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소 (처도)
1. 개요
양소(楊素, ? ~ 606년)는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으며, 수나라 개국 1등공신으로, 수나라 문제 양견과 수 양제를 보좌하며 권력을 누렸으나, 수 양제의 시샘으로 인해 파직된 뒤 사사되었다. 그는 양견이 북주의 외척이 되도록 도왔고, 수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킬 때 대장군으로 활약했으며, 황태자 양광을 책봉하는 데 기여했다. 605년 상서령이 되었고, 낙양 건설을 담당했으나, 이듬해 승상에 임명된 후 파직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아들 양현감은 후에 양광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
수나라의 국공 -
양현감
양현감은 수나라 권신 양소의 아들로, 수 양제의 고구려 원정 중 반란을 일으켜 수나라 멸망의 도화선이 되었으나 낙양 공격에 실패하여 피살되었으며, 그의 반란은 수나라 멸망과 당나라 건국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
태자태사 -
장손무기
장손무기는 수나라 장군 장손승의 아들이자 당 태종의 처남으로, 당나라 건국과 현무문의 변에 공을 세워 당 태종의 측근으로 중용되었으나, 고종 때 측천무후 옹립을 반대하다 모함으로 자결한 당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외척이다. -
태자태사 -
안진경 (709년)
안진경은 당나라 시대의 강직한 문신이자 뛰어난 서예가로, 안사의 난 때 의용군을 일으켜 반군에 맞서 싸웠으며, 그의 서체인 안체는 한국과 일본 서예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북주의 정치인 -
우중문
우중문은 북주와 수나라 시대의 무장으로, 수 문제와 수 양제를 섬기며 요직을 역임했고, 돌궐 토벌과 운하 건설에 기여했으나, 고구려 침략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망했다. -
북주의 정치인 -
위현
위현은 남북조 시대부터 수나라를 거친 관료이자 군인으로, 수나라에서 양현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위무에 능한 관리로 평가받았다.
2. 생애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다. 이후 북주의 대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부친 양부는 북주의 재상이었는데, 북주의 무제인 우문옹에게 숙청당했다. 양소는 우문옹에게 "폐하께옵서는 저의 부친을 주살한 폭군이시옵니다!"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화가 난 우문옹이 그를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 하자, 아내인 정씨가 탄원하여 남편 양소의 잘못을 빌자, 우문옹은 그를 특사시켰다고 한다.
양소는 그 이후, 북주의 재상이었던 양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 휘하에서 일했다. 양소는 양견이 북주의 외척이 되게 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581년 양견이 외손자 정제 우문연을 내쫓고 수나라를 세우자, 양소는 개국 1등공신이 되었다.
589년에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기 위해 출병하자, 양소는 대장군 겸 개봉자사로서 원정에 출정했고, 그 원정군의 대총관인 진왕 양광을 보좌하였다. 이후, 진이 멸망되자, 양소는 진의 황제였던 진숙보의 딸 낙창공주를 자신의 측실로 삼기도 했다. 그 공으로 형주총관의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592년에는 조정에서 제일 높은 벼슬인 상서우복야의 벼슬과 월국공(越國公)의 작위 또한 받았다. 그리고 이 때에 고경, 장형, 우문술 등이 출세하여 벼슬을 받았다.
598년에는 서돌궐을 대패시켰으며, 600년에 황태자 양용이 폐위되자, 그 자리에 차남인 양광을 황태자로 책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604년에 양견이 병이 들자, 양광은 양소와 담합하여 부황 양견을 시해한다.
605년에는 상서령에 봉해졌고, 동도인 낙양의 건설도 담당하였다. 이듬해에 승상 겸 사도의 직책을 받고, 초공(楚公)으로 봉해졌으나 양광의 시샘을 받아 파직된 뒤 결국은 사사당했다. 그의 장남인 양현감은 훗날 양광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2.1. 북주 시기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다. 이후 북주의 대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부친 양부는 북주의 재상이었는데, 북주의 무제인 우문옹에게 숙청당했다. 양소는 우문옹에게 "폐하께옵서는 저의 부친을 주살한 폭군이시옵니다!"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화가 난 우문옹이 그를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 하자, 아내인 정씨가 탄원하여 남편 양소의 잘못을 빌자, 우문옹은 그를 특사시켰다고 한다.
양소는 그 이후, 북주의 재상이었던 양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 휘하에서 일했다. 양소는 양견이 북주의 외척이 되게 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581년 양견이 외손자 정제 우문연을 내쫓고 수나라를 세우자, 양소는 개국 1등공신이 되었다.
2.2. 수나라 건국과 활약
양소는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고, 이후 북주의 대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부친 양부는 북주의 재상이었으나, 무제 우문옹에게 숙청당했다. 양소는 우문옹에게 부친을 주살한 폭군이라는 폭언을 퍼부었고, 이로 인해 감옥에 갇혔으나 아내 정씨의 탄원으로 특사되었다.
이후 양소는 북주의 재상이었던 양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휘하에서 일했다. 양소가 양견을 도와 북주의 외척이 되게 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581년 양견이 외손자 정제 우문연을 내쫓고 수나라를 건국하자, 양소는 개국 1등공신이 되었다.
589년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기 위한 원정에 대장군 겸 개봉자사로서 출정했고, 원정군의 대총관인 진왕 양광을 보좌하였다. 진나라가 멸망한 뒤, 양소는 진의 황제였던 진숙보의 딸 낙창공주를 측실로 삼았다. 그 공으로 형주총관의 벼슬을 받았다. 592년에는 상서우복야의 벼슬과 월국공(越國公)의 작위를 받았고, 이 때에 고경, 장형, 우문술 등이 출세하여 벼슬을 받았다.
598년 서돌궐을 대패시켰으며, 600년 황태자 양용이 폐위되자, 양광을 황태자로 책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604년 양견이 병이 들자, 양광과 담합하여 부황 양견을 시해했다.
605년 상서령에 봉해졌고, 동도인 낙양 건설을 담당했다. 이듬해에 승상 겸 사도의 직책을 받고 초공(楚公)으로 봉해졌으나, 양광의 시샘을 받아 파직된 뒤 결국 사사당했다. 그의 장남 양현감은 훗날 양광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2.3. 수 양제 시기와 죽음
북주가 북제를 평정할 때, 안현공에 봉해졌다. 이후 북주의 대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부친 양부는 북주의 재상이었는데, 북주의 무제인 우문옹에게 숙청당했다. 양소는 우문옹에게 "폐하께옵서는 저의 부친을 주살한 폭군이시옵니다!"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화가 난 우문옹이 그를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 하자, 아내인 정씨가 탄원하여 남편 양소의 잘못을 빌자, 우문옹은 그를 특사시켰다고 한다.
양소는 그 이후, 북주의 재상이었던 양견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 휘하에서 일했다. 양소는 양견이 북주의 외척이 되게 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581년 양견이 외손자 정제 우문연을 내쫓고 수나라를 세우자, 양소는 개국 1등공신이 되었다.
589년에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기 위해 출병하자, 양소는 대장군 겸 개봉자사로서 원정에 출정했고, 그 원정군의 대총관인 진왕 양광을 보좌하였다. 이후, 진이 멸망되자, 양소는 진의 황제였던 진숙보의 딸 낙창공주를 자신의 측실로 삼기도 했다. 그 공으로 형주총관의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592년에는 조정에서 제일 높은 벼슬인 상서우복야의 벼슬과 월국공(越國公)의 작위 또한 받았다. 그리고 이 때에 고경, 장형, 우문술 등이 출세하여 벼슬을 받았다.
598년에는 서돌궐을 대패시켰으며, 600년에 황태자 양용이 폐위되자, 그 자리에 차남인 양광을 황태자로 책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604년에 양견이 병이 들자, 양광은 양소와 담합하여 부황 양견을 시해한다.
605년에는 상서령에 봉해졌고, 동도인 낙양의 건설도 담당하였다. 이듬해에 승상 겸 사도의 직책을 받고, 초공(楚公)으로 봉해졌으나 양광의 시샘을 받아 파직된 뒤 결국은 사사당했다. 그의 장남인 양현감은 훗날 양광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3. 가계
* 아버지 : 양부
본인:양소
배우자 : 정기야
* 아들 : 양현감(楊玄感, ? ~ 613년) - 장남.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하여 죽었다.
* 아들 : 양현종(楊玄縱, ? ~ 613년) - 2남.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한 후에 참수되었다.
* 아들 : 양현정(楊玄挺, ? ~ 613년) - 3남. 동생 양약의 양자가 되었다.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하여 전사하였다.
* 아들 : 양현장(楊玄奬, 571년 ~ 613년) -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한 후에 참수되었다.
손자 : 양대(楊臺) - 혹은 양숭본(楊崇本). 당나라에서 송주(宋州)자사를 지냈다.
손녀 : 양(楊)씨 - 이름 미상. 후에 당 태종의 후궁이 되었다.
* 아들 : 양만석(楊萬石, ? ~ 613년) - 혹은 양만석(楊萬碩).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한 후에 참수되었다.
* 아들 : 양인행(楊仁行, ? ~ 613년) - 혹은 양민행(楊民行).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한 후에 참수되었다.
* 아들 : 양적선(楊積善, ? ~ 614년) - 낙양에서 거병에 실패한 후에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미수에 그쳤다. 후에 거열에 처해졌다.
생모 불명의 자녀
* 딸 : 양(楊)씨 : 이름 미상. 후에 당 고조의 후궁(빈)이 되어 강왕 이원상을 낳았다.
* 딸 : 양(楊)씨 : 이름 미상. 당나라의 통시사인 최민령(崔民令)의 처
남동생 : 양약
남동생 : 양신(楊愼) - 수나라에서 의안현개국후(義安縣開國侯)에 봉해졌다.
남동생 : 양조(楊操) - 북주에서 우서부상사(右胥附上士)를 지냈다.
남동생 : 양려(楊戾) - 넷째 동생. 북주에서 화주주부를 지냈다.
여동생 : 양(楊)씨 - 이름 미상. 수나라의 상대장군 독고타(獨孤陀)의 처
* 계모 : 소묘유
남동생 : 양악
3.1. 자녀
* 아들 : 양현감(楊玄感, ? ~ 613년) - 장남.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하여 죽었다.
* 아들 : 양현종(楊玄縱, ? ~ 613년) - 2남.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한 후에 참수되었다.
* 아들 : 양현정(楊玄挺, ? ~ 613년) - 3남. 동생 양약의 양자가 되었다.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하여 전사하였다.
* 아들 : 양현장(楊玄奬, 571년 ~ 613년) -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한 후에 참수되었다.
* 손자 : 양대(楊臺) - 혹은 양숭본(楊崇本). 당나라에서 송주(宋州)자사를 지냈다.
* 손녀 : 양(楊)씨 - 이름 미상. 후에 당 태종의 후궁이 되었다.
* 아들 : 양만석(楊萬石, ? ~ 613년) - 혹은 양만석(楊萬碩).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한 후에 참수되었다.
* 아들 : 양인행(楊仁行, ? ~ 613년) - 혹은 양민행(楊民行). 낙양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한 후에 참수되었다.
* 아들 : 양적선(楊積善, ? ~ 614년) - 낙양에서 거병에 실패한 후에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미수에 그쳤다. 후에 거열에 처해졌다.
* 딸 : 양(楊)씨 : 이름 미상. 후에 당 고조의 후궁(빈)이 되어 강왕 이원상을 낳았다.
* 딸 : 양(楊)씨 : 이름 미상. 당나라의 통시사인 최민령(崔民令)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