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공작
1. 개요
부르고뉴 공작은 부르고뉴 지역을 통치했던 지배자들로, 보소니 가문, 로베르 가문, 카페 왕가, 발루아-부르고뉴 가문, 부르봉 왕가, 합스부르크 왕가 등이 존재했다. 1477년 이후에는 프랑스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가 부르고뉴 공작위를 사용했으며, 17세기 이후에는 프랑스 왕족이 부르고뉴 공작위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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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할 | 부르고뉴 공국 |
|---|---|
| 문장 | 용담공 샤를의 문장 |
| 생성일 | 880년 |
| 군주 | 부르고뉴 가문의 통치자 카페 왕가의 왕족 합스부르크 가의 왕족 |
| 귀족 | 프랑스의 공작위 |
| 초대 공작 | 부르고뉴의 리샤르 2세 |
| 마지막 공작 | 용담공 샤를 (세습 영지) 루이 드 프랑스 (명목상 작위) |
| 폐지일 | 1477년 1월 5일 (세습 영지) 1761년 3월 22일 (명목상 작위) |
| 가문의 자리 | 샤토 드 제르몰르 오텔 드 부르고뉴 팔레 데 뒥 드 부르고뉴 |
| 샤롱 백작 샤롤레 백작 마콩 백작 오튄 백작 느베르 백작 아발롱 백작 상세르 백작 통네르 백작 상리스 백작 오세르 백작 상 백작 트로예 백작 오손느 백작 바르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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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
부르고뉴 전쟁
부르고뉴 전쟁은 1474년부터 1477년까지 용담공 샤를의 부르고뉴 공국과 스위스 연방을 비롯한 여러 세력 간의 분쟁으로, 샤를의 패배와 전사, 부르고뉴 공국의 분할, 스위스 용병의 명성, 보병 중심 전술의 부각을 가져왔다. -
부르고뉴 -
그랑송 전투
그랑송 전투는 1476년 3월 2일 스위스 연방군이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의 군대를 숲을 이용한 기습으로 격파한 전투이다. -
프랑스의 역사 -
삼부회
삼부회는 프랑스에서 성직자, 귀족, 평민 대표로 구성된 신분제 의회로, 국왕의 과세 동의 기능을 수행하며 왕권 강화에 기여했으나, 프랑스 혁명 직전 소집 후 의결 방식 갈등으로 국민 의회 결성되어 해체되고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
프랑스의 역사 -
프랑스 제4공화국
프랑스 제4공화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립되어 의회 권한이 강력한 양원제 공화정 체제였으나, 정치적 불안정과 식민지 문제에 직면하여 군부 쿠데타로 붕괴하고 프랑스 제5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
유럽의 역사 -
빈 회의
빈 회의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정치 지형을 재편성하기 위해 1814년부터 1815년까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 회의이며, 정통주의와 세력 균형을 통해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했고,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 여러 국가의 영토를 조정하고 노예 무역 금지 등을 합의하여 빈 체제를 구축했다. -
유럽의 역사 -
베스트팔렌 조약
베스트팔렌 조약은 1648년 30년 전쟁과 80년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체결된 일련의 조약으로, 프랑스는 알자스 지역을 확보하고 스웨덴은 발트해 지역의 영향력을 강화했으며, 각 제후의 종교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신성 로마 제국 내 영방의 주권을 인정하여 유럽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켰다.
2. 역대 부르고뉴 공작 목록
보소니 가문은 초기 부르고뉴 공국의 후작(이후 대공) 지위를 차지했으며, 여러 지방 왕국과의 복잡한 혼인 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다. 로베르 가문은 보소니 가문의 뒤를 이어 부르고뉴 공작위를 계승했다. 주요 인물로는 위그 르 그랑의 아들 오통, 오통 공작의 형제 외드 앙리, 외드앙리 공작의 수양아들 오통 기욤 등이 있다. 1004년 부르고뉴는 카페 왕가에 의해 프랑스에 합병되었으나, 오토 2세 빌리암은 부르고뉴 자유국의 통치자로 남았고 그의 후손들은 이브레아 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카페 왕가의 방계인 부르고뉴 가문은 프랑스 왕 로베르 2세의 막내 아들인 로베르 1세를 시조로 한다. 로베르 1세의 후손들은 포르투갈 왕국을 건국한다.
발루아-부르고뉴 가문은 카페-부르고뉴 가문의 뒤를 이어 부르고뉴를 통치한 가문이다.
| 가문 | 이름 | 제위 기간 | 비고 |
|---|---|---|---|
| 보소니 가문 | 정의공 리샤르 | 880년–921년 | 부르고뉴 공국의 첫 후작(이후 대공) |
| 보소니 가문 | 루돌프 | 921년–923년 | 프랑스 왕 |
| 보소니 가문 | 검은 위그 | 923년–952년 | |
| 보소니 가문 | 질베르 | 952년–956년 | |
| 로베르 가문 | 오통 | 956년–965년 | 위그 르 그랑의 아들 |
| 로베르 가문 | 외드 앙리 | 965년–1002년 | 앙리 1세 르 그랑, 오통 공작의 형제 |
| 로베르 가문 | 오통 기욤 | 1002년–1004년 | 외드앙리 공작의 수양아들 |
| 카페 왕조 | 로베르 2세 | 1004년 - 1016년 | 로베르 2세의 막내 아들. |
| 카페 왕조 | 앙리 1세 | 1016년 – 1031년 | 부르고뉴 공자 앙리의 장남, 로베르 1세의 손자. |
| 부르고뉴 가문 | 로베르 1세 | 1032년 – 1076년 | 로베르 2세의 막내 아들. |
| 부르고뉴 가문 | 위그 1세 | 1076년 – 1079년 | 부르고뉴 공자 앙리의 장남, 로베르 1세의 손자. |
| 부르고뉴 가문 | 붉은 머리 외드 1세 | 1079년 – 1103년 | 위그 1세의 동생 |
| 부르고뉴 가문 | 평온공 위그 2세 | 1103년 – 1143년 | 외드 1세의 아들 |
| 부르고뉴 가문 | 외드 2세 | 1143년 – 1162년 | 위그 2세의 장남 |
| 부르고뉴 가문 | 위그 3세 | 1162년 – 1192년 | 외드 2세의 장남 |
| 부르고뉴 가문 | 외드 3세 | 1192년 – 1218년 | 위그 3세의 장남 |
| 부르고뉴 가문 | 위그 4세 | 1218년 7월 6일 | 외드 3세의 장남 |
| 부르고뉴 가문 | 로베르 2세 | 1271년 10월 27일 | 위그 4세의 장남 |
| 부르고뉴 가문 | 위그 5세 | 1306년 3월 21일 | 로베르 2세의 장남. |
| 부르고뉴 가문 | 외드 4세 | 1315년 5월 9일 | 로베르 2세의 동생 |
| 부르고뉴 가문 | 루브르의 필리프 1세 | 1350년 4월 3일 | 부르고뉴 공자 필리프의 장남, 외드 4세의 손자 |
| 초상 | 이름 | 탄생 - 사망 | 제위 기간 | 비고 | 문장 |
|---|---|---|---|---|---|
| 선량왕 장 1세 (Jean Ier le Bon) | 1319년 4월 16일 - 1364년 4월 8일 | 1361년 12월 28일 - 1363년 9월 6일 | 프랑스의 장 2세. 친족인 필리프 1세로부터 부르고뉴의 통치권을 상속하였다. | ||
| 호담공 필리프 2세 (Philippe II le Hardi) | 1342년 1월 15일 - 1404년 4월 27일 | 1363년 9월 6일 - 1404년 4월 27일 | 선량왕 장 1세의 막내 아들 | ||
| 용맹공 장 (Jean sans Peur) | 1371년 5월 28일 - 1419년 9월 10일 | 1404년 4월 27일 - 1419년 9월 10일 | 호담공 필리프의 장남 | ||
| 선량공 필리프 3세 (Philippe III le Bon) | 1396년 7월 31일 - 1467년 6월 15일 | 1419년 9월 10일 - 1467년 6월 15일 | 용맹공 장의 장남 | ||
| 용담공 샤를 1세 (Charles Ier le Téméraire) | 1433년 11월 21일 - 1477년 1월 5일 | 1467년 6월 15일 - 1477년 1월 5일 | 선량공 필리프의 장남 | -- | |
| 부귀공 마리 | 1457년 2월 13일 - 1482년 3월 27일 | 1477년 1월 5일 - 1482년 3월 27일 | 용담공 샤를의 외동딸 | -- |
2.1. 보소니 가문
보소니 가문은 초기 부르고뉴 공국의 후작(이후 대공) 지위를 차지했으며, 여러 지방 왕국과의 복잡한 혼인 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 가문의 리처드는 형 보소의 뒤를 이어 부르고뉴 대공이 되었으며, 그의 자손들은 프랑스 왕가와 대대로 혈연 관계를 맺으며 프랑스 왕가의 봉신으로서 자리 잡았다.
보소니 가문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정의공 리샤르
* 루돌프
* 검은 위그
* 질베르
2.1.1. 주요 인물
* 정의공 리샤르 (Richard the Justiciar, 880–921): 부르고뉴 공국의 첫 후작(이후 대공)이다. 아덴가 출신으로, 그의 형 보소는 지방 왕국의 군주였다. 리샤르는 복잡한 혼인 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온 형의 뒤를 이었으며, 지방 왕국들과의 혈연을 통해 대공이 되었다. 그의 자손들은 프랑스 왕가와 여러 대에 걸쳐 혈연 관계를 맺었고, 프랑스 왕가의 봉신으로서 자리잡았다.
* 루돌프 (Rudolph, 921–923): 프랑스 왕
* 검은 위그 (Hugh the Black, 923–952)
* 질베르 (Gilbert, 952–956)
2.2. 로베르 가문
로베르 가문은 보소니 가문의 뒤를 이어 부르고뉴 공작위를 계승했다. 주요 인물로는 위그 르 그랑의 아들 오통, 오통 공작의 형제 외드 앙리, 외드앙리 공작의 수양아들 오통 기욤 등이 있다.
2.2.1. 주요 인물
* 오통 (956년–965년): 위그 르 그랑의 아들이다. 질베르 드 샬롱의 상속녀인 샬롱의 리에제아르드와 결혼했다.
* 외드 앙리 (965년–1002년): 앙리 1세 르 그랑으로도 불린다. 오통 공작의 형제이다. 부르고뉴 소속 백작들에 의해 부르고뉴 공작으로 선출되었다.
* 오통 기욤 (1002년–1004년): 외드앙리 공작의 수양아들이다. 부르고뉴 궁정백이었다.
2.3. 카페 왕가
1004년 부르고뉴는 카페 왕가에 의해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오토 2세 빌리암은 부르고뉴 자유국의 통치자로 남았으나, 그의 후손들은 이브레아 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3.1. 1대 부르고뉴 가문
카페 왕가의 방계인 부르고뉴 가문은 프랑스 왕 로베르 2세의 막내 아들인 로베르 1세를 시조로 한다. 로베르 1세의 후손들은 포르투갈 왕국을 건국한다.
| 이름 | 제위 기간 | 가문 | 비고 |
|---|---|---|---|
| 로베르 2세 | 1004년 - 1016년 | 카페 왕조 | 로베르 2세의 막내 아들. |
| 앙리 1세 | 1016년 – 1031년 | 카페 왕조 | 부르고뉴 공자 앙리의 장남, 로베르 1세의 손자. |
| 로베르 1세 | 1032 – 1076 | 부르고뉴 가문 | 로베르 2세의 막내 아들. |
| 위그 1세 | 1076 – 1079 | 부르고뉴 가문 | 부르고뉴 공자 앙리의 장남, 로베르 1세의 손자. 그의 동생은 외드 1세. |
| 붉은 머리 외드 1세 | 1079 – 1103 | 부르고뉴 가문 | 위그 1세의 동생 |
| 평온공 위그 2세 | 1103 – 1143 | 부르고뉴 가문 | 외드 1세의 아들 |
| 외드 2세 | 1143 – 1162 | 부르고뉴 가문 | 위그 2세의 장남 |
| 위그 3세 | 1162 – 1192 | 부르고뉴 가문 | 외드 2세의 장남 |
| 외드 3세 | 1192년 – 1218년 | 부르고뉴 가문 | 위그 3세의 장남 |
| 섭정 (1218 – 1228) : 알릭스 드 베르지, 위그 4세의 모친 | |||
| 위그 4세 | 1218년 7월 6일 | 부르고뉴 가문 | 외드 3세의 장남 |
| 로베르 2세 | 1271년 10월 27일 | 부르고뉴 가문 | 위그 4세의 장남 |
| 위그 5세 | 1306년 3월 21일 | 부르고뉴 가문 | 로베르 2세의 장남. |
| 외드 4세 | 1315년 5월 9일 | 부르고뉴 가문 | 로베르 2세의 동생 |
| 섭정 (1349 – 1361) : 잔 1세 도베르뉴 여백작, 필리프 1세의 모친 | |||
| 루브르의 필리프 1세 | 1350년 4월 3일 | 부르고뉴 가문 | 부르고뉴 공자 필리프의 장남, 외드 4세의 손자 |
2.3.2. 2대 부르고뉴 가문 (발루아-부르고뉴 가문)
발루아-부르고뉴 가문은 카페-부르고뉴 가문의 뒤를 이어 부르고뉴를 통치한 가문이다.
| 초상 | 이름 | 탄생 | 즉위 | 퇴위 | 사망 | 비고 | 문장 |
|---|---|---|---|---|---|---|---|
| 선량왕 장 1세 (Jean Ier le Bon) | 4월 16일 1319년 | 12월 28일 1361년 | 9월 6일 1363년 | 4월 8일 1364년 | 프랑스의 장 2세. 친족인 필리프 1세로부터 부르고뉴의 통치권을 상속하였다. | ||
| 호담공 필리프 2세 (Philippe II le Hardi) | 1월 15일 1342년 | 9월 6일 1363년 | 4월 27일 1404년 | 선량왕 장 1세의 막내 아들 | |||
| 용맹공 장 (Jean sans Peur) | 5월 28일 1371년 | 4월 27일 1404년 | 9월 10일 1419년 | 호담공 필리프의 장남 | |||
| 선량공 필리프 3세 (Philippe III le Bon) | 7월 31일 1396년 | 9월 10일 1419년 | 6월 15일 1467년 | 용맹공 장의 장남 | |||
| 용담공 샤를 1세 (Charles Ier le Téméraire) | 11월 21일 1433년 | 6월 15일 1467년 | 1월 5일 1477년 | 선량공 필리프의 장남 | -- | ||
| 부귀공 마리 | 2월 13일 1457년 | 1월 5일 1477년 | 3월 27일 1482년 | 용담공 샤를의 외동딸 | -- | ||
3. 1477년 이후의 부르고뉴 공작
1477년 부르고뉴 공작위는 여러 가문에 의해 주장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와 부귀공 마리의 결혼을 통해 부르고뉴 공국의 지배권을 주장했다. 부르고뉴는 프랑스의 영토로 인정되었지만, 네덜란드 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다른 영지처럼 실질적인 지배를 받았다. 부르고뉴에 대한 합스부르크의 지배는 1592년 코냑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부르고뉴 대공 지위는 1700년부터 1706년까지 잠시 동안 에스파냐의 펠리페 5세가 상속하였다. 같은 기간 루이 15세의 아버지인 황태자 루이를 비롯한 여러 프랑스 왕족이 부르고뉴 대공 지위를 사용하였다. 부르봉 왕가 출신 프랑스 왕족들 또한 부르고뉴 공작위를 사용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루이 14세의 손자인 루이 드 프랑스 (1682-1712)와 루이 15세의 손자인 루이 드 프랑스 (1751-1761)가 있다.
3.1. 프랑스의 부르고뉴 공작
부르봉 왕가 출신 프랑스 왕족들이 부르고뉴 공작위를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루이 14세의 손자인 루이 드 프랑스 (1682-1712)와 루이 15세의 손자인 루이 드 프랑스 (1751-1761)가 있다.
3.1.1. 주요 인물
| 초상 | 이름 | 제위 기간 | 가문 | 비고 | 문장 |
|---|---|---|---|---|---|
| 루이 드 프랑스 (1682-1712) | 1697년 - 1711년 | 부르봉 왕가 | 루이 14세의 손자. 루이 드 프랑스 (1661-1711)의 맏아들이자 '그랑 도팽'으로 불렸다. 1711년 도팽이 되었다. 마리 아델라이드 드 사부아와 결혼했다. | ||
| 루이 드 프랑스 (1751-1761) | 1751년 - 1761년 | 부르봉 왕가 | 루이 15세의 손자이자 루이 16세의 큰형. 루이 드 프랑스 (1729-1765)의 맏아들. 결핵으로 인해 9살에 요절했다. |
3.2. 합스부르크의 부르고뉴 공작
합스부르크 왕가는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걸쳐 유럽의 많은 지역을 지배했으며, 프랑스 왕가를 제외한 유럽의 모든 왕가와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1477년 부르고뉴는 여전히 프랑스 왕가의 영지였으나, '부귀공' 마리가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면서 부르고뉴 공국의 지배권은 합스부르크 왕가에 귀속되었다. 부르고뉴는 프랑스의 영토로 인정되었지만, 네덜란드 등 합스부르크 왕가의 다른 영지처럼 실질적인 지배를 받았다. 부르고뉴에 대한 합스부르크의 지배는 1592년 코냑 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할 때까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