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바스 이븐 압둘 무탈립
1. 개요
압바스 이븐 압둘 무탈립은 565년경에 태어난 무함마드의 삼촌으로, 이슬람교 창시자 압둘 무탈립의 아들이다. 그는 향신료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메카 순례자들에게 잠잠 샘물을 제공하는 권리를 얻었으며, 무함마드를 도왔다. 바드르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기도 했지만, 메카 정복 이후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그는 무함마드의 군대에 합류하여 여러 전투에 참여했고, 630년 메카 정복 당시 무함마드를 따라 메카로 입성했다. 압바스는 히즈라 32년(653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후손들은 아바스 왕조를 창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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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년 사망 -
호노리우스 칸투아리엔시스
호노리우스 칸투아리엔시스는 로마 출신으로 그레고리오 선교단의 일원으로서 잉글랜드에 파견되어 링컨에서 대주교로 서임되었으며, 요크 관구의 대주교 관구 승격 요청, 동앵글리아 선교사 파견, 최초 앵글로색슨인 주교 서임 등 잉글랜드 교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사후 성인으로 추대되었고 마지막 그레고리 선교사였다. -
653년 사망 -
이도종
이도종은 당나라 초기에 당 고조 이연의 종실로서 당나라 건국과 여러 전쟁에서 공을 세워 왕에 봉해졌고, 당 태종 시기 토욕혼 정벌, 문성공주를 토번으로 시집보내는 등 활약했으나, 당 고종 시기 모반 혐의로 유배 중 사망 후 관직이 복구되었으며 당나라 초기 가장 뛰어난 왕족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
무함마드의 가족 -
하산 이븐 알리
하산 이븐 알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이자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파티마 즈흐라의 아들로, 시아파에서는 12이맘 중 두 번째 이맘으로 숭배받으며, 아버지 알리 사후 칼리파로 추대되었으나 무아위야 1세와의 갈등 끝에 칼리파직을 포기하고 메디나로 은퇴한 인물이다. -
무함마드의 가족 -
아부 탈리브
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의 삼촌이자 보호자였으며, 이슬람교를 설파하는 조카를 쿠라이쉬 부족으로부터 지켰고, 시인이었으나 평생 이교도로 살다가 619년경 사망했다.
2. 초년
압바스는 565년경 압드 알-무탈리브의 어린 아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나미르 부족의 누타일라 빈트 자납이었다. 압바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잠잠 우물 관리와 순례자들에게 물을 나눠주는 일을 맡았다. 그는 향신료 무역 상인이 되었고, 이 무역으로 부를 얻었다.
3. 이슬람으로 개종
이슬람교가 신도를 늘려가던 시기(610년~622년)에 압바스는 친족을 보호했지만,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제2차 아카바 충성 서약에서 대변인 역할을 했지만, 메디나로 이주한 사람들 중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압바스는 다신교도 편에서 싸우다가 바드르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 무함마드는 알-압바스가 자신과 조카를 몸값으로 풀려나도록 허락했다.
이븐 히샴은 압바스가 바드르 전투 전에 이미 비밀리에 이슬람교도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타바리가 같은 출처를 인용한 부분에서는 명확한 언급이 누락되어 있다. 일부 권위자들은 그가 바드르 전투 직후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는 압바스가 그의 아내 루바바가 개종한 지 20년 후, 메카 정복 직전인 630년 1월에 공식적으로 이슬람교를 공언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무함마드는 그를 "마지막 이주자"(무하지룬)라고 칭했는데, 이는 그가 전쟁 전리품의 수입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의미했다. 그는 순례자들에게 잠잠 물을 제공할 권리를 받았고, 이 권리는 그의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압바스는 즉시 무함마드의 군대에 합류하여 메카 정복, 후나인 전투 및 타이프 포위전에 참여했다. 다른 전사들이 그를 버렸을 때 후나인에서 무함마드를 방어했다. 이러한 군사적 활약 이후, 압바스는 가족을 메디나로 데려와 살게 했고, 무함마드는 그들을 자주 방문했으며, 심지어 그의 딸과의 결혼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중에 압바스는 타북 원정에서 싸웠다.
4. 무함마드와의 관계
압바스는 압드 알-무탈리브의 어린 아들 중 한 명으로, 무함마드의 삼촌이었다. 이슬람교가 신도를 늘려가던 시기(610–622년)에 압바스는 친족을 보호했지만,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제2차 아카바 충성 서약에서 대변인 역할을 했지만, 메디나로 이주한 사람들 중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압바스는 바드르 전투에서 무함마드의 반대편에서 싸우다 포로로 잡혔으나, 무함마드는 그가 자신과 조카의 몸값을 내고 풀려나도록 허락했다. 이븐 히샴은 압바스가 바드르 전투 전에 이미 비밀리에 이슬람교도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타바리는 같은 출처를 인용하면서도 이 부분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바드르 전투 직후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고 보기도 한다.
압바스는 메카 정복 직전인 630년 1월에 공식적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으며, 무함마드는 그를 "마지막 이주자"(무하지룬)라고 칭하며 전쟁 전리품을 받을 자격을 주었다. 또한, 순례자들에게 잠잠 우물 물을 제공할 권리를 받았고, 이 권리는 그의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압바스는 즉시 무함마드의 군대에 합류하여 메카 정복, 후나인 전투, 타이프 포위전에 참여했다. 특히 후나인 전투에서는 다른 전사들이 무함마드를 버렸을 때 그를 방어했다. 이후 가족을 메디나로 데려와 살게 했고, 무함마드는 그들을 자주 방문했으며, 심지어 그의 딸과의 결혼을 제안하기도 했다. 나중에 압바스는 타북 원정에도 참여했다.
7. 후손
아부 알 아바스 압둘라 아스-사파("아스-사파"로 더 잘 알려짐)가 750년에 창시한 아바스 왕조는 아바스의 아들 압달라의 후손임을 통해 칼리파(문자적으로 "후계자") 칭호를 주장했다.
신드의 칼호라 가문, 바하왈푸르의 다우드포타 가문, 파키스탄 무리의 아바시 가문, 아자드 카슈미르 바그의 아바시 가문, 베르베르인 바누 아바스, 그리고 현대 예멘 바와지르, 수단의 샤이기야와 자알린을 포함한 많은 다른 가문들도 아바스의 직계 후손임을 주장했다.
8. 정보 출처
이븐 히샴의 알시라 안나바위야, 와키디의 키탑 알타리크 와 알마가지, 타바리의 타리크 알루술 와 알물루크, 이븐 사드의 키탑 알타바카트 알카비르, 야쿠비의 타리크 이븐 와디흐, 이븐 하자르 알아스칼라니의 알이사바 피 탐이즈 알사하바가 아바스 이븐 압드 알무탈리브에 관한 1차 정보원이다. 몽고메리 와트에 따르면, 아바스 왕조 시대 역사가들은 아바스 이븐 압드 알무탈리브를 칭찬하는 경향이 있어, 그 기술 중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구별하기 어렵다고 한다(위 목록에서 이븐 히샴부터 야쿠비까지가 아바스 왕조 시대 역사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