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침
1. 개요
악침은 위나라의 장수로, 아버지 악진의 뒤를 이어 양주 자사에 이르렀다. 255년 문흠 등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나, 257년 제갈탄의 모반에 연루되어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사후 위위로 추증되고 민후의 시호가 내려졌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의 북벌에 참전하여 촉한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역할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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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년 사망 -
교황 스테파노 1세
교황 스테파노 1세는 254년부터 257년까지 재임한 제23대 교황으로,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이후 배교자 재세례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톨릭교회는 그의 축일을 8월 2일에 기념하고 흐바르와 모딜리아나 대성당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한다. -
257년 사망 -
장창포
장창포는 삼국 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첩의 신분임에도 아들 종회를 훌륭하게 교육하고 손씨의 음모에 지혜롭게 대처했으며, 고평릉 사변 당시 침착함을 유지하다가 257년에 사망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참수된 사람 -
악비
남송 시대 장군 악비는 금나라에 맞선 애국 영웅으로, 진회의 모함으로 처형되었으나 사후 충절을 인정받아 무목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만강홍이라는 시와 함께 현대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최근 그의 군사 행위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있다. -
참수된 사람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2. 생애
악진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었다. 관직은 양주자사에 이르렀다. 과단성이 있고 강직하여 부친의 풍모가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악진이 살아있을 때 영토의 일부를 분할받아 열후(列侯)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것이 악침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255년, 문흠 등의 반란 추토에 공을 세워 양주 자사까지 승진했다.
감로 2년(257년), 제갈탄이 모반을 일으켰을 때, 먼저 양주로 나아가 악침을 습격하여 죽였다. 《위진세어》에서는 제갈탄이 사공이 되었을 때 제갈탄의 병사가 악침에게 붙게 되었으므로, 제갈탄은 악침이 꾀한 일이라고 여기고 수백 명을 이끌고 양주로 갔다고 한다. 양주 사람들은 문을 걸어잠갔으나 옛 제갈탄의 관리였으므로 제갈탄이 꾸짖자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악침은 누대 위로 도망했으나 사로잡혀 참수당했다.
조서를 내려 이를 애도하고 애석히 여겼으며, 위위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려 민후(愍侯)라 하였다. 아들 악조가 뒤를 이었다. 무용(武勇)이 뛰어난 강개(剛毅)하고 과단한 인물로, 아버지에 못지않은 인물로 높이 평가받았다. 257년 6월 4일, 의심에 사로잡힌 제갈탄에게 사마씨의 여당으로 여겨져 그 군세에 공격받아 전사했다(제갈탄의 난). 제갈탄은 악침의 잘못을 상주했지만, 그 행위는 반역으로 간주되어 토벌당하게 되었다. 악침에게는 위후(慰侯)가 추증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생활
악진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었다. 관직은 양주자사에 이르렀다. 과단성이 있고 강직하여 부친의 풍모가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악진(樂進)이 살아있을 때 영토의 일부를 분할받아 열후(列侯)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것이 악침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255년, 문흠 등의 반란 추토에 공을 세워 양주 자사까지 승진했다.
감로 2년 (257년) 제갈탄이 모반을 일으켰을 때, 제갈탄은 악침을 사마씨의 여당으로 의심하여 공격했고, 악침은 결국 전사했다. 제갈탄의 난이후, 조서를 내려 악침의 죽음을 애도하고 애석하게 여겨 위위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려 민후(愍侯)라 하였다. 아들 악조가 뒤를 이었다.
2.2. 제갈탄의 난과 죽음
악진이 죽은 후 그 뒤를 이었다. 관직은 양주자사에 이르렀다. 과단성이 있고 강직하여 부친의 풍모가 있었다.
감로 2년(257년), 제갈탄이 모반을 일으켰을 때, 먼저 양주로 나아가 악침을 습격하여 죽였다. 《위진세어》에서는 제갈탄이 사공이 되었을 때 제갈탄의 병사가 악침에게 붙게 되었으므로, 제갈탄은 악침이 꾀한 일이라고 여기고 수백 명을 이끌고 양주로 갔다고 한다. 양주 사람들은 문을 걸어잠갔으나 옛 제갈탄의 관리였으므로 제갈탄이 꾸짖자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악침은 누대 위로 도망했으나 사로잡혀 참수당했다.
조서를 내려 이를 애도하고 애석히 여겼으며, 위위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려 민후(愍侯)라 하였다. 아들 악조가 뒤를 이었다. 255년, 문흠 등의 반란 추토(관구검·문흠의 난)에 공적이 있어 양주 자사까지 승진했지만, 257년 6월 4일, 의심에 사로잡힌 제갈탄에게 사마씨의 여당으로 여겨져 그 군세에 공격받아 전사했다(제갈탄의 난). 제갈탄은 악침의 잘못을 상주했지만, 그 행위는 반역으로 간주되어 토벌당하게 되었다. 악침에게는 위위와 위후(慰侯)가 추증되었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사마의의 막하에서 2차 북벌 당시 장료의 아들 장호와 함께 각각 선봉과 부선봉이 되어 전선을 지켰다.
230년, 조진이 울화병으로 죽자 조진의 복수전을 위해 사마의의 부장으로 참전하여 제갈량과 진법으로 승부하였으나 장호, 대릉과 함께 제갈량의 포로가 되었고 무기와 갑옷을 모조리 빼앗겨 풀려났다.
234년, 장호와 함께 위수(渭水)를 지키며, 촉한의 장수 오의와 오반을 격파하여 오반을 죽였다.
제110회에도 등장하여 257년에 사서에서와 유사하게 제갈탄에게 죽임을 당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명장의 아들이라는 설정 때문에 장료의 아들인 장호와 함께 묶여서 촉한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거듭하는, 전형적인 패배자 역할로 묘사된다. 최후에 관해서는 사서의 기록과 거의 동일한 결말을 맞이한다.
3.1. 제갈량의 북벌 참전
사마의의 막하에서 2차 북벌 당시 장료의 아들 장호와 함께 각각 선봉과 부선봉이 되어 전선을 지켰다.
230년, 조진이 울화병으로 죽자 조진의 복수전을 위해 사마의의 부장으로 참전하여 제갈량과 진법으로 승부하였으나 장호, 대릉과 함께 제갈량의 포로가 되었고 무기와 갑옷을 모조리 빼앗겨 풀려났다.
234년, 장호와 함께 위수(渭水)를 지키며, 촉한의 장수 오의와 오반을 격파하여 오반을 죽였다.
제110회에도 등장하여 257년에 사서에서와 유사하게 제갈탄에게 죽임을 당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명장의 아들이라는 설정 때문에 장료의 아들인 장호와 함께 묶여서 촉한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거듭하는, 전형적인 패배자 역할로 묘사된다. 최후에 관해서는 사서의 기록과 거의 동일한 결말을 맞이한다.
3.2. 위수 전투
사마의(司馬懿)의 막하에서 2차 북벌 당시 장료(張遼)의 아들 장호(張虎)와 함께 각각 선봉과 부선봉이 되어 전선을 지켰다.
230년, 조진(曹眞)이 울화병으로 죽자 조진의 복수전을 위해 사마의의 부장으로 참전하여 제갈량(諸葛亮)과 진법으로 승부하였으나 장호, 대릉(戴陵)과 함께 제갈량의 포로가 되었고 무기와 갑옷을 모조리 빼앗겨 풀려났다.
234년, 장호와 함께 위수(渭水)를 지키며, 촉한(蜀漢)의 장수 오의(吳懿)와 오반(吳班)을 격파하여 오반을 죽였다.
제110회에도 등장하여 257년에 사서에서와 유사하게 제갈탄에게 죽임을 당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명장의 아들이라는 설정 때문에 장료의 아들인 장호와 함께 묶여서 촉한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거듭하는, 전형적인 패배자 역할로 묘사된다. 최후에 관해서는 사서의 기록과 거의 동일한 결말을 맞이한다.
3.3. 제갈탄의 난
사마의(司馬懿)의 막하에서 2차 북벌 당시 장료(張遼)의 아들 장호(張虎)와 함께 각각 선봉과 부선봉이 되어 전선을 지켰다.
230년, 조진(曹眞)이 울화병으로 죽자 조진의 복수전을 위해 사마의의 부장으로 참전하여 제갈량(諸葛亮)과 진법으로 승부하였으나 장호, 대릉(戴陵)과 함께 제갈량의 포로가 되었고 무기와 갑옷을 모조리 빼앗겨 풀려났다.
234년, 장호와 함께 위수(渭水)를 지키며, 촉한(蜀漢)의 장수 오의(吳懿)와 오반(吳班)을 격파하여 오반을 죽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110회에 등장하여 257년에 제갈탄에게 죽임을 당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명장의 아들이라는 설정 때문에 장료의 아들인 장호와 함께 묶여서 촉한과의 싸움에서 패배를 거듭하는, 전형적인 패배자 역할로 묘사된다. 최후에 관해서는 사서의 기록과 거의 동일한 결말을 맞이한다.
4. 친족 관계
악침은 악진의 아들이다. 아들로는 악조(樂肇)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