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산 우아타라
1. 개요
알라산 우아타라는 1942년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코트디부아르의 정치인이다. 그는 국제 통화 기금(IMF)과 서아프리카 중앙은행(BCEAO)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코트디부아르 총리를 역임했다.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로랑 그바그보가 결과에 불복하며 코트디부아르 위기와 내전으로 이어졌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취임하여 현재까지 재임 중이며, 2015년과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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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함 |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
|---|---|
| 임기 시작 | 2010년 12월 4일 |
| 출생일 | 1942년 1월 1일 |
| 출생지 |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딤보크로 (현재의 코트디부아르) |
| 소속 정당 | 코트디부아르 민주당 – 아프리카 민주 집회 공화연합 |
| 자녀 | 2명 |
| 모교 | 드렉셀 대학교(이학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문학 석사, 박사) |
| 공식 웹사이트 | 공식 대통령 웹사이트 |
| 존칭 접미사 | GColIH |
| 형제자매 | 테네 비라히마 우아타라(형제) |
| 로마자 표기 | Alassane Dramane Ouattara (알라산 드라마네 우아타라) |
| 프랑스어 표기 | Alassane Dramane Ouattara |
| 대통령 | 코트디부아르의 제5대 대통령 |
|---|---|
| 부통령 | 다니엘 카블란 뒹캉 티에모코 메이리에 코네 |
| 총리 | 기욤 소로 자노 아후수코아디오 다니엘 카블란 뒹캉 아마두 곤 쿨리발리 하메드 바카요코 파트리크 아치 로베르 베그레 맘베 |
| 총리 임기 시작 | 1990년 11월 7일 |
| 총리 임기 종료 | 1993년 12월 9일 |
| 대통령 |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
| 총리 전임 |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
| 총리 후임 | 다니엘 카블란 뒹캉 |
| 경제 및 재정 장관 | 코트디부아르 경제 및 재정 장관 |
| 장관 임기 시작 | 1990년 10월 |
| 장관 임기 종료 | 1993년 11월 |
| 국제 통화 기금 | 국제 통화 기금 부총재 |
| 부총재 임기 시작 | 1994년 |
| 부총재 임기 종료 | 1999년 |
| 서아프리카 중앙 은행 | 서아프리카 중앙 은행 총재 |
| 총재 전임 | 압둘라예 파디가 |
| 총재 후임 | 샤를 코난 바니 |
| 총재 임기 시작 | 1988년 12월 |
| 총재 임기 종료 | 1990년 11월 |
| 관련 사건 | 2010–2011 코트디부아르 위기 제2차 내전 부아니 압사 사고 2016년 헌법 국민투표 그랑바상 총격 사건 2017년 코트디부아르 반란 2020년 코트디부아르 시위 코로나19 범유행 |
|---|
| 국회의원 선거 | 2011년 2016년 2021년 |
|---|---|
| 지방 선거 | 2011년 2013년 2018년 20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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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의 민주주의 운동가 -
로랑 그바그보
로랑 그바그보는 역사 교수 출신으로 코트디부아르 인민전선을 창당하여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을 역임했으나, 2010년 대선 결과 불복으로 내전 후 실각,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무죄 판결 후 귀국하여 아프리카 국민당 – 코트디부아르를 창당하고 2025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 활동을 재개한 정치인이다. -
부르키나파소계 코트디부아르인 -
모하메드 코나테
코트디부아르 출신 부르키나파소 축구 선수 모하메드 코나테는 2016년 FC 우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데뷔 후 여러 나라 클럽을 거쳐 알-리야드 SC에 입단, 2020년부터 부르키나파소 국가대표팀으로 활동하며 2023년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했다. -
부르키나파소계 코트디부아르인 -
아다모 나갈로
아다모 나갈로는 부르키나파소 출신 축구 선수로, 2021년 FC 노르셸란에서 프로 데뷔 후 2024년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으며, 2000년부터 부르키나파소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코트디부아르의 초대 대통령이자 장기 집권 독재자였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는 의료 보조원으로 시작해 아프리카 농민 권익을 옹호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 코트디부아르 독립을 이끌었으나 일당 독재와 경제 문제, 부정부패 등으로 비판받았고 그의 사후 코트디부아르는 내전을 겪었으며, 평화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기리는 평화상이 제정되었다. -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
로베르 게이
코트디부아르의 군인이자 정치인인 로베르 게이는 1999년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어 2000년 1월부터 10월까지 재임했으나, 2002년 내전 중 암살당했다.
2. 어린 시절 및 교육
알라산 우아타라는 1942년 1월 1일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딤보크로에서 태어났다. 그는 와타라 제국으로도 알려진 콩 제국의 일부였던 부르키나파소의 무슬림 통치자 가문 출신이다. 우아타라는 무슬림이며, 딜라족의 일원이다.
1965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드렉셀 대학교(드렉셀 공과대학교)에서 이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1972년 같은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 금융기관 경력
알라산 우아타라는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워싱턴 D.C.의 국제 통화 기금(IMF)에서 경제학자로 근무했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는 서아프리카 중앙은행(BCEAO)의 파리 주재 대사로 근무했다.
BCEAO에서 그는 1975년 2월부터 1982년 12월까지 총재 특별보좌관 겸 연구이사, 1983년 1월부터 1984년 10월까지 부총재를 지냈다. 1984년 11월부터 1988년 10월까지는 IMF 아프리카부서장을 역임했고, 1987년 5월에는 IMF 상임이사 특별고문을 겸임했다.
1988년 10월 28일, 우아타라는 BCEAO 총재로 임명되어 12월 22일에 취임했다. 우아타라는 성실하고 투명성과 좋은 지배구조를 중시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4. 정치 경력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은 1990년 4월 우아타라를 코트디부아르 안정 및 경제 회복 프로그램 조정부처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당시 우아타라는 서아프리카 중앙은행(BCEAO) 총재직도 겸임했다. 1990년 11월 7일 코트디부아르 총리가 되었고, 1990년 10월부터 1993년 11월까지 경제·재정부 장관직을 역임했다.
총리 재직 중이던 1993년 3월부터 12월까지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의 와병 기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려 했다. 1993년 12월 7일 우푸에부아니 대통령 사망 후, 앙리 코난 베디에 국회의장과 대통령직 승계 다툼을 벌였으나 헌법에 따라 베디에가 승리하여 12월 9일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1995년 대선을 앞두고 국회는 후보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선거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하던 우아타라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IMF 근무로 1990년 이후 코트디부아르에 거주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부르키나파소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결국 후보 지명을 거부했고, 소속 정당인 공화당은 코트디부아르 인민전선(FPI)의 로랑 그바그보와 함께 선거를 보이콧했다.
1999년 8월 1일, 공화당(RDR) 대표 및 차기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출생 증명서를 제시하며 출마 자격을 주장했지만, 베디에 대통령은 위조라고 비난하며 부르키나파소인으로 묘사했다. 1999년 말 국적 증명서 무효화 및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으나, 12월 군부 쿠데타로 베디에 정권이 무너지면서 귀국했다.
2000년 대선에서 부모 모두 코트디부아르인이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으로 후보 자격이 박탈되었다. 이는 코트디부아르 제1차 내전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2007년 그바그보 대통령은 우아타라의 차기 대선 출마를 허용했고,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 및 대표로 재선되어 전 반군 신군에게 선거 연합을 제안했다.
2010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선거에서 32.08% 득표율로 2위를 차지, 결선 투표에서 앙리 코난 베디에의 지지로 54.68%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헌법위원회가 일부 지역 투표를 무효로 처리하며 로랑 그바그보 승리를 선언했고, 이에 유엔 등 국제사회가 우아타라 당선을 인정하면서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다.
2010년11월 28일부터 2011년4월 11일까지 이어진 제2차 코트디부아르 내전에서 우아타라 측 군대가 그바그보를 체포, 2011년 5월 6일 공식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2020년, 3선 제한 헌법 조항에도 불구, 대선에 출마하여 94.27%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나 야당의 선거 보이콧 및 잠정 정부 수립 선언으로 정국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4.1. 총리직 (1990-1993)
1990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에게 알라산 우아타라를 코트디부아르 안정 및 경제 회복 프로그램 조정 부처간 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우아타라는 이 직책을 맡으면서도 서아프리카 중앙은행(BCEAO) 총재직을 유지했다. 1990년 11월 7일, IMF의 승인 하에 우아타라는 코트디부아르의 총리가 되었고, 샤를 코난 배니가 임시 BCEAO 총재를 맡았다. 그는 또한 1990년 10월부터 1993년 11월까지 경제·재정부 장관직을 역임했다.
우아타라는 총리 재직 중, 1993년 3월부터 12월까지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이 병상에 있던 기간을 포함해 총 18개월 동안 헌법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려 했다. 1993년 12월 7일 우푸에부아니가 사망하자, 우아타라는 "코트디부아르는 고아가 되었다"라고 그의 죽음을 발표했다. 이후 우아타라와 앙리 코낭 베디에 국회의장 사이에 대통령직 승계를 둘러싼 짧은 권력 투쟁이 벌어졌는데, 헌법은 베디에에게 국가를 이끌 권한을 명확히 부여하고 있었다. 베디에가 승리했고, 우아타라는 1993년 12월 9일 총리직을 사임했다. 이후 우아타라는 IMF로 복귀하여 1994년 7월 1일부터 1999년 7월 31일까지 부총재로 재직했다.
4.2. 야당 지도자 (1994-2010)
1994년, 알라산 우아타라는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직을 마치고 코트디부아르로 돌아와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1995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공화당(RDR)은 우아타라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려 했다. 그러나 집권 코트디부아르 민주당(PDCI)은 우아타라의 출마를 막기 위해 후보자의 부모 중 한 명이 외국 국적일 경우, 또는 직전 5년간 코트디부아르에 거주하지 않은 경우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IMF 근무로 인해 코트디부아르에 거주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부르키나파소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던 우아타라를 겨냥한 것이었다. 결국 우아타라는 후보 지명을 거부했고, 공화당은 선거를 보이콧하며 현직 대통령인 앙리 코난 베디에가 쉽게 당선되었다.
1999년, 우아타라는 공화당 대표로 선출되었고,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는 자신과 부모 모두 코트디부아르 출생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시했지만, 베디에 대통령은 그가 부르키나파소인이라고 주장하며 서류 위조 혐의를 제기했다. 결국 우아타라의 국적 증명서는 무효화되었고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지만, 그는 해외에 체류 중이었다.
1999년 12월, 군부 쿠데타로 베디에 정권이 무너지자 우아타라는 귀국하여 베디에 축출을 "혁명"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새 헌법 조항으로 인해 후보 자격이 박탈되었고, 이는 코트디부아르 제1차 내전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2007년,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은 우아타라의 차기 대선 출마를 허용했다. 2008년, 우아타라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및 대표로 재선되었고, 전 반군 신군에게 선거 연합을 제안했다.
4.3. 2010년 대통령 선거와 위기
2005년에 치러졌어야 할 대통령 선거는 2010년 11월로 연기되었다. 독립선거관리위원회는 알라산 우아타라 전 총리가 로랑 그바그보를 상대로 승리했다고 발표했지만, 집권 코트디부아르 인민전선(FPI)은 신군부 반군이 장악한 북부 지역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헌법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은 유엔 관찰자들에 의해 반박되었다. 그바그보 지지자들로 구성된 헌법위원회는 7개 북부 지역의 결과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우아타라가 54%로 승리한 대신 그바그보가 51%의 득표율로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그바그보의 취임 이후, 대부분의 국가와 유엔이 인정한 우아타라는 대체 취임식을 조직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내전의 부활에 대한 두려움을 높였고, 수천 명의 난민들이 그 나라를 떠났다. 아프리카 연합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 대통령 타보 음베키를 중재자로 파견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의 입장에 따라 알라산 우아타라를 선거 승자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서아프리카 국가 경제 공동체는 코트디부아르의 모든 의사결정 기구를 중단시켰으며, 아프리카 연합도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켰다.
2010년, 코트디부아르 군대의 한 대령은 무기와 탄약을 불법 수출한 혐의로 뉴욕에서 체포되었다. 2010년 대통령 선거는 2010~2011년 코트디부아르 위기와 제2차 코트디부아르 내전으로 이어졌다. 국제 기구들은 양측의 수많은 인권 침해를 보고했다. 듀에쿠에 시에서는 수백 명이 사망했고, 인근 볼로레퀸에서는 수십 명이 사망했다. 유엔과 프랑스군은 그바그보에 대해 군사 행동을 취했다. 그바그보는 2011년 4월 11일 그의 거주지를 급습한 후 구금되었다. 이 나라는 전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며, 우아타라는 경제 재건과 코트디부아르인들의 재결합이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코트디부아르 사태 진전에 박수를 보냈으며,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그바그보의 체포가 독재자들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고 말했다.
4.4. 대통령직 (2011-현재)
2010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선거는 2010년-2011년 코트디부아르 위기와 제2차 코트디부아르 내전으로 이어졌다. 2005년에 치러졌어야 할 대통령 선거는 2010년 11월로 연기되었다. 선거위원회의 부정 행위에 대한 우려 속에, 전 총리 알라산 우아타라가 승리하고 로랑 그바그보가 패배했다는 예비 결과가 발표되었다.
집권당인 코트디부아르 인민전선(FPI)은 새로운 세력 반군이 장악한 북부 지역에서 대규모 부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코트디부아르 헌법재판소에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유엔 관찰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반박했다. 헌법재판소는 북부 7개 지역의 결과를 불법으로 선언하고, 그바그보가 51%의 득표율로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선포했다.
대부분의 국가와 유엔은 우아타라를 승자로 인정했으며, 우아타라는 별도의 취임식을 거행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내전 재발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고, 수천 명의 난민들이 코트디부아르를 탈출했다. 아프리카 연합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 대통령 타보 음베키를 파견하여 갈등을 중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의 입장을 바탕으로 알라산 우아타라를 선거 승자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으며,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와 아프리카 연합은 코트디부아르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2010년 11월 28일부터 2011년 4월 11일까지 이어진 제2차 코트디부아르 내전에서 2011년 4월 11일 우아타라 측 군대의 공격으로 그바그보가 체포되었다. 같은 해 5월 6일, 우아타라는 취임 선서를 하고 공식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국제기구들은 양측 모두의 수많은 인권 침해 사례를 보고했다. 두에쿠에시에서는 수백 명이 사망했고, 인근 블롤레캥에서는 수십 명이 사망했다. 유엔과 프랑스군은 그바그보에 대해 군사 작전을 펼쳤다.
2012년 11월, 우아타라 대통령은 아내를 가정의 공동 책임자로 규정하는 새로운 결혼법을 둘러싼 논쟁 끝에 정부를 해임했다. 그의 당은 이러한 변화를 지지했지만, 여당 연합의 일부는 반대했다.
2015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선거에서 우아타라는 84%에 가까운 득표율로 5년 임기의 두 번째 대통령직을 확보했다. 2,118,229표(투표율의 83.66%), 투표율 54.63%를 기록하며 결선 투표 없이 승리했고, 가장 가까운 경쟁자인 파스칼 아피 응게산의 득표율은 9%에 그쳤다.
2020년 3월, 우아타라는 2020년 10월 31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며, 아마두 곤 쿨리발리 총리를 후계자로 지지했다. 그러나 2020년 7월 8일 쿨리발리가 갑자기 사망하자, 우아타라는 3선 도전을 발표했다. 코트디부아르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출마는 논란이 되었고, 아비장과 전국에서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다. 2020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선거는 야당의 상당 부분이 보이콧했으며, 우아타라는 투표율 53.90% 하에서 95.31%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5. 사생활
우아타라는 미국인 바바라 진 데이비스와 처음 결혼하여 다비드 드라만 우아타라와 판타 카트리네 우아타라, 두 자녀를 두었다. 1991년, 우아타라는 프랑스계 알제리 태생의 유대인 출신 가톨릭 사업가 도미니크 누비앙과 결혼했다. 이들의 결혼식은 파리 16구 시청에서 열렸다.
우아타라는 무슬림이다.
6. 역대 선거 결과
| | 직책명 || 대수 || 정당 || 1차 득표율 || 1차 득표수 || 2차(무효) 득표율 || 2차(무효) 득표수 || 재선거 득표율 || 재선거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 2010년 선거 |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 6대 | 공화연합 | 32.07% | 1,481,091표 | 48.55% | 1,938,672표 | 54.10% | 2,483,164표 | 1위 | |
| 2015년 선거 |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 6대 | 공화연합 | 83.66% | 2,618,229표 | 1위 | |||||
| 2020년 선거 |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 6대 | 공화연합 | 95.31% | 3,031,483표 | 1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