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의 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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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키타의 성모는 일본 아키타현에서 발생한 가톨릭 발현과 관련된 사건으로,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가 1973년에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를 받고, 성모상에서 눈물이 흐르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 것을 말한다. 사사가와 수녀는 맹장 수술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건강 문제에 시달렸으며, 청력을 잃었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경험을 했다. 성모상은 101회 눈물을 흘렸으며, 이 눈물은 인체 체액으로 확인되었다. 성모 마리아는 사사가와 수녀에게 세 번의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인류의 회개, 묵주 기도, 교회의 분열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1984년, 니가타 교구의 이토 주교는 아키타의 성모 발현이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교황청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공경을 허용했다. 한국인 여성의 치유 기적과 관련하여, 한국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가 있으며,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현대 사회에 대한 경고와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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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타의 성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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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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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일본 아키타현 아키타시 소에가와 유자와다이 |
발생 기간 | 1973년–1979년 |
목격자 | 아녜스 가쓰코 사사가와 |
유형 | 마리아 발현 |
승인일 | 1984년 4월 22일 |
승인자 | 니가타 교구 존 쇼지로 이토 주교 |
성지 | 유자와다이에 있는 성체 봉사회 수녀회의 아키타의 성모 성지 Redemptoris Mater |
2. 배경
사사가와 아녜스(사사가와 아구네스/笹川 アグネス일본어) 수녀는 19세 때 맹장 수술을 받다가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16년 동안 병상에서 지내야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간호사의 도움으로 가톨릭에 입교했으며 그 후 병세도 호전되었다.[27] 나가사키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했으나 4개월 만에 건강이 다시 악화되면서 수도 생활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루르드의 샘물을 마신 후 건강을 회복했다고 전해진다.[27]
1969년 성체봉사수녀회에 입회하여 다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27] 불교 집안 출신이었으나, 평생 건강 문제에 시달렸다.[4] 미숙아로 태어났고, 맹장 수술 후유증으로 10년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4] 가톨릭 수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루르드에서 물을 마신 후 건강이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4] 완전히 청력을 잃은 후, 아키타 근처의 수녀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4] 2024년 8월 15일 일본 아키타의 수녀원에서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5]
2. 1.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
사사가와 아녜스(笹川 アグネス) 수녀는 19세 때 맹장 수술을 받다가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16년 동안 병상에서 지내야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간호사의 도움으로 가톨릭에 입교했으며 그 후 병세도 호전되었다.[27] 나가사키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했으나 4개월 만에 건강이 다시 악화되면서 수도 생활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루르드의 샘물을 마신 후 건강을 회복했다고 전해진다.[27]1969년 성체봉사수녀회에 입회하여 다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27] 불교 집안 출신이었으나, 평생 건강 문제에 시달렸다.[4] 미숙아로 태어났고, 맹장 수술 후유증으로 10년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4] 가톨릭 수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루르드에서 물을 마신 후 건강이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4] 완전히 청력을 잃은 후, 아키타 근처의 수녀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4] 2024년 8월 15일 일본 아키타의 수녀원에서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5]
3. 발현과 기적
## 성흔과 성모상의 눈물
1973년 6월 28일,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의 손바닥에 십자가 모양의 성흔이 나타났고, 성체봉사수녀회 경당에 모셔진 성모상 손바닥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28] 성모상의 성흔은 눈물이 흐르기 전에 나타났다가, 눈물이 흐른 후에는 사라졌다.[28]
1975년 1월 4일부터 1981년 9월 15일까지 성모상은 총 101회 눈물을 흘렸다.[28] 아키타 대학과 기후대학의 법의학 교실에서 성모상의 눈물을 분석한 결과 인간의 체액, 즉 눈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28]
성모상이 눈물을 흘린 횟수와 날짜는 다음과 같다.
횟수 | 년월일시각 | 횟수 | 년월일시각 | 횟수 | 년월일시각 | 횟수 | 년월일시각 |
---|---|---|---|---|---|---|---|
1 | 1975년 1월 4일 9:30 | 26 | 1979년 3월 25일 9:20 | 51 | 1979년 6월 6일 7:30 | 76 | 1979년 7월 13일 9:40 |
2 | 1975년 1월 4일 12:00 | 27 | 1979년 3월 27일 17:25 | 52 | 1979년 6월 7일 15:30 | 77 | 1979년 7월 13일 14:00 |
3 | 1975년 1월 4일 18:45 | 28 | 1979년 3월 31일 17:10 | 53 | 1979년 6월 9일 8:00 | 78 | 1979년 7월 14일 9:00 |
4 | 1975년 3월 6일 12:45 | 29 | 1979년 4월 4일 9:20 | 54 | 1979년 6월 10일 9:20 | 79 | 1979년 7월 16일 11:00 |
5 | 1976년 5월 1일 7:30 | 30 | 1979년 4월 8일 9:30 | 55 | 1979년 6월 12일 11:15 | 80 | 1979년 7월 18일 11:00 |
6 | 1976년 5월 1일 9:20 | 31 | 1979년 4월 9일 14:45 | 56 | 1979년 6월 12일 19:40 | 81 | 1979년 7월 20일 16:30 |
7 | 1976년 5월 1일 17:00 | 32 | 1979년 5월 1일 16:00 | 57 | 1979년 6월 14일 12:50 | 82 | 1979년 7월 22일 12:35 |
8 | 1976년 5월 1일 21:40 | 33 | 1979년 5월 5일 18:45 | 58 | 1979년 6월 15일 17:30 | 83 | 1979년 7월 22일 19:25 |
9 | 1976년 5월 2일 12:30 | 34 | 1979년 5월 6일 16:10 | 59 | 1979년 6월 16일 17:40 | 84 | 1979년 7월 23일 17:15 |
10 | 1976년 5월 13일 12:50 | 35 | 1979년 5월 9일 16:30 | 60 | 1979년 6월 17일 11:00 | 85 | 1979년 7월 24일 17:20 |
11 | 1978년 7월 26일 21:00 | 36 | 1979년 5월 10일 12:30 | 61 | 1979년 6월 21일 16:32 | 86 | 1979년 7월 24일 19:10 |
12 | 1978년 8월 31일 14:45 | 37 | 1979년 5월 13일 8:00 | 62 | 1979년 6월 22일 17:23 | 87 | 1979년 7월 25일 8:15 |
13 | 1978년 9월 15일 17:00 | 38 | 1979년 5월 13일 12:05 | 63 | 1979년 6월 23일 15:30 | 88 | 1979년 7월 25일 12:30 |
14 | 1978년 10월 11일 8:15 | 39 | 1979년 5월 19일 11:50 | 64 | 1979년 6월 25일 17:25 | 89 | 1979년 7월 26일 8:45 |
15 | 1978년 10월 21일 7:30 | 40 | 1979년 5월 20일 9:30 | 65 | 1979년 6월 26일 12:50 | 90 | 1979년 7월 27일 17:25 |
16 | 1978년 11월 4일 19:30 | 41 | 1979년 5월 21일 18:20 | 66 | 1979년 6월 28일 14:20 | 91 | 1979년 7월 28일 15:20 |
17 | 1978년 11월 6일 19:35 | 42 | 1979년 5월 22일 14:10 | 67 | 1979년 6월 29일 11:30 | 92 | 1979년 7월 29일 13:20 |
18 | 1978년 11월 9일 8:10 | 43 | 1979년 5월 26일 16:35 | 68 | 1979년 7월 1일 11:10 | 93 | 1979년 7월 30일 15:05 |
19 | 1978년 11월 13일 8:10 | 44 | 1979년 5월 27일 9:20 | 69 | 1979년 7월 6일 7:20 | 94 | 1979년 7월 31일 15:00 |
20 | 1978년 12월 5일 16:20 | 45 | 1979년 5월 29일 11:55 | 70 | 1979년 7월 7일 12:15 | 95 | 1979년 7월 31일 16:45 |
21 | 1978년 12월 7일 20:40 | 46 | 1979년 5월 29일 20:20 | 71 | 1979년 7월 8일 9:15 | 96 | 1979년 12월 8일 0:10 |
22 | 1978년 12월 25일 2:15 | 47 | 1979년 5월 31일 10:30 | 72 | 1979년 7월 8일 18:15 | 97 | 1979년 12월 8일 23:28 |
23 | 1979년 1월 24일 19:00 | 48 | 1979년 6월 2일 9:00 | 73 | 1979년 7월 10일 17:20 | 98 | 1981년 1월 6일 8:50 |
24 | 1979년 3월 4일 17:40 | 49 | 1979년 6월 3일 10:05 | 74 | 1979년 7월 11일 7:20 | 99 | 1981년 8월 22일 13:00 |
25 | 1979년 3월 7일 13:45 | 50 | 1979년 6월 5일 20:10 | 75 | 1979년 7월 11일 19:20 | 100 | 1981년 9월 12일 8:44 |
101번째(마지막) 1981년 9월 15일 14:00 (※는 통상보다 많은 눈물)
눈물을 흘린 101번이라는 숫자는, 한 여자 이브에 의해 죄가 세상에 온 것처럼, 한 여자 마리아에 의해 구원의 은총이 세상에 온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1과 1 사이의 0은 영원히 존재하는 하느님의 존재를 나타내며, 첫 번째 1은 이브, 마지막 1은 성모 마리아를 나타낸다고 한다.
##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는 1973년에 성모 마리아로부터 세 번의 메시지를 받았다.[29]
1973년 7월 6일 새벽, 사사가와 수녀는 수호천사의 안내로 성모상 앞에서 마리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성모 마리아는 사람들의 보속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사사가와 수녀의 청각 장애가 치유될 것이라고 예고했다.[7] 또한 교황, 주교, 사제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당부했다.[28]
1973년 8월 3일, 사사가와 수녀는 성모상 앞에서 묵주 기도를 바치던 중 두 번째 메시지를 받았다. 성모 마리아는 "세상의 많은 사람은 주님을 슬프게 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죄인들을 대신하여 고통받고 가난으로써 보속할 영혼을 원한다고 하였다.[29]
1973년 10월 13일, 성모 마리아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성모 마리아는 인류의 회개를 촉구하며, 회개하지 않을 경우 하느님의 큰 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묵주 기도와 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회 내 분열과 타협에 대해 경고했다.[7]
## 치유 기적
1982년,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는 청력을 완전히 회복하는 기적을 체험했다.[31] 그녀는 이전에 청력을 잃고 '치료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회복 후 '정상' 판정을 받았다.[31]
1981년, 뇌종양 말기였던 한국인 춘선호 테레사는 아키타의 성모에게 전구를 청한 후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9] 그녀는 혼수 상태에서 회복되는 동안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했다고 하며, 그녀의 질병은 나중에 한국의 전문 의료진의 도움으로 확실하게 치료되었다.[9]
3. 1. 성흔과 성모상의 눈물
1973년 6월 28일,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의 손바닥에 십자가 모양의 성흔이 나타났고, 성체봉사수녀회 경당에 모셔진 성모상 손바닥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28] 사사가와의 성흔은 그녀가 천사로 보이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보기 시작한 후, 손바닥에 꿰뚫는 듯한 고통을 느낀 두 번의 사건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4] 신학자들은 사사가와와 조각상의 손에 있는 성흔이 징표로 의도된 것이라고 보았지만, 에크토플라즘 능력 이론을 포함한 몇 가지 설명이 제시되었다.[4]성모상의 성흔은 눈물이 흐르기 전에 나타났다가, 눈물이 흐른 후에는 사라졌다.[28] 조각상의 오른손 손바닥에서는 두 개의 짧은 교차하는 선에서 액체가 흘러 나왔는데, 한 수녀는 이를 "검은색 자국"이라고 묘사했으며, "마치 연필로 가는 선을 그어 놓은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다른 수녀는 "이 선들에는 두 개의 더 어두운 점이 두드러졌다. 열에 의해 번진 잉크와 매우 흡사했다."고 증언했다. 성물 담당자였던 세 번째 수녀는 "칼날의 끝과 같은 것으로 오른손 손바닥 가운데에 십자 모양의 상처가 난 것을 보았다"고 묘사했다.
1975년 1월 4일부터 1981년 9월 15일까지 성모상은 총 101회 눈물을 흘렸다.[28] 성모상의 눈물은 아키타 대학과 기후대학의 법의학 교실에서 인간의 체액, 즉 눈물로 분석되었다.[28] TV 도쿄 채널 12는 1978년 12월에 눈물을 흘리는 조각상을 비디오로 촬영했다. 조각상의 혈액형과 땀과 눈물의 유형은 각각 B형과 AB형으로 밝혀졌다.[10]
성모상이 눈물을 흘린 횟수와 날짜는 다음과 같다.
횟수 | 년월일시각 | 횟수 | 년월일시각 | 횟수 | 년월일시각 | 횟수 | 년월일시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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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975년 1월 4일 9:30 | 26 | 1979년 3월 25일 9:20 | 51 | 1979년 6월 6일 7:30 | 76 | 1979년 7월 13일 9:40 |
2 | 1975년 1월 4일 12:00 | 27 | 1979년 3월 27일 17:25 | 52 | 1979년 6월 7일 15:30 | 77 | 1979년 7월 13일 14:00 |
3 | 1975년 1월 4일 18:45 | 28 | 1979년 3월 31일 17:10 | 53 | 1979년 6월 9일 8:00 | 78 | 1979년 7월 14일 9:00 |
4 | 1975년 3월 6일 12:45 | 29 | 1979년 4월 4일 9:20 | 54 | 1979년 6월 10일 9:20 | 79 | 1979년 7월 16일 11:00 |
5 | 1976년 5월 1일 7:30 | 30 | 1979년 4월 8일 9:30 | 55 | 1979년 6월 12일 11:15 | 80 | 1979년 7월 18일 11:00 |
6 | 1976년 5월 1일 9:20 | 31 | 1979년 4월 9일 14:45 | 56 | 1979년 6월 12일 19:40 | 81 | 1979년 7월 20일 16:30 |
7 | 1976년 5월 1일 17:00 | 32 | 1979년 5월 1일 16:00 | 57 | 1979년 6월 14일 12:50 | 82 | 1979년 7월 22일 12:35 |
8 | 1976년 5월 1일 21:40 | 33 | 1979년 5월 5일 18:45 | 58 | 1979년 6월 15일 17:30 | 83 | 1979년 7월 22일 19:25 |
9 | 1976년 5월 2일 12:30 | 34 | 1979년 5월 6일 16:10 | 59 | 1979년 6월 16일 17:40 | 84 | 1979년 7월 23일 17:15 |
10 | 1976년 5월 13일 12:50 | 35 | 1979년 5월 9일 16:30 | 60 | 1979년 6월 17일 11:00 | 85 | 1979년 7월 24일 17:20 |
11 | 1978년 7월 26일 21:00 | 36 | 1979년 5월 10일 12:30 | 61 | 1979년 6월 21일 16:32 | 86 | 1979년 7월 24일 19:10 |
12 | 1978년 8월 31일 14:45 | 37 | 1979년 5월 13일 8:00 | 62 | 1979년 6월 22일 17:23 | 87 | 1979년 7월 25일 8:15 |
13 | 1978년 9월 15일 17:00 | 38 | 1979년 5월 13일 12:05 | 63 | 1979년 6월 23일 15:30 | 88 | 1979년 7월 25일 12:30 |
14 | 1978년 10월 11일 8:15 | 39 | 1979년 5월 19일 11:50 | 64 | 1979년 6월 25일 17:25 | 89 | 1979년 7월 26일 8:45 |
15 | 1978년 10월 21일 7:30 | 40 | 1979년 5월 20일 9:30 | 65 | 1979년 6월 26일 12:50 | 90 | 1979년 7월 27일 17:25 |
16 | 1978년 11월 4일 19:30 | 41 | 1979년 5월 21일 18:20 | 66 | 1979년 6월 28일 14:20 | 91 | 1979년 7월 28일 15:20 |
17 | 1978년 11월 6일 19:35 | 42 | 1979년 5월 22일 14:10 | 67 | 1979년 6월 29일 11:30 | 92 | 1979년 7월 29일 13:20 |
18 | 1978년 11월 9일 8:10 | 43 | 1979년 5월 26일 16:35 | 68 | 1979년 7월 1일 11:10 | 93 | 1979년 7월 30일 15:05 |
19 | 1978년 11월 13일 8:10 | 44 | 1979년 5월 27일 9:20 | 69 | 1979년 7월 6일 7:20 | 94 | 1979년 7월 31일 15:00 |
20 | 1978년 12월 5일 16:20 | 45 | 1979년 5월 29일 11:55 | 70 | 1979년 7월 7일 12:15 | 95 | 1979년 7월 31일 16:45 |
21 | 1978년 12월 7일 20:40 | 46 | 1979년 5월 29일 20:20 | 71 | 1979년 7월 8일 9:15 | 96 | 1979년 12월 8일 0:10 |
22 | 1978년 12월 25일 2:15 | 47 | 1979년 5월 31일 10:30 | 72 | 1979년 7월 8일 18:15 | 97 | 1979년 12월 8일 23:28 |
23 | 1979년 1월 24일 19:00 | 48 | 1979년 6월 2일 9:00 | 73 | 1979년 7월 10일 17:20 | 98 | 1981년 1월 6일 8:50 |
24 | 1979년 3월 4일 17:40 | 49 | 1979년 6월 3일 10:05 | 74 | 1979년 7월 11일 7:20 | 99 | 1981년 8월 22일 13:00 |
25 | 1979년 3월 7일 13:45 | 50 | 1979년 6월 5일 20:10 | 75 | 1979년 7월 11일 19:20 | 100 | 1981년 9월 12일 8:44 |
101번째(마지막) 1981년 9월 15일 14:00 (※는 통상보다 많은 눈물)
눈물을 흘린 101번이라는 숫자는, 한 여자 이브에 의해 죄가 세상에 온 것처럼, 한 여자 마리아에 의해 구원의 은총이 세상에 온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1과 1 사이의 0은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며, 첫 번째 1은 이브, 마지막 1은 성모 마리아를 나타낸다고 한다.
3. 2.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
사사가와 아녜스(카타카나로는 가타카나) 수녀는 1973년에 성모 마리아로부터 세 번의 메시지를 받았다.[29]1973년 7월 6일 새벽, 사사가와 수녀는 수호천사의 안내로 성모상 앞에서 마리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성모 마리아는 사람들의 보속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사사가와 수녀의 청각 장애가 치유될 것이라고 예고했다.[7] 또한 교황, 주교, 사제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당부했다.[28]
1973년 8월 3일, 사사가와 수녀는 성모상 앞에서 묵주 기도를 바치던 중 두 번째 메시지를 받았다. 성모 마리아는 "세상의 많은 사람은 주님을 슬프게 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죄인들을 대신하여 고통받고 가난으로써 보속할 영혼을 원한다고 하였다.[29]
1973년 10월 13일, 성모 마리아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성모 마리아는 인류의 회개를 촉구하며, 회개하지 않을 경우 하느님의 큰 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묵주 기도와 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회 내 분열과 타협에 대해 경고했다.[7]
2019년 10월 6일, 사사가와 수녀는 수호천사로부터 "재를 뒤집어쓰고 매일 보속의 묵주 기도를 바치세요. 어린아이처럼 되세요. 매일 희생을 바치세요."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받았다.[14][15][16][17][18][21][22]
3. 3. 치유 기적
1982년,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는 청력을 완전히 회복하는 기적을 체험했다.[31] 그녀는 이전에 청력을 잃고 '치료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회복 후 '정상' 판정을 받았다.[31] 1974년 10월, 사사카와는 갑작스러운 청력 개선을 경험했으나, 1975년 3월에 다시 "격렬한 두통"과 청력 손실을 경험했다. 1975년 3월의 두 번의 청력 검사 결과는 양쪽 귀의 청력 손실이었다. 조에쓰시에 있는 니가타 로사이 병원의 사와다 박사는 그녀가 '불치적인 귀머거리'라고 확인했고, 아키타 적십자 병원의 안과 이비인후과 아라이 박사 역시 그녀의 완전한 귀머거리를 확인했다. 1982년 5월, 사사카와는 다시 갑작스러운 청력 개선을 경험했고, 1982년 6월, 사와다는 사사카와의 청력이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증명했다. 그러나 야스다에 따르면, 사사카와의 1982년 청력 검사에서 발견된 청력 개선은 병원에서 "기적적인 치료"로 인증되지 않았다.1981년, 뇌종양 말기였던 한국인 춘선호 테레사는 아키타의 성모에게 전구를 청한 후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9] 그녀는 혼수 상태에서 회복되는 동안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했다고 하며, 그녀의 질병은 나중에 한국의 전문 의료진의 도움으로 확실하게 치료되었다.[9] 야스다는 춘과 1983년 10월의 다른 한국 순례자들에 따르면, 그 치료는 "한국 교회 당국에 의해 기적적인 것으로 선언되었다"고 썼다.
4. 교회의 조사와 입장
1975년, 이토 쇼지로(요한) 주교는 신앙교리성(CDF)과 초기 협의를 시작했다.[28] 지역 관구장 주교에게 예비 관할권이 있다는 조언을 받은 그는 이듬해 조사 위원회를 소집하여 "초자연적인 사건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31]
1984년 4월 22일, 이토 주교는 사목 서한을 통해 아키타의 성모 발현이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교황청으로부터 최후 판정이 내릴 때까지는 자신의 교구 내에서 아키타의 성모에 대해 공경을 표하는 것을 금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1] 그는 수녀원의 조각상과 관련된 일련의 신비로운 사건의 "초자연적 성격"을 인정하고, 교황청에서 선포한 "이 문제에 대한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니가타 로마 가톨릭 교구 내에서 "아키타 성모의 공경"을 승인했다. 그는 또한 이 사건이 공적 계시와 같이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아닌 사적 계시임을 명확히 했다.[1]
1988년 4월 22일 니가타 교구장 이토 쇼우지로(요한) 주교는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에게 서신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하였으나,[30] 신앙교리성은 아키타의 성모와 관련된 그 어떠한 결정 사항을 공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확인으로 1990년 4월 주일 교황 대사 윌리엄 애퀸 커루는 이탈리아의 한 가톨릭 잡지(30 지오르니)와의 인터뷰에서 신앙교리성 장관 라칭거 추기경은 아키타 성모의 메시지의 신뢰성이나 진정성에 대해 어떠한 유권적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교황청은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떠한 최종 판결도 내리지 않았다.[13] 이토 주교의 승인 선언이 그의 후임자나 교황청에 의해 번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발현은 교회법에 따라 니가타 교구에 공식적으로 승인된 상태로 남아있다.
5. 한국과의 관계
5. 1. 한국인 여성의 치유 기적
5. 2. 한국 가톨릭 교회의 입장
6. 아키타의 성모가 주는 메시지의 의의
6. 1. 현대 사회에 대한 경고와 희망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현대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영적 가치 상실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21][22] 동시에 회개와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21][22]1973년 8월 3일, 성모 마리아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죄인과 망은자(忘恩者)를 대신하여 고통과 가난함으로 이것을 보상하는 영혼을 원한다고 밝혔다. 또한 "기도, 고행, 가난, 용기 있는 희생적 행위는, 아버지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1973년 10월 13일의 마지막 메시지에서 성모 마리아는 "만약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아버지께서는 전 인류 위에 큰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경고했다.[21][22] 이 벌은 대홍수보다 더 무겁고,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고 묘사되었다.[21][22] 성모 마리아는 이때 우리에게 남는 무기는 묵주와 아들의 남겨진 표식뿐이며, 묵주 기도를 통해 주교와 사제를 위해 기도하라고 강조했다.[21][22] 또한 악마의 역사가 교회 안으로까지 침투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유혹에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하며, 특별히 하느님께 바쳐진 영혼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21][22]
2019년 10월 6일, 1973년에 사사카와 수녀에게 나타났던 천사가 다시 나타나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의 묵주 기도를 매일 기도하십시오. 어린아이가 되어, 매일 희생을 바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21][22] 이는 1973년의 메시지를 상기시키며, 회개와 묵주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다. 사사카와 수녀는 이 메시지를 듣고 "때가 가깝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21]
6. 2.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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