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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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슬레이드는 1960년대 중반 결성된 영국의 글램 록 밴드이다. 1970년대 초 글램 록 시대를 이끌며 "Get Down and Get With It", "Mama Weer All Crazee Now", "Cum On Feel the Noize"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진출에 실패하며 인기가 하락했지만, 1980년대 초 레딩 페스티벌 공연을 계기로 재기에 성공했다. 1990년대 초 멤버들의 탈퇴로 해체되었으며, 이후 슬레이드 II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슬레이드는 글램 록, 하드 록, 팝 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니르바나, 콰이어트 라이엇 등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슬레이드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그룹 정보
그룹 이름슬레이드
원어 이름Slade
다른 이름The N'Betweens (1966–1969)
Ambrose Slade (1969)
The Slade (1969–1970)
슬레이드 II (1992–2002)
출신지웨스트미들랜즈 울버햄프턴, 잉글랜드
장르하드 록
글램 록
활동 기간1966년–현재
레이블폰타나
폴리도르
코틸리온
RCA
CBS
치프스케이트
공식 웹사이트슬레이드 공식 웹사이트
현재 멤버
현재 멤버데이브 힐
존 베리
러셀 키프
알렉스 바인즈
이전 멤버
이전 멤버노디 홀더
짐 리
돈 파월
스티브 월리
스티브 메이킨
트레버 홀리데이
데이브 글로버
크레이그 페니
말 맥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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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월 슬레이드 클래식 라인업; 왼쪽부터 짐 리, 돈 파월, 노디 홀더, 데이브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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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슬레이드는 1970년대 초 영국 싱글 차트를 지배했으며, 위자드, 스윗, 티 렉스 등과 경쟁했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17개의 톱 20 히트곡을 기록했으며, 그중 6개가 1위를 차지했다. 특히 1973년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에브리바디"가 전 세계적으로 100만 장 이상 팔리며 골드 디스크 등급을 받았다.

1970년대 중반, 슬레이드는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70년대 후반 펑크 록의 인기 속에 잊혀져 갔으나, 1980년 레딩 페스티벌에서 오지 오스본의 대타로 공연하면서 경력이 부활했다. 이후 헤비메탈 장르에 맞춘 음악으로 1984년에 "런 러너웨이"와 "마이 오 마이"로 미국 시장을 공략했지만, 이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고 1992년 해체되었다.

2.1. 결성 초기 (1966년 ~ 1970년)

1964년, 드러머 돈 파월(Don Powell)과 기타리스트 데이브 힐은 미들랜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밴드 벤더스(The Vendors)의 멤버였다. 당시 노디 홀더(Noddy Holder)는 스티브 브렛 & 더 매버릭스(Steve Brett & the Mavericks)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보컬을 맡고 있었다. 미국의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듣고 벤더스는 방향 전환과 밴드 이름 변경을 결정, 'N 벳위언스(The 'N Betweens)라는 이름으로 더 큰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1965년, 매버릭스와 'N 벳위언스는 독일 공연을 위해 이동 중 페리에서 만났다. 파월과 힐은 홀더에게 'N 벳위언스에 합류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지만, 홀더는 거절했다. 나중에 고향인 울버햄프턴(Wolverhampton)에서 다시 만난 이들은 홀더의 합류에 동의했다. 짐 리는 이미 영입된 상태였다.

1966년, 새롭게 구성된 'N 벳위언스는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시큐리티(Security)"와 자작곡 "이블 위치맨(Evil Witchman)"을 담은 프로모션 싱글을 하일랜드 레코드(Highland Records)를 통해 발매했다. 후속 싱글 "유 베터 런(You Better Run)"은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킴 파울리(Kim Fowley)의 프로듀싱으로 발매되었다. 1966년부터 1967년까지 이 밴드의 공연은 주로 리듬 앤 블루스(R&B)와 탐라 모타운(Tamla Motown) 스타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홀더의 쇼맨십은 밴드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1967년에는 허니버스(Honeybus)의 곡 "딜라이트드 투 시 유(Delighted to See You)"를 녹음했으나, 1994년까지 발매되지 않았다.

1969년, 지역 프로모터 로저 앨런(Roger Allen)이 이 밴드를 발견하고 필립스 레코드(Philips Records)의 A&R 책임자 잭 베버스톡(Jack Baverstock)에게 알렸다. 밴드는 스탠홉 플레이스(Stanhope Place)에 있는 필립스 스튜디오에서 일주일 동안 앨범 녹음을 했고, 베버스톡은 밴드 이름을 바꾸고 런던에 기반을 둔 매니지먼트를 확보하면 폰타나 레코드(Fontana Records)와 계약할 것을 제안했다. 결국 "앰브로스 슬레이드(Ambrose Slade)"라는 이름으로 변경하는 데 동의했다. 베버스톡은 또한 존 구넬(John Gunnel)을 밴드의 에이전트로 고용했다.

1969년 스킨헤드 시절의 슬레이드왼쪽부터: 파월, 리, 홀더, 힐
1969년 스킨헤드 시절의 슬레이드
왼쪽부터: 파월, 리, 홀더, 힐


1969년 중반에 발매된 밴드의 데뷔 앨범 비기닝스(Beginnings)는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며, 연주곡 싱글 "제네시스(Genesis)"와 후속 싱글 "와일드 윈즈 아 블로잉(Wild Winds Are Blowing)"도 마찬가지였다. 앨범 녹음 중에 애니멀스(The Animals)의 베이시스트 채스 챈들러(Chas Chandler)가 밴드를 방문했다. 챈들러는 스튜디오에서 들은 음악에 감명을 받았고, 다음 날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본 후 매니지먼트를 제안했고 밴드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챈들러는 데뷔 앨범에 만족하지 않았고, 밴드가 자작곡을 쓰고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유스 패션 트렌드를 이용해 홍보 효과를 노리며 스킨헤드 스타일을 채택했지만, 축구 хулиганизм과의 부정적 연관성도 가져왔다. 1970년, 밴드는 이름을 슬레이드(Slade)로 줄이고 새로운 싱글로 "쉐이프 오브 띵스 투 컴"의 커버곡을 발매했지만,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다.

챈들러는 판매량 증진을 위해 슬레이드를 폴리도르 레코드(Polydor Records)로 이적시켰다. 밴드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 "제네시스"에 가사를 넣어 "노 후 유 아(Know Who You Are)"로 발매했지만, 이 싱글 역시 영국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으며, 1970년 말에 챈들러가 직접 프로듀싱한 앨범 플레이 잇 라우드(Play It Loud)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앨범은 나중에 팬과 평론가들로부터 재평가받아 실버 디스크를 수상했다.

2.2. 글램 록 전성시대 (1971년 ~ 1974년)

1970년, 밴드 이름을 슬레이드(Slade)로 변경하고 글램록 스타일을 도입하여 음악적 변신을 시도했다. 밴드 멤버들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1970년대 초 글램록 운동에 동참했다. 특히, 데이브 힐의 무대 의상은 이 기간 동안 주목할 만했다.

1971년, 리틀 리처드가 불렀던 보비 마찬의 노래 "겟 다운 앤 겟 위드 잇"을 커버하여 발매했다. 이 노래는 8월에 영국 차트 20위 안에 진입하여 16위까지 올랐다. 같은 해, 짐 리와 노디 홀더가 작곡한 "코즈 아이 러브 유"가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BBC 텔레비전의 탑 오브 더 팝스 출연은 슬레이드를 더 넓은 대중에게 알렸다. 1971년 11월, NME는 슬레이드가 텔레비전 시리즈와 미국 투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수백만 달러 규모의 캠페인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1972년 초, "룩 왓 유 던"이 발매되어 4위에 올랐고, 3월에는 라이브 앨범 슬레이드 얼라이브!가 발매되어 영국 앨범 차트에서 52주 동안 머물며 2위에 올랐다. 이 앨범은 피카딜리에 새로 지어진 스튜디오에서 300명의 팬클럽 회원 앞에서 3일 밤에 걸쳐 녹음되었다. 오늘날 이 앨범은 역대 최고의 라이브 앨범 중 하나로 여겨진다.

두 달 후, 밴드는 "테이크 미 백 홈"을 발매하여 슬레이드의 두 번째 영국 1위 곡이 되었고, 빌보드 핫 100에서 97위에 올랐다. 같은 해 후반에 "마마 위어 올 크레이지 나우"를 발매하며 세 번째 1위를 차지했다.

1972년 11월에 발매된 슬레이드드? 앨범은 영국과 호주에서 모두 1위에 올랐고, 미국에서는 69위에 올랐다. 슬레이드 얼라이브!슬레이드드?는 모두 글램록 시대 최고의 앨범 두 개로 널리 여겨진다. 1972년의 마지막 싱글인 "굿바이 투 제인"은 영국 차트에서 2위에 올랐다.

1973년 초, "컴 온 필 더 노이즈"가 발매되어 곧바로 1위에 올랐다. 이는 1969년 비틀즈의 "겟 백" 이후 처음으로 싱글이 1위에 오른 것이다. 후속 싱글 "스크위즈 미, 플리즈 미"는 다시 1위에 올랐다. 1973년 7월, 돈 파월이 교통사고를 당해 슬레이드의 미래가 불확실해졌지만, 파월은 회복하여 밴드에 다시 합류했다. 파월이 회복하는 동안, 밴드는 슬레이디스트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고, 발매 첫 주에 영국과 호주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새로운 싱글 "마이 프렌드 스탠"도 발매되어 영국 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한 노래 "메리 크리스마스 에브리바디"는 1973년 슬레이드의 마지막 싱글이었고, 영국에서 밴드의 마지막 1위 곡이 되었다. 이 노래는 슬레이드의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고, 계속 인기를 얻어 여러 번 발매되어 여러 차례 차트에 진입했다.

1974년 2월, 올드, 뉴, 보로우드 앤 블루 앨범을 발매했고, 영국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다음 달 새로운 싱글 "에브리데이"가 발매되었고, 영국 차트에서 3위에 올랐다. 다음 싱글인 "더 뱅잉 맨"은 다시 3위를 기록했다.

노디 홀더(오른쪽)와 데이브 힐(왼쪽), 1973년 전성기 시절의 모습으로, 그들의 극단적인 글램록 패션을 보여준다.
노디 홀더(오른쪽)와 데이브 힐(왼쪽), 1973년 전성기 시절의 모습으로, 그들의 극단적인 글램록 패션을 보여준다.

2.3. 미국 진출 시도와 인기 하락 (1975년 ~ 1979년)

1975년, 슬레이드는 미국 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75년 중반, 미국에서의 성공 부재에 낙담한 슬레이드는 미국으로 영구 이주를 결정하고, 라이브 공연을 통해 명성을 쌓으려 했다. 1975년 후반과 1976년 내내 슬레이드는 애로스미스, ZZ 탑, 블랙 사바스 등과 함께 미국을 순회 공연했다.

공연 사이에 노디 홀더와 짐 리는 미국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은 새 앨범 누바디스 풀스를 작업했다. 이 앨범은 소울 음악, 컨트리 음악, 펑크(funk) 음악의 요소들을 담고 있었다. 1976년 3월에 발매되었지만, 미국에서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했고 영국에서도 14위에 그쳤다.

1977년 노르웨이에서 공연하는 슬레이드
1977년 노르웨이에서 공연하는 슬레이드


슬레이드의 미국 진출은 실패로 여겨졌지만, 밴드는 향상되고 활기를 되찾았다고 느꼈다. 그러나 1977년 초 영국으로 돌아온 슬레이드는 펑크 록이 새로운 인기 록 스타일이 되었고 자신들은 잊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77년, 번 레코드와 계약한 슬레이드는 싱글 "집시 로드호그"를 발매했지만, BBC에 의해 금지되어 영국 차트 48위에 머물렀다. 앨범 슬레이드는 어떻게 되었나는 영국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당시 영국 펑크 운동으로부터 비평적 찬사를 받았다.

이후 "Burning in the Heat of Love", "My Baby Left Me/That's All Right", "골을 넣어줘" 등의 싱글을 발매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78년 말, 밴드는 또 다른 상업적 실패작인 "록 앤 롤 볼레로"를 발매했다.

1979년, 밴드는 "지니, 지니", "타임즈의 징조", "오키 코키" 커버곡 등을 발매했지만 모두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다. 같은 해 10월, 척 베리의 "I'm a Rocker" 버전이 벨기에에서 1위를 차지한 앨범 기지로 돌아오다를 발매했다.

2.4. 재기와 해체 (1980년 ~ 1992년)

오지 오스본이 마지막 순간에 공연을 취소하면서, 1980년 레딩 페스티벌에서 슬레이드의 공연은 이들의 경력을 예상치 못하게 부활시켰다. 그 후 2년 동안 밴드는 헤비메탈 장르에 맞춘 음악을 제작했고, 1984년에 "런 러너웨이"와 "마이 오 마이" 히트곡으로 마침내 미국 시장을 공략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롭게 얻은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고, 1990년대 초 톱 25 영국 히트곡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1992년에 곧 해체되었다.

1979년, 밴드는 "지니, 지니", "타임즈의 징조", 그리고 파티곡 "오키 코키" 커버곡 등 세 개의 싱글을 발매했지만 모두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다. 1979년 10월, 밴드는 챈들러가 프로듀서로 참여하지 않은 첫 번째 앨범인 새 스튜디오 앨범 기지로 돌아오다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영국에서는 실패했지만 이듬해 벨기에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80년 중반, 슬레이드는 기지로 돌아오다 앨범의 세 곡과 세 곡의 새로운 록곡이 포함된 첫 번째 EP인 "식스 오브 더 베스트"를 발매했지만, 차트에 진입할 만큼 충분히 팔리지 않았다. 그 결과 밴드는 함께 활동을 중단했다.

2.5. 슬레이드 II와 현재 (1993년 ~ 현재)

1992년, 슬레이드는 해체되었지만, 기타리스트 데이브 힐과 드러머 돈 파월은 1993년에 새로운 멤버들을 영입하여 슬레이드 II (Slade II)를 결성했다. 슬레이드 II는 주로 슬레이드의 이전 히트곡들을 라이브로 공연하며 활동했다. 2002년, 밴드는 원래 이름인 슬레이드 (Slade)로 밴드명을 다시 변경했다.

2005년, 보컬리스트 스티브 월리가 밴드를 떠났고 스티브 마킨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2019년에는 베이시스트 존 베리가 밴드를 떠나 데이브 멕켄지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2020년, 파월은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힐이 이메일로 자신을 해고했다고 발표했다. 힐은 이를 부인했으며, 슬레이드는 "해체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파월 없이는 계속 활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월은 곧 자신만의 버전의 밴드인 돈 파월스 슬레이드 (Don Powell's Slade)를 결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슬레이드는 데이브 힐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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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힐1966년–현재기타, 보컬모든 발매곡
--존 베리2003년–현재베이스 기타, 바이올린, 보컬현재까지 없음
러셀 키프2019년–현재리드 보컬, 키보드현재까지 없음
알렉스 바인즈2020년–현재드럼현재까지 없음
돈 파월1966년 ~ 2020년드럼현재까지 모든 음반
짐 리1966년 ~ 1992년베이스 기타, 키보드, 바이올린, 보컬
노디 홀더1966년 ~ 1992년리드 보컬, 기타
스티브 왈리1992년 ~ 2005년리드 보컬, 기타킵 온 로킹 (1994)
스티브 메이킨1992년 ~ 1996년기타없음
크레이그 페니1992년 ~ 1994년베이스 기타, 보컬없음
트레버 홀리데이1994년 ~ 2000년베이스 기타, 보컬킵 온 로킹 (1994)
데이브 글로버2000년 ~ 2003년베이스 기타, 보컬없음
말 매컬티2005년 ~ 2019년리드 보컬, 기타없음

블랙컨트리에서 성장한 돈 파월, 짐 리, 노디 홀더, 데이브 힐은 슬레이드의 원년 멤버이다.

3.1. 현재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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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 힐 (Dave Hill)1966년–현재모든 발매곡
--존 베리 (John Berry)2003년–현재현재까지 없음
러셀 키프 (Russell Keefe)2019년–현재현재까지 없음
알렉스 바인즈 (Alex Bines)2020년–현재드럼현재까지 없음

3.2. 이전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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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이름활동 기간악기발매 참여
돈 파월1966년 ~ 2020년드럼현재까지 모든 음반
짐 리1966년 ~ 1992년
노디 홀더
스티브 왈리1992년 ~ 2005년리드 보컬, 기타킵 온 로킹 (1994)
스티브 메이킨1992년 ~ 1996년기타없음
크레이그 페니1992년 ~ 1994년베이스 기타, 보컬없음
트레버 홀리데이1994년 ~ 2000년킵 온 로킹 (1994)
데이브 글로버2000년 ~ 2003년없음
말 매컬티2005년 ~ 2019년없음

4. 음악 스타일

슬레이드는 글램 록 밴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하드 록, 헤비 메탈, 팝 록, 개그송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특히, "겟 다운 앤 겟 위드 잇", "마마 위어 올 크레이지 나우", "컴 온 필 더 노이즈"와 같이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곡들을 통해 라이브 공연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스테픈울프, 프랭크 자파, 비틀즈, 마빈 게이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영향을 받은 초기에는 사이키델릭 록과 1960년대 클래식 록을 결합한 음악을 선보였다. 이후 리틀 리처드의 영향을 받아 더욱 강렬한 록 사운드를 추구했으며, 채스 챈들러의 애니멀스지미 헨드릭스와의 관계 또한 슬레이드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초, 슬레이드는 집시 스윙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곡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활동 시기에는 서던 부기 록 밴드의 영향을 받아 소울, 컨트리, 펑크(funk), 포크, 블루스 등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다.

1980년대에는 헤비 메탈 사운드를 도입하고, 신시사이저를 적극 활용하는 등 음악적 변화를 모색했다. 이들은 파워 발라드나 스코틀랜드 지그를 연상시키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5. 대한민국과의 관계

슬레이드는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공연한 적은 없지만,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라디오 방송과 음반을 통해 한국 팬들에게도 알려졌다. 특히, 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메리 크리스마스 에브리바디"는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한국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이 되었다. 이 곡은 1997년 영국 차트 19위에 올랐고, 리믹스 버전은 1998년 30위에 올랐으며, 2006년 이후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영국 톱 75에 재진입하여 2007년에는 20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6. 유산 및 영향

슬레이드는 1970년대 영국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밴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콰이어트 라이엇은 슬레이드의 "컴 온 필 더 노이즈"와 "마마 위어 올 크레이지 나우"를 커버하여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오아시스도 "Cum on Feel the Noize"를 커버했다. 이 외에도 니르바나, 더 스매싱 펌킨스, 더 라몬즈, 섹스 피스톨즈, 더 클래시, 키스, 모틀리 크루, 포이즌, 데프 레퍼드, 칩 트릭, 트위스티드 시스터, 더 언더토운즈, 더 리플레이스먼츠, 더 러너웨이스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슬레이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슬레이드의 영향을 받은 밴드 중 하나인 콰이어트 라이엇
슬레이드의 영향을 받은 밴드 중 하나인 콰이어트 라이엇


특히, 슬레이드의 화려한 무대 의상과 강렬한 퍼포먼스는 글램 록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노디 홀더(오른쪽)와 데이브 힐(왼쪽)의 1973년 모습. 글램록 패션을 잘 보여준다.
노디 홀더(오른쪽)와 데이브 힐(왼쪽)의 1973년 모습. 글램록 패션을 잘 보여준다.
아담 앤 더 앤츠의 리드 기타리스트 마르코 피로니는 1973년 웸블리 풀에서 열린 슬레이드 공연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섹스 피스톨즈의 스티브 존스는 "슬레이드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이 항상 우리 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으며, 키스의 진 시몬스는 슬레이드의 관객 소통 방식과 찬가 작곡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칩 트릭의 톰 페터슨은 슬레이드가 "모든 싼 수법을 사용했다"고 언급하며, 밴드 이름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오지 오스본은 노디 홀더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소리 중 하나로 꼽았고, 앨리스 쿠퍼는 슬레이드가 "주변에서 가장 귀에 감기는 노래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모틀리 크루의 니키 식스는 슬레이드가 패션, 음악, 한계를 뛰어넘는 것에 있어 150%를 쏟아부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