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요스케 (유도 선수)
1. 개요
야마모토 요스케는 일본의 유도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1987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경량급에서 우승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90년 은퇴 후에는 일본체육대학 유도부 감독을 맡아 2001년 전일본 학생 우승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었고, 일본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 및 강화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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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일본 |
|---|---|
| 체급 | 65kg급 |
| 단 | 8단 |
| 출생 이름 | 야마모토 요스케 |
|---|---|
| 로마자 표기 | Yamamoto Yosuke |
| 출생 | 1960년 6월 22일 |
| 출생지 | 니가타현니가타시 |
| 신장 | 168cm |
| 올림픽 | 1988 서울 - 동메달 (65kg급) |
|---|---|
| 세계 선수권 대회 | 1987 에센 - 금메달 (65kg급) |
| 아시안 게임 | 1986 서울 - 은메달 (65kg급) |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1984 쿠웨이트시티 - 금메달 (65kg급) |
| 굿윌 게임 | 1990 시애틀 - 동메달 (65kg급) |
| 스포츠 | 남자 유도 |
|---|---|
| 국가 | 일본 |
| 올림픽 | 1988 서울 동메달 (65 kg) |
| 세계 선수권 대회 | 1987 에센 금메달 (65 kg) |
| 아시안 게임 | 1986 서울 은메달 (65 kg) |
| 아시아 선수권 대회 | 1984 쿠웨이트 시티 금메달 (65 kg) |
-
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 -
김재엽
김재엽은 1980년대에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유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유도 선수이자, 현재 대학교수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
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 -
하형주
하형주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이자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유도 금메달, 1985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은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유도 선수, 스포츠 행정가, 정치인, 교육자이다. -
일본체육대학 교수 -
하나하라 쓰토무
하나하라 쓰토무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플라이급 금메달리스트이자 일본체육대학 명예교수로, 일본 선수권 6연패 및 올림픽 금메달 획득으로 일본 레슬링 발전에 기여했으며 욱일중수훈장을 수훈받았다. -
일본체육대학 교수 -
노무라 가쓰야
노무라 가쓰야는 일본 교토부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 야구 해설가로, 난카이 호크스에서 포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타격 능력과 지략으로 'ID 야구' 이론을 정립했고, 야쿠르트 스왈로스, 한신 타이거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을 맡아 팀을 재건하고 젊은 선수들을 육성했으며 야구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
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 -
계순희
계순희는 평양 출신의 유도 선수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유도 48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2체급을 제패한 북한 유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
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 -
우에노 마사에
우에노 마사에는 일본의 유도 선수로, 2001년과 2003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우승,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70kg급 올림픽 2연패 달성자이다.
2. 선수 경력
구마모토현아소군덴메이정(현・구마모토시미나미구) 출신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형의 영향으로 유도를 시작했다. 정립 덴메이 중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훈련에 매진했다. 현립 우토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8년 12월 전일본 신인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체육대학의 나가오 후미오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9년 일본체육대학에 입학하여, 고도칸배 3위, 같은 해 11월 전일본 신인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 쓰쿠바 대학의 아베 유지 등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전일본 학생 선수권 대회에서 도호쿠가쿠인 대학의 야마모토 타카오 등을 꺾고 우승하며 학생 챔피언이 되었고, 세계 학생 선수권 대회에 경량급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세계 학생 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선수에게 팔 꺾기를 당해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야마모토 요스케는 대학교 2학년 때 세계 학생 유도 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선수에게 팔 꺾기를 당해 왼쪽 팔꿈치의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의 후유증으로 주특기인 업어치기를 구사하기 어려워졌으나, 밭다리 후리기, 안다리 걸기 등 다른 기술들을 연마하여 실력을 향상시켰다. 대학교 4학년 때 전일본 학생 선수권 대회를 다시 제패하며 학생 챔피언이 되었다.
일본체육대학 졸업 후, 야마나시현립 닛카와 고등학교 교원을 거쳐 경기에 전념하기 위해 다시 일본체육대학 연구원이 되었다. 24세 무렵부터 전일본 강화 합숙에 참가했지만,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마쓰오카 요시유키에게 밀려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85년 고도칸배와 전일본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마쓰오카에게 패하며 세계 선수권 대회 출전이 좌절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동창에게 테이핑 요법을 배워 왼쪽 팔꿈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선진적인 컨디셔닝 방법을 도입하여 경기력을 향상시켰다. 1986년 고도칸배, 전일본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가노 지고로배를 연달아 제패하며 일본 경량급 1인자로 올라섰다.
1987년 고도칸배와 전일본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 연패를 달성하고, 제15회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유리 소콜로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 고도칸배와 전일본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3연패를 달성했고, 서울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대한민국의 이경근에게 패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 제16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상위 진출에 실패했다. 1990년 굿윌 게임 출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초기 생애 및 선수 시절
구마모토현아소군덴메이정(현・구마모토시미나미구) 출신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형의 영향으로 유도를 시작했다. 정립 덴메이 중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훈련에 매진했다. 현립 우토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8년 12월 전일본 신인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체육대학의 나가오 후미오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9년 일본체육대학에 입학하여, 고도칸배 3위, 같은 해 11월 전일본 신인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 쓰쿠바 대학의 아베 유지 등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전일본 학생 선수권 대회에서 도호쿠가쿠인 대학의 야마모토 타카오 등을 꺾고 우승하며 학생 챔피언이 되었고, 세계 학생 선수권 대회에 경량급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세계 학생 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선수에게 팔 꺾기를 당해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2.2. 부상 극복과 전성기
야마모토 요스케는 대학교 2학년 때 세계 학생 유도 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선수에게 팔 꺾기를 당해 왼쪽 팔꿈치의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의 후유증으로 주특기인 업어치기를 구사하기 어려워졌으나, 밭다리 후리기, 안다리 걸기 등 다른 기술들을 연마하여 실력을 향상시켰다. 대학교 4학년 때 전일본 학생 선수권 대회를 다시 제패하며 학생 챔피언이 되었다.
일본체육대학 졸업 후, 야마나시현립 닛카와 고등학교 교원을 거쳐 경기에 전념하기 위해 다시 일본체육대학 연구원이 되었다. 24세 무렵부터 전일본 강화 합숙에 참가했지만,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마쓰오카 요시유키에게 밀려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85년 고도칸배와 전일본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마쓰오카에게 패하며 세계 선수권 대회 출전이 좌절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동창에게 테이핑 요법을 배워 왼쪽 팔꿈치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선진적인 컨디셔닝 방법을 도입하여 경기력을 향상시켰다. 1986년 고도칸배, 전일본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 가노 지고로배를 연달아 제패하며 일본 경량급 1인자로 올라섰다.
1987년 고도칸배와 전일본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 연패를 달성하고, 제15회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유리 소콜로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3. 올림픽 메달과 은퇴
1988년 고도칸배와 전일본 선발 체급별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3연패를 달성했고, 서울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으나, 대한민국의 이경근에게 패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 제16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상위 진출에 실패했다. 1990년 굿윌 게임 출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1994년 34세의 나이로 모교인 일본체육대학 유도부 감독을 맡아 200명에 가까운 부원을 이끌었다. 선수 시절의 좌절과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주특기 외의 기술 연마를 강조했다. 2001년 전일본 학생 우승 대회에서 도카이 대학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2년 대회에서는 3위에 입상했다. 2013년 감독 자리를 다나베 마사루에게 넘겨주고 총감독이 되었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여자 강화 코치,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남자 강화 코치를 역임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치시바 마사토의 코치로서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강화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일본 유도팀의 리더를 맡았다.
4. 학술 활동
5. 주요 전적
야마모토 요스케는 1978년 전일본 신인 체중별 선수권 대회 경량급에서 2위를 기록했다. 이후 1979년 고도칸배 경량급 3위, 같은 해 전일본 신인 체중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1980년 전일본 학생 선수권 대회 경량급에서 우승했고, 1981년에는 고도칸배 경량급 3위에 올랐다. 1982년 쇼리키배 전일본 학생 체중별 선수권 대회 경량급 우승, 체코 국제 대회 2위를 기록했다.
1983년에는 쇼리키배 국제 학생 대회 경량급 우승, 고도칸배 경량급 2위,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대회 경량급 2위를 기록했다. 1984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 경량급에서 우승했고,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대회 경량급 3위, 프랑스 국제 대회와 오스트리아 국제 대회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1985년 고도칸배 경량급 2위,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대회 경량급 2위, 소련 국제 대회 3위를 기록했다. 1986년에는 고도칸배와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대회 경량급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고, 아시안 게임 경량급 3위, 가노 지고로배 경량급 우승을 달성했다.
1987년 고도칸배와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대회 경량급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했으며, 세계 선수권 대회 경량급에서도 우승했다. 1988년에도 고도칸배와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대회 경량급 우승을 이어갔고, 서울 올림픽 경량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 전일본 선발 체중별 선수권 대회 경량급 2위, 불가리아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1990년 굿윌 게임 경량급에서 3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