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협
1. 개요
보협은 오나라의 무장으로, 아버지 보즐의 뒤를 이어 무군장군에 이르렀다. 250년 위나라 왕기의 공격을 받아 이릉을 방어했고, 264년 육항 등과 함께 촉나라의 영안성을 공격했으나 나헌에게 패배했다. 이후 영안을 포위했으나 위나라 호열의 구원군으로 인해 철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사후 아들 보기가 작위를 이었으며, 동생 보천이 서릉의 군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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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 보씨 -
보천
보천은 오나라의 장수로, 아버지 보즐의 뒤를 이어 서릉독을 지냈으며 손호에게 무창 천도를 건의했으나, 손호의 소환령에 불안감을 느껴 진나라에 투항했다가 육항에게 패배하여 처형당했다. -
임회 보씨 -
보즐
보즐은 삼국 시대 오나라의 장수로, 손권 휘하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손권의 보좌 역할을 했고, 육손 사후 승상에 올랐으나 이듬해 사망했다. -
화이안시 출신 -
한신 (회음후)
한신은 전한 초기의 군인이자 전략가로, 초한쟁란 시기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헌했으나, 유방의 경계로 회음후로 강등된 후 모반 혐의로 여후에게 처형당했으며, 그의 삶은 토사구팽, 다다익선 등 고사성어와 관련되어 후대에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
화이안시 출신 -
보천
보천은 오나라의 장수로, 아버지 보즐의 뒤를 이어 서릉독을 지냈으며 손호에게 무창 천도를 건의했으나, 손호의 소환령에 불안감을 느껴 진나라에 투항했다가 육항에게 패배하여 처형당했다. -
동오의 후작 -
손호
손호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즉위 초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폭정을 일삼아 오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으며, 서진의 침공으로 항복한 후 귀명후에 봉해졌다가 낙양에서 생을 마감했다. -
동오의 후작 -
제갈근
2. 생애
적오 11년(249년), 아버지가 죽자 그 뒤를 이어 보즐의 영지를 거느리고 무군장군에 임명되었다.
적오 12년(250년), 위나라 정남장군 왕창의 별동대인 형주자사 겸 양렬장군 왕기의 공격을 받았다. 보협은 이릉 성문을 걸어잠그고 농성했는데, 왕기는 보협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신성태수 주태와 함께 군사를 나누어 오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하고 많은 곡식과 백성을 빼앗았다.
보협이 죽은 후, 아들 보기(步璣)가 뒤를 이었고, 서릉의 군무는 아우 보천(步闡)이 맡았다.
2.1. 초기 활동
부친인 보즐이 사망한 후, 아버지의 임상후 작위와 군대를 계승하여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고, 최종적으로 무군장군으로 승진했다.
영안 7년(264년) 촉한이 위에 멸망했을 때(촉한의 멸망), 육항, 유평, 성만과 함께 영안을 공격했으나, 라헌에게 대패했다. 이후에도 6개월 동안 영안을 포위했지만, 위의 호열이 원군으로 오자 영안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 한다.
2.2. 영안 전투
영안 7년(264년) 2월, 보협은 진군장군 육항(陸抗), 정서장군 유평(留平), 건평태수 성만(盛曼)과 함께 촉으로 침입하여 옛 촉한의 파동태수 나헌(羅憲)이 지키는 영안성을 포위했다. 촉서 곽준전에 배송지가 인용한 《양양기》에 따르면, 동오는 등애(鄧艾)와 종회(鐘會)가 모두 죽고 촉에 주인이 없어 어수선한 틈을 타 촉을 취하려고 했으나, 나헌이 동오를 거부하여 들어가지 못하자 대군을 이끌고 영안성을 공격했다가 출격한 나헌과 싸워 크게 패했다.
촉한이 위에 멸망한 후, 육항, 유평, 성만과 함께 영안을 공격했으나, 라헌에게 대패했다. 이후에도 6개월 동안 영안을 포위했지만, 위의 호열이 원군으로 오자 영안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했다.
2.3. 최후
부친인 보즐이 사망한 후, 아버지의 임상후 작위와 군대를 계승하여 여러 차례 전공을 세우고, 최종적으로 무군장군으로 승진했다.
영안 7년(264년) 촉한이 위에 멸망했을 때(촉한의 멸망), 육항, 유평, 성만과 함께 영안을 공격했으나, 라헌에게 대패했다. 이후에도 6개월 동안 영안을 포위했지만, 호열이 원군으로 오자 영안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 한다.
3. 친족 관계
* 아버지: 보즐
* 본인: 보협(步協)
* 동생: 보천
* 아들: 보기(步璣)
* 아들: 보선(步璿)
* 친척: 보연사 - 보즐의 친척으로, 손권의 후궁이었다가 사후 황후로 추존되었다.
보협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두 아들은 낙양에 인질로 보내졌다. 장남 보기는 보협 사후 임상후의 작위를 이었으나 서진에 의해 감강릉 제군사, 좌장군, 산기상시, 로릉태수에 임명되었고, 강릉후로 개봉되어 서릉으로 돌아가 육항 등에게 패배하여 보협과 함께 처형되었다(서릉 전투). 차남 보선은 급사중, 선위장군, 도향후에 봉해져 낙양에 인질로 억류되었기 때문에 일족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조상의 제사를 이었다.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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