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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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촌집은 권근의 시문집으로, 총 4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기, 서, 설, 전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시 980수, 글 305수가 실려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명나라 태조에게 응답하여 지은 〈응제시〉와 고려 왕조의 멸망과 조선 건국에 대한 권근의 심경을 담은 〈고경〉 등이 있다.
(요약 및 참조할 원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아 생애 섹션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권근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특히 주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성리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권근은 방대한 양의 글을 남겼으며, 그의 문집인 《양촌집》은 조선 초기 문학, 사상,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양촌집》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 생애
3. 사상
4. 저술 및 작품 활동
권 종류 수량 권1 ~ 권10 시(詩) 980수 권11 ~ 권14 기(記) 45수 권15 ~ 권20 서(序) 66수 권21 설(說) 13수, 전(傳) 3수 16수 권22 발어(跋語) 21수 권23 명(銘) 7수, 찬(贊) 8수, 제문(祭文) 13수 28수 권24 사대표전(事大表箋) 21수, 본조 전문(本朝箋文) 16수 37수 권25 ~ 권26 본조 전문 12수, 사직전(辭職箋) 1수, 차자 3수, 계본(啓本) 1수 17수 권27 ~ 권28 소어(疏語) 23수 권29 청사(靑詞) 14수 권30 교서(敎書) 9수 권31 ~ 권32 상서(上書) 12수 권33 잡저(雜著) 11수 권34 동국사략론 1수 권35 동현사략 1수 권36 ~ 권40 묘지(墓誌) 5수 권40 행장(行狀) 1수
권근의 기타 저술로는 오경(五經) 주석서인 五經淺見錄|오경천견록중국어[1], 성리학 기본 원리를 그림과 함께 설명한 入學圖說|입학도설중국어, 사서오경에 한글 구결을 단 四書五經口訣|사서오경구결중국어 등이 있다.
4. 1. 양촌집 (陽村集)
《양촌집》은 권근의 시문집으로, 총 4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1] 시(詩), 기(記), 서(序), 설(說), 전(傳), 발어(跋語), 명(銘), 찬(贊), 제문(祭文), 사대표전(事大表箋)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1]
양촌 권 문충공 유문 중간 서(陽村權文忠公遺文重刊序)로 시작하며, 양촌선생연보(陽村先生年譜)가 먼저 소개된다.[1] '조선국 수재(秀才) 권근(權近)에게 주다'는 설명과 함께 태조고황제 어제시(明太祖高皇帝御製詩) 세 수가 수록되어 있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권근은 '응제시(應製詩): 조선국 배신(陪臣) 권근(權近) 제진(製進)'을 지어 바쳤다.[1]
2권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1]
〈동년(同年) 이익신(李益信) 막좌(幕佐)의 전라도 근친(覲親)길을 전송하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
> 旌旆征南路<정패정남로> 煙花欲暮春<연화욕모춘>
> 連山角聲壯<련산각성장> 芳草馬嘶頻<방초마시빈>
> 慷慨長纓志<강개장영지> 爛斑彩服人<란반채복인>
> 從軍有詩興<종군유시흥> 遠寄舊交親<원기구교친>
위 시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1]
> 깃발을 휘날리며 남으로 가니, 산꽃이 만발한 저문 봄일레
> 산마루엔 호각소리 웅장도 하고, 방초는 우거져라 말 울음 잦아
> 세상을 개탄하는 장영 마음에. 색동옷도 화사하다 효하는 사람
> 종군이라 시흥이 솟구치거든, 옛 친구 잊을세라 부쳐나 주게
《양촌집》은 국역 원본 4권과 5권으로 출간되었으며,[1] 한글 번역본은 총 5권이 출간되었다.[1]
4. 1. 1. 구성
권 종류 수량 권1 ~ 권10 시(詩) 980수 권11 ~ 권14 기(記) 45수 권15 ~ 권20 서(序) 66수 권21 설(說) 13수, 전(傳) 3수 16수 권22 발어(跋語) 21수 권23 명(銘) 7수, 찬(贊) 8수, 제문(祭文) 13수 28수 권24 사대표전(事大表箋) 21수, 본조 전문(本朝箋文) 16수 37수 권25 ~ 권26 본조 전문 12수, 사직전(辭職箋) 1수, 차자 3수, 계본(啓本) 1수 17수 권27 ~ 권28 소어(疏語) 23수 권29 청사(靑詞) 14수 권30 교서(敎書) 9수 권31 ~ 권32 상서(上書) 12수 권33 잡저(雜著) 11수 권34 동국사략론 1수 권35 동현사략 1수 권36 ~ 권40 묘지(墓誌) 5수 권40 행장(行狀) 1수
4. 1. 2. 주요 작품
권근이 1396년 명나라 황제 태조에게 응답하여 쓴 시 24편은 세 차례에 걸쳐 지어졌다.[1] 9월 15일에 8수, 같은 달 22일에 10수, 10월 27일에 6수를 지어 모두 24편이다.[1]
처음 8수는 다음과 같다.[1]
그다음 10수는 다음과 같다.[1]
위의 시들은 조선의 옛 역사를 시로 지은 것이며, 단군 신화의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1]
이후에 지은 6수의 시는 명나라에서 머물면서 지낸 일들을 소재로 지은 시이다.[1]
1권에는 제진(製進)한 천감(天監)·화산(華山)·신묘시(神廟詩) 병서(幷序), 제진(製進)한 풍요(風謠) 병서, 제진한 숭화시(嵩華詩) 병서, 난죽장(蘭竹章) 병서도 포함되어 있다.[1]
응제시는 중국과 명나라 황제의 덕을 찬양하는 것으로 사대주의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명나라 황제의 마음을 만족시켜서 그의 당초 명나라 방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 부득이한 일이었다는 평가가 있다.[1]
〈고경(古京)〉은 다음과 같다.[1]
>遷遺井邑市荒涼 옮기다 남은 마을 저자마저 황량하고
>
>莽蒼盈眸過客傷 푸른 풀만 눈에 가득 길손이 상심하네
>
>園苑有花蜂釀蜜 동산에 꽃 피니 벌들이 꿀 빚고
>
>殿臺無主兎爲鄕 궁전에 주인 없으니 토끼가 고향 삼네
>
>行商枉道從新郭 행상은 길을 돌아 새터로 굽어들고
>
>坐賈移居慕舊坊 매점은 터 바꾸니 옛골목이 그립나봐
>
>此是昔時王氏業 이는 바로 지난날 왕씨의 기업이라
>
>檀君逝久幾更張 단군이 가고 나서 얼마나 고쳐졌나
21권에는 주옹(舟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1]
어떤 이가 주옹에게 이유 없이 배를 띄워 위험에 처해 있느냐 묻자, 주옹이 육지에 거하면 나태해지므로 험한 물에 나와 있는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 중심을 잘 잡아서 자신의 마음은 평온하다고 말하였고,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1]
>渺江海兮悠悠. 아득한 강해 유유한데
>
>泛虛舟兮中流. 빈 배를 중류에 띄웠구나
>
>載明月兮獨往. 명월을 싣고 홀로 가노니
>
>聊卒歲以優游. 해가 마치도록 한가롭게
〈양촌(陽村)에 당도하다.〉는 다음과 같다.
>벼슬살이 십 년에 한 번 겨우 돌아오니 / 十載趨朝得一廻
>
>이웃 노인 잔 들고 와 나를 위로하네 / 隣翁挈榼慰余來
>
>사륜을 윤색하던 그 손으로 / 直將潤色絲綸手
>
>산촌의 맥주잔을 잘도 기울여 / 能倒山村麥酒杯
이 시는 한종유의 시를 본받아 쓴 것이다. 한종유의 시는 다음과 같다.
>십 리라 평호에 가랑비 지나가니 / 十里平湖細雨過
>
>한 가락 젓대 소리 갈대꽃 저 너머서 / 一聲長笛隔蘆花
>
>은정에서 조갱하던 그 손으로 / 直將殷鼎調羹手
>
>낚시대 들고 사장으로 내려가다니 / 還把漁竿下晩沙
권부의 시 〈아손경팔십(兒孫慶八十)〉은 다음과 같다.
>黃菊丹楓九月天(황국단풍구월천): 노란 국화 피고, 붉은 단풍 든 구월 어느 날
>
>炊金爨玉設華筵(취금찬옥설화연): 좋은 그릇, 맛난 음식, 화려한 잔치 상을 차렸구나
>
>兒孫薦壽誠殊重(아손천수성수중): 자식과 손자들의 축하, 정성이 너무 기특하여
>
>倒了霞觴骨欲仙(도료하상골욕선): 고운 술잔 기울이니 몸은 신선이 될 듯 하구나
권부의 시는 다음과 같다.
>露洗銀河添月色 술 빛 은하에는 달이 둥글고.
>
>酒盈金盞却天寒 술이 가득한 술잔에는 도리어 날씨 차다
>
>紫泉一曲人如玉 자천의 한 곡조에 사람 옥 같은데
>
>紅燭燒殘夜未闌 촛불은 가믈 거리나 밤은 아직 깊지 않네
4. 2. 기타 저술
五經淺見錄|오경천견록중국어은 권근의 오경(五經) 주석서이다.[1] 入學圖說|입학도설중국어은 성리학 기본 원리를 그림과 함께 설명한 책이다. 四書五經口訣|사서오경구결중국어은 사서오경에 한글 구결을 단 책이다.
5. 외교 활동
권근은 뛰어난 외교관으로, 특히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여러 차례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외교 현안을 해결하고 조선의 입장을 대변했다.
5. 1. 대명 외교
권근은 여러 차례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외교 현안을 해결하고, 조선의 입장을 대변했다. 특히,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의 관계에서 그의 외교적 능력이 빛을 발했다. 그는 〈응제시〉를 통해 명나라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조선 초기 외교 관계 안정에 기여했다.권근이 1396년 명나라 황제 태조에게 응답하여 쓴 시 24편은 세 차례에 걸쳐 지어졌다. 9월 15일에 8수, 같은 달 22일에 10수, 10월 27일에 6수를 지어 모두 24편이다. 첫 8수는 왕경작고(王京作古), 이씨(李氏) 이거(異居), 출사(出使), 조선의 명을 받들고 경사(京師)에 오다, 서경(西京)을 지나다, 압록강을 건너다, 요동을 지나다, 내주(萊州) 바다에 항해(航海)하다로, 자신이 황제를 만나러 오기까지의 일들을 시로 지은 것이다.
그다음 지은 10수는 상고 시대 개벽(開闢)한 동이왕(東夷王), 일본이 바라보이다, 금강산, 신경(新京)의 지리(地理), 진한, 마한, 변한, 신라, 탐라, 대동강으로 조선의 옛 역사를 시로 지은 것이다. 여기에 단군 신화의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 지은 6수의 시는 명나라에서 머물면서 지낸 일들을 소재로 지은 시로, 내빈(來賓) 누대 이름에서 고가(高歌)를 듣다, 중역(重譯) 누대 이름에서 영인(伶人)을 구경하다, 남시(南市) 누대 이름에서 잔을 들어 실컷 취해 돌아오다, 북시(北市) 누대 이름에서 소회를 말하고 낙탁(落魄)한 채 돌아오다, 취선(醉仙) 누대 이름에서 실컷 마시며 강 언덕을 바라보다, 학명루(鶴鳴樓)에 두 번째 앉아서 환패(環佩) 소리를 듣다이다.
응제시는 중국과 명 황제의 덕을 찬양하는 것으로 사대주의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명나라 황제의 마음을 만족시켜서 그의 당초 명나라 방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부득이한 일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6. 평가
陽村集중국어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권근의 시문집이다. 권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 성리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가, 외교관으로서 조선 초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권근의 사대주의적인 대명 외교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진영에서는 권근의 이러한 면모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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