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사다요시
1. 개요
안도 사다요시는 일본 제국의 육군 대장으로, 대만 총독을 역임했다. 시나노 국 이다시 출신으로,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세이난 전쟁, 러일 전쟁에 참전했다. 육군 사관학교장, 제10사단장, 조선 주둔군 사령관을 거쳐 1915년 대만 총독에 취임하여 시라이안 사건을 겪었다. 1918년 대기 발령 후 1923년 퇴역했으며, 1932년 사망하여 훈1등 욱일동화대수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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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안도 사다요시 |
|---|---|
| 로마자 표기 | Ando Sadayoshi |
| 출생 | 1853년 10월 20일 |
| 출생지 | 일본 나가노현이다시 |
| 사망 | 1932년 8월 29일 |
| 사망지 | 일본 도쿄도도쿄시우시고메구 |
| 칭호 | 종2위 남작 |
| 소속 | 일본 제국 육군 |
|---|---|
| 복무 기간 | 1872년 – 1923년 |
| 최종 계급 | 육군 대장 |
| 주요 지휘 | 타이완 총독 제2사단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교 제10사단 제12사단 조선군 |
| 주요 참전 | 세이난 전쟁 러일 전쟁 |
| 수상 | 금치훈장 (3등) 욱일장 (1등) |
| 임기 시작 | 1915년 5월 1일 |
|---|---|
| 임기 종료 | 1918년 6월 6일 |
| 이전 | 사쿠마 사마타 |
| 이후 | 아카시 모토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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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총독 -
고다마 겐타로
고다마 겐타로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만주군 총참모장으로 러일 전쟁 승리에 기여하고 대만 총독으로서 식민 통치를 펼치며 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관여하는 등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모두 남겼다. -
대만 총독 -
노기 마레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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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2급 금치훈장 수훈자 -
도조 히데키
도조 히데키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육군 대신, 참모총장,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진주만 공격을 명령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
공2급 금치훈장 수훈자 -
오쿠보 하루노
오쿠보 하루노는 육군 대장까지 진급하고 한국주둔군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 참전하고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한국 병합 이후 조선주둔군 사령관을 지냈다. -
대만총독부 -
고다마 겐타로
고다마 겐타로는 일본 제국의 육군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만주군 총참모장으로 러일 전쟁 승리에 기여하고 대만 총독으로서 식민 통치를 펼치며 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관여하는 등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모두 남겼다. -
대만총독부 -
노기 마레스케
2. 생애
안도 사다요시는 시나노 국 이나 군 남부(현재의 나가노현 이다시) 출신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다 번의 창술 사범, 할아버지는 마쓰모토번 창술 사범이었다.
1870년 오사카 육군 병학료(일본 제국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 1872년 졸업 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육군 중위, 대위로 진급하며 세이난 전쟁에 참전해 부상을 입었다. 1883년 보병 소령 진급 후, 육군 사관학교 교관, 참모 본부 제3국 제1과장, 육군 토야마 학교장, 철도선구사령관 등을 거쳐 1896년 육군 사관학교장이 되었다.
1898년 육군 소장으로 진급, 대만 수비 혼성 제2여단장, 보병 제19여단장을 역임했다. 1904년 러일 전쟁에 참전, 1905년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10사단장으로 봉천 전투에서 활약, 1906년 공3급 금계훈장을 받았다.
1907년 남작 작위를 받고 화족이 되었다. 1910년 제12사단장, 1912년 조선 주둔군 사령관을 거쳐 1915년 육군 대장 진급과 동시에 대만 총독에 취임, 타파니 사건을 겪고 대만 산림 자원 개발과 철도 건설에 힘썼다.
1918년 대만 총독에서 물러나 예비역으로 편입, 1923년 퇴역했다. 1932년 사망 후 욱일대수장을 받았다.
2.1.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안도 사다요시는 시나노 국(현재의 나가노현) 이다시 출신의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마쓰모토번의 가신이었다.
1870년 12월, 오사카 육군 병학료(일본 제국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872년 6월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874년 11월 육군 중위로 진급했으며, 1876년 8월 도쿄 진대보병 제1연대중대장 직무 대행을 명령받았다. 1877년 3월 세이난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같은 해 5월 대위로 진급했다.
1878년 4월 육군 사관학교 부속, 1883년 2월 보병 소령으로 진급하여 보병 제2연대 제3대대장을 거쳤다. 1884년 2월 육군 사관학교 교관, 1886년 4월 참모 총장 전령사, 1887년 3월 참모 본부 제3국 제1과장을 역임했다. 1888년 5월 제1국원으로 이동했고, 1889년 8월 다시 육군 사관학교 교관이 되었다. 1891년 4월 보병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1893년 8월 7일 육군 토야마 학교장에 취임했다. 1894년 8월 30일 철도 선구사령관으로 이동, 같은 해 12월 1일 보병 대령으로 진급하여 1896년 9월 28일 육군 사관학교장에 취임했다.
1897년 9월 28일 보병 제6연대장, 1898년 10월 1일 육군 소장으로 진급하여 대만 수비 혼성 제2여단장에 취임했다. 1899년 8월 26일 보병 제19여단장, 1904년 3월 동원령으로 러일 전쟁에 참전했다. 1905년 1월 15일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10사단장에 임명되었다. 1906년 4월 12일 러일 전쟁의 공로로 공3급 금계훈장을 수여받았다.
2.2. 러일 전쟁
안도는 러일 전쟁에 참전하여 1904년 (메이지 37년) 3월 동원령에 따라 출정하였다. 1905년 (메이지 38년) 1월 15일,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고 제10사단장에 임명되었다. 봉천 전투에 참여했으며, 러일 전쟁의 공로로 1906년 (메이지 39년) 4월 12일에는 공3급 금계훈장을 수여받았다.
2.3. 조선 주둔군 사령관 및 대만 총독
1912년 안도 사다요시는 조선 주둔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15년 사쿠마 사마타의 뒤를 이어 대만 총독이 되었으며, 1918년 6월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일본 통치에 대한 대규모 봉기인 타파니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태평산과 팔선산의 대만 산림 자원 개발 작업과 이란선 및 핑둥선 철도 건설도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