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레 (시라쓰유급 구축함)
1. 개요
시구레는 일본 제국 해군의 시라쓰유급 구축함으로, 하쓰하루급 구축함을 개량하여 태평양 전쟁에서 어뢰 공격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1936년 취역하여 제2차 상하이 사변, 북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 등에 참전했으며, 태평양 전쟁 중에는 진주만 공격,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해전, 레이테 만 해전 등 주요 해전에 참여했다. 특히,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살아남아 '행운함'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1945년 1월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향하는 수송선단을 호위하던 중 미국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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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종 | 구축함 |
|---|---|
| 소속 | 대일본제국 |
| 동형함 | 시라쓰유급 구축함 |
| 함명 | 시구레 (時雨, "잔비") |
| 발주 | 1931년 회계연도 |
|---|---|
| 건조 회사 | 우라가 도크 |
| 기공 | 1933년 12월 9일 |
| 진수 | 1935년 5월 18일 |
| 취역 | 1936년 9월 7일 |
| 최종 운명 | 1945년 1월 24일 USS Blackfin에 의해 격침 |
| 제적 | 1945년 3월 10일 |
| 배수량 | 1,685 톤 (표준) |
|---|---|
| 길이 | 103.5m (수선간) 107.5m (전체) |
| 폭 | 9.9m |
| 흘수 | 3.5m |
| 추진 | 2축 가미폰 기어드 터빈 |
| 보일러 | 3기, 42,000마력 |
| 속력 | 34 노트 |
| 항속 거리 | 18노트에서 4,000해리 |
| 승무원 | 226명 |
| 주포 | 5 x 12.7cm 50구경 3년식 함포 (2x2, 1x1) |
|---|---|
| 대공포 | 2 x 13.2mm AA 기관총 |
| 어뢰 | 8 x 61cm 어뢰 발사관 |
| 폭뢰 | 16 x 폭뢰 |
| 주요 작전 |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해전 벨라 만 해전 호라니우 해전 벨라 라벨라 해전 엠프레스 오거스타 만 해전 필리핀해 해전 레이테 만 해전 수리가오 해협 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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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 구축함 -
아야나미 (후부키급 구축함)
아야나미는 일본 제국 해군의 후부키급 구축함으로, 세계 최초로 대공용으로도 사용 가능한 주포를 갖추었으며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참전, 과달카날 해전에서 큰 활약을 펼치다 1942년 침몰했다. -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 구축함 -
유키카제 (가게로급 구축함)
유키카제는 일본 제국 해군의 가게로급 구축함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수많은 전투를 거치며 "불침함", "기적의 배"로 불릴 만큼 생존했고, 종전 후 중화민국 해군에 인도되어 단양으로 활동했다. -
1935년 선박 -
소류 (항공모함)
소류는 일본 제국 해군이 건조한 항공모함으로, 1937년 취역하여 진주만 공격, 미드웨이 해전 등에 참여했으나 1942년 미 해군 공격으로 침몰했다. -
1935년 선박 -
U-2
U-2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훈련함으로 사용되었으며, 2A형 잠수함은 승무원 훈련에 사용되었고, 독일 연방해군에서는 201급 잠수함이 운영되었으며, 1991년까지 205A급 잠수함으로 활동했다.
2. 함력
시라쓰유급 구축함은 하쓰하루급 구축함의 개량형으로, 일본 해군 전략 계획에 따라 주 공격 함대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미국 해군에게 밤낮으로 어뢰 공격을 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건조 당시에는 구축함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급이었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살아남은 함선은 단 한 척도 없었다.
우라가 조선소에서 건조된 시구레는 1933년 12월 9일 건조를 시작하여, 12월 15일, 시라쓰유(백로), 시구레(시우), 무라사메(무라사메)의 함명이 부여되었다. 1935년 5월 18일 진수되었고, 1936년 9월 7일 취역했다. 요코스카 진수부 소속.
1936년 10월 상순, 홋카이도에서 육군 특별대연습이 실시됨에 따라, 쇼와 천황은 전함 히에이를 어소함으로 하여 요코스카에서 홋카이도로 향했다. 이때, 준공된 지 얼마 안 된 시구레와 시라쓰유는 히에이의 곁배함으로 지정되었다. 2척은 9월 24일부터 9월 26일까지 무로란시의 무로란항까지 동함과 천황을 경호했다. 10월 29일, 고베 앞바다에서 열린 관함식에 참가했다. 11월 1일 제9구축대에 편입되었고, 12월 1일 제1수뢰전대 소속이 되었다.
1937년 8월 10일, 다이산 사건으로 인해 상하이 방면의 정세가 긴박해지자 제1수뢰전대는 현지 육전대에 대한 증원을 위해 출격했다. 다음 날 현지에 도착하여 제3함대와 합류했다. 8월 13일 제2차 상하이 사변 발발에 함께 했고, 14일에는 상하이 앞바다의 일본 함대는 중국군기의 대함 폭격을 받았다. 18일 오후, 육전대의 요청을 받아 유구레, 시구레가 황푸강에 돌입, 후장 대학(현 상하이 이공 대학) 부근의 중국군 진지를 포격했다.
1938년 8월 5일, 우한 작전을 지원하던 중 안후이성 구이치에서 정박하고 있던 적 야포의 포격을 받아 시구레가 피탄되었다. 12월 15일, 제9구축대는 제27구축대로 개명되었다.
1940년 9월, 제1수뢰전대와 제27구축대는 북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에 수송선단 호위로 참가했다. 1941년 1월 21일, 타이-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분쟁에서 프랑스 측에 대해 정전을 압박하기 위해 대불령 인도차이나 위력 시위 작전에 제1수뢰전대가 참가했다.
2.1. 제원
시라쓰유급 구축함은 하쓰하루급 구축함의 개량형으로, 완성 당시 세계 최강의 구축함 중 하나였다. 시라쓰유급 구축함의 주요 제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항목 | 내용 |
|---|---|
| 배수량 | 기준 배수량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하쓰하루급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
| 길이 | 전체 길이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하쓰하루급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
| 폭 | 함선의 폭은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하쓰하루급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
| 속력 | 최대 속력은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하쓰하루급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
| 무장 |
시구레는 우라가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1933년 12월 9일 기공되었고, 1935년 5월 18일 진수, 1936년 9월 7일 취역했다. 구식화된 미네카제급 구축함 하카제, 시마카제의 대체함으로 건조되었다.
2.3. 태평양 전쟁
1941년 진주만 공격 당시, 시구레는 일본 제국 해군 제1함대 제1구축대 제27구축대에 소속되어 일본 영해에서 대잠수함 순찰 및 일본 주력 함대 호위 임무를 수행했다. 1942년 초에는 수송선 호위 임무에 배속되어 항공모함 瑞鳳일본어를 다바오까지, 항공모함 翔鶴일본어와 瑞鶴일본어를 트루크까지 호위했다.
1942년 5월 7일 산호해 해전에서 다카오 다카기 제독의 공격 함대를 호위하였고, 6월 4일부터 6일까지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다카스 시로 제독 휘하의 알류샨 열도 공격 함대에 참여하였다. 미드웨이 작전이 취소된 후 7월 14일, 시구레는 일본 해군 제2함대로 재배속되었다. 8월 중순에는 함대를 트루크로 호위했으며, 이후 마킨 습격 이후 마킨 환초를 재점령하기 위한 수송선 호위에 배속되었다. 9월에는 잘루이토를 거점으로 길버트 제도의 아베마마와 산타크루즈 제도의 덴데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으며, 9월 24일에는 팔라우에서 라바울로 가는 수송선 호위를 수행했다. 10월과 11월에는 8차례에 걸쳐 "도쿄 익스프레스" 수송 작전을 통해 병력을 과달카날 섬으로 수송했다. 1942년 11월 12일~13일 밤에 벌어진 제1차 과달카날 해전에서는 원거리 차단 부대의 일원이었으며 전투는 없었지만, 이후 전함 比叡일본어의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연말에는 항공모함 冲鷹일본어를 트루크에서 요코스카로, 그리고 다시 트루크로 호위했다.
1943년 1월 중순, 시구레는 트루크에서 쇼트랜드로 가는 수송선단을 호위했으며, 이후 과달카날에서의 병력 철수를 지원하는 "KE 작전"에 배속되었다. 2월 중순에는 수리를 위해 사세보로 돌아왔다. 시구레는 3월 중순에 트루크로 돌아와 4월 중순에 冲鷹일본어와 大鷹일본어를 트루크에서 요코스카로 호위했으며, 그 달 말에 冲鷹일본어와 雲鷹일본어와 함께 돌아왔다. 5월 중순에는 전함 武蔵일본어를 트루크에서 요코스카로 호위했으며, 6월 21일까지 트루크로 돌아왔다. 7월에는 순양함 長良일본어와 함께 솔로몬 제도 주변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으며, 7월 20일에는 일본 해군 제2함대로 재배속되었다. 7월 27일에는 레카타 만으로, 8월 1일에는 콜롬방가라로 "도쿄 익스프레스" 수송 작전을 수행했다.
벨라 만 해전 (8월 6일~7일)에서 시구레는 일본 구축함 4척 중 유일하게 탈출했다. 8월 17일~18일 호라니 해전에서는 벨라 라벨라로 가는 수송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미 해군 구축함과 교전하여 피해를 입지 않았다. 8월 말에는 레카타 만으로 두 번의 병력 철수 작전을 수행했으며, 그 중 한 번은 중단되었고, 9월에는 툴루부와 부카, 파푸아뉴기니로 한 번의 임무를 수행했다. 9월 말과 10월 초에는 콜롬방가라로 두 번의 병력 철수 임무를 더 수행했다. 10월 6일~7일 벨라 라벨라 해전 동안 벨라 라벨라에서 병력 철수를 엄호했다. 10월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뉴기니의 여러 지점으로 네 번의 수송 작전에 더 참여했다. 11월 2일 엠프레스 오거스타 만 해전에서는 미국 순양함-구축함 부대와 교전했지만 피해는 없었다. 11월 6일 부카로 마지막 병력 수송 임무를 수행한 후, 11월 10일에는 라바울에서 트루크로 가는 수송선단을 호위하면서 수송선 도쿄 마루의 생존자 70명을 구조했다. 11월 중순에는 수리를 위해 사세보로 돌아왔다. 12월 24일 사세보를 출발하여 분고 수도에서 어선과 충돌하여 추가 수리를 위해 다시 사세보로 돌아가야 했다.
1944년 1월, 시구레는 식량 보급선 伊良湖일본어를 요코스카에서 트루크로 호위했으며, 2월 초에는 유조선 수송선단을 트루크에서 타라칸 섬과 발릭파판으로 호위했다. 미 해군 항공기의 트루크 공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어 2번 포탑에 직격탄을 맞아 승무원 21명이 사망하고 45명이 부상했다. 응급 수리를 위해 팔라우로 철수했으며, 3월 22일 사세보로 돌아와 손상된 포탑을 제거하고 2문의 3연장 96식 25mm 대공 기관총을 장착했다. 5월 11일까지 수리가 완료되어 武蔵일본어와 항공모함 千歳일본어, 千代田일본어, 瑞鳳일본어를 타위타위까지 호위했으며, 거기에서 다바오로 이동했다. 6월에는 미국 상륙에 대응하여 "KON 작전"(비아크 증원)에 배속되었다. 6월 8일 구축함 春雨일본어의 생존자 110명을 구조한 후, 연합군 순양함 및 구축함 부대와 교전하여 포탄 2발을 맞아 승무원 7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했다. 6월 19일~20일, 시구레는 필리핀 해 해전에서 조지마 다카쓰구 제독의 "제B부대"의 일원이었으며, 항공모함 飛鷹일본어의 생존자 구조를 지원했다. 7월에는 구레에서 오키나와 섬으로 가는 수송선단을 호위했으며, 8월에는 순양함 鬼怒일본어와 함께 싱가포르에서 브루나이, 마닐라 및 팔라우로 가는 수송 임무를 수행하고 세부를 경유하여 돌아왔다.
1944년 10월, 시구레는 링가와 브루나이에서 출격하여 10월 22일~25일 레이테 만 해전에 참여했다. 10월 24일 함교에 직격탄을 맞아 경미한 피해를 입었지만, 승무원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도 포탄 직격탄과 여러 근접 폭발로 인해 무선, 나침반 및 조타 장치가 파괴되었지만, "남방 부대"에서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함선이었으며, 10월 27일 브루나이로 귀환했다. 시구레는 11월 사세보로 돌아와 수리를 받았으며, 11월 8일에는 민도로 섬 부근에서 잠수함 를 격침했을 가능성이 있다. 11월 15일 일본 해군 제5함대, 11월 20일 일본 해군 제2함대로 재배속되어 12월 17일 항공모함 雲龍일본어와 함께 쿠레를 출발하여 마닐라로 향했다. 雲龍일본어가 잠수함 에 의해 격침된 후, 시구레와 구축함 樅일본어는 생존자 146명을 구조했다. 작전을 계속 수행하는 대신 시구레는 사세보로 향했다.
1945년 1월 24일, 시구레는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수송선단을 호위하던 중 샴 만에서 잠수함 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침몰 지점은 코타바루 동쪽 약 약 257.49km 지점인 말라야 해역으로, ()이다. 천천히 침몰하여 270명의 생존자가 탈출했으며, 승무원 37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호위함 干珠일본어와 三宅일본어에 의해 구조되었다. 시구레는 1945년 3월 10일 해군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2.3.1. 진주만 공격 (1941년 12월)
1941년 진주만 공격 당시, 시구레는 일본 제국 해군 제1함대 제1구축대 제27구축대에 소속되어 일본 영해에서 대잠수함 순찰 및 일본 주력 함대 호위 임무를 수행했다.
2.3.2. 산호해 해전 (1942년 5월)
1942년 5월 7일, 산호해 해전에서 다카오 다카기 제독의 공격 함대를 호위하였다. 5월 8일, 시구레는 구축함 시오, 아케보노, 시라쓰유, 유구레와 함께 중순양함 묘코, 하구로, 기누가사, 후루타카와 협력하여 항공모함 즈이카쿠, 쇼카쿠를 호위, 미군 기동부대 공격대와 교전하였다. 이때 아케보노는 인디스펜서블 암초에 불시착한 쇼카쿠 정찰기 구조를 위해 MO 기동부대에서 분리되었다. 대공 전투에서 쇼카쿠는 대파되었으나 침몰하지 않았고, 즈이카쿠는 무사했다. 쇼카쿠와 구축함 유구레, 사자나미는 함께 일본 본토로 향했다. 해전 후 시구레는 불시착기 수색에 종사했다. 이 해전에서 MO 기동부대는 미 해군 항공모함 렉싱턴을 격침하고 요크타운에 손상을 입혀 미군 기동부대를 격퇴했으나, 많은 조종사와 함재기를 잃고 연료도 부족하여 포트모르즈비 공략 작전은 중지되었다.
2.3.3. 미드웨이 해전 (1942년 6월)
1942년 6월 4일부터 6일까지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시구레는 다카스 시로 제독의 알류샨 열도 공격 함대에 참여하였다. 미드웨이 작전이 취소된 후, 7월 14일 일본제국해군 제2함대에 재편성되었다.
2.3.4. 과달카날 해전 (1942년 11월)
1942년 11월 12일 밤에서 13일에 걸쳐 벌어진 제1차 과달카날 해전에서 시구레는 원거리 차단 부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후 히에이의 생존자들을 구조하였다. 연말에는 항공모함 주요를 트럭 섬에서 요코스카 기지까지 호위하고 트럭 섬으로 돌아갔다.
2.3.5. 벨라 만 전투 (1943년 8월)
벨라 만 해전 (8월 6일~7일) 당시 시구레는 일본 구축함 4척 중 유일하게 탈출했지만, 이후 폭발하지 않은 어뢰에 맞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계함이면서 함대 후미에 있던 시구레는 면타(함의 좌현으로 방향을 꺾는 것)로 어뢰 공격을 피하고 어뢰 8발을 발사하여 전장을 회피했다. 다음 어뢰 발사 준비 후 전장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이 극히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침몰한 아군 함선의 승무원 및 증원 부대의 구조를 육상 부대에 의뢰하고 자신은 구조하지 않고, 센다이와 합류하여 라바울로 귀환했다. 시구레는 미 구축함 1척 대파를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전과가 없었다. 또한 증원 부대 940명은 대부분이 익사하여, 수송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2.3.6. 벨라라벨라 해전 (1943년 10월)
1943년 10월 6~7일에 벌어진 벨라 라벨라 해전에서 시구레는 병력 철수를 엄호하였고, 미국 해군 구축함 셀프리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2.3.7. 엠프레스오거스타 만 해전 (1943년 11월)
1943년 11월 2일, 엠프레스오거스타 만 해전에서 시구레는 미 해군 순양함 및 구축함 함대를 만났으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당시 일본군은 동도에 대한 역상륙 작전을 계획하고, 오모리 센타로 소장이 이끄는 습격 부대(주대: 묘코, 하고로모, 제1경계대: 센카와, 시구레, 사미다레, 시라츠유, 제2경계대: 경순양함 아가노, 구축함 나가나미, 하츠카제, 와카츠키)가 편성되었다. 역상륙은 중지되었지만, 습격 부대는 미 수송 선단을 공격하기 위해 동도로 향했고, 2일 새벽에 미 제39 임무부대와 조우했다.
시구레의 망루병이 함영 4개를 발견하고, 0시 45분에 "시구레"는 적 발견을 보고했다. 이어서 "센카와"에서도 적을 확인하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시구레는 어뢰 8발을 발사 후, 센카와와 충돌할 뻔했다. 그 후 센카와는 피탄되어 항행 불능이 되었고, 센카와의 제3수뢰전대 사령관 이쥬인 마츠지 소장으로부터 시구레는 센카와의 곁으로 접근하라는 전보가 도착했지만, 하라 사령관은 지금 가면 시구레도 격침될 것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시구레는 단독으로 공격 기회를 엿보았지만, 단독으로는 위험하고 아군의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1시 45분경에 묘코, 하고로모와 합류하고 회피했다. 9시 17분에 묘코, 하고로모, 시구레 등은 라바울로 귀환했다.
이 해전에서 센카와와 하츠카제가 침몰, 하고로모, 시라츠유, 사미다레가 손상되었다. 라바울로 귀환한 제27구축대 3척(시구레,시라츠유,사미다레)의 전과는 대형 구축함 2척 격침으로 인정되었지만, 미 측의 어뢰 공격에 의한 피해는 구축함 푸트의 함미 대파에 그쳤다.
2.3.8. 레이테 만 해전 (1944년 10월)
1944년 10월 22일, 시구레는 링가 만의 브루나이에서 출격하여 레이테 만 해전에 참전하였다. 10월 24일, 함교에 직격탄을 맞아 경미한 피해를 입었으며, 승무원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했다. 10월 25일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시구레는 포탄 1발의 직격탄과 여러 발의 지근탄을 맞고 통신기, 나침반, 조타 장치에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시구레는 야마시로, 후소, 모가미를 포함한 남방 부대 7척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후 10월 27일, 시구레는 브루나이로 귀환하였다.
2.3.9. 침몰 (1945년 1월)
1945년 1월 24일, 시구레는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수송선단을 호위하던 중 샴 만에서 미 해군 잠수함 블랙핀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침몰 지점은 코타바루 동쪽 약 약 257.49km 지점인 말라야 해역으로, ()이다. 천천히 가라앉았기 때문에 승조원 270명이 탈출할 수 있었으나, 37명은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호위함 간주와 미야케에 의해 구조되었다.
시구레는 1945년 3월 10일 해군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시구레의 선체는 말레이 반도 코타바루 동쪽 150km 지점, 수심 55m 지점에서 침몰해 있다. 다이빙 명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지역 어부들에게는 어초 역할을 하여 어망으로 덮여 있다. 함체는 두 부분으로 분단되어 있으며, 함수 쪽은 우현 쪽으로 전복되어 있고, 함미 쪽은 함수 쪽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정립된 상태로 침몰해 있다. 함수 쪽은 해저에 부딪힌 탓인지 심하게 손상되었지만 함미 쪽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2.4. 주요 전투 및 작전
시구레는 수많은 해전과 작전에 참여하여 맹활약한 일본 제국 해군의 구축함이었다.
; 1941년
* 진주만 공격: 일본 제국 해군 제1함대 제1구축전대 제27구축대에 소속되어 일본 영해에서 대잠수함 순찰 및 일본 주력 함대 호위 임무를 수행했다.
; 1942년
* 호위 임무: 항공모함 즈이호를 다바오까지, 항공모함 쇼가쿠와 즈이카쿠를 트럭 섬까지 호위했다.
* 산호해 해전: 다카오 다카기 제독의 공격 함대를 호위했다.
* 미드웨이 해전: 다카스 시로 제독의 알류샨 열도 공격 함대에 참여했다.
* 재편성: 미드웨이 작전 취소 후 일본 제국 해군 제2함대에 재편성되었다.
* 트럭 섬 호위 및 마킨 환초 병력 수송: 함대를 트럭 섬까지 호위하고, 마킨 섬 습격 이후 마킨 환초까지 병력 수송선을 호위했다.
* 경비 임무: 잘루잇을 거점으로 길버트 제도의 아베마마와 산타크루즈 제도의 엔데니를 경비했다.
* 팔라우-라바울 병력 수송선 호위: 팔라우에서 라바울로 이동하는 병력 수송선을 호위했다.
* "도쿄 익스프레스": 과달카날 섬으로 병력을 수송하는 "도쿄 익스프레스"에 8회 참여했다.
* 제1차 과달카날 해전: 엄호 함대로 참가하여 전투는 없었고, 침몰한 전함 히에이의 생존자들을 구조했다.
* 항공모함 쥬요 호위: 연말에 항공모함 쥬요를 트럭 섬에서 요코스카 기지까지 호위하고 트럭 섬으로 돌아갔다.
; 1943년
* 병력 수송선 호위 및 "KE 작전": 트럭 섬에서 쇼트랜드로 가는 병력 수송선을 호위하고, 과달카날 섬에서 탈출하는 병력을 엄호하는 "KE 작전"에 참가했다.
* 수리: 2월 중순 사세보 항으로 수리를 위해 돌아왔다.
* 전함 무사시 호위: 3월 중순 트럭 섬으로 돌아가 전함 무사시가 트럭 섬에서 요코스카로 복귀하는 것을 호위했다.
* 경순양함 나가라 호위: 6월 21일 트럭 섬으로 돌아와 경순양함 나가라를 따라다니며 솔로몬 제도 주변의 다양한 임무에 할당되었다.
* 일본 제국 해군 제2함대 재소속: 7월 20일 일본 제국 해군 제2함대에 다시 소속되었다.
* "도쿄 익스프레스": 7월 27일 레카타 만으로 향하는 "도쿄 익스프레스" 병력 수송에 참가했다.
* 콜롬방가라 섬 수송: 8월 1일 콜롬방가라 섬으로 향했다.
* 벨라 만 해전: 8월 6일부터 7일 사이 벌어진 벨라 만 해전에 참가한 4척의 구축함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 호라니우 해전: 8월 17일부터 18일 사이에 벌어진 호라니우 해전에서 벨라라벨라로 병력을 수송하는 임무 동안 미국 해군과 접촉했으나 무사했다.
* 탈출 임무: 8월 말, 두 부대를 레카타 만으로 탈출시키는 임무를 받았으나, 그 중 하나는 취소되었다.
* 탈출 임무: 9월에 투루부, 부카, 파푸아뉴기니로 탈출시켰다.
* 벨라라벨라 해전: 10월 6~7일에 벌어진 벨라라벨라 해전에서 병력 철수를 엄호했고, 미국 해군 구축함 셀프리지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 철수 작전: 10월 내내 뉴기니에서 네 군데의 철수 작전에 참가했다.
* 엠프레스오거스타 만 해전: 11월 2일 엠프레스오거스타 만 해전에서, 미국 해군 순양함과 구축함 함대를 만났으나 무사했다.
* 부카 수송 작전: 11월 6일 부카로 향하는 마지막 부대 이동 작전에서, 수송선단을 라바울에서 트럭 섬까지 호위했다.
* 생존자 구조: 11월 10일 수송선 도쿄 마루의 생존자 70명을 구조했다.
* 수리: 11월 중순 수리를 위해 사세보로 돌아왔다.
* 충돌 사고: 12월 24일 사세보를 떠났다가 분고 해협에서 어선과 충돌해서 수리를 위해 사세보로 다시 돌아왔다.
; 1944년
* 급양선 이라코 호위: 1월 급양선 이라코를 요코스카로부터 트럭 섬까지 호위했다.
* 유조선 호위: 2월 초 유조선을 트럭 섬에서 타라칸 섬과 발릭파판으로 호위했다.
* 트럭 섬 공습 피해: 트럭 섬에서 미국 해군 비행기의 공습으로 2번 포탑에 직격탄을 얻어맞고 21명이 사망하고 45명이 다치는 큰 피해를 입었고, 응급 수리를 위해 팔라우로 물러났다.
* 수리 및 대공포대 교체: 3월 22일 사세보로 돌아왔고, 부서진 포탑이 제거되고 2개의 3연장 96식 대공포대로 교체되었다.
* 전함 무사시 및 항공모함 호위: 5월 11일 수리가 끝났고, 전함 무사시와 항공모함 치토세, 치요다, 즈이호를 타위타위까지, 이후 다바오까지 호위했다.
* 곤 작전(비악 증원 작전): 6월 미군 상륙 작전에 대응하는 곤 작전(비악 섬 증원 작전)에 할당되었다.
* 하루사메 생존자 구조 및 연합군 함대와 교전: 6월 8일 구축함 하루사메의 생존자 110명을 구조하였고, 연합군 순양함과 구축함 부대와 전투를 벌이게 되어 2발을 얻어맞고 사망자 7명, 부상자 15명의 피해를 입었다.
* 필리핀 해 해전: 6월 19~20일에 걸쳐 해군 제독 조지마 다카쓰구의 B함대 소속으로 필리핀 해 해전에 참가하였고, 항공모함 히요의 생존자 구조를 도왔다.
* 병력 수송선 호송: 7월 구레에서 오키나와로 향하는 병력 수송선 호송 업무에 할당되었다.
* 순양함 기누와 수송 업무: 8월 순양함 기누와 싱가포르에서 브루나이, 마닐라, 팔라우로의 수송 업무를 하고 세부를 통해 돌아왔다.
* 레이테 만 해전: 10월 22일 레이테 만 해전에 참전하기 위해 링가 만의 브루나이에서 출격했다.
* 피해: 10월 24일 1번 포탑에 직격탄을 얻어맞고 작은 피해를 입었으며, 승무원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 수리가오 해협 해전: 10월 25일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는 1발의 직격탄과 7발의 지근탄을 맞고 통신기, 나침반, 조타기에 이전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같이 출격한 남쪽 부대의 전함 야마시로, 후소, 순양함 모가미를 포함한 7척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 귀환: 10월 27일 절름거리며 브루나이로 돌아왔다.
* 잠수함 그로울러 격침: 11월 수리를 위하여 사세보로 돌아가는 중 11월 8일 민도로 근해에서 미국 해군 잠수함 그로울러를 다른 호위함들과 협력으로 격침시켰다.
* 재할당: 11월 15일 일본 제국 해군 제5함대에 재할당되고, 11월 20일 일본 제국 해군 제2함대에 재할당되었다.
* 항공모함 운류 호위: 12월 17일 항공모함 운류와 함께 구레 항을 떠나 마닐라로 향하였다. 운류가 미국 해군 잠수함 레드피시에게 침몰당한 다음, 구축함 모미와 함께 146명의 생존자를 구조하였다.
; 1945년
* 침몰: 1945년 1월 25일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수송선단을 호위하는 중 시암 만의 대략 말레이시아의 코타바루에서 동쪽으로 260km 떨어진, 북위 6도 동경 103도 48분의 바다에서 미국 해군 잠수함 블랙핀의 어뢰를 얻어맞고 침몰하였다. 천천히 가라앉았고, 승조원 중 270명이 탈출할 수 있었으나, 37명은 사망하였다. 생존자들은 호위함 간주와 미야케에게 구조되었다.
* 해군 목록 삭제: 시구레는 1945년 3월 10일 해군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3. 평가
시라쓰유급 구축함은 일본 제국 해군이 전략적으로 계획하여, 주력 함대에서 미국 해군에게 어뢰 공격을 가하는 역할을 맡도록 설계되었다. 건조 당시에는 전 세계 구축함 중 가장 강력한 함급으로 평가받았으나, 태평양 전쟁에서 모두 침몰하였다.
3.1. 행운함? 비운함?
시라쓰유급 구축함은 하쓰하루급의 개량형으로, 일본 해군 전략 계획에 따르면 주 공격 함대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미국 해군에게 밤낮으로 어뢰 공격을 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건조 당시에는 구축함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함급이었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모두 침몰했다. 시구레는 우라가 조선소에서 1933년 12월 9일 건조되기 시작하여 1935년 5월 18일 진수되었고 1936년 9월 7일 취역하였다.
4. 시구레와 관련된 인물
시구레와 관련된 주요 인물로는 역대 함장들이 있다. 시구레의 함장을 역임한 인물로는 스기노 슈이치 소좌, 요코이 미노루 소좌, 오가타 도모에 소좌, 하마나카 슈이치 소좌, 가네다 기요유키 소좌, 세오 노보루 소좌, 야마가미 기미오 소좌, 니시노 시게루 소좌, 오기와라 마나부 소좌 등이 있다.
4.1. 역대 함장
5. 한국과의 관계
시구레는 일본 제국 해군의 구축함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여러 해전에 참여했지만,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은 기록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시구레와 한국과의 관계를 다루는 내용은 없다.
6. 대중문화 속의 시구레
| 제조사 | 품번 및 제품명 | 발매일 |
|---|---|---|
| 후지미 모형 | 1/700 특(토쿠) 시리즈 No.81 일본 해군 구축함 시구레 (시라츠유급 구축함)・사미다레 | 2013년 6월 14일 |
| 핏 로드 | 1/700 일본 해군 구축함 시구레 입거 세트 | 2013년 12월 20일 |
| 후지미 모형 | 1/700 특(토쿠) 시리즈 SPOT No.39 일본 해군 구축함 시구레・유키카제 행운함 세트 | 2014년 7월 26일 |
| 후지미 모형 | 1/700 특(토쿠) 시리즈 No.98 일본 해군 구축함 시구레・유키카제 행운함 세트 | 2017년 9월 |
7. 기타
현재 원본 문서에 시구레와 관련된 추가 정보가 없으므로,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다.
7.1. 현재의 시구레
시구레의 선체는 말레이 반도 코타바루 동쪽 150km 지점, 수심 55m에서 침몰해 있다. 다이빙 명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지역 어부들에게는 어초 역할을 하여 어망으로 덮여 있다. 함체는 두 부분으로 분단되어 있으며, 함수 쪽은 우현 쪽으로 전복되어 있고, 함미 쪽은 함수 쪽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정립된 상태로 침몰해 있다. 함수 쪽은 해저에 부딪힌 탓인지 심하게 손상되었지만 함미 쪽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