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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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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족 공국은 18~19세기 독일 역사학과 민족학에서 유래된 독일 부족의 개념으로, 초기 중세 시대와 고중세 시대에 존재했다. 고대 부족으로는 바이에른, 슈바벤, 프랑크, 작센, 프리지아, 튀링기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카롤링거 제국에 통합되었다. 동프랑크 왕국 내에서는 작센, 바이에른, 알레마니아를 포함한 대공국들이 존재했으며, 이러한 공국들은 중세 성기 초 호엔슈타우펜 왕조 하에서 쇠퇴하여 1180년 프리드리히 1세에 의해 폐지되었다. 5개의 주요 부족 공국으로는 프랑켄, 로트링겐, 슈바벤, 작센, 바이에른이 있었으며, 바이에른은 영토 공국으로 전환되어 현대 바이에른 자유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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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공국
개요
유형공국
존속 기간10세기
관할동프랑크 왕국
역사
기원카롤루스 왕조 시대의 옛 부족 영토
형성 시기900년경
해체 시기1180년, 하인리히 사자공의 몰락 이후
주요 사건레히펠트 전투 (955년)
슈타데 전투 (1144년)
구성
주요 공국작센 공국
바이에른 공국
슈바벤 공국
프랑켄 공국
로트링겐 공국
용어
독일어슈타메스헤어초크툼
영어stem duchy

2. 독일 부족 (Stämme)

18세기에서 19세기 독일 역사학과 민족학에서는 독일 민족의 기원을 여러 독일 부족(''Deutsche Stämme; Volksstämme'')에서 찾았다. 이들 부족은 초기 중세 시대 및 고중세 시대와 관련되며, 후기 고대의 게르만족과는 구분된다. 10세기의 "고대 부족"(''Altstämme'')과 동방 팽창의 결과로 등장한 "신생 부족"(''Neustämme'')으로 구분되기도 한다.[4] "Stamm", "Nation", "Volk" 등의 용어는 중세 라틴어 "gens", "natio", "populus"를 반영한다.

카롤링거 왕조는 8세기에 종래의 부족 대공령을 해체했지만, 9세기 말 카롤링거 왕조의 몰락과 함께 종래의 부족령이 왕국의 분할 영토로 인식되었다. 이때 성립된 부족 대공령은 프랑켄 대공령, 작센 공국, 바이에른 공국, 슈바벤 공국(알레마니아 대공령), 로트링겐 대공령의 5개였다.[14]

부족 대공령은 잘리어 왕조 통치 하의 독일에서도 주요한 분할 영토로 계속되었지만, 중세 성기 초기의 호엔슈타우펜 왕조 하에서는 차츰 쇠퇴해 갔고, 최종적으로 1180년에 프리드리히 1세가 더 많은 공령을 설치하면서 폐지되었다.

독일어의 부족 대공령 "Stammesherzogtum"이라는 말은 19세기 중반에 게르만 역사학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독일 통일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의 적용성과 중세 독일에서의 부족 대공의 실태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영어 직역인 "stem duchy"는 20세기 초기에 사용되기 시작한 신조어이다.[15] 이후, "tribal"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경향이 있지만, "stem duchy"라는 단어가 일반적이다.[16]

2. 1. 고대 부족 (Altstämme)

전통적으로 독일 역사학에서는 바이에른, 슈바벤(알레만니), 프랑크족, 작센족, 프리지아족, 튀링기의 6개 고대 부족을 꼽는다. 이들은 8세기 말까지 카롤링거 제국에 통합되었다.[4] 이들 중 바이에른, 슈바벤, 프랑크, 작센의 4개 부족만이 후대의 부족 공국으로 대표된다. 튀링기 공작령은 908년에 작센 공국에 흡수되었고, 프리지아 왕국은 734년 보른 전투에서 프랑크 왕국에 정복되었다.[4]

이들 부족의 관습법은 초기 중세 시대에 기록되었다: ''Lex Baiuvariorum''(바이에른), ''Lex Alamannorum''(알레만니), ''Lex Salica'' 및 ''Lex Ripuaria''(프랑크), ''Lex Saxonum''(작센), ''Lex Frisionum''(프리지아), ''Lex Thuringorum''(튀링기).[4] 프랑크, 작센, 슈바벤 법은 13세기까지 제국법과 경쟁하며 효력을 유지했다.[4]

10세기 오토 1세 시대의 고대 고지 독일어 (알레만 및 바이에른), 고대 프랑크어, 고대 작센어, 고대 프리지아어의 언어 지도


독일어 방언은 프랑코니아 방언, 알레만어, 튀링기어, 바이에른어 및 저지 작센어 (프리지아-작센 방언 포함, 프리지아어는 별도의 언어로 간주)로 분류된다.

2. 2. 신생 부족 (Neustämme)

"신생 부족"(''Neustämme'') 목록은 덜 명확하며, 동방 팽창 과정에서 형성된 집단들을 포함한다. 여기에는 마르커, 라우지츠, 메클렌부르크, 상작센, 포메라니아, 실레지아, 동프로이센 등이 있으며, 대략 12세기에서 15세기 사이의 독일 정착 활동을 반영한다.[5]

2. 3. 19세기 이후의 부족 개념

19세기 초, 독일 통일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부족"(''Stämme'') 대신 "민족"(''Völker'')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카를 프리드리히 아이히호른은 1808년에 "독일 민족"(''Deutsche Völker'')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프리드리히 크리스토프 달만은 1815년에 독일 민족(''Volk'')이 부족(''in seinen Stämmen'') 내에서 단결할 것을 요구했다.[5] 이 용어는 표준이 되었으며, 1919년 바이마르 헌법 서문에서 "독일 민족, 부족 내에서 단결..."(''Das deutsche Volk, einig in seinen Stämmen [...]'')으로 반영되었다.

현대 역사학에서는 부족의 역사적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각 부족을 개별적인 민족 발생의 역사를 가진 사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6] 일부 역사학자들은 "부족"(''Stämme'') 대신 "민족"(''Völker'')이라는 용어를 부활시키기도 했다.[7]

3. 동프랑크 왕국

동프랑크에는 상당한 내부적 연대감을 가진 대공국들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때때로 왕국(regna)이라고 불렸다. 초기에는 작센, 바이에른 공국, 알레마니아가 프랑크 행정부에 편입되었다.[8] 독일 역사학에서는 이들을 "더 최근의 부족 공국"(jüngere Stammesherzogtümer)이라고 부르며,[9] 영어로는 "줄기 공국"(stem duchy)이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된다.

베르됭 조약(843), 메르센 조약(870), 리베몽 조약(880)을 통해 왕국이 분할된 후, 동프랑크 왕국은 바이에른, 알레마니아, 작센과 프랑크 영토의 동부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899년 이후 왕권이 붕괴되면서, 지방 유력자들이 공국을 자율적인 실체로 부활시켰다.

4. 신성 로마 제국

동프랑크 왕국(919–1125)과 후기 부족 공국: 작센은 노란색, 프랑켄은 파란색, 바이에른은 녹색, 슈바벤은 밝은 주황색, 로트링겐은 분홍색


마지막 카롤링거 왕조 출신인 어린 루이가 911년에 사망하자, 부족 공국들은 왕국의 통일을 인정하고 콘라트 1세를 왕으로 선출했다.[11] 콘라트 1세의 통치 기간 동안 공작들이 공국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11] 918년 콘라트 1세가 사망한 후, 사냥꾼 하인리히가 왕으로 선출되었으며, 그의 라이벌인 바이에른 공작 아르눌프는 별도의 왕국을 세우지 않고 전체를 요구했다.[12] 하인리히 1세는 왕국이 통일될 것이라는 법을 공포했을 수도 있다.[8]

오토 왕조는 공국을 왕실의 직위로 보존하려 했지만, 황제 하인리히 4세의 통치 시대에 공작들은 이를 실질적으로 세습적으로 만들었다.[13]

"부족"은 게르만 부족인 프랑크, 색슨, 바이에른, 알레만니(슈바벤)를 가리킨다. 카롤링거 왕조는 8세기에 종래의 부족 대공령을 해체했지만, 9세기 말 카롤링거 왕조의 몰락과 함께 종래의 부족령이 왕국의 분할 영토로 인식되었다.[14]

부족 대공령은 잘리어 왕조 통치 하의 독일에서도 주요한 분할 영토로 계속되었지만, 중세 성기 초기의 호엔슈타우펜 왕조 하에서는 차츰 쇠퇴해 갔고, 1180년에 프리드리히 1세가 더 많은 공령을 설치하면서 폐지되었다.

독일어의 부족 대공령 "Stammesherzogtum"이라는 말은 19세기 중반에 게르만 역사학에서 사용되었는데, 이는 독일 통일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의 적용성과 중세 독일에서의 부족 대공의 실태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영어 직역인 "stem duchy"는 20세기 초기에 사용되기 시작한 신조어이다.[15] 이후, "tribal"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경향이 있지만, "stem duchy"라는 단어가 일반적이다.[16]

4. 1. 5개의 부족 공국



5개의 부족 공국은 다음과 같다:[1]

  • 프랑켄 (939년까지): 왕실과 가까운 콘라드 왕조 가문이 프랑켄에서 공작의 지위를 얻었지만, 지역을 통일하는 데는 실패했다. 프랑켄은 프랑크족의 전체 부족 영토를 포함하지 않았으며, 아우스트라시아로 알려지게 되었고, 843년 베르됭 조약에서 세 부분으로 분할되었다. 다른 두 부분은 각각 로트링겐과 프랑스 왕국의 핵심이 되었다. 911년 왕위에 오른 후, 콘라드 왕조는 작센의 리우돌핑 가문에게 왕위를 양보해야 했다. 반란에 실패한 후, 콘라드 왕조는 폐위되었고 공작령은 왕가의 영토가 되었다. 이 지역은 939년 초에 귀족 영토와 교회 공국들의 혼합체로 분열되었고, 정치적 실체나 행정 구역으로 다시 복원되지 않았다. 프랑켄은 문화적 또는 언어적 정체성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프랑켄 방언은 현재 "라인 팬"으로 알려진 방언 연속체를 따라 배열되어 있으며, 고지 프랑켄어, 중앙 프랑켄어 및 저지 프랑켄어 분파와 그 하위 방언으로 나뉜다.

  • 로트링겐 (959년까지): 프랑크 왕국의 핵심 구성 요소로서, 본질적으로 프랑크족의 부족 정체성을 가진 로트링겐은 843년 중프랑크 왕국의 일부로 아우스트라시아에서 분리되었으며, 903년에 공작령으로 조직되었다. 동프랑크 왕국과 서프랑크 왕국 사이에서 939년까지 위치가 계속 변경되었으며, 그 후 동프랑크 왕국에 확고히 편입되었다. 959년에 공작령은 하로트링겐 (다시 부르고뉴 네덜란드(현재의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백작령과 공작령으로 더 분열되었고, 부르고뉴 공작에 의해 재통합되었다)과 상로트링겐 (그 중 일부는 로렌이라는 프랑스 영토로 발전했다)으로 분할되었다. 하로렌은 1190년 브라반트 공작에게 넘어갈 때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공작령으로 남아 있었다.

  • 슈바벤 (1268년까지): 알레만니아는 5세기 말부터 프랑크 왕국과 명목상 연관되어 있었지만, 746년에야 직접적인 프랑크족의 통제를 받는 공작령이 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알레만니아''와 ''슈바벤''이라는 이름이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투르가우에 기반을 둔 훈프리딩 가문이 처음에는 공작의 지위에 올랐지만, 곧 리우돌핑 왕들과의 투쟁에서 통치권을 잃었다. 다양한 가문들을 거쳐, 공작령은 1079년 호엔슈타우펜 가문에게 넘어갔다. 이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슈바벤은 왕실의 기반이 되었지만, 13세기에 멸망하면서 슈바벤은 완전한 혼란에 빠졌고, 그 잔해는 비텔스바흐 가문, 뷔르템베르크,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넘어갔으며, 합스부르크 가문은 곧 구 스위스 연방의 분리주의에 직면했다. 슈바벤의 핵심 영토는 1495년에 공작령으로 승격된 뷔르템베르크 백작령으로 계속 존재했으며, 이는 19세기의 독일에서 뷔르템베르크 왕국이 되었다.

  • 작센 (1296년까지): 리우돌핑 가문은 작센 행정에 오랫동안 종사해 왔으며, 919년 이후 공작의 지위와 심지어 왕의 지위까지 올랐다. 11세기에는 빌룽 가문이 공작령을 통치했다. 1137년 이후에는 벨프 가문이 공작령을 지배했다. 1180년 사자공 하인리히의 몰락으로 부족 공작령이 해체되어 베스트팔렌 공작령과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령이 분리되었고, 엘베 강에 작센 공작령의 핵심이 남았으며, 아스카니아 가문에게 봉해졌다. 이 나머지 지역은 1296년에 작센-라우엔부르크와 작센-비텐베르크로 분할되었으며, 후자는 1356년에 선제후령으로 승격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이 붕괴된 후 작센 왕국으로 독립했다.

  • 바이에른: 카린티아 변경백령의 방어를 담당했던 루이트폴딩 가문이 공작의 지위에 올랐다. 그 뒤를 리우돌핑 가문의 분파와 결국 벨프 가문이 이었는데, 이들은 호엔슈타우펜 왕들과의 투쟁으로 인해 바이에른은 오스트리아 (1156년), 슈티리아 및 티롤 (1180년)을 빼앗겼다. 축소된 영토 공작령은 비텔스바흐 가문에게 주어졌다. 바이에른은 제1차 세계 대전까지 비텔스바흐 가문의 통제를 받았지만,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가문의 분파들 사이에서 여러 차례 하위 공작령으로 분할되었고, 1503년 바이에른 공작 알브레히트 4세 아래에서 재통합되었다. 1623년에 선제후령으로 승격되었고, 신성 로마 제국 붕괴 이후 왕국으로 독립했다.

5. 유산

프리드리히 1세 황제는 1180년, 더 많은 수의 영토 공국을 선호하여 부족 공국 체제를 폐지했다.[14] 바이에른 공국은 영토 공국으로 전환되어 현대 독일의 바이에른 자유주로 발전했다. 작센 선제후국작센 공국을 직접 계승하지는 않았지만, 현대 작센 주의 기원이 되었다. 프랑켄 공국과 슈바벤 공국은 붕괴되었고, 현대 슈바벤프랑켄 지역과 막연하게 일치한다. 메로빙거 왕조의 튀링겐 공국은 908년 작센 내의 방백령으로 강등되었으며, 현대 튀링겐 주는 1920년에 설립되었다.

참조

[1] 서적 The Konradiner: A Study in Genealogical Methodology https://books.google[...] 1990
[2] 서적 Mediaeval Europe (814–1300) https://archive.org/[...] 1903
[3] 서적 A History of Modern Germany: The Reformation https://books.google[...] 1982
[4] 문서 The High German consonant shift
[5] 논문 Die „Deutschen Stämme“ als Forschungsproblem https://books.google[...] Walter de Gruyter 2004
[6] 서적 Karl der Große oder Charlemagne? Acht Antworten deutscher Geschichtsforscher Berlin 1935
[6] 서적 Grundstrukturen der Verfassung im Mittelalter Stuttgart 1985
[6] 논문 Die „Deutschen Stämme“ als Forschungsproblem Walter de Gruyter 2004
[7] 서적 Deutschland – Frankreich: die Geburt zweier Völker 1995
[8] 서적 Kingdoms and Communities
[9] 서적 Phantoms of Remembrance: Memory and Oblivion at the End of the First Millenniu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10] 간행물 The Shaping of the Early Medieval Principality as a Type of Non-royal Rulership 1971
[11] 서적 The Origins of Modern Germany 1947
[12] 서적 Phantoms of Remembrance
[13] 간행물 German Feudalism 1923
[14] 서적 The Konradiner: A Study in Genealogical Methodology https://books.google[...] 1990
[15] 서적 Mediaeval Europe (814-1300) https://archive.org/[...] 1903
[16] 서적 A History of Modern Germany: The Reformation https://books.google[...]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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