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신기리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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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산 신기리 산성은 신라 시대에 축성된 산성으로, 서낭산에 위치해 있으며 서낭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사기』에 낙동강을 통해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신라가 양산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성 안에서 신라 토기 조각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신라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남쪽에는 북부동 산성이 있어 쌍성 형태를 이루며, 인근에는 신기리 고분군이 있어 신라 시대의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보여준다.

양산 신기리 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양산 신기리 산성
영문 이름Fortress in Singi-ri, Yangsan
유형사적
지정 번호97
지정일1963년 1월 21일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
시대신라
면적173,540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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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서낭산성은 해발 232m의 산성봉 정상 일대를 돌로 쌓은 산성이다. 대부분 무너졌으나 둘레 2.6km, 높이 1m 정도가 남아있다.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가 낙동강을 통해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양산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성의 남쪽에는 이 산성과 규모가 비슷한 북부동산성이 있어 쌍성의 형태를 이룬다.

2.1. 축성 배경

신라는 낙동강을 통해 침입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양산 지역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성 안에서 신라 토기 조각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신라 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2.2. 신라 시대의 중요성

성 안에서 신라 토기 조각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서낭산성은 신라 시대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서낭산 일대에는 양산 부부총으로 유명한 6세기경의 신기리 무덤들이 흩어져 있어, 이 지역이 신라 시대에 중요한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3. 구조

신기리 산성은 해발 232m의 산성봉 정상 일대를 돌로 쌓은 성으로 서낭산에 있어 서낭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양산 부부총으로 유명한 6세기경의 신기리 무덤들이 서낭산에 흩어져 있어 이 일대가 신라시대의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3.1. 성벽

대부분 무너졌으나 둘레 2.6km, 높이 1m 정도가 남아있다. 삼국사기일본어에 따르면, 신라가 낙동강을 통해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양산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성 안에서 신라 토기 조각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고있다.

3.2. 쌍성 형태

성의 남쪽에는 이 산성과 규모가 비슷한 북부동 산성이 있어 쌍성 형태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