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포서
1. 개요
사포서는 조선 시대 왕실의 채소와 과일 등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1466년 설치되어 호조 산하에 있었으며, 1882년 폐지될 때까지 왕실에 식자재를 공급하고 공납을 징수하는 역할을 했다. 고양 일대에 밭을 두어 채소를 재배하고, 한성부 및 인근 주민을 동원하여 인력을 충당했으며, 겨울철에는 온실 재배를 하기도 했다. 사포서는 전답을 개인에게 임대하거나, 직접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은 공납으로 징수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과도한 공납으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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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조선의 행정기관 -
포도청
포도청은 조선시대에 도적을 잡고 치안을 유지하던 관청으로, 성종 때 임시직으로 시작하여 좌·우 포도청으로 나뉘어 운영되다가 갑오경장 때 경무청으로 개편되며 폐지되었으며, 천주교 박해에도 관여하였다. -
조선의 행정기관 -
승정원
승정원은 조선시대에 왕명 출납을 담당한 국왕 직속 비서 기관으로, 중추원에서 시작하여 승추부로 확대 후 다시 승정원으로 개편되어 육조 업무 분담, 국정 자문, 정보 기관 역할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다 갑오개혁 이후 승선원을 거쳐 궁내부 시종원으로 업무가 이관되었다. -
나라별 정부 기관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나라별 정부 기관 -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대한민국 고용노동부는 고용, 노동 관련 사무를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사회부 노동국에서 출발하여 노동청, 노동부를 거쳐 2010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고용정책, 근로조건, 노사관계, 산업안전보건 등의 업무를 관장한다.
2. 역사
조선 초 왕실에서는 침장 채소를 담당하는 침장고를 두었다. 1405년(태종 5년) 공조 예하에 설치되었으며, 실무책임자인 제거(提擧)와 별좌(別坐), 향상(向上), 별감(別監) 등의 임기는 1년이었으나, 업무 영속성을 위해 2인 중 1인만 교체되었다. 침장고는 태종 시기 혁파와 재설치를 반복하였다.
1466년(세조 12년)에는 각종 과실과 채소, 밭 관리를 위해 사포서가 설치되어 침장고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였으며, 호조 산하에 있었다. 1712년(경종 1년)에는 화재로 사포서의 서사와 창고가 전소되기도 하였다. 사포서는 1882년(고종 19년)까지 유지되다가 혁파되었고, 공물 수납은 사옹원과 봉상시로 이관되었다.
2.1. 조선 초기 침장고
조선은 초기 침장고를 두어 왕실에서 필요한 채소를 담당하게 하였다. 침장은 김장을 뜻한다. 설치 당시 실무책임자인 제거(提擧)와 그 휘하의 별좌(別坐), 향상(向上), 별감(別監) 등의 임기는 1년이었으나 업무의 영속성을 위해 한 해에 2인 중 1인만이 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1405년(태종 5년) 공조 예하에 두었다. 태종 시기 침장고는 혁파하여 왕실의 각 전(殿)에 나누어 배치하였다가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였다.
1466년(세조 12년) 각종 과실과 채소, 밭을 관리할 사포서를 세울때 기존의 침장고 역할도 함께 하도록 하여 호조 아래에 두었다.
2.2. 사포서 설치와 운영
조선 초 왕실에서는 침장 채소를 담당하는 침장고를 두었다. 1405년(태종 5년) 공조 예하에 설치되었으며, 실무책임자인 제거(提擧)와 별좌(別坐), 향상(向上), 별감(別監) 등의 임기는 1년이었으나, 업무 영속성을 위해 2인 중 1인만 교체되었다. 침장고는 태종 시기 혁파와 재설치를 반복하였다.
1466년(세조 12년)에는 각종 과실과 채소, 밭 관리를 위해 사포서가 설치되어 침장고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였으며, 호조 산하에 있었다. 1712년(경종 1년)에는 화재로 사포서의 서사와 창고가 전소되기도 하였다. 사포서는 1882년(고종 19년)까지 유지되다가 혁파되었고, 공물 수납은 사옹원과 봉상시로 이관되었다.
3. 역할
사포서의 주요 역할은 왕실에서 쓰일 채소와 과일 등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고양 일대에 밭을 두어 채소를 길렀고 이에 필요한 인력은 한성부와 그 인근 10리의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사포서는 제철에 난 채소와 과실을 왕실의 여러 전에 공급하였는데 간혹 실수로 누락하거나 상한 과실을 올려 처벌받기도 하였다. 겨울에도 채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흙집을 지어 온실 재배를 하였다. 사포서의 전답은 개인에게 임대하여 소작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은 공납으로 징수하였다. 공납지는 주로 경기도 일원이었으며 조선 성종 시기 사포서가 징수한 공물은 곡초 2천 4백 84동 정도였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과중한 공납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인삼이나 산삼과 같은 일부 약재도 관장하였다.
3.1. 왕실 식자재 공급
사포서는 왕실에서 쓰일 채소와 과일 등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 고양 일대에 밭을 두어 채소를 길렀고 이에 필요한 인력은 한성부와 그 인근 10리의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사포서는 제철에 난 채소와 과실을 왕실의 여러 전에 공급하였는데 간혹 실수로 누락하거나 상한 과실을 올려 처벌받기도 하였다. 겨울에도 채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흙집을 지어 온실 재배를 하였다.
사포서의 전답은 개인에게 임대하여 소작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은 공납으로 징수하였다. 공납지는 주로 경기도 일원이었으며 조선 성종 시기 사포서가 징수한 공물은 곡초 2천 4백 84동 정도였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과중한 공납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인삼이나 산삼과 같은 일부 약재도 관장하였다.
3.2. 공납 징수와 사회 문제
사포서는 왕실에서 쓰일 채소와 과일 등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 고양 일대에 밭을 두어 채소를 길렀고 이에 필요한 인력은 한성부와 그 인근 10리의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제철에 난 채소와 과실을 왕실의 여러 전에 공급하였는데 간혹 실수로 누락하거나 상한 과실을 올려 처벌받기도 하였다. 겨울에도 채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흙집을 지어 온실 재배를 하였다.
사포서의 전답은 개인에게 임대하여 소작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은 공납으로 징수하였으며, 공납지는 주로 경기도 일원이었다. 조선 성종 시기 사포서가 징수한 공물은 곡초 2천 4백 84동 정도였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과중한 공납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인삼이나 산삼과 같은 일부 약재도 관장하였다.
4. 조직
경국대전 당시 사포서의 실무 책임자인 사포는 정6품이었으나, 대전회통에서 종6품으로 삭감되었다. 제조(提調)를 제외하고 7인 정도의 관리가 실무를 맡았다. 사포서에 속한 이속으로는 서원(書員) 5인, 고직(庫直) 1인, 사령 5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