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게외위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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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드게외위아섬은 스발바르 제도의 섬으로, 발견 역사는 논쟁의 대상이다. 1616년에 섬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1614년 지도에 이미 섬의 남쪽 해안으로 보이는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1743년부터 1749년까지 러시아 선원들이 섬 또는 인근 섬에 갇히는 사건이 있었으며, 포경업과 바다코끼리 사냥이 주요 산업이었다. 현재는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 구역의 일부로, 북극곰의 번식지이며 순록과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한다. 조지나 하딩의 소설과 데이비드 로버츠의 저서에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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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게외위아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에드게외위아섬 |
원어 이름 | Edgeøya |
로마자 표기 | Edeoeya |
위치 | 북극해 |
군도 | 스발바르 제도 |
면적 | 5,073 km2 |
빙하 면적 | 2,102 km2 |
해안선 길이 | 502 km |
최고점 | Kvitisen-Storskavlen |
최고점 높이 | 590 m |
국가 | 노르웨이 |
행정 구역 | 스발바르 제도 |
인구 | 0명 |
어원 | |
유래 | 토마스 에지(Thomas Edge)의 이름에서 유래 |
2. 역사
에드게외위아섬의 발견 역사는 논쟁의 대상이다. 1622년에 글을 쓴 토마스 에지(Thomas Edge)는 1616년에 자신의 배 중 하나가 이 섬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614년에 출판된 지도에서, 요리스 카롤루스(Joris Carolus)는 같은 해에 그가 발견한 것을 바탕으로, 에드게외위아섬의 남쪽 해안으로 보이는 것을 보여준다. 카롤루스는 해안선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Onbekende Cust"(네덜란드어로 "알 수 없는 해안"을 의미)를 서쪽에, "Morfyn"을 동쪽에 표시했다. 모프린 앞바다에는 섬들이 표시되어 있다. 마틴 콘웨이, 얼링턴의 제1대 남작 콘웨이(Martin Conway)는 1901년에 카롤루스의 지도가 그가 에드게외위아섬을 발견했음을 나타낸다고 주장했지만, Wielder가 지적했듯이 콘웨이는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 페트루스 플란시우스(Petrus Plancius)가 1612년에 새긴 지도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 지도는 스피츠베르겐 동쪽 해안선을 묘사했다. 해안선은 굴곡이 졌고, 섬들이 앞바다에 있었으며 "Gerrits Eylant"라고 표시되었다. Wielder는 이것이 에드게외위아섬 남쪽 해안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라고 믿었다.
네덜란드 지도 제작 전문가인 쉴더(Schilder)는 카롤루스가 이전 지도에서 두 해안선을 베꼈을 뿐이라고 말하는 반면, 플란시우스는 Wielder에게 알려지지 않은 모리스 빌렘스(Mouris Willemsz)의 지도에서 이름을 베꼈다고 믿었다. 이 지도는 1608년 또는 그 이전에 코르넬리스 클라에손(Cornelis Claeszoon, 대영 도서관, 런던)에 의해 출판되었다. 쉴더에 따르면 빌렘스의 지도는 에드게외위아섬을 "Groen Landt"로 표시하고 있지만, 에드게외위아섬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스피츠베르겐을 나타내는 단일 해안선(두 개가 아님)만 보여준다. 실제로 곰 섬(Bjørnøya)으로 보이는 것이 스피츠베르겐의 남동쪽에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플란시우스는 스피츠베르겐을 복제했을 뿐이다. 카롤루스도 빌렘스의 "Groen Landt"와 매우 흡사한 그의 "Morfyn" 때문에 스피츠베르겐을 복제했다. 이는 에지가 주장한 대로 1616년까지 섬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1617년에 영국 포경선 사이에 쓰여진 편지는 유럽인들이 적어도 그 늦은 시기에, 또는 그 이전에 섬을 발견했음을 증명하며, 이는 에지가 주장하는 바와 같다.
네 명의 러시아 선원은 1743년부터 1749년 9월까지 에드게외위아섬 또는 에드게외위아섬 해안 근처의 작은 섬에 갇혔다. 세 명은 살아남아 생존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작가 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는 이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 대한 책, ''북극을 향한 넷(Four Against The Arctic)''을 썼다. 그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아마도 에드게외위아섬의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인 할브마네외야(Halvmåneøya) 또는 반달섬에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에드게외위아섬에는 주요 정착지가 생기지 않았지만, 포경업과 바다코끼리 사냥은 이 지역에서 광범위한 산업이었다. 이들의 유적은 에드게외위아섬 앞바다, 천 섬 그룹의 뵬셰외야(Bölscheøya)에서 찾을 수 있다. 18세기부터 러시아 정교회구교도 수도원 집락이 존재했다.
2. 1. 발견과 초기 탐험
에드게외위아섬의 발견 역사는 논쟁의 대상이다. 1622년 토마스 에지(Thomas Edge)는 1616년에 자신의 배가 이 섬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614년에 출판된 지도에서 요리스 카롤루스(Joris Carolus)는 같은 해에 그가 발견한 것을 바탕으로 에드게외위아섬의 남쪽 해안으로 보이는 것을 보여주었다. 카롤루스는 해안선을 "Onbekende Cust"(네덜란드어로 "알 수 없는 해안")와 "Morfyn"으로 나누어 표시했다. 마틴 콘웨이, 얼링턴의 제1대 남작 콘웨이(Martin Conway)는 카롤루스의 지도가 에드게외위아섬을 발견했음을 나타낸다고 주장했지만, 페트루스 플란시우스(Petrus Plancius)가 1612년에 새긴 지도에는 스피츠베르겐 동쪽 해안선이 묘사되어 "Gerrits Eylant"라고 표시되었다.네덜란드 지도 제작 전문가 쉴더(Schilder)는 카롤루스가 이전 지도에서 두 해안선을 베꼈다고 주장하는 반면, 플란시우스는 모리스 빌렘스(Mouris Willemsz)의 지도에서 이름을 베꼈다고 한다. 쉴더에 따르면 빌렘스의 지도는 에드게외위아섬을 "Groen Landt"로 표시하고 있지만, 에드게외위아섬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스피츠베르겐을 나타내는 단일 해안선만 보여준다. 카롤루스도 빌렘스의 "Groen Landt"와 매우 흡사한 "Morfyn" 때문에 스피츠베르겐을 복제한것으로 보여, 에지가 주장한 대로 1616년까지 섬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1617년에 영국 포경선 사이에 쓰여진 편지는 유럽인들이 적어도 그 늦은 시기에, 또는 그 이전에 섬을 발견했음을 증명하며, 이는 에지가 주장하는 바와 같다.
1743년부터 1749년 9월까지 네 명의 러시아 선원이 에드게외위아섬 또는 에드게외위아섬 해안 근처의 작은 섬에 갇혔다. 세 명은 살아남아 생존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를 전했으며, 작가 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는 이들의 이야기에 대한 연구 ''북극을 향한 넷(Four Against The Arctic)''을 썼다. 그는 이들이 할브마네외야(Halvmåneøya)에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에드게외위아섬에는 주요 정착지가 생기지 않았지만, 포경업과 바다코끼리 사냥은 이 지역에서 광범위한 산업이었다. 이들의 유적은 에드게외위아섬 앞바다, 천 섬 그룹의 뵬셰외야(Bölscheøya)에서 찾을 수 있다. 18세기부터 러시아 정교회구교도 수도원 집락이 존재했다.
2. 2. 포경과 바다코끼리 사냥
에드게외위아섬의 발견 역사는 논쟁의 대상이다. 토마스 에지(Thomas Edge)는 1616년에 자신의 배가 이 섬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요리스 카롤루스(Joris Carolus)가 1614년에 출판한 지도에는 에드게외위아섬의 남쪽 해안으로 추정되는 지역이 "Onbekende Cust"(네덜란드어로 "알 수 없는 해안")와 "Morfyn"으로 나뉘어 표시되어 있다. 마틴 콘웨이, 얼링턴의 제1대 남작 콘웨이(Martin Conway)는 카롤루스의 지도가 에드게외위아섬 발견을 나타낸다고 주장했으나, 페트루스 플란시우스(Petrus Plancius)가 1612년에 새긴 지도에는 스피츠베르겐 동쪽 해안선과 "Gerrits Eylant"라는 표시가 있어, Wielder는 이를 에드게외위아섬 남쪽 해안에 대한 첫 기록으로 보았다.쉴더(Schilder)는 카롤루스가 이전 지도에서 해안선을 베꼈다고 주장하는 반면, 플란시우스는 모리스 빌렘스(Mouris Willemsz)의 지도에서 이름을 베꼈다고 Wielder는 믿었다. 빌렘스의 지도는 에드게외위아섬을 "Groen Landt"로 표시했지만, 실제로는 스피츠베르겐을 나타내는 단일 해안선만 보여준다. 플란시우스는 스피츠베르겐을 복제한 것으로 보이며, 카롤루스 역시 빌렘스의 "Groen Landt"와 유사한 "Morfyn"을 통해 스피츠베르겐을 복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에지가 주장한 1616년까지 섬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1617년 영국 포경선 사이에 쓰여진 편지는 유럽인들이 적어도 그 시기 또는 그 이전에 섬을 발견했음을 증명한다.
1743년부터 1749년 9월까지 러시아 선원 4명이 에드게외위아섬 또는 인근 섬에 갇혔다가 3명이 생존하여 장대한 생존 이야기를 남겼다. 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는 이들의 이야기를 연구하여 ''북극을 향한 넷(Four Against The Arctic)''이라는 책을 썼으며, 이들이 할브마네외야(Halvmåneøya)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에드게외위아섬에는 주요 정착지가 없었지만, 포경업과 바다코끼리 사냥은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이었다. 이 유적은 에드게외위아섬 앞바다, 천 섬 그룹의 뵬셰외야(Bölscheøya)에서 발견된다. 18세기부터 러시아 정교회구교도 수도원 집락이 존재했다.
2. 3. 러시아 선원 표류 사건 (1743-1749)
에드게외위아섬의 발견 역사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1622년에 글을 쓴 토마스 에지(Thomas Edge)는 1616년에 자신의 배 중 하나가 이 섬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614년에 출판된 지도에서, 요리스 카롤루스(Joris Carolus)는 같은 해에 그가 발견한 것을 바탕으로, 에드게외위아섬의 남쪽 해안으로 보이는 것을 보여준다. 마틴 콘웨이, 얼링턴의 제1대 남작 콘웨이(Martin Conway)는 1901년에 카롤루스의 지도가 그가 에드게외위아섬을 발견했음을 나타낸다고 주장했지만, Wielder가 지적했듯이 콘웨이는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 페트루스 플란시우스(Petrus Plancius)가 1612년에 새긴 지도에 대해 알지 못했다. Wielder는 이것이 에드게외위아섬 남쪽 해안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라고 믿었다.네덜란드 지도 제작 전문가인 쉴더(Schilder)는 카롤루스가 이전 지도에서 두 해안선을 베꼈을 뿐이라고 말하는 반면, 플란시우스는 Wielder에게 알려지지 않은 모리스 빌렘스(Mouris Willemsz)의 지도에서 이름을 베꼈다고 믿었다. 쉴더에 따르면 빌렘스의 지도는 에드게외위아섬을 "Groen Landt"로 표시하고 있지만, 에드게외위아섬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스피츠베르겐을 나타내는 단일 해안선(두 개가 아님)만 보여준다. 따라서 플란시우스는 스피츠베르겐을 복제했을 뿐이다. 카롤루스도 빌렘스의 "Groen Landt"와 매우 흡사한 그의 "Morfyn" 때문에 스피츠베르겐을 복제했다. 이는 에지가 주장한 대로 1616년까지 섬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1617년에 영국 포경선 사이에 쓰여진 편지는 유럽인들이 적어도 그 늦은 시기에, 또는 그 이전에 섬을 발견했음을 증명하며, 이는 에지가 주장하는 바와 같다.
1743년 러시아 선원 4명이 에드게외위아섬 또는 에드게외위아섬 해안 근처의 작은 섬에 갇혔다가 1749년 9월에 3명이 살아남아 구조되었다. 작가 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는 이들의 생존에 대한 연구를 ''북극을 향한 넷(Four Against The Arctic)''이라는 책으로 썼다. 그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아마도 에드게외위아섬의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인 할브마네외야(Halvmåneøya) 또는 반달섬에 있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2. 4. 18세기 이후
에드게외위아섬의 발견 역사는 논쟁의 대상이다. 1622년 토마스 에지는 1616년에 자신의 배가 이 섬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614년 요리스 카롤루스가 제작한 지도에는 에드게외위아섬의 남쪽 해안으로 추정되는 지역이 "Onbekende Cust"(네덜란드어로 "알 수 없는 해안")와 "Morfyn"으로 나뉘어 표시되어 있다. 마틴 콘웨이, 얼링턴의 제1대 남작 콘웨이는 카롤루스의 지도가 에드게외위아섬 발견을 나타낸다고 주장했지만, 네덜란드 지도 제작자 페트루스 플란시우스가 1612년에 새긴 지도에는 스피츠베르겐 동쪽 해안선이 "Gerrits Eylant"로 표시되어 있었다.네덜란드 지도 제작 전문가 쉴더는 카롤루스가 이전 지도에서 해안선을 베꼈다고 주장하는 반면, 플란시우스는 모리스 빌렘스의 지도에서 이름을 베꼈다고 믿었다. 쉴더에 따르면 빌렘스의 지도는 에드게외위아섬을 "Groen Landt"로 표시했지만, 실제로는 곰 섬으로 보이는 섬이 스피츠베르겐 남동쪽에 표시되어 있어 플란시우스가 스피츠베르겐을 복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롤루스 또한 빌렘스의 "Groen Landt"와 유사한 "Morfyn"을 표시했기 때문에 스피츠베르겐을 복제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에지가 주장한 1616년까지 섬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1617년 영국 포경선 사이에 쓰여진 편지는 유럽인들이 적어도 그 시기 또는 그 이전에 섬을 발견했음을 증명한다.
1743년부터 1749년 9월까지 네 명의 러시아 선원이 에드게외위아섬 또는 그 해안 근처의 작은 섬에 갇혔다가 세 명이 살아남아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작가 데이비드 로버츠는 이 이야기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북극을 향한 넷(Four Against The Arctic)''이라는 책을 썼으며, 이들이 할브마네외야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에드게외위아섬에는 주요 정착지가 생기지 않았지만, 포경업과 바다코끼리 사냥은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이었다. 이들의 유적은 에드게외위아섬 앞바다, 천 섬 그룹의 뵬셰외야에서 찾을 수 있다. 18세기부터 러시아 정교회구교도 수도원 집락이 존재했다.
3. 지리
에드게외위아섬은 지리 좌표 77°40′N, 22°30′E에 위치해 있다.[6] 서쪽에는 스토르피요르덴이 있어 에드게외위아섬과 스피츠베르겐을 구분한다. 북쪽에는 프리먼 해협(Freemansundetno)이 에드게외위아섬과 바렌츠외야섬 사이에 있다. 북동쪽의 올가스트레테트는 에드게외위아섬과 콩 카를스 란을 구분한다. 동쪽에는 작은 섬 그룹인 라이케 이세오야네(Ryke Yseøyaneno)가 있고 남쪽에는 천개의 섬(Tusenøyaneno)이 있다. 섬의 남쪽 해안은 가장 큰 피요르인 티우프요르덴에 의해 굴곡져 있으며, 튜브만(Tjuvfjordenno)에는 습지가 펼쳐져 있다. 섬의 최북단은 1870년 8월 독일 탐험가 테오도르 폰 호이글린(1824–76)의 이름을 딴 케이프 호이글린이다.
지질학적으로 이 섬은 중앙 스피츠베르겐과 유사하며, 중생대 암석(구체적으로는 부차적인 사암을 가진 트라이아스기 셰일, 가끔 다이아베이스 관입, 그리고 남서쪽의 쥬라기 층)과 빙하 침식의 영향, 그리고 극지방 빙모의 모습을 보인다.[6] 섬의 동쪽에는 큰 빙하인 에지외이외쿨렌(Edgeøyjøkulenno)이 있다. 스피츠베르겐 섬과는 달리, 에지 섬의 지형은 완만하며, 뾰족한 산도 복잡한 피오르도 없다. 산들은 높이가 500m 정도로 평평하며, 최고점은 북서부의 칼텍스 산(해발 590m)이다. 레이케 이세 군도와 투세노이아네 군도는 섬 자체가 돌라이트의 주상절리로 구성되어 있다.
바렌츠외야섬 및 인근 섬과 함께 에지외위아섬은 1973년 노르웨이 정부에 의해 설립된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 구역의 일부를 형성한다.[6] 상당한 수의 순록이 있으며, 이 섬은 북극곰의 생물학적 번식을 위한 중요한 장소이다.[6] 더욱이, 이 바렌츠해 지역의 북극곰 개체군은 독특한 데메 (독특한 유전적 개체군)이다.[6]
3. 1. 지형
에드게외위아섬은 지리 좌표 77°40′N, 22°30′E에 위치해 있다.[6] 서쪽에는 스토르피요르덴이 있어 에드게외위아섬과 스피츠베르겐을 구분한다. 북쪽에는 프리먼 해협(Freemansundetno)이 에드게외위아섬과 바렌츠외야섬 사이에 있다. 북동쪽의 올가스트레테트는 에드게외위아섬과 콩 카를스 란을 구분한다. 동쪽에는 작은 섬 그룹인 라이케 이세오야네(Ryke Yseøyaneno)가 있고 남쪽에는 천개의 섬(Tusenøyaneno)이 있다. 섬의 남쪽 해안은 가장 큰 피요르인 티우프요르덴에 의해 굴곡져 있으며, 튜브만(Tjuvfjordenno)에는 습지가 펼쳐져 있다. 섬의 최북단은 1870년 8월 독일 탐험가 테오도르 폰 호이글린(1824–76)의 이름을 딴 케이프 호이글린이다.|섬네일|왼쪽|케이프 리와 스토르피요르덴]]
지질학적으로 이 섬은 중앙 스피츠베르겐과 유사하며, 중생대 암석(구체적으로는 부차적인 사암을 가진 트라이아스기 셰일, 가끔 다이아베이스 관입, 그리고 남서쪽의 쥬라기 층)과 빙하 침식의 영향, 그리고 극지방 빙모의 모습을 보인다.[6] 섬의 동쪽에는 큰 빙하인 에지외이외쿨렌(Edgeøyjøkulenno)이 있다. 스피츠베르겐 섬과는 달리, 에지 섬의 지형은 완만하며, 뾰족한 산도 복잡한 피오르도 없다. 산들은 높이가 500m 정도로 평평하며, 최고점은 북서부의 칼텍스 산(해발 590m)이다. 레이케 이세 군도와 투세노이아네 군도는 섬 자체가 돌라이트의 주상절리로 구성되어 있다.
바렌츠외야섬 및 인근 섬과 함께 에지외위아섬은 1973년 노르웨이 정부에 의해 설립된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 구역의 일부를 형성한다.[6] 상당한 수의 순록이 있으며, 이 섬은 북극곰의 생물학적 번식을 위한 중요한 장소이다.[6] 더욱이, 이 바렌츠해 지역의 북극곰 개체군은 독특한 데메 (독특한 유전적 개체군)이다.[6]
3. 2. 주변 섬
에지외위아섬은 스피츠베르겐에서 남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스토르피요르덴이 에지외위아섬과 스피츠베르겐을 구분한다.[6] 북쪽에는 프리먼 해협(Freemansundetno)이 바렌츠외야섬과의 사이에 있으며, 동쪽은 바렌츠해에 면해 있다. 북동쪽의 올가스트레테트는 에지외위아섬과 콩 카를스 란을 구분한다. 동쪽에는 작은 섬 그룹인 라이케 이세오야네(Ryke Yseøyaneno)가 있고 남쪽에는 투세노이아네 군도(Tusenøyaneno)가 있다. 섬의 남쪽 해안은 가장 큰 피요르인 티우프요르덴에 의해 굴곡져 있으며, 남서쪽에는 크게 움푹 들어간 튜브만(Tjuvfjordenno)이 있어 습지가 펼쳐져 있다. 섬의 최북단은 1870년 8월 독일 탐험가 테오도르 폰 호이글린(1824–76)의 이름을 딴 케이프 호이글린이다. 남동쪽에는 반월도(Halvmåneøyano)가 있다.
지질학적으로 이 섬은 중앙 스피츠베르겐과 유사하며, 중생대 암석(트라이아스기 셰일, 사암, 쥬라기 층)과 돌라이트의 주상절리로 구성되어 있다.
3. 3. 지질
지질학적으로 에드게외위아섬은 중앙 스피츠베르겐과 유사하며, 중생대 암석(트라이아스기 셰일, 사암, 다이아베이스 관입, 남서쪽의 쥬라기 층)과 빙하 침식의 영향, 그리고 극지방 빙모의 모습을 보인다.[6] 섬의 동쪽에는 큰 빙하인 에지외이외쿨렌이 있다.
에지 섬의 지형은 스피츠베르겐 섬과는 달리 완만하며, 뾰족한 산이나 복잡한 피오르는 없다. 산들은 높이가 500m 정도로 평평하며, 최고점은 북서부의 칼텍스 산(해발 590m)이다. 섬의 남동부는 에지오이요쿨렌(Edgeøyjøkulenno)이라는 큰 빙하가 덮고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스피츠베르겐 섬 중부와 유사하며, 트라이아스기의 셰일과 사암이 주를 이루며, 남서부에서는 쥐라기 지층도 보인다. 레이케 에이세 군도(Ryke Yseøyaneno)와 투세노이아네 군도(Tusenøyaneno)는 섬 자체가 돌라이트의 주상절리로 구성되어 있다.
4. 생태계
바렌츠외야섬 및 인근 섬과 함께 에드게외위아섬은 1973년 노르웨이 정부에 의해 설립된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 구역의 일부를 형성한다. 상당한 수의 순록이 있으며, 이 섬은 북극곰의 생물학적 번식을 위한 중요한 장소이다. 더욱이, 이 바렌츠해 지역의 북극곰 개체군은 독특한 데메 (독특한 유전적 개체군)이다.[6]
1973년에 주변 섬들과 함께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서안에서는 고산 식물 등이 꽃을 피우지만, 동안은 식생이 빈약하며 스발바르 양귀비와 이끼 등이 자랄 뿐이다.
북극곰은 일 년 내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 곰은 수컷 곰과 만날 기회가 적은 해안에서 떨어진 계곡에 있는 경우가 많다. 순록이 2500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식생도 풍부해지고 있다. 바닷새와 순록의 사체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북극여우의 안정적인 집단이 존재한다.
해양 동물로는 점박이물범, 턱수염바다사자, 바다코끼리, 밍크고래, 흰돌고래 등이 있다. 바다코끼리의 상륙 장소가 많으며, 특히 에지섬 북서쪽의 리 곶(노르웨이어: Kapp Lee)은 유명하여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통은 수컷뿐이지만, 투센 군도에서는 최근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컷이 상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세가락갈매기는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구역을 대표하는 종이다. 에지섬 남서부, 크발핀트 산(노르웨이어: Kvalpyntfjellet)과 네게르 곶(노르웨이어: Negerpynten)에는 풀마갈매기의 번식지가 있다. 그 외에 바다오리, 흰뺨바다오리, 쇠바다제비, 바다오리, 도둑갈매기도 자주 볼 수 있다. 투센 군도, 레이케 에이세 군도, 반월도, 델리치외야(노르웨이어: Delitschøya), 치글러외야(노르웨이어: Zieglerøya)와 같은 도서에서는 흰뺨기러기, 흰이마기러기, 털사슴, 북극제비갈매기 등이 번식지로 삼고 있다.
4. 1. 육상 생태계
에드게외위아섬은 지리 좌표 77°40′N, 22°30′E에 위치한다.[6] 서쪽에는 스토르피요르덴이 있어 에드게외위아섬과 스피츠베르겐을 구분한다. 북쪽에는 프리먼 해협이 에드게외위아섬과 바렌츠외야섬 사이에 있으며, 북동쪽의 올가스트레테트는 에드게외위아섬과 콩 카를스 란을 구분한다.[6] 섬의 남쪽 해안은 가장 큰 피요르인 티우프요르덴에 의해 굴곡져 있다. 섬의 최북단은 1870년 8월 독일 탐험가 테오도르 폰 호이글린의 이름을 딴 케이프 호이글린이다.[6]지질학적으로 이 섬은 중앙 스피츠베르겐과 유사하며, 중생대 암석과 빙하 침식의 영향, 그리고 극지방 빙모의 모습을 보인다.[6] 섬의 동쪽에는 큰 빙하인 에지외이외쿨렌이 있다.
1973년 노르웨이 정부에 의해 에드게외위아섬은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다.[6] 이 섬은 북극곰의 생물학적 번식을 위한 중요한 장소이며, 바렌츠해 지역의 북극곰 개체군은 독특한 데메이다.[6] 순록이 2500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식생도 풍부해지고 있다. 서안에서는 고산 식물 등이 꽃을 피우지만, 동안은 식생이 빈약하며 스발바르 양귀비와 이끼 등이 자랄 뿐이다. 북극여우의 안정적인 집단이 존재하며, 해양 동물로는 점박이물범, 턱수염바다사자, 바다코끼리, 밍크고래, 흰돌고래 등이 있다.
세가락갈매기는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구역을 대표하는 종이다. 에지섬 남서부와 크발핀트 산, 네게르 곶에는 풀마갈매기의 번식지가 있다. 그 외에 바다오리, 흰뺨바다오리, 쇠바다제비, 바다오리, 도둑갈매기도 자주 볼 수 있다. 투센 군도, 레이케 에이세 군도, 반월도, 델리치외야, 치글러외야와 같은 도서에서는 흰뺨기러기, 흰이마기러기, 털사슴, 북극제비갈매기 등이 번식지로 삼고 있다.
4. 2. 해양 생태계
에드게외위아섬은 1973년 노르웨이 정부에 의해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다.[6] 이 섬은 상당한 수의 순록과 북극곰의 중요한 번식 장소이며, 바렌츠해 지역의 북극곰 개체군은 독특한 유전적 특성을 가진다.[6]해양 동물로는 점박이물범, 턱수염바다사자, 바다코끼리, 밍크고래, 흰돌고래 등이 있다. 특히 에지섬 북서쪽의 리 곶(노르웨이어: Kapp Lee)은 바다코끼리의 상륙 장소로 유명하다.[6] 투센 군도에서는 최근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컷 바다코끼리가 상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세가락갈매기는 남동 스발바르 자연 보호구역을 대표하는 종이다. 에지섬 남서부, 크발핀트 산(노르웨이어: Kvalpyntfjellet)과 네게르 곶(노르웨이어: Negerpynten)에는 풀마갈매기의 번식지가 있다. 그 외에 바다오리, 흰뺨바다오리, 쇠바다제비, 바다오리, 도둑갈매기도 자주 볼 수 있다. 투센 군도, 레이케 에이세 군도, 반월도, 델리치외야(노르웨이어: Delitschøya), 치글러외야(노르웨이어: Zieglerøya)와 같은 도서에서는 흰뺨기러기, 흰이마기러기, 털사슴, 북극제비갈매기 등이 번식지로 삼고 있다.[6]
5. 대중문화
에드게외위아섬은 조지나 하딩의 소설 『토마스 케이브의 고독』(2007)의 배경으로, 주인공이 내기를 걸고 1616-17년 겨울을 이 섬에서 성공적으로 보낸다.
또한 2002년 데이비드 로버츠의 저서 『북극에 맞선 넷』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 책은 18세기 중반, 배가 파괴된 후 6년을 섬에서 보낸 4명의 포모르 선원들의 실화를 담고 있다.
참조
[1]
간행물
Norwegian Polar Institute
2008
[2]
간행물
Svalbard Images
2008
[3]
서적
Adventure Tourism: Environmental Impacts and Management
https://books.google[...]
Springer Nature
2019-10-25
[4]
간행물
Martin Conway
1901
[5]
서적
Four Against the Arctic: Shipwrecked for Six Years at the Top of the World
Simon & Schuster
2003
[6]
간행물
C. Michael Hogan
2008
[7]
웹사이트
FOUR AGAINST THE ARCTIC: Shipwrecked for Six Years at the Top of the World by David Roberts
https://www.publishe[...]
[8]
웹사이트
スヴァールバル諸島 スピッツベルゲン島
https://www.cruisepl[...]
Cruise Planet
2022-03-01
[9]
서적
Four Against the Arctic: Shipwrecked for Six Years at the Top of the World
Simon & Schuster
[10]
문서
Мелько Сергей Николаевич О духовных традициях Архангельской области
http://starover-p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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