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융
1. 개요
부융은 의양군 출신으로, 촉한의 장수이다. 221년 유비를 따라 오나라를 공격하는 이릉 대전에 참전하여 후방을 지키다 전사했다. 오군에 포위되어 항복 권유를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싸우다 죽음을 맞이하여 충절을 인정받았다. 그의 아들 부첨 또한 위나라의 촉 정복 때 촉나라 장수로 복무하다 전사하여 부자 모두 충의를 지켰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부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정봉에게 항복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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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시 출신 -
왕심지
왕심지는 당나라 말기 혼란을 피해 복건으로 이주하여 세력을 키운 후 위무군절도사를 계승하고 낭야왕, 민왕에 봉해졌으며 검소한 정책과 세금 감면을 통해 민생 안정에 힘쓴 민나라의 초대 왕이다. -
신양시 출신 -
장궈칭
장궈칭은 칭화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충칭시 시장, 톈진시 시장, 랴오닝성 당서기를 거쳐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부총리로서 산업 및 정보기술, 재난관리, 국유기업 분야를 담당한다. -
222년 사망 -
엘라가발루스
엘라가발루스는 시리아 출신으로 태양신 헬리오가발루스의 사제였으며, 로마 황제가 된 후 엘라가발 신앙을 전파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다 살해당한 인물로, 그의 통치에 대한 평가는 논쟁적이지만 긍정적인 재평가도 존재한다. -
222년 사망 -
마량
마량은 촉한의 관료이자 유비의 측근으로, 형주에서 등용되어 종사, 시중을 지냈으며 이릉 전투에서 전사했고, 뛰어난 재능을 칭송하는 '백미'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2. 생애
222년 6월, 이릉 대전에서 유비가 육손의 계략에 넘어가 효정(猇亭)에서 크게 패했을 때, 부융은 후방을 지키며 싸우다가 부하들을 모두 잃었다. 오나라 군대는 부융에게 항복하라고 권유했으나, 부융은 "오나라의 개들아! 어찌 한(漢)나라의 장수가 항복하겠느냐!"라고 외치며 뜻을 굽히지 않고, 결국 오군과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다. 《삼국지연의》의 기록 또한 유사하다.
부융은 현재의 신양시 허난성에 위치한 의양군 출신이었다. 221년, 그는 유비를 따라 손권의 군대에 맞서 싸우는 원정에 참여하여 이릉 전투에 참전했다. 222년, 육손은 이릉과 샤오팅에서 유비 군대를 격파하고 후퇴하도록 강요했다. 부융은 촉나라 군대의 후퇴 시 후방을 지원하는 역할을 자원했다. 그는 모든 동료가 이미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적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오나라 군인들이 그에게 항복할 기회를 제안하자 그는 "오나라의 개들아! 어찌 한나라 장수가 항복하겠느냐?"라고 답했다. 결국 그는 전투에서 사망했다. 진 무제는 진나라를 건국한 황제로서, 그의 칙령에서 이 사건을 특별히 언급했다.
장무 원년부터 2년(221년 - 222년)에 걸쳐 벌어진 이릉 전투에서 별독으로 임명되었다. 촉군이 육손의 화공(火攻)에 의해 크게 패하자, 유비를 탈출시키기 위한 후군이 되었다. 부하 병사들은 전멸했고, 적장으로부터 항복을 권유받은 부융은 "오의 개들아! 한의 장군이 항복할 줄 아느냐!"라고 외치며 거부하고 전사했다.
이후 아들 부첨도 촉한 멸망에 순절했다. 또한 후대에 서진의 무제(사마염)는 부융, 부첨 부자의 충성심과 의리를 칭찬하는 조서를 내렸다.
3. 사후
촉나라에서는 부융의 충절을 기려 그해 10월 그의 아들 부첨을 좌중랑장(左中朗將)으로 임명했다. 부첨은 263년 위나라의 촉 정복 당시 위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여, 부자가 모두 촉한에 대한 충의를 지켰다. 서진 무제(사마염)는 부융, 부첨 부자의 충의를 칭찬하는 조서를 내렸다.
4. 《삼국지연의》 속 부융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부융은 부동(傅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221년 유비가 오나라를 침공했을 때 별독(別督)으로 임명되어 창을 들고 각지에서 오군을 물리치는 등 활약했다. 이릉 전투에서 유비가 패배한 후, 부융은 추격하는 적군으로부터 후방을 지키기 위해 자원했다. 오나라 장수 정봉이 항복을 권유하자, "나는 (촉)한의 장수인데, 어찌 오나라의 개들에게 항복하겠는가?"라고 말하며 최후의 일전을 벌이다가 피를 토하고 죽는다. 나관중은 작품 속 시에서 부융의 충의를 "부동은 한나라 장군에 부끄럽지 않다"라고 칭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