐트(Bernhard Nocht)가 새로 만들어진 항구 전담 의사직을 맡게 되었고, 성 게오르크 종합병원(Allgemeines Krankenhaus St. Georg)에는 선원들을 위한 병동이 설치되었다. 노흐트는 1899년, 로베르트 코흐의 계획과는 달리 교역이 왕성하여 접하는 병의 종류도 다양한 함부르크를 열대병 연구 중심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1900년 10월 1일에 마침내 항해병·열대병 연구소가 24명의 직원들과 함께 문을 열었다.

2. 3. 주요 연혁

1892년 함부르크에서 콜레라가 발생하여 수천 명이 사망하자, 함부르크 의회와 시민들은 보건 개혁을 추진하였다. 중앙정부는 항해병과 열대병을 연구하고 선박 의사와 식민지 의사를 교육하기 위한 연구소 건립을 지원하였다. 1893년 해군 군의관이었던 베른하르트 노흐트|베른하르트 노흐트de가 항구전담의사직을 맡게 되었고, 성 게오르크 종합병원에는 선원들을 위한 병동이 설치되었다.[1] 1899년 노흐트는 로베르트 코흐의 계획과는 달리 교역이 활발하여 다양한 병을 접할 수 있는 함부르크를 열대병 연구 중심지로 선정하였다.[1] 1900년 10월 1일, 24명의 직원과 함께 항해병·열대병 연구소가 정식으로 개소하였다.[1] 2006년부터 입원이 필요한 환자는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1]

3. 건물

건축가 프리츠 슈마허가 1910년부터 1914년까지 설계한 건물로, 함부르크 장크트 파울리 구에 실험실, 병동, 동물관리영역의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1] 1945년 이후 폭격 피해를 입은 건물을 재건하였고, 2003년부터 구 동물관리영역에 새 건물을 건설하여 2008년 1월에 완공하였다.[1] 이때 BSL-4 레벨의 고도 안전 실험실을 새로 설계하여 갖추었다.[1] 건물 외관의 장식 부조는 Johann Michael Bossard|요한 미하엘 보사르트de가 제작하였다.[1]

3. 1. 위치

연구소는 함부르크 장크트 파울리 구의 베른하르트 노흐트 거리와 항구 해안으로 이어지는 Davidstraße (Hamburg)|다비트슈트라세de 사이의 경사면에 위치해 있다.[1] 동쪽 도로변에는 독일 기상청과 독일 연방 해양 및 수로국 건물이 이웃해 있다.[1]

3. 2. 구조

1910년부터 1914년까지 프리츠 슈마허의 설계에 따라 실험동, 병동, 동물사로 구성된 3층 클링커 건물이 건축되었다. 이 건물은 장크트 파울리 지구 내, 북쪽의 베른하르트 노흐트 거리와 항구 해안으로 이어지는 Davidstraße (Hamburg)|데이비드 거리de의 경사면 사이에 위치해 있다. 1945년 이후 폭탄으로 손상된 건물은 재건축되었다. 2003년부터는 이전 동물사 부지에 새로운 동이 건설되었으며, 2008년 1월 말에 가동되었다. 특히, 고도의 안전 시설을 갖춘 실험실은 완전히 재설계되었으며, 현재 생물안전도 4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옛 건물 외관의 수많은 장식 부조는 예술가 Johann Michael Bossard|요한 미하엘 보사르트de가 제작했다. 독일 기상청과 독일 연방 해양 및 수로국 건물은 동쪽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3. 3. 특징

프리츠 슈마허가 1910년부터 1914년까지 설계한 건물로, 실험실, 병동, 동물관리영역의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1945년 이후 폭격 피해를 입은 건물을 재건하였고, 2003년부터 구 동물관리영역에 새 건물을 건설하여 2008년 1월에 완공하였다. 이때 BSL-4 레벨의 고도 안전 실험실을 새로 설계하여 갖추었다.[1]

건물 외관의 장식 부조는 요한 미하엘 보사르트가 제작하였다.[1]

연구소 동쪽에는 독일 기상청 지역 센터와 독일 연방 해양 및 수로국이 인접해 있다.[1]

4. 연구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연구소는 분자생물학면역학, 역학진단, 임상연구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며, 국립 열대 병원체 참조 센터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1] 2008년부터는 라이프니츠 협회에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 지정 절지동물매개 바이러스(아르보바이러스) 및 출혈열 바이러스 협력센터이기도 하다.[11]

4. 1. 연구 분야

분자생물학면역학, 역학진단, 임상연구 분야와 국립 열대 병원체 참조 센터에서 연구가 이루어진다.[11] 연구 중점은 말라리아, 바이러스성 출혈열 (라싸 바이러스, 마르부르크 바이러스, 에볼라바이러스, 크리미안 콩고 바이러스), 면역학, 역학, 열대병 임상과 모기에 의한 바이러스 전염 등이다.[11] 병원성이 높은 바이러스는 BSL-4, 감염된 곤충은 생물 안전도 BSL-3 레벨의 실험실 또는 곤충사육실에서 다루어진다.[11]

4. 2. 주요 연구 성과


  • 1904년 노흐트의 조수인 화학자 구스타프 김자는 기존의 로마노프스키 염색을 개선한 김자 염색을 개발했다.[3]
  • 1916년 병리학자 엔리케 다 로샤 리마는 발진티푸스의 원인 물질(''리케차 프로와제키'')을 확인했다.
  • 1918년 로샤-리마 박사는 참호열의 원인 물질(''로찰리메아 퀸타나'')을 확인했으며, 이후 ''보렐리아''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 1943년 조류 말라리아에서 ''플라스모디움 프라에콕스''의 생식 주기에서 누락된 부분을 발견했다.
  • 1950년 기생충학자 한스 포겔 (과학자)는 원숭이가 극동 주혈흡충증의 원인인 ''일본주혈흡충''에 대해 면역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 1961년 포겔 박사는 다방조충의 생활사를 발표했다.
  • 1968년 뮐러 박사는 전자 현미경으로 마버그 바이러스를 확인했다.
  • 1985년 미국의 과학자들과의 공동 연구에서 파울 라츠와 클라라 테너-라츠는 HIV에 감염된 환자에서 대규모 바이러스 복제가 림프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2003년 SARS-CoV의 식별과 검사 (크리스티안 드로스텐)[4]
  • 강변 실명증 치료법 개발 (아킴 횔라프, 1998).
  • 벌레와 공생하는 박테리아 연구, 말라리아 병원체의 중간 단계(메로솜) 규명 (폴커 호이슬러, 2006).
  • 파울 라취·클라라 텐너-라취 부부의 HIV/AIDS 연구.

4. 3. 협력 관계

세계보건기구 절지동물매개 바이러스(아르보바이러스) 및 출혈열 바이러스 협력센터로 지정되었다.[11] 가나 보건부 및 쿠마시대학교(KNUST)와 함께 서아프리카우림에서 외부 연구진들에게도 개방된 현대적인 교육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5. 조직 및 운영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연구소(BNITM)는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RKI)와 연구 중점을 나누어 가지는데, BNITM은 국외 연구를, RKI는 독일 국내 연구와 위생 부문을 담당한다.[1]

라이베리아 봉타운에 BNITM의 해외사무소가 있었으나, 1990년대 내전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

함부르크 연방군병원과 긴밀히 협력하여 2005년부터 해당 병원의 열대의학 부문을 BNITM에서 관장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병동을 운영하지 않는다.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메달은 연구소와 독일 열대의학학회에서 수여하며, 메달 수여자는 함부르크에서 강연할 기회를 갖는다.

5. 1. 주요 인물


  • 1900–1930: 베른하르트 노흐트
  • 1930–1933: 프리드리히 퓔레본
  • 1933–1943: 페터 뮐렌스|페터 뮐렌스de
  • 1943–1963: 에른스트 게오르크 나우크|에른스트 게오르크 나우크de (1897–1967), 1943년부터 1947년까지 임시 이사
  • 1963–1968: 한스 포겔 (1900–1980)
  • 1968–1982: 한스-하랄트 슈마허|한스-하랄트 슈마허de
  • 1982–1988: 3명의 이사진이 기관을 운영
  • 1988–1995: 한스 J. 뮐러-에버하르트 (1927–1998)
  • 1996–2007: 베른하르트 플라이셔|베른하르트 플라이셔de (1950년 출생)


2008년부터 연구소는 이사회의 지휘를 받고 있다. 이사회는 3명의 과학자와 상업 이사로 구성되어 있다. 초대 이사회 의장은 1998년부터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연구소(BNITM)의 열대 의학 기초 연구 부서를 이끌었던 롤프 호르스트만이었다. 베른하르트 플라이셔는 부의장을 맡았다. 이사회의 세 번째 구성원은 에크베르트 타니히였다.

2018년 초, 에크베르트 타니히는 연구소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했다. 이사에는 상무 이사인 비르기트 뮐러 외에 위르겐 메이와 스테판 귄터가 합류했다. 연구 그룹도 재편되었는데, 에크베르트 타니히는 "감염 진단" 부서 설립을 맡았다. 미하엘 람하르터는 함부르크-에펜도르프 대학교 병원에서 "임상 열대의학" W3 교수로 임명되었고, "임상 연구" 부서와 함께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연구소로 이동했다.

5. 2. 운영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연구소(BNITM)는 라이프니츠 협회 소속 연구소로, 연방 정부와 연방 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1]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RKI)와 연구 우선순위를 분담하는데, BNITM은 해외 연구를, RKI는 독일 내 연구 및 위생 문제를 담당한다.

2015년 2월 23일, 헤르만 그뢰헤 보건부 장관이 BNITM을 방문했다. BNITM은 과학 공동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Wissenschaftsgemeinschaft WGL)의 회원으로서, 연방 정부와 연방 주로부터 "초지역적 중요성을 지닌 연구소"로 제도적 자금을 지원받는다.

2006년부터 병동을 운영하지 않으며, 함부르크 연방군병원 (Bundeswehrkrankenhaus Hamburg)과 긴밀히 협력하여 2005년부터 해당 병원의 열대의학 부문을 BNITM에서 관장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열대연구소 또는 열대병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6. 기타

오늘날 연구 우선순위는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RKI)와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연구소(BNITM)로 나뉜다. BNITM은 해외 연구를 담당하고, RKI는 독일 내 연구 및 위생 관련 문제를 담당한다.

2015년 2월 23일, 헤르만 그뢰헤 보건부 장관이 BNITM을 방문했다.

BNITM은 과학 공동체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Wissenschaftsgemeinschaft WGL)의 회원으로서, 연방 정부와 연방 주로부터 "초지역적 중요성을 지닌 연구소"로 제도적 자금을 지원받는다.

일반 대중에게 BNITM은 "열대 연구소" 또는 "열대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연방군 함부르크 병원은 BNITM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 독일 연방군 병원의 열대 의학 부서가 BNITM에 수용되어 있다. 2006년부터 BNITM은 병원 운영을 하지 않는다.

6. 1. 대외 활동

라이베리아 봉타운에 BNITM의 해외사무소가 있었으나, 1990년대 내전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의학 메달은 연구소와 독일 열대의학 및 글로벌 건강 학회에서 수여하며, 수상자는 함부르크에서 강연할 기회를 갖는다. 발터 키쿠트|Walter Kikuthde, 한스 포겔과 같은 일부 수상자들은 베른하르트 노흐트 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했다.

6. 2. 논란

2020년 1월 말, 연구소장 에그베르트 타니히는 주요 국영 TV 채널(''ARD'')에서 코로나바이러스 SARS-CoV2를 언론이 과장된 보도를 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독일에서 상당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타니히는 "현재 언론 보도의 길이, 강도, 그리고 그것에 할당된 공간에 놀랐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지에 놀랐습니다."라고 발언했다.[5] 그는 "바이러스 [SARS-CoV2]가 제기하는 위험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고 강조했다.[6]

6. 3. 관련 자료


  • 에리히 만바일러: ''함부르크 선박 및 열대 질병 연구소의 역사 1900-1945''. 굄케와 에버스, 켈턴-바일러 1998. (= 함부르크 과학 학회의 에세이. N.F. 제32권).[7]
  • 바바라 에베르트 (편집): 베른하르트 노흐트 연구소 함부르크 1900–2000. ''100년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 의학 연구소''.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 의학 연구소, 함부르크 2000.[8] (열대 연구소 100주년 기념 전시회 카탈로그)
  • 스벤 토데: 연구 - 치료 - 훈련: ''함부르크 열대 연구소 100년''. 베른하르트 노흐트 열대 의학 연구소, 함부르크 2000.[9] (에리히 만바일러: 함부르크 열대 의학 100년간의 과학적 연구).
  • 슈테판 불프: 함부르크 열대 연구소 1919년부터 1945년까지. ''베르사유 이후의 외교 문화 정책과 식민지 수정주의'', 디트리히 라이머 출판사, 베를린 / 함부르크 1994.[10]

참조

[1] 웹사이트 Research Groups https://www.bnitm.de[...] 2022-02-22
[2] 논문 A century of research in tropical medicine in Hamburg: the early history and present state of the Bernhard Nocht Institute Wiley
[3] 논문 Editorial: 100 years ago: Giemsa's solution for staining of plasmodia Wiley
[4] 논문 Identification of a novel coronavirus in patients with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https://hal-pasteur.[...] 2003
[5] 웹사이트 Coronavirus: Übertriebener Hype? https://www1.wdr.de/[...] 2022-02-22
[6] 웹사이트 Coronavirus: Übertriebener Hype? https://www1.wdr.de/[...] 2022-02-22
[7] 서적 Geschichte des Instituts für Schiffs- und Tropenkrankheiten in Hamburg, 1900-1945 Goecke & Evers 1998
[8] 서적 Bernhard-Nocht-Institut Hamburg: 1900-2000 ; 100 Jahre Bernhard-Nocht-Institut für Tropenmedizin Bernhard-Nocht-Inst. für Tropenmedizin 2000
[9] 서적 Forschen, Heilen, Lehren: 100 Jahre Hamburger Tropeninstitut Bernhard-Nocht-Institut für Tropenmedizin 2000
[10] 서적 Das Hamburger Tropeninstitut, 1919 bis 1945: auswärtige Kulturpolitik und Kolonialrevisionismus nach Versailles D. Reimer 1994
[11] 웹인용 BNITM에 대해 https://www.bnitm.de[...]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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