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
1. 개요
신덕왕은 912년 효공왕 사후 헌강왕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오른 신라의 제53대 왕이다. 즉위 후 아들 박승영을 태자로 삼았으며, 후백제와 태봉의 세력에 신라가 침식되는 가운데 917년에 사망했다. 능은 경주 배동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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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아버지는 박예겸(朴乂兼)이고, 어머니는 정화부인(貞花夫人)이다. 다른 일설에는 박예겸은 의부(義父)이고 친아버지는 흥렴왕(興廉王)으로 추봉된 각간 박문원(朴文元)이라고도 한다. 헌강왕의 딸인 의성왕후와 혼인하였다. 912년 효공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헌강왕의 사위 자격으로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2.1. 즉위 후
912년, 효공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헌강왕의 사위였던 신덕왕은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즉위한 해에 신덕왕은 아들 박승영을 태자로 세우고, 이찬 계강(繼康)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삼국유사》는 915년(신덕왕 4년)에 영묘사(靈廟寺)의 내행랑에 까치의 둥지가 34군데, 까마귀 둥지가 40군데나 되었으며, 3월에는 두 번이나 서리가 내렸고 6월에는 참포(斬浦)의 물과 바닷물이 사흘 동안이나 싸웠다고 전하고 있다.
916년(신덕왕 5년) 가을 8월에는 후백제의 군주 견훤이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후백제와 태봉의 세력에 침식되는 신라의 불운 속에서 917년에 신덕왕은 붕어하였다. 능은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다.
3. 가계
| | 내용 | |
|---|---|
| 외증조할아버지 | 각간 박원린(朴元隣) - 아달라왕의 원손 |
| 외할아버지 | 각간 박순홍(朴順弘) - 성무왕(成武王)으로 추봉 |
| 어머니 | 정화부인(貞和夫人) 또는 진화부인(眞花夫人) |
| 할아버지 | 해간 박문관(朴文官) |
| 아버지(생부) | 이간 박문원(朴文元) - 흥렴왕(興廉王)으로 추봉 |
| 아버지(양부) | 박예겸(朴乂兼 또는 朴銳謙) - 흥덕왕의 원손, 헌강왕 시기 대아찬(大阿飡)으로 시중 역임. 선성왕(宣聖王 또는 宣成王)으로 추봉 |
| 왕후 | 의성왕후 김씨(義成王后 金氏) - 헌강왕의 딸이자 효공왕의 이복 누나. |
| 자녀 | |
| 아들 | 경명왕 박승영(朴昇英) |
| 아들 | 경애왕 박위응(朴魏膺) |
| 아들 | 박효렴(朴孝廉) |
| 아들 | 박연식(朴硏植)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신덕왕의 가계는 친가와 외가에 대한 기록이 서로 다르다.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신덕왕이 아달라왕과 모계로 이어진 자손이라 하였고, 삼국사기에 신덕왕의 아버지라고 기록된 박예겸에 대해서도 삼국유사는 의붓아버지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서 신덕왕의 성씨를 박씨라고 한 점에 대해, 신덕왕의 누이가 효공왕의 왕비가 된 것을 계기로 김씨에서 박씨로 성을 바꾸었다는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