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시데스 기지아
1. 개요
알시데스 기지아는 우루과이와 이탈리아 국적의 축구 선수로, 윙어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1950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여 우루과이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 경기는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는 페냐롤, 다누비오, AS 로마, AC 밀란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우루과이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도 활동했다. 2015년 사망 당시, 1950년 월드컵 우승 멤버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 본명 | 알시데스 에드가르도 기지아 페레이라 |
|---|---|
| 출생일 | 1926년 12월 22일 |
| 사망일 | 2015년 7월 16일 |
| 사망 장소 | 몬테비데오, 우루과이 |
| 신장 | 1.69m |
| 포지션 | 윙어 |
| 유소년 클럽 | 해당 없음 |
|---|---|
| 클럽 | 1945–1947: 수드 아메리카 1948–1953: 페냐롤 1954–1961: 로마 1961–1962: 밀란 1963–1967: 다누비오 |
| 출장 (골) | 페냐롤: 169 (26) 로마: 201 (19) 밀란: 4 (0) 다누비오: 128 (12) |
| 총 출장 (골) | 502 (57) |
| 국가대표팀 | 1950–1952: 우루과이 1957–1959: 이탈리아 |
|---|---|
| 출장 (골) | 우루과이: 12 (4) 이탈리아: 5 (1) |
| 감독 | 1980: 페냐롤 |
|---|
| FIFA 월드컵 | 1950 브라질: 금메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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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에서 이탈리아로 이민간 사람 -
루카 바르바레스키
이탈리아의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 정치인인 루카 바르바레스키는 1970년대부터 연기 경력을 쌓았고, 《카니발 홀로코스트》 출연으로 주목받았으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정당 소속으로 이탈리아 하원 의원을 지냈으나 동성애 혐오 및 로만 폴란스키 옹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
우루과이에서 이탈리아로 이민간 사람 -
미켈레 안드레올로
미켈레 안드레올로는 이탈리아와 우루과이 국적의 축구 선수로서 볼로냐에서 세리에 A 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하고, 우루과이 대표팀으로 코파 아메리카 우승,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FIFA 월드컵 우승과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
우루과이 FIFA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
1930년 FIFA 월드컵 선수 명단
1930년 FIFA 월드컵 선수 명단은 아르헨티나, 칠레, 프랑스, 멕시코, 유고슬라비아, 브라질, 볼리비아를 포함한 여러 국가 대표팀의 선수 정보, 감독 정보, 포지션, 생년월일, 출전 횟수, 소속 클럽 등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
우루과이 FIFA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1997년)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는 우루과이의 축구 선수로, 다누비오 FC에서 데뷔하여 라싱 클럽, 페닉스, 나시오날을 거쳐 CR 바스쿠 다 가마에서 뛰고 있으며, 우루과이 청소년 국가대표를 거쳐 2023년부터 우루과이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전하고 2022년 FIFA 월드컵 우루과이 대표팀 최종 명단에 발탁되었으나 출전하지는 못했다. -
페냐롤의 축구 감독 -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는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정치적 성향과 독특한 축구 철학으로도 알려져 있다. -
페냐롤의 축구 감독 -
디에고 포를란
1979년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난 우루과이의 은퇴한 축구 선수 디에고 포를란은 공격수로서 뛰어난 골 결정력을 보여주었으며,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4강으로 이끌며 골든볼을 수상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비야레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에서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테니스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기지아의 가족은 원래 손비코 출신으로 티치노 혈통이었다. 그는 선수 시절 우루과이와 이탈리아 양국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그는 또한 우루과이의 페냐롤, 다누비오와 이탈리아의 AS 로마, AC 밀란에서 뛰었다.
1950년 당시 우루과이에서 뛰던 기지아는 그 해 월드컵의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었다. 호베르투 무일라르트는 이 골의 흑백 영화를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당시 애브러햄 자프루더가 촬영한 우연의 이미지와 비교하며, 그 골과 미국 대통령을 죽인 총격 사건은 "같은 극적인 패턴... 같은 움직임... 멈출 수 없는 궤도의 같은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여기서는 소총에 의해, 저기서는 기지아의 왼발에 의해 휘날린 먼지까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라고 묘사했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여겨진다. 기지아는 나중에 "마라카낭 스타디움을 침묵시킬 수 있었던 사람은 세 명뿐이었다: 프랭크 시나트라, 교황, 그리고 나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 페냐롤의 감독을 맡았다.
2009년 12월 29일, 브라질은 1950년 월드컵에서의 그의 결정적인 골을 기념하여 기지아를 기렸다. 기지아는 거의 60년 만에 이 영예를 위해 마라카낭 스타디움으로 돌아와 브라질의 펠레,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우,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같은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 마라카낭 명예의 거리에 발자국을 새겼다. 기지아는 매우 감격했고, 경기가 브라질 축구 역사상 가장 실망스러운 경기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따뜻한 환영과 인정을 해준 브라질에 감사를 표했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사실상의 결승전이 된 2차 라운드 최종전인 우루과이 대 브라질 경기에서 오른쪽 윙어 기지아는 후반 34분에 결승골이 되는 두 번째 골을 넣어 우루과이를 두 번째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기지아가 골을 넣는 순간, 마라카낭에 모인 20만 명의 대관중은 조용해졌다고 한다 *(→ 마라카낭의 비극 참조)*. 같은 대회에서 출전한 4경기 모두에서 1골씩을 기록했다.
대회 후 이탈리아의 AS 로마로 이적하여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뛰었다. 1968년에 41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013년 12월 6일 브라질 살바도르에서 열린 2014년 월드컵 조 추첨식에 8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드로어로 참가했다.
2015년 7월 16일, 심부전으로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날은 마라카낭의 비극으로부터 정확히 65년 후였다。
기지아의 사망으로 마라카낭의 비극 우루과이 대표팀 멤버는 전원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2.1. 클럽 경력
알시데스 기지아는 손비코 출신 티치노 혈통의 가문 출신이다. 선수 시절 우루과이와 이탈리아 양국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활약했다. 클럽 경력으로는 우루과이의 페냐롤, 다누비오와 이탈리아의 AS 로마, AC 밀란에서 뛰었다. 그는 195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었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1980년에는 페냐롤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2009년 12월 29일, 브라질은 1950년 월드컵에서의 그의 결정적인 골을 기념하여 기지아를 기렸고, 마라카낭 스타디움 명예의 거리에 그의 발자국을 새겼다.
기지아는 CA 페냐롤에서 1948년부터 1953년까지, AS 로마에서 1953년부터 1961년까지, AC 밀란에서 1961년부터 1962년까지, 다누비오 FC에서 1962년부터 1968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알시데스 기지아는 손비코 출신 티치노 혈통으로, 선수 시절 우루과이와 이탈리아 양국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
1950년 우루과이 소속으로 월드컵에 참가한 기지아는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우루과이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로 꼽히며, 기지아는 훗날 "마라카낭 스타디움을 침묵시킬 수 있었던 사람은 세 명뿐이었다: 프랭크 시나트라, 교황, 그리고 나였다."라고 회고했다. 호베르투 무일라르트는 이 골을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당시 애브러햄 자프루더가 촬영한 영상에 비유하며, "같은 극적인 패턴... 같은 움직임... 멈출 수 없는 궤도의 같은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묘사했다.
2009년 12월 29일, 브라질은 1950년 월드컵에서의 그의 결정적인 골을 기념하여 기지아를 기렸다. 기지아는 거의 60년 만에 마라카낭 스타디움으로 돌아와 펠레, 에우제비우,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같은 선수들과 함께 마라카낭 명예의 거리에 발자국을 새겼다.
기지아는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 1950년부터 1952년까지 12경기에 출전하여 4골을 기록하였고, 이탈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57년부터 1959년까지 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였다.
3. 감독 경력
4. 개인사
알시데스 기지아는 선수 생활을 우루과이와 이탈리아에서만 하였다. 그는 선수 생활을 한 두 나라의 대표팀에서 모두 뛰었다. 1950년 FIFA 월드컵 브라질 전에서 역전골을 넣어]] 우루과이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말년에는 우루과이 라스 피에드라스에 있는 자택에서 보냈으며, 2015년 7월 16일 몬테비데오의 한 개인 병원에서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기지아는 생존해 있는 월드컵 우승자 중 최고령이었다. 그는 1950년 월드컵 역사적인 경기에 참여했던 브라질 또는 우루과이 선수단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5. 수상 내역
선수
알시데스 기지아는 선수 시절 다음과 같은 우승 기록을 남겼다.
[[페냐롤]]
* 프리메라 디비시온: 1949, 1951
[[AS 로마|로마]]
* 페어스컵: 1960-61
[[AC 밀란|밀란]]
* 세리에 A: 1961-62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
* FIFA 월드컵: 1950
개인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1950
* 골든 풋: 2006 (전설 자격)
* AS 로마 명예의 전당: 2014
* IFFHS 우루과이 남자 드림팀 (팀 B)
5.1. 선수
알시데스 기지아는 선수 시절 다음과 같은 우승 기록을 남겼다.
페냐롤
* 프리메라 디비시온: 1949, 1951
로마
* 페어스컵: 1960-61
밀란
* 세리에 A: 1961-62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우루과이]]
* FIFA 월드컵: 1950
5.2. 개인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1950
* 골든 풋: 2006 (전설 자격)
* AS 로마 명예의 전당: 2014
* IFFHS 우루과이 남자 드림팀 (팀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