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중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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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중팔책은 사카모토 료마가 가쓰 가이슈의 영향을 받아 구상한 8가지 개혁안이다. 주요 내용은 정권의 조정 반환, 의회 개설, 인재 등용, 외교 및 국방 강화, 경제 및 사회 개혁 등이다. 이 개혁안은 삿초 동맹, 대정봉환 건백서, 5개조 서문으로 이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선중팔책의 성립 과정과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이 문서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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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중팔책 | |
---|---|
개요 | |
명칭 | 선중팔책 (船中八策) |
로마자 표기 | Senchu Hassetsaku |
종류 | 정강 |
성격 | 일본의 정치 구상 |
제안자 | 고토 쇼지로 |
기초 | 사카모토 료마의 구상 |
작성 시기 | 1867년 |
배경 | |
시대적 배경 | 에도 막부 말기 |
주요 내용 | 대정봉환, 사쓰마 번, 조슈 번의 군사 동맹 |
내용 | |
1책 | 천하의 정권을 조정에 되돌려 바치고, 모든 정령은 조정에서 행할 것 |
2책 | 상하 의정소를 설치하여, 모든 정사는 공정하게 여론에 따라 결정할 것 |
3책 |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관직을 주고, 지금까지처럼 임명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 |
4책 | 외국과의 약속을 새롭게 맺어, 널리 공법을 세울 것 |
5책 | 해군을 확장할 것 |
6책 | 어친병을 설치할 것 |
7책 | 금은 화폐의 비율을 외국과 같게 할 것 |
8책 | 널리 해군 인재를 구할 것 |
2. 내용
사카모토 료마가 제시한 선중팔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번호 | 원문 | 번역문 | 현대어 번역 |
---|---|---|---|
1 | 天下ノ政権ヲ朝廷ニ奉還セシメ、政令宜シク朝廷ヨリ出ヅベキ事|천하의 정권을 조정에 봉환하고, 새 정령을 조정에서 세워야 한다.일본어 | 천하의 정권을 조정에 봉환하고, 새 정령을 조정에서 세워야 한다. | 정권을 조정에 반환하고, 새로운 법은 조정에서 정해질 것(대정봉환) |
2 | 上下議政局ヲ設ケ、議員ヲ置キテ万機ヲ参賛セシメ、万機宜シク公議ニ決スベキ事|상하의정국을 설치하고 의원을 두어 만기를 시기에 맞게 공의로 결정해야 한다.일본어 | 상하의정국을 설치하고 의원을 두어 만기를 시기에 맞게 공의로 결정해야 한다. | 상원・하원의 양원제를 실시하고, 의원을 두어, 모든 것을 공적으로 논의하여 결정할 것(의회 개설) |
3 | 有材ノ公卿諸侯及ビ天下ノ人材ヲ顧問ニ備ヘ官爵ヲ賜ヒ、宜シク従来有名無実ノ官ヲ除クベキ事|유능한 공경제후와 천하의 인재를 고문으로 삼아 관직을 내리고 종래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해야 한다.일본어 | 유능한 공경제후와 천하의 인재를 고문으로 삼아 관직을 내리고 종래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해야 한다. | 유능한 공가(公家)와 여러 번(藩), 무명의 인재들을 정치에 참여시키고, 이름뿐이고 실질이 없는 자들을 제거할 것(관제 개혁) |
4 | 外国ノ交際広ク公議ヲ採リ、新ニ至当ノ規約ヲ立ツベキ事|외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공의를 모으고 새롭고 지당한 규약을 세워야 한다.일본어 | 외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공의를 모으고 새롭고 지당한 규약을 세워야 한다. | 외국과의 교류는, 널리 의견을 구하는 것으로, 새롭게 규약을 정할 것(조약 개정) |
5 | 古来ノ律令ヲ折衷シ、新ニ無窮ノ大典ヲ撰定スベキ事|옛 율령을 폐지하고, 새롭고 무궁한 대전을 제정해야 한다.일본어 | 옛 율령을 폐지하고, 새롭고 무궁한 대전을 제정해야 한다. | 예로부터의 율법의 좋은 점을 모아, 영원히 전해질 새로운 법률을 정할 것(헌법 제정) |
6 | 海軍宜シク拡張スベキ事|해군을 확장해야 한다.일본어 | 해군을 확장해야 한다. | 해군을 확장할 것 |
7 | 御親兵ヲ置キ、帝都ヲ守衛セシムベキ事|어친병을 설치하여 제도를 수비하게 한다.일본어 | 어친병을 설치하여 제도를 수비하게 한다. | 조정을 위한 병사를 두고, 도성을 지키게 할 것 |
8 | 金銀物貨宜シク外国ト平均ノ法ヲ設クベキ事|금은의 시세를 외국과 균형을 맞추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일본어 | 금은의 시세를 외국과 균형을 맞추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 금이나 은이나 통화 등의 환율에 관해, 외국과 평등하게 거래할 수 있는 법을 정할 것 |
이러한 내용은 가쓰 가이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삿초 동맹, 도사번의 대정봉환 건백서, 5개조 서문으로 이어지는 탁월한 생각으로 평가받는다.[3]
2. 1. 정치 개혁
天下ノ政権ヲ朝廷ニ奉還セシメ、政令宜シク朝廷ヨリ出ヅベキ事|1|천하의 정권을 조정에 봉환하고, 새 정령을 조정에서 세워야 한다.일본어는 내용으로, 에도 막부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환하고 조정 중심의 새로운 정치 체제를 수립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이는 대정봉환으로 이어진다.[3]上下議政局ヲ設ケ、議員ヲ置キテ万機ヲ参賛セシメ、万機宜シク公議ニ決スベキ事|1|상하의정국을 설치하고 의원을 두어 만기를 시기에 맞게 공의로 결정해야 한다.일본어는 내용으로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의회를 설치하여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하였다.[3]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제 이념과도 연결된다.
有材ノ公卿諸侯及ビ天下ノ人材ヲ顧問ニ備ヘ官爵ヲ賜ヒ、宜シク従来有名無実ノ官ヲ除クベキ事|1|유능한 공경제후와 천하의 인재를 고문으로 삼아 관직을 내리고 종래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해야 한다.일본어는 내용으로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고, 유명무실한 관직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였다.[3] 이는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의 영향과도 맞닿아 있다.
2. 2. 외교 및 국방
외국과의 교류는 널리 공의를 채택하여 새롭게 지당한 규약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3] 이는 서구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고 자주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해군을 확장해야 한다는 내용[3]과 어친병(御親兵)을 두어 제도(帝都)를 수호하게 한다는 내용[3]은 근대적인 해군을 건설하여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고, 친위병을 설치하여 수도를 방위하며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2. 3. 경제 및 사회 개혁
고래(古來)의 율령(律令)을 절충(折衷)하여 새롭고 무궁(無窮)한 대전(大典)을 선정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여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함을 제시하였다[3]. 이는 대한제국의 광무개혁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금은(金銀) 물화(物貨)는 마땅히 외국과 균형(平均) 있는 법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으로, 금은 시세를 안정시키고 국제적인 통화 질서에 편입되어야 함을 제시하였다[3].
3. 연구 및 역사적 의의
사카모토 료마가 직접 작성한 선중팔책 원본은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료마 사후 여러 문헌을 통해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4] 료마의 스승이었던 가쓰 가이슈의 영향이 컸으며, 삿초 동맹, 도사번의 대정봉환 건백서, 5개조 서문까지 이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어, 탁월한 생각으로 평가받아 왔다.[3]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선중팔책은 료마 개인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당시 개혁 세력의 공통된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오야마 타다마사는 2006년 논문에서 "(료마가 '선중팔책'으로 정권 반환을 건의했다고 여겨지는) 사실이 사료에 근거하여 논증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언급했다.[4]
지노 후미야는 저서 『「사카모토 료마」의 탄생 선중팔책과 사카자키 시란』(2013년)에서, 「선중팔책」이 후세에 회자되는 문서로서 성립하는 과정을 지적했다. 그는 "사카모토 료마가 대정봉환을 고토 쇼지로에게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수차례의 인용을 반복하는 동안에 '선중팔책'이라는 문서로 결실되어 사시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마치다 아키히로는 2019년 저서에서 지노 후미야의 연구를 바탕으로 "선중팔책"은 부정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선중팔책"이 실존하지 않았다는 것이 곧 료마가 대정봉환 건의와 무관하다거나 그 내용이 료마 자신의 지론과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노 후미야는 "대정봉환론"이 료마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료마도 그러한 논의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선중팔책은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이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대정봉환과 의회 설치 등의 내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 강령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3. 1. 비판적 관점
사카모토 료마가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선중팔책은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정책으로 이어져,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대한 침략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는다.[4] 또한, 선중팔책의 내용 중 일부는 이상적인 제안에 그쳤으며, 실제 메이지 정부의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4]선중팔책의 성립 과정에 대한 연구는 현재도 진행 중이며, 그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4] 아오야마 타다마사는 2006년 논문에서 "(료마가 '선중팔책'으로 정권 반환을 건의했다고 여겨지는) 사실이 사료에 근거하여 논증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언급했다.
지노 후미야는 저서 『「사카모토 료마」의 탄생 선중팔책과 사카자키 시란』(2013년)에서, 메이지 이후 주요 료마의 전기를 비교 대조하여, 「선중팔책」이 후세에 회자되는 문서로서 성립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연도 | 인물 | 사건 및 내용 |
---|---|---|
1896 | 히로마츠 노리에(료마의 장언니·치즈의 손자) | 『사카모토 료마』(민우사) 간행. 료마가 교토에서 써서 고토 쇼지로에게 제시한 「건의안 11개조」를 처음으로 기록. (9~11개조는 "불상") |
1897 | 사카자키 시란 | 도쿄 신문에 「고토 백작의 소전」 연재. 「건의 8책의 초안」을 료마가 고토에게 제시하는 장면을 묘사. (제시 시기는 명기되지 않음) |
1900 | 사카자키 시란 | 『소년 독본·사카모토 료마』(하쿠분칸)에서 「8책」이라는 제목으로, 교토 도착 후에 쓰여진 것으로 기록. |
1907 | 궁내성 | 『순난록고 권 제오십사 사카모토 나오카타』 간행. 거의 현재와 같은 기술의 「건의안 8조」를 기재. 집필 시기는 교토 도착 후, 료마가 나가오카 겐키치에게 기안하게 한 것으로 기록. |
1909 | 사카자키 시란 | 「사담회 예회」 강연에서, 고토와 료마가 나가사키에서 교토로 향하는 배 안에서 협의한 결과 「시무 8책」이라는 문서가 생겼다고 언급. (배 안에서 썼다는 언급은 없음) |
1912 | 즈이잔회 | 『유신 도사근왕사』(집필은 사카자키 시란) 편찬·간행. 1907년(메이지 40년) 전후부터 알려지게 된 「신정부 강령 8책」을 게이오 3년 6월에 만들어진 「사카모토의 8책」으로 하고, 종래의 「8책」을 「별도로 전해지는 8책의 원고」로 하여 이문 취급. |
1913 | 오카베 세이이치 | 사담회 강연에서, 나가사키에서 상경할 때 고토와 협의한 료마가 「시세 8책」을 썼다고 하여 「신정부 강령 8책」의 내용을 언급하고, 현재의 「선중팔책」을 상경 후에 손질한 것이라고 설명. |
1916 | 오카베 세이이치 | 「사카모토·나카오카 양 선생 50년제 기념 강연회」 강연에서, "상경하는 배 안에서 입안했다"고 하는 「선중팔책」(내용은 앞의 강연과 마찬가지로, 「신정부 강령 8책」)이라고 소개. 지노에 따르면 이것이 「선중팔책」이라는 용어의 초출. |
1926 | 이와사키 쿄카와(편) | 『사카모토 료마 관계 문서 제1』(일본 사적 협회 총서)에서, 「신정부 강령 8책」은 날짜대로 게이오 3년 11월의 「료마 자필 신정부 강령 8책」으로 하는 한편, 현재의 「선중팔책」을 「6월 15일에 교토에서 확정된 신정부 강령 8책」으로 하여, 배 안에서 기안된 「선중팔책」은 그 초고(분본)로 기록. |
1929 | 히라오 미치오 | 『사카모토 료마 해원대 시말기』에서, 「선중팔책」을 나가사키에서 상경 중인 배 안에서 기안된 것으로 하여, 그 이후 이것이 사시로 취급. |
무쓰 무네미쓰나 고토 쇼지로의 회상, 나가오카 겐키치의 당시 일기 등에는 「선중팔책」에 해당하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지노는 "사카모토 료마가 대정봉환을 고토 쇼지로에게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수차례의 인용을 반복하는 동안에 '선중팔책'이라는 문서로 결실되어 사시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막말사 연구자인 마치다 아키히로는 2019년 저서에서, 이 지노의 연구에 의해 「선중팔책」은 "부정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참조
[1]
뉴스
坂本龍馬は教科書に必要か 大政奉還や薩長同盟、史実は
https://www.asahi.co[...]
2018-01-10
[2]
서적
明治維新の原動力 坂本竜馬
講談社
[3]
논문
[4]
논문
[5]
간행물
明治・大正・戦前主要新聞系統図
https://rnavi.ndl.go[...]
国立国会図書館
[6]
서적
高知県謎解き散歩
株式会社新往来社
201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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