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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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금단은 1938년 함경남도 리원군 출생의 육상 선수로, 1960년대 400m와 800m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1962년과 1963년 즈나멘스키 형제상 쟁탈 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우승했으며, 1962년 평양에서 400m 51.9초를 기록하여 유일하게 공인된 세계 기록을 세웠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신흥국 경기 대회 참가 선수라는 이유로 출전하지 못했으며, 아버지와 짧은 만남을 가졌다. 은퇴 후에는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으며, 압록강체육선수단 육상지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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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신금단은 함경남도 리원군에서 태어나 선반공으로 일했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아버지와 헤어졌는데, 아버지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키가 크고 걸음걸이가 시원시원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1959년부터 1967년까지(1965년 제외) 400m에서, 1960년부터 1967년까지 800m에서 세계 10위 안에 들었다.

1966년 《타임》은 스포츠 성 감별 도입에 대한 기사에서 신금단에 대해 언급했다. 기사에 따르면, 2년 전 400m와 800m 여자 기록을 모두 깬 신금단은 대한민국에 사는 한 노인에 의해 전쟁 중에 잃어버린 아들로 밝혀졌다. 이 주장은 이후에도 반복되었다.

은퇴 이후 신금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체육인’ 칭호를 수여받았고 압록강체육선수단과 국가대표 육상지도원 등을 역임했다.

2.1. 선수 경력

신금단은 1938년 7월 3일 함경남도 리원군에서 태어났다. 1962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즈나멘스키 형제상 쟁탈 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 800m(2분 1초), 400m(53초)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고, 1963년에도 같은 대회에서 800m(2분 4초 6), 400m(52초 2)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

196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회 신흥국 경기 대회(GANEFO)에서 200m(23초 5), 400m(51초 4), 800m(1분 59초 1)에서 비공인 세계기록으로 1위를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다. 그러나 이 기록은 세계 육상 연맹으로부터 공인받지 못했다.

1964년 9월 평양시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 여자 육상 400m(51초 2), 800m(1분 58초 F)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1962년 평양에서 51.9초로 400m를 달려, 여성 최초로 53초 벽과 52초 벽을 돌파했다. 그녀가 주장한 8개의 세계 기록 중 이 기록만이 유일하게 공인되었다.

1964년 하계 올림픽 당시 신금단은 신흥국 경기 대회 참가 선수였다는 이유로 올림픽 참가 자격이 박탈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선수단을 철수시키고 중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1966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 신흥국 경기 대회(GANEFO)에서 200m, 400m, 800m 금메달을 획득하며 3관왕을 차지했다.

신금단의 주요 국제 대회 성적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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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대회개최지종목기록순위
1963신흥국 경기 대회(GANEFO)인도네시아 자카르타200m23초 5
400m51초 4
800m1분 59초 1
1966아시아 신흥국 경기 대회(GANEFO)캄보디아 프놈펜200m
400m
800m

2.2. 1964년 도쿄 올림픽 참가 좌절과 아버지와의 만남

국제 육상 경기 연맹이 신흥국 경기대회 참가 선수들을 제재하면서 신금단은 1964년 하계 올림픽 참가가 좌절되었다. 이에 반발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 인도네시아는 1964년 하계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신금단은 1963년과 1966년 신흥국 경기대회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로 참가하여 200m, 400m, 800m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1·4 후퇴 당시 헤어진 아버지 신문준은 대한올림픽위원회에 신금단이 자신의 딸임을 알렸고, 이 소식을 들은 신금단도 이를 인정했다. 당초 남북은 1964년 하계 올림픽이 끝난 후 신금단과 신문준의 만남을 주선하기로 했으나, 북한 선수단의 올림픽 철수 결정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후 철수 전 만남이 추진되었지만, 만남 장소에 대한 이견으로 지연되다가 결국 도쿄에서 14년 만에 부녀 상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만남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고, 이후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중앙정보부의 지시를 받은 신문준은 신금단에게 남한으로 올 것을 권유했으나, 신금단은 거절했다. 헤어질 때 조총련 구성원들이 신금단을 데리고 나가면서 만남은 다소 어색하게 마무리되었다. 이 만남에서 신금단이 외친 "아바이!"라는 말은 황금심의 노래 <눈물의 신금단>의 소재가 되어 남한에서 유행했다.

2.3. 은퇴 이후

신금단은 1966년 최고인민회의에서 "인민 체육인" 칭호가 제정된 후 처음으로 이 칭호를 수여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후 압록강체육선수단과 국가대표 육상지도원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이 원본 소스에 있지만, '은퇴 이후' 섹션에 포함되어야 하므로 이 문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본 소스에서 은퇴 이후의 활동을 추가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어진 소스에는 해당 내용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으므로, 이 문장만 출력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3. 가족 관계

아버지 신문준(1915년 ~ 1983년)은 1·4 후퇴 때 혼자 남한으로 내려갔고, 신금단은 나머지 가족과 함께 북한에 남았다.

4. 기타

신금단은 선반공으로 일했으며, 키가 크고 시원시원한 걸음걸이로 묘사되었다. 1966년 최고인민회의에서 "인민 체육인" 칭호를 받았다.

1965년을 제외하고, 1959년부터 1967년까지 400m, 1960년부터 1967년까지 800m 세계 10위 안에 들었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즈나멘스키 기념 대회 400m에서 우승했다.

1964년 하계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못했고, 하네다 공항에서 잠시 아버지와 만났으나 일본 입국은 거부되었다.

4.1. 기록 논란

신금단의 기록 중 일부는 세계 육상 연맹으로부터 공인받지 못했다. 이는 신흥국 경기 대회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회였기 때문이다. 1960년 10월, 400m에서 53.0초의 비공인 세계 기록을 세웠다. 1962년 평양에서 400m를 51.9초에 달려, 여자 선수 최초로 53초와 52초 벽을 돌파했다. 이 기록은 신금단의 기록 중 유일하게 공인된 기록이다. 1963년 GANEFO에서 400m(51.4초), 800m(1분 59.1초) 세계 기록을 경신했으나, GANEFO가 승인된 대회가 아니었기에 세계 육상 연맹에 의해 공인되지 않았다.

4.2. 성별 논란

1966년, 《타임》은 신금단의 성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서는 신금단의 아버지가 한국 전쟁 중에 헤어진 신금단을 잃어버린 아들로 알아보았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후에도 반복되었지만, 신금단의 성별에 대한 공식적인 확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