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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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두율은 194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으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부터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여 조선로동당에 가입했으며, 2003년 한국민주화운동재단의 초청으로 귀국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간첩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방북 사실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철학, 사회학 분야의 저술 활동을 활발히 펼쳤으며, 2004년 안중근평화상을 수상했다.

송두율 - [인물]에 관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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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67년 독일로 유학하여 1972년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도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해 뮌스터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로 채용되어 정치경제학, 사회학방법론, 후진국사회학을 강의했으며, 뮌스터에서 정정희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준과 린을 두었다. 1974년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조직하여 의장을 맡았으며, 본에서 벌어진 유신 독재 반대 시위에 적극 참가하였다. 1977년 베를린 자유대학으로 옮겨 활동하였다.

1981년 공산주의에 대해 내재적 방법으로 비판적인 분석을 한 논문 '소련과 중국'을 발표하였고, 1982년 사회학 교수자격을 받았다. 1988년1989년에는 미국 롱아일랜드대학 철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였다. 1994년부터 베를린 훔볼트 대학 교수로 채용되었다. 1997년 독일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1973년 북한을 처음 방문했고,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후 총 18회 북한을 방문하였다. 1991년에는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강의하였으며 김일성과 만났다. 1994년 김일성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하여 북한을 방문하였다.

2003년 대한민국에 귀국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1심에서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2004년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어 독일로 출국했다. 2008년 상고심에서 일부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고, 같은 해 서울고법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2.1. 유년 시절과 교육

1944년 10월 12일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에서 재일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제주도 출신이다. 아버지 송계범은 일본 도쿄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직전 경성제국대학 물리학부에서 근무하였다. 송계범이 한국 전쟁 이후 전남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송두율은 1950년부터 1960년까지 광주에 거주하며 광주 중앙초등학교와 서중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 서울로 이주해, 경기고등학교 입시에 도전했지만 낙방하고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동고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훗날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된 최재석이었다. 교사 송찬식(후에 국민대 사학과교수)의 권유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1963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을 하면서 대학 시절 59학번이던 시인 김지하와 알게 되었다.

2.2. 독일 유학

1967년 독일로 유학해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도로 1972년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헤겔, 마르크스, 베버에게서 본 아시아 이해"이다. 1972년 뮌스터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어 정치경제학, 사회학방법론, 후진국사회학 등을 강의했다. 1982년 뮌스터 대학교에서 사회학 교수 자격(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교수 자격 논문 제목은 "소련과 중국-사회주의내에서 평등화와 차등화"이다.

2.3. 북한 방문 및 논란

1973년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했고,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였다. 이후 총 18회 북한을 방문하였다. 그는 북한 방문이 당시 서독에서 동독과의 교류를 위한 공식 정책인 오스트폴리틱(Ostpolitik)의 영향과 북한 입국에는 필수적인 요건으로 노동당 가입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91년에는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강의하였으며 김일성과 만났다. 1994년 김일성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하여 북한을 방문하였다.

2.4. 대한민국 귀국과 재판

2003년 한국민주화운동재단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에 귀국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검찰은 그가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고 주장하며 간첩 혐의를 적용했다.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이대경 부장판사)는 2003년 그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는 심문 과정에서 '김일성 주석은 살아온 과정 등을 볼 때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나도 존경한다'고 진술하였다.

2004년 7월 21일 2심 재판부(서울고법, 김용균 부장판사)는 기소된 사건 내용 중 방북 사실을 제외한 간첩 혐의 등 대부분을 무죄로 판정하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그는 구속 9개월 만에 석방되었고, 2004년 8월 초 부인과 함께 독일로 출국했다.

2008년 4월 17일 상고심(2004도4899)에서 외국인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북한에 간 것은 국가보안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로 일부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2008년 8월 24일 서울고법은 확정 판결을 내렸다.

한편, 송두율은 수감 중 부당한 계구 사용과 변호인 접견 불허 등으로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국가와 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일부 승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2.5. 재판 이후

2004년 7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송두율은 서울구치소 수감 중 포승줄과 수갑 사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를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05년 1월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2단독 최지수 판사는 "도주나 폭행 우려가 없었는데도 계구를 사용한 것은 인권 침해"라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 송두율에게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또한, 서울중앙지법 민사 88단독 김래니 판사는 변호인 입회 불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은 인권보장과 방어준비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권리"라며 국가와 관련 검사 4명에게 총 9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송두율 측은 검찰의 변호인 입회 불허 결정에 대해 준항고를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2008년 4월 17일, 대법원은 외국인이 외국에서 북한을 방문한 것은 국가보안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부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고, 같은 해 8월 24일 서울고법에서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2009년 여름 학기를 끝으로 송두율은 뮌스터 대학교에서 퇴임했다.

3. 사회 운동

1960년대 독일 유학 중 박정희 정권이 시도한 유신 체제 개헌 반대 운동을 주도하여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다. 이후 독일에 머물며 남한과 북한 사회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일련의 저서를 썼다. 그 안에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내재적 접근론을 내세우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5년부터 베이징에서 남북 학자들이 만나 학술 교류를 하는 남북/북한 학술 회의를 주도했다.

4. 사상과 학문적 업적

1960년대 독일 유학 중 박정희 정권이 시도한 유신 체제 개헌 반대 운동을 주도하여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다. 이후 독일에 머물며 남한과 북한 사회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일련의 저서를 썼다. 그 안에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내재적 접근론을 내세우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5년부터 베이징에서 남북 학자들이 만나 학술적인 교류를 갖는 남북한 학술 회의를 주도했다.

5. 평가 및 비판

송두율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긍정적 평가로는 1960년대 독일 유학 중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개헌 반대 운동을 주도하여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으나, 이후 독일에 머물며 남북한 사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내재적 접근론을 제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있다. 1995년부터 베이징에서 남북 학술 회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부정적 평가로는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김일성을 직접 만났으며, 김일성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친북 행위가 비판받았다. 1973년 첫 방북 당시 조선로동당에 가입한 것에 대해서는 북한 입국에 필수적인 요건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과 활동은 북한 체제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비판과 내재적 접근론이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03년 귀국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재판을 받은 '송두율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념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국제앰네스티는 판결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탈북자 황장엽은 송두율이 조선로동당 정치국원 '김철수'라고 주장했고, 이에 송두율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황장엽의 주장이 근거 없다고 판단했지만, 송두율의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송두율의 주장이 일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5.1. 긍정적 평가

1960년대 독일 유학 중 박정희 정권이 시도한 유신 체제 개헌 반대 운동을 주도하여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다. 이후 독일에 머물며 남한과 북한 사회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일련의 저서를 썼다. 그 안에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내재적 접근론을 내세우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5년부터 베이징에서 남북 학자들이 만나 학술 교류를 갖는 남북 학술 회의를 주도했다.

5.2. 부정적 평가

송두율은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김일성을 직접 만났으며, 김일성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친북 행위로 비판받았다. 특히 1973년 첫 방북 당시 조선로동당에 가입했는데, 이는 당시 북한 입국에 필수적인 요건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과 활동은 북한 체제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내재적 접근론을 통해 북한 사회를 이해하려 했지만, 이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03년 귀국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송두율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은 이념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국제앰네스티는 판결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탈북자 황장엽은 송두율이 조선로동당 정치국원 '김철수'라고 주장했고, 이에 송두율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황장엽의 주장이 근거 없다고 판단했지만, 송두율의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송두율의 주장이 일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6. 수상

* 2004년: 안중근평화상

7. 저서 및 논문

송두율은 학술,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독일어로 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주요 저서 중 하나는 1972년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인 Aufklärung und Emanzipation : Die Bedeutung der asiatischen Welt bei Hegel, Marx und M. Weber독일어이며, 1987년 베를린 익스프레스에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그의 저서 및 논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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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연도제목출판사ISBN / OCLC
1972Aufklärung und Emanzipation : Die Bedeutung der asiatischen Welt bei Hegel, Marx und M. Weber독일어 (박사 학위 논문)프랑크푸르트 대학교OCLC 1012781
1980Wachstum, Diktatur und Ideologie in Korea독일어 (M. Y. 조 공저)슈투디엔펠라크 브록마이어ISBN 9783883391038
1984Sowjetunion und China독일어캠퍼스-펠라크ISBN 3-593-33351-1
1984Korea: Auf den Spuren Japans?독일어한국 연구 협회OCLC 8462959
1985Politik und Gesellschaft in der Republik Korea독일어한국 연구 협회OCLC 46021243
1985Ist Japan das Modell für Deutschland?독일어쉴러ISBN 3-925067-51-5
1988Aufklärung und Emanzipation: Die Bedeutung der asiatischen Welt bei Hegel, Marx und Max Weber독일어 (박사 논문 개정판)익스프레스ISBN 9783885484264
1988Archäologie der Postmoderne: Eine ost-westliche Begegnung독일어베를린 자유 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소OCLC 75347443
1990Metamorphosen der Moderne독일어뷔어프ISBN 3-923881-36-3
1990Kapitalismus, soziale Bewegungen und Gesellschaftsformation in Korea독일어 (라이너 베르니히 공저)노르베르트ISBN 3-923881-41-X
1993Das koreanische Problem der Wiedervereinigung im internationalen Kontext und in der regionalen Perspektive독일어 (B. 몰트만, R. 베르니히 편집, "독일과 한국. 분단 속의 만남. 복종 없는 소통"에 수록)아놀드샤이너 프로토콜 No. 2OCLC 33475353
1995Kaleidoskop Korea독일어세콜로ISBN 3-929979-19-5
2002Schattierungen der Moderne독일어파피로사 페어라그스게젤ISBN 3-89438-255-4
2004Wohin geht Nordkorea? Gesellschaftliche Situation, Entwicklungstendenzen, Perspektiven독일어 (최현덕, 라이너 베르니히 공저)파피로사 페어라그스게젤ISBN 3-89438-309-7
2012Korea: Von der Kolonie zum geteilten Land독일어 (라이너 베르니히 공저)빈 프로미디어ISBN 978-3-85371-340-2
-Ist das japanische Modell eine Alternative?독일어텔로스 52호 (여름)ISSN 0090-6514

7.1. 주요 저서

* Aufklärung und Emanzipation - Hegel, Marx und Weber in der asiatischen Welt독일어, 한길사, 1988 (236쪽) - 원문을 번역하고 ‘1985년 추고’를 덧붙임.
* Aufklärung und Emanzipation독일어, 당대, 1996 (264쪽) : 위 번역본에 2편의 논문을 덧붙인 개정증보판으로 한국어판 ‘정본’.
* Sowjetunion und China : Egalisierung und Differenzierung im Sozialismus독일어, Frankfurt am Main:Campus, 1984 - 1981년 제출한 교수 자격 논문(Habilitation-Schrift)
* 윤도현, 이성백 옮김, Sowjetunion und China - Sozialismus독일어 사회에서의 노동자·농민·지식인, 한길사, 1990 (302쪽)
* Metamorphosen der Moderne : Betrachtungen eines Grenzgängers Asien und Europa독일어, 한길사, 1990 (324쪽)
*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 한길사, 1991 (228쪽)
* 역사는 끝났는가, 당대, 1995 (378쪽): “현대와 사상”에서 5편,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에서 3편을 재수록.
*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한겨레신문사, 1995
* 21세기와의 대화, 한겨레신문사, 1998 (271쪽)
*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겨레신문사, 2000 (309쪽):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의 개정판을 준비하다가 새로 집필한 책.
* Schattierungen der Moderne : Ost-West-Dialoge in Philosophie, Soziologie und Politik독일어, 2002
* 경계인의 사색, 한겨레신문사, 2002 (295쪽) - 위 독일어 저서에서 5편의 글을 뽑아 이 책의 ‘4부’에 실음.
*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후마니타스, 2007
* 불타는 얼음. 경계인 송두율의 자전적 에세이, 후마니타스, 2017 (396쪽)

7.2. 박사 학위 논문

송두율은 1972년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Aufklärung und Emanzipation : Die Bedeutung der asiatischen Welt bei Hegel, Marx und M. Weber독일어이며, 지도교수는 위르겐 하버마스였다. 1987년에는 베를린 익스프레스에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