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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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루노 콘티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주로 측면 공격수 또는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1982년 FIFA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다. 그는 AS 로마에서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세리에 A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5회, 1984년 유러피언컵 준우승, 1991년 UEFA컵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47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고, 1986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AS 로마 유소년부에서 활동했으며, 2004-05 시즌에는 임시 감독을 맡기도 했다.

브루노 콘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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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의 콘티
이름브루노 콘티
본명브루노 콘티
별칭마라-지코
네투노의 요정
브루네토
로마자 표기Bruno Conti
출생일1955년 3월 13일
출생지네투노, 이탈리아
1.69m
포지션윙어
현재 소속팀로마 (유소년 개발 부장)
선수 경력
클럽로마 (1973–1991)
제노아 (임대, 1975–1976)
제노아 (임대, 1978–1979)
클럽 출장/득점로마: 402경기/37골
제노아 (임대): 36경기/3골 (1975-1976)
제노아 (임대): 32경기/1골 (1978-1979)
총합: 372경기/41골
국가대표팀이탈리아 (1980–1986)
국가대표팀 출장/득점37경기/5골
감독 경력
감독 클럽로마 (베레티, 1991–1992)
로마 (프리마베라, 1992–1993)
로마 (감독 대행, 2005)
수상 내역
스포츠남자 축구
대회FIFA 월드컵
우승1982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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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년 시절

로마 도 네투노 (comune) 출신인 콘티는 7남매 중 한 명이었으며, 유년 시절에 야구 선수로도 활동했다. 그의 부친 안드레아 콘티는 벽돌공이었다.

3. 클럽 경력

브루노 콘티는 어린 시절 야구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미국의 학교로부터 장학금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축구를 시작했다. 1973년 안치오라는 축구 클럽을 거쳐, 18세에 AS 로마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콘티는 로마에서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보내며, 제노아로 두 번 임대된 것을 제외하면 줄곧 로마에서 활약했다. 로마에서 등번호 7번을 달고 뛰며 1982-83 시즌 리그 우승과 5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 공헌했다. 1984년 유러피언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리버풀과의 승부차기에서 실축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3.1. AS 로마

콘티는 현역 시절 대부분을 로마에서 보냈다. 제노아로 임대되었던 1975-76 시즌과 1978-79 시즌을 제외하면, 1972년부터 1991년까지 로마에서 활약했다. 1974년 2월 10일, 닐스 리드홀름 감독의 지휘 아래 토리노와의 1973-74 시즌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로마에서 콘티는 7번 유니폼을 입고 우측 윙어로 활약하며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1982-83 시즌 스쿠데토 획득에 크게 기여했고, 1979년부터 1991년까지 5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특히 1984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리버풀과의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며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1년 UEFA컵 결승전 진출에도 기여했으며, 같은 해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로마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콘티는 "로마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2012년에는 로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2. 제노아 임대

콘티는 1975-76 시즌과 1978-79 시즌에 제노아로 임대되었다. 1975-76 시즌에는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세리에 A 승격에 기여했다.

4. 국가대표팀 경력

콘티는 1980년 10월 11일, 룩셈부르크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이탈리아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80년 11월 15일에는 토리노에서 열린 유고슬라비아와의 1982년 월드컵 예선전 홈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그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노련하고 경기 방식이 유사했던 국가대표팀 선배 카우시오의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1982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콘티 (앞줄 왼쪽 2번째)
1982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콘티 (앞줄 왼쪽 2번째)


콘티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페루와의 1차 조별 리그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는 31분 만에 경고를 받았지만, 마르코 타르델리의 추가골을 도왔고, 혼자서 이탈리아의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그는 독일 수비진 우측을 중앙선부터 파고들어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에게 공을 연결했고, 알토벨리는 이 공을 81분에 골로 연결했다. 또한 페널티킥을 얻어냈지만, 카브리니가 실축했다.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 3-1 완승을 거두고 통산 3번째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콘티는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빠른 속도, 우아함, 창의력, 영향력, 그리고 기술력을 선보여 "마라-지쿠"(Mara-Zico, 마라도나와 지쿠에서 따온 별명)라는 별명이 월드컵 기간에 붙었다. 대회 종료 후, 펠레는 콘티가 대회 최고의 선수였다고 평가하며, 그가 세계 최고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덧붙였다.

콘티는 유로 1984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1980년대에도 계속해서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4.1.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대한민국

콘티는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이탈리아는 16강에서 프랑스에게 패배했고, 엔초 베아르초트 감독이 사임하면서 콘티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이 경기는 콘티의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였다.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콘티의 역할은 로베르토 도나도니에게 계승되었다.

5. 은퇴 후

콘티는 은퇴 후에도 로마 유소년부 기술진으로 남았다. 2004-05 시즌루이지 델네리 감독이 팀을 떠나자, 콘티는 유소년부 감독에서 1군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정식 감독 면허가 없었지만, 구단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월드컵 우승 경력 덕분에 세리에 A 감독 면허 시험을 면제받았다. 그는 로마를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과 UEFA컵 진출로 이끌었다. 콘티의 임시 감독 역할은 단기간에 끝났고, 루차노 스팔레티가 후임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콘티는 로마의 단장(Direttore tecnico)을 맡았고, 현재는 유소년 개발부장(Responsabile del Settore Giovanile)을 맡고 있다.

콘티는 축구 전자 오락 FIFA 14의 고전 선수단원으로 등장하는데, 다국적 거성 선수단에 같은 이탈리아인인 자친토 파케티, 잔니 리베라, 프란코 바레시와 함께 등장한다.

6. 경기 방식

주로 공격진에서 측면 공격수미드필더를 맡는 콘티는 전성기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이자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측면 선수였으며, 혹자들에게는 이탈리아의 최고 우측면 선수로 평가받는다. 왼발잡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양쪽 측면에서 활약할 수 있었고, 중원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기도 했는데, 주로 우측의 중원 외곽에 배치되었다. 신체조건이 작은 측면 선수로, 호리호리한 체구의 콘티는 빠르고, 민첩하며,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근면한 선수로, 기술력이 우수하며, 주력 있고, 공몰이 능력에 두각을 나타내며, 시야, 공넘김, 그리고 공배급을 통해 동료의 기회를 창출하고 중요한 도움 제공원이기도 했으며, 플레이메이커로 최적화되어 있었다. 드리블의 명수로 스피드가 뛰어났으며, 플레이는 상상력이 풍부했고, 동료에게 많은 어시스트를 제공했고,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눈에 띄는 속도, 체력, 제어력, 우아함, 그리고 양 발을 다재다능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그는 주력으로 선수들을 쉽게 제치고 헛다리집기 같은 기술로 상대 선수를 쉽게 농락했다. 전술적 이지도도 있어, 그는 위치 선정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그는 측면을 질주하여 견제를 뚫고 공을 동료에게 배급할 수 있었다. 비록 현역 시절 대게 많은 득점을 올리지 못했지만, 보다 창의적인 역할을 맡았고, 양 발로 강력하고 정확하게 골문을 강타할 수 있었다.

7. 사생활

콘티는 라우라와 결혼하여 다니엘레와 안드레아 두 아들을 두었으며, 이들 모두 전직 축구 선수이다. 그의 손자이자 다니엘레의 아들인 브루노 콘티 2세는 현재 칼리아리 유소년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8.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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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수상
제노아세리에 B : 1975–76
로마세리에 A : 1982–83
코파 이탈리아 : 1979–80, 1980–81, 1983–84, 1985–86, 1990–91
국가대표수상
이탈리아월드컵 : 1982
개인수상
로마 명예의 전당2012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