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신계암은 만주어에 능통했던 인물로, 조선 인조 때 오윤겸의 추천으로 만주어 역관이 되었다. 1629년 후금의 선양을 방문한 후 10여 년간 청나라를 오가며 만주어와 만주 문자를 연구했다. 옛 여진 문자로 된 교습서 5책을 새로운 만주어로 번역했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잡혀간 조선인 포로 송환에 기여하여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의 번역가 - 의천
의천은 고려 문종의 아들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천태종을 창시하고 교관겸수를 주장하며 고려 불교 발전에 기여했고, 숙종 때 주전론을 주장하다 47세에 입적하여 대각국사로 불렸다. - 한국의 번역가 - 설총
설총은 신라 시대 학자로, 원효와 요석공주의 아들이며,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지어 왕의 자성을 촉구하고, 이두를 집대성하여 한문을 한국어 어순에 맞게 바꾸는 데 기여했으며, 유교 경전을 신라어로 읽는 방법을 고안하여 국학에서 사서오경을 가르쳤고, 고려 현종 때 홍유후 시호가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 만주어학자 - 한스 코논 폰 데어 가벨렌츠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정치가인 한스 코논 폰 데어 가벨렌츠는 80개 이상의 언어를 연구하며 만주어, 고트어, 멜라네시아어족 등의 문법 연구에 기여했고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의 총리를 역임했다. - 만주어학자 -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는 남네덜란드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천문학자로, 청나라 강희제 시대에 흠천감 수장으로서 천문학과 역법 개정에 기여하고 천문 관측 기구 제작, 지도 제작, 군사 기술 분야에서 활약했으며, 증기 자동차를 설계하기도 한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황제로부터 시호를 받은 서양인이다. - 조선의 역관 - 오경석
오경석은 조선 말기의 역관이자 개화 사상가로, 청나라를 왕래하며 서양 문물을 접하고 개항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김옥균, 유길준 등 개화파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해국도지》 등의 서적을 소개하고 초상 사진을 찍는 등 신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 조선의 역관 - 김홍륙
김홍륙은 함경도 출신의 통역관으로, 고종의 신임을 얻었으나 권력 남용과 고종 독살 미수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처형되었다.
신계암 | |
---|---|
기본 정보 | |
![]() | |
인물 정보 | |
한글 이름 | 신계암 |
한자 이름 | 申繼黯 |
로마자 표기 | Sin Gyeam |
활동 시기 | 1620년대–1630년대 |
기타 이름 | 거화 (巨化), 구난 (仇難), 팔세아 (八歲兒), 소아론 (小兒論), 상서 (尙書) |
2. 생애
최세진은 만주어에 능통하여, 1626년 인조 때 오윤겸의 추천으로 만주어 역관이 되었다.[1] 옛 여진 문자로 전해져 오던 교습서인 <구난(仇難)>, <거화(巨化)>, <팔세아(八歲兒)>, <소아론(小兒論)>, <상서(尙書)> 등 5책을 새로운 만주어로 개역했으며, 정묘호란 및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로 잡혀간 조선인 포로들의 송환에도 공헌하였다.[1] 참상관(參上官)을 거쳐 첨지중추부사까지 역임하였다.[1]
2. 1. 초기 생애 및 활동
일찍이 만주어에 능통하였으며, 1626년 인조 때 오윤겸의 추천으로 만주어 역관이 되었다.[1] 1629년 사신을 따라 후금의 수도인 선양을 방문했으며, 그 뒤 10여 년 동안 봄·가을로 청나라를 왕래하면서 만주어와 만주 문자를 연구하였다.[1]2. 2. 만주어 연구 및 번역 활동
만주어에 능통한 최세진은 1626년 인조 때 오윤겸의 추천으로 만주어 역관이 되었다. 1629년 사신을 따라 후금의 수도 선양을 방문했고, 이후 10여 년 동안 봄·가을로 청나라를 왕래하며 만주 문자와 만주어를 연구했다.옛 여진 문자로 전해 오던 교습서인 <구난>, <거화>, <팔세아>, <소아론>, <상서> 등 5책을 새로운 만주어로 번역했다.
2. 3. 청나라와의 외교 활동 및 포로 송환 노력
만주어에 능통하였으며, 1626년 인조 때 오윤겸의 추천으로 만주어 역관이 되었다. 1629년 사신을 따라 후금의 수도인 선양을 방문했으며, 그 뒤 10여 년 동안 봄, 가을에 청나라를 오가며 만주어와 만주 문자를 연구하였다.[1]정묘호란 및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로 잡혀간 조선인 포로들의 송환에도 공헌하였으며, 참상관(參上官)을 거쳐 첨지중추부사까지 역임하였다.[1]
참조
[1]
harvnb
[2]
harvnb
[3]
harvnb
[4]
harvnb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