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
1. 개요
심각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판중추부사를 역임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그는 좌정승 심덕부의 12대손이며, 심온의 11대손으로 남인 가문 출신이다. 정조 즉위 후 홍인한과 정후겸을 탄핵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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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 | 청송 심씨(靑松 沈氏) |
|---|---|
| 자 | 군옥(君玉) |
| 호 | 만오(晩悟) |
| 출생 | 1695년 |
| 사망 | 1779년 |
| 묘소 |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
| 급제 | 1735년(영조 11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
|---|---|
| 주요 경력 |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판중추부사 기로소 |
| 당파 | 남인 · 소론 |
| 아버지 | 심득량(沈得良, 순흥부사, 증 좌찬성) |
|---|---|
| 어머니 | (초취) 증 정경부인 연안 이씨(延安 李氏) (재취) 증 정경부인 단양 우씨(丹陽 禹氏) |
| 배우자 | 정경부인 양천 허씨(陽川 許氏) |
| 자녀 | 2남 심창석(沈昌錫) 심경석(沈景錫, 용궁현감) |
| 5대조 (양) | 심우선(沈友善) 심우승(沈友勝) |
|---|---|
| 5대조 | 심우준(沈友濬) |
| 고조부 (양) | 심양(沈樑) |
| 고조부 | 심액(沈貊) |
| 증조부 (양) | 심광한(沈光瀚) |
| 종조부 | 심광수(沈光洙, 윤선도와 같은 남인 산림) |
| 증조부 | 심광사(沈光泗, 윤이석의 장인, 윤두서의 외조부) |
| 7촌 | 심광면(沈光勉, 윤선도의 사위) |
| 8촌 | 심단(沈檀, 윤선도의 외손자) |
| 조부 | 심상(沈鏛) |
| 손자 | 심유(沈濡) 심오(沈澳) |
| 증손자 | 심동량(沈東亮) |
| 증손서 | 정학유(丁學游) |
| 고손서 | 정대무(丁大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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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부총관 -
심강
심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중종의 부마이자 명종의 외삼촌이었으며, 딸이 경원대군의 부인이 되면서 왕실과 인연을 맺고 명종 즉위 후 청릉부원군에 봉해졌으나, 권력을 이용해 재물을 축적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
조선의 부총관 -
김만기 (조선)
김만기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로, 1653년 문과 급제 후 효종과 숙종 대에 걸쳐 요직을 역임하며 서인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고, 딸이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가 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저서로는 《서석문집》이 있다. -
조선의 도총관 -
심의면
심의면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인순왕후의 방계 후손이자 심의겸의 종9대손이며, 문과 급제 후 관료 생활을 했으나 흥선대원군과의 악연으로 몰락하여 유배지에서 사망했고, 감고당 불법 개축 사건으로 탄핵을 받았다. -
조선의 도총관 -
어유소
어유소는 1434년에 태어나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공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건주위 정벌 중 유배되기도 했지만 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성종을 호종하다 사망하여 정장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조선의 예조판서 -
민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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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예조판서 -
김종서 (1383년)
김종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무신, 학자로, 육진을 개척하고 국경을 확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문신으로서도 활약했으나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2. 가계
심각은 심덕부의 12대손이자 심온의 11대손이다. 심회의 10대손이며, 심달원의 7대손이다. 증조부 심광사는 예송논쟁에서 3년설을 주장한 남인 산림 심광수의 동생으로, 윤선도의 손자사위이자 윤두서의 외조부였다. 심각의 집안은 윤선도 가문, 정약용 가문과 인척 관계로 얽혀있는 전형적인 남인 가문이었다.
윤선도의 사위 심광면과 심광수·심광사 형제는 사촌지간이다. 심광수·심광사 형제의 아버지 심액과 심광면의 아버지 심서는 모두 진사 심우준의 아들이었는데, 심액은 심우준의 동생 심우승에게 입양되었다. 윤선도의 사위 심광면의 아들이 심단이고, 심단의 아들 심득경은 윤선도의 외증손으로, 윤두서가 그린 심득경 초상의 주인공이다.
2.1. 가계도
심달원(승문원 판교, 증이조판서)의 후손으로, 상세한 가계는 다음과 같다.
| 관계 | 이름 및 설명 |
|---|---|
| 12대조 | 심덕부(좌정승, 청성백, 정안공) |
| 11대조 | 심온(세종의 국구, 영의정, 청천부원군, 안효공) |
| 10대조 | 심회(영의정, 청송부원군, 공숙공) |
| 9대조 | 심원 (내자시 판관, 증좌찬성) |
| 8대조 | 심순문 (사헌부 장령, 증영의정) |
| 7대조 | 심달원(기묘명현, 승문원 판교, 증이조판서) |
| 6대조 | 심전(경기도 관찰사, 증영의정, 청파부원군) |
| 5대조 | 심우승(경기도 관찰사, 증영의정, 청계부원군) |
| 고조부 | 심액(이조판서, 청송군, 의헌공) |
| 증조부 | 심광사 (종친부 전부, 증이조참판).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와 함께 예송논쟁에서 3년설을 주장한 남인 산림(南人 山林) 심광수(沈光洙)의 동생. 윤선도의 손자 윤이석(尹爾錫)의 장인이자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의 외조부. |
| 조부 | 심상 (사간원 정언, 증이조판서). 심광사(沈光泗)의 셋째 아들로 심광한(沈光漢)에게 입양. 심광한(沈光漢)은 심우승(沈友勝)과 진사 심우준(沈友俊)의 형 장수현감 심우선(沈友善)의 손자. |
| 부 | 심득량 (순흥부사, 증좌찬성) |
| 본인 | 심각 |
| 아들 | 심창석 |
| 손자 | 심유 |
| 증손 | 심동량 |
| 현손녀 | 청송 심씨, 정학유의 아들 정대무(丁大懋)와 혼인. |
| 아들 | 심오, 심경석(용궁현감)에게 입양 |
| 딸 | 청송 심씨, 다산 정약용의 차남 운포 정학유와 혼인. |
심각 집안은 윤선도(尹善道) 집안 및 정약용(丁若鏞) 집안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전형적인 남인 집안이다.
3. 생애
심각은 1735년(영조 11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742년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을 거쳐 1743년 은산현감, 1749년 홍충도 도사, 1750년 호조정랑, 1751년 수안군수, 1753년 곡산부사, 1754년 사헌부 지평, 1756년 사헌부 장령, 울산부사를 역임하였다. 1758년 장악원정, 장흥부사를 거쳐 1760년 봉상시정, 1761년 사헌부 장령, 사간원 사간, 1762년 사간원 헌납을 지냈다. 1764년 사헌부 장령, 동부승지, 호조참의, 병조참지, 병조참의, 1765년 호조참판, 오위도총부 부총관, 1766년 한성부좌윤, 한성부우윤, 1768년 경연관 특진관,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1770년 오위도총부 도총관, 내국 제조(내의원 제조, 약방 제조), 1772년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판중추부사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1776년 (정조 즉위년) 지중추부사로서 홍인한과 정후겸을 탄핵하였다. 정조 즉위 후 남인이 중용되면서 다시 관직에 나아갔다.
3.1. 영조조
1735년(영조 11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42년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1743년 은산현감, 1749년 홍충도 도사, 1750년 호조정랑, 1751년 수안군수, 1753년 곡산부사, 1754년 사헌부 지평, 1756년 사헌부 장령, 울산부사를 역임하였다. 1758년 장악원정, 장흥부사를 거쳐 1760년 봉상시정, 1761년 사헌부 장령, 사간원 사간, 1762년 사간원 헌납을 지냈다. 1764년 사헌부 장령, 동부승지, 호조참의, 병조참지, 병조참의, 1765년 호조참판, 오위도총부 부총관, 1766년 한성부좌윤, 한성부우윤, 1768년 경연관 특진관, 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1770년 오위도총부 도총관, 내국 제조(내의원 제조, 약방 제조), 1772년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판중추부사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