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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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뮤 전쟁은 1932년 호주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들에게 제공된 농경지에 에뮤가 대거 출현하여 농작물 피해를 입히자, 호주 정부가 군대를 동원하여 에뮤를 사살하려 했던 작전이다. 밀 가격 하락과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던 농부들은 에뮤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고, 정부는 기관총을 동원하여 에뮤를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에뮤의 민첩성과 지형적 어려움으로 인해 작전은 실패했고, 언론과 학계의 비판을 받았다. 이후 현상금 제도가 시행되었고, 배제 방벽 울타리가 설치되는 등 다른 해결책이 모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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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이건은 1795년경 서호주에서 태어난 와자크 부족의 누웅가르족 원주민으로, 백인 정착민과의 갈등 속에서 저항하다 1833년 사망했으며, 그의 삶은 호주 원주민의 저항과 문화적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에뮤 전쟁 - [전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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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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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캠피언 지역,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
목표 | 지역 에뮤 개체수 감소 |
실행 기간 | 1932년 11월 2일 – 1932년 12월 10일 (1개월 1주 1일) |
실행 주체 |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포병대의 그위니드 퍼브스 윈-오브리 메레디스 소령 지휘 |
결과 | 에뮤 986마리 사살 확인. 전체 에뮤 개체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함. |
교전 세력 1 |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
교전 세력 2 | 에뮤 (Dromaius novaehollandiae) |
지휘관 1 | 조지 피어스 경, 국방부 장관 G.P.W. 메레디스 소령,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왕립 포병대 중포 7중대장 S. 맥머레이 하사 J. 오할로란 기관총 사수 |
지휘관 2 | 에뮤 |
병력 1 |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포병대 중포 7중대 3명 루이스 경기관총 2정 탄약 10,000발 이상 현지 주민 |
병력 2 | 에뮤 약 20,000마리 |
피해 1 | 전사 0명 탄약 10,000발 이상 사용 광대한 면적의 농지 (후에 캠피언 지역은 폐촌이 됨) 위엄 |
피해 2 | 사망 986마리 부상 약 2,500마리 |
작전 개요 | |
계획 | 조지 피어스 경 |
목표 | 지역 에뮤 개체수 감소 |
실행 | 1932년 11월 2일 - 12월 10일 |
기타 | |
관련 인물 | 조지 피어스 |
2. 배경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호주 제대 군인들은 정부로부터 서호주 내의 농업적으로 불리한 지역에 토지를 받아 밀 농사를 시작했다.[2] 그러나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밀 가격이 폭락하고 정부가 약속했던 보조금 지급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농부들은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2][33] 1932년 10월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농부들은 수확을 앞두고 밀 납품 거부를 고려할 정도였다.[2]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약 2만 마리에 달하는 에뮤 떼가 농경지로 몰려들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3][34] 에뮤는 번식기를 마치고 내륙에서 해안가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데, 농부들이 가축을 위해 개간하고 물을 공급한 농경지가 에뮤에게 이상적인 서식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2][33] 특히 챈들러와 왈굴란 주변 농경지에 침입한 에뮤는 농작물을 먹어 치우고 짓밟았으며, 울타리를 파괴하여 토끼와 같은 다른 동물의 침입을 유발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4][35]
극심한 피해에 시달리던 농부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제대 군인들은 기관총의 효과를 잘 알고 있었기에, 국방부 장관 조지 피어스 경에게 군대를 파견하여 에뮤를 소탕해 줄 것을 요청했다.[2][33][36] 피어스 장관은 군인이 기관총을 사용하고, 수송 비용은 서호주 정부가, 식량 및 탄약 비용은 농부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이 요청을 수락했다.[2][5][36] 피어스 장관은 에뮤 소탕이 군인들의 좋은 사격 연습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6][37] 일각에서는 당시 고조되던 서호주의 분리 독립 움직임(1933년 서호주 분리 국민투표)을 무마하기 위해 농민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정치적 결정이라는 해석도 있다.[56][33] 이 작전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폭스 무비톤의 촬영 기사가 동행하기도 했다.[2][33]
2. 1.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호주 군인 정착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에 참전했던 많은 수의 제대 군인들에게 호주 정부는 서호주 내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토지를 제공했는데, 이는 종종 농업적으로 불리한 지역이었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이들 농부들은 밀 작물을 늘리도록 장려되었고, 정부는 보조금 형태의 지원을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 정부의 권고와 약속된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밀 가격은 계속 하락했고, 1932년 10월에 이르러 농부들은 수확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밀을 인도하는 것을 거부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2]
농부들의 어려움은 약 2만 마리의 에뮤가 나타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3] 에뮤는 번식기 이후 정기적으로 이동하며, 내륙 지역에서 해안으로 향했다. 서호주 농부들이 가축을 위해 개간된 토지와 추가적인 물 공급을 제공하면서, 에뮤는 경작지가 좋은 서식지임을 알게 되었고, 농장 지역, 특히 챈들러와 왈굴란 주변의 농업에 불리한 토지로 침입하기 시작했다.[2] 에뮤는 작물을 먹어 치우고 망쳐놓았으며, 울타리에 큰 구멍을 내어 토끼가 들어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게 했다.[4]
농부들은 에뮤가 작물을 갉아먹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고, 제대 군인 대표단이 국방부 장관인 조지 피어스 경을 만나기 위해 파견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군인 정착민들은 기관총의 효과를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배치를 요청했다. 장관은 조건부로 이에 동의했다. 즉, 군인이 총을 사용하고, 병력 수송은 서호주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며, 농부들은 음식, 숙소, 탄약 비용을 제공해야 했다.[2][5] 피어스는 또한 새들이 좋은 사격 연습 대상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배치를 지지했으며,[6]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이 작전을 서호주 농부들을 돕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1933년 서호주 분리 국민투표의 위협을 막는 방법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위해 무성 영화 제작 회사인 폭스 무비톤에서 촬영 기사를 고용했다.[2]
2. 2. 에뮤의 이동과 농경지 피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호주 제대 군인들은 정부로부터 서호주 내의 농업적으로 불리한 지역 토지를 받아 농사를 짓게 되었다.[2]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농부들은 정부의 밀 증산 장려와 보조금 약속에도 불구하고, 약속 불이행과 계속되는 가격 하락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2]
이러한 상황에서 약 20,000마리에 달하는 에뮤 떼가 나타나면서 농부들의 고충은 더욱 깊어졌다.[3] 에뮤는 번식기가 끝나면 내륙 지역에서 해안가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데,[33] 서호주 농부들이 가축을 위해 개간한 토지와 추가로 공급한 물 때문에 농경지가 에뮤에게 좋은 서식 환경이 되었다.[2] 이로 인해 에뮤 떼는 농장 지역, 특히 챈들러와 왈굴란 주변의 농지로 침입하기 시작했다.[2] 에뮤는 농작물을 먹어 치우고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울타리에 큰 구멍을 내어 토끼와 같은 다른 동물이 침입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 추가적인 피해를 유발했다.[4]
2. 3. 농부들의 군대 파견 요청과 정부의 결정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에 참전했던 많은 제대 군인들은 호주 정부로부터 서호주 내의 농업적으로 불리한 지역 토지를 받아 밀 농사를 짓게 되었다. 1929년 호주 대공황이 시작되자 정부는 농부들에게 밀 생산량 증대를 장려하며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으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밀 가격은 계속 하락했고, 1932년 10월에는 농부들이 수확을 앞두고 밀 납품 거부를 위협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었다.[2]
이러한 농부들의 어려움은 약 2만 마리에 달하는 에뮤 떼가 출현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3] 에뮤는 번식기가 끝나면 내륙에서 해안 지역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데, 농부들이 가축을 위해 개간하고 물 공급 시설을 마련한 서호주의 농경지가 에뮤에게 매력적인 서식지가 된 것이다. 에뮤는 특히 챈들러와 왈굴란 주변의 농장으로 침입하여 농작물을 먹어 치우고 망쳐놓았다. 또한, 에뮤가 울타리에 큰 구멍을 내면서 토끼들이 농장으로 들어와 추가적인 피해를 일으키는 문제도 발생했다.[4]
작물 피해가 커지자 농부들은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고, 제대 군인 대표단이 국방부 장관 조지 피어스 경을 찾아갔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통해 기관총의 위력을 잘 알고 있던 이들은 에뮤 퇴치를 위해 기관총을 동원한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 피어스 장관은 이 요청에 조건부로 동의했다. 조건은 군인이 직접 기관총을 운용하고, 병력 수송 비용은 서호주 정부가 부담하며, 농부들은 군인들의 식량과 숙소, 그리고 탄약 비용을 제공하는 것이었다.[2][5]
피어스 장관은 에뮤가 군인들에게 좋은 사격 연습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군대 파견을 지지했다고 알려져 있다.[6] 또한, 당시 서호주에서는 연방 탈퇴 움직임(1933년 서호주 분리 국민투표)이 있었는데, 정부가 이 작전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서호주 농부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분리주의 여론을 잠재우려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작전의 진행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폭스 무비톤의 촬영 기사도 군대에 합류했다.[2]
3. 군사 작전 ("전쟁")
(내용 없음)
3. 1. 작전 개요
군대의 개입은 1932년 10월 시작될 예정이었다[36]. 이른바 '전쟁'은 호주 왕립 포병대 중포병 제7중대의 G.P.W. 메러디스 소령의 지휘 아래 수행되었다[33][30]. 메러디스 소령은 병사 2명을 지휘했고[8], 이들에게는 루이스 경기관총 2정과[39] 탄약 1만 발이 지급되었다[30].
하지만 잦은 비로 인해 에뮤가 넓은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작전은 연기되었다[36]. 비는 1932년 11월 2일에 그쳤고[33][36], 같은 날 부대는 농부들을 돕고 호주 경보병 대원의 모자 제작에 사용할 깃털을 얻기 위해 (신문 보도에 따르면) 에뮤 가죽 100장을 수집하라는 명령을 받고 배치되었다[40].
3. 2. 1차 작전 (1932년 11월 2일 ~ 11월 8일)
1932년 11월 2일, 군대는 챔피언 지역으로 이동하여 약 50마리의 에뮤를 발견하며 첫 작전을 개시했다.[33][2] 에뮤들이 기관총의 유효 사거리 밖에 있었기 때문에, 지역 정착민들이 에뮤를 매복 지점으로 몰아넣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에뮤들은 작은 무리로 흩어져 달아나면서 효과적인 조준이 어려웠다.[6] 첫 번째 기관총 사격은 거리가 멀어 효과가 없었지만, 두 번째 사격에서는 "수많은" 또는 "아마도 12마리 정도"의 에뮤를 사살했다.[33][2]다음 주요 교전은 11월 4일에 발생했다. 메러디스 소령은 지역 댐 근처에 매복을 설치했고, 1,000마리가 넘는 에뮤 무리가 매복 지점으로 접근하는 것을 포착했다. 이번에는 사수들이 에뮤가 충분히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기관총이 불과 12마리를 사살한 후 고장 나는 바람에 나머지 에뮤들은 흩어져 달아났고, 그날 더 이상의 에뮤는 발견되지 않았다.[8][33][2]
이후 며칠간 메러디스 소령은 에뮤들이 "상당히 길들여졌다"는[41][11] 보고가 있는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작전을 이어갔으나,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두었다.[33][2] 작전 4일째에는 군 관찰자들이 에뮤 무리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고하기도 했다. "각 무리에는 이제 자신의 지도자가 있는 것 같다. 키가 약 1.83m에 달하는 크고 검은 깃털의 새가 동료들이 파괴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망을 보며 우리의 접근을 경고한다"고 기록했다.[62][12] 메러디스는 트럭에 기관총을 장착하여 기동성을 확보하려 했지만, 트럭이 에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거친 지형 때문에 안정적인 사격이 불가능하여 이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33][2]
첫 교전 이후 6일이 지난 11월 8일까지 소모된 탄약은 2,500발에 달했다.[6] 사살된 에뮤의 정확한 숫자는 불확실하여, 한 기록은 50마리로 추정하는 반면,[6] 정착민들의 보고를 포함한 다른 기록은 200마리에서 500마리 사이로 추정한다. 메러디스 소령의 공식 보고에 따르면, 작전 중 군인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일부 기록에는 '굴욕감' 외에는 사상자가 없다고 언급됨).[33][2]
조류학자 도미닉 서번티는 이 작전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기관총 사수들의 에뮤 무리에 대한 백병전의 꿈은 곧 사라졌다. 에뮤 사령부는 분명히 게릴라 전술을 명령했고, 그들의 다루기 힘든 군대는 곧 수많은 소규모 부대로 분열되어 군사 장비를 비경제적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실망한 야전군은 약 한 달 후에 전투 지역에서 철수했다.[63][13][42]
11월 8일, 오스트레일리아 하원에서는 작전의 효율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6] 지역 언론에서 "불과 몇 마리의 에뮤만 죽었다"는 등[64][54][14][43][35] 작전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가 이어지자, 조지 피어스 국방장관은 결국 군대와 총기의 철수를 명령했다.[54][56][65][66][4][6][15][16][35][44][45]
철수 후 메러디스 소령은 에뮤의 생존력과 기동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그들을 줄루족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만약 에뮤의 탄환 수송 능력을 가진 1개 사단이 있다면, 전 세계의 어떤 군대에도 맞설 것이다. 에뮤는 기관총에 전차의 불사신성을 가지고 맞설 수 있다. 마치 덤덤탄조차 막지 못했던 줄루족과 같다.[12][46]
3. 3. 2차 작전 (1932년 11월 13일 ~ 12월 10일)
군대가 철수한 후에도 에뮤의 농작물 공격은 계속되었다. 농부들은 혹서와 가뭄으로 수천 마리의 에뮤가 농장을 침입하게 되자 다시 지원을 요청했다.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 총리인 제임스 미첼은 군사 지원 재개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동시에 기지 사령관은 초기 작전에서 300마리의 에뮤가 사살되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16]
농부들의 요청과 기지 사령관의 보고에 따라, 국방부 장관은 11월 12일까지 군사 작전 재개를 승인했다.[16] 그는 호주 상원에서 이 결정을 옹호하며, 대규모 에뮤 개체수가 농업에 심각한 위협이 되므로 군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4] 군대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 정부가 필요한 인력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총기를 대여하기로 합의했지만, 주에 경험 많은 기관총 사수가 부족하여 G. P. W. 메러디스 소령이 다시 현장에 투입되었다.[2]

1932년 11월 13일 현장에 투입된 군대는 처음 이틀 동안 약 40마리의 에뮤를 사살하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67] 11월 15일 세 번째 날에는 성과가 훨씬 저조했지만, 12월 2일까지 병사들은 매주 약 100마리의 에뮤를 꾸준히 사살했다. 메러디스 소령은 12월 10일에 소환되었고, 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9,860발의 탄약을 사용하여 986마리를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확인된 사살 한 마리당 정확히 10발의 탄약을 소모한 비율이었다. 또한 메러디스는 부상으로 인해 추가로 2,500마리의 에뮤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2] 도태 작전의 성공 여부에 대해, 1935년 8월 23일자 쿨가디 광부 (Coolgardie Miner) 기사에서는 기관총 사용이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 방법은 효과적이었고 밀의 남은 부분을 구했다"고 평가했다.[18][68]
4. 작전의 결과 및 평가
군사 작전의 실패 이후에도 해당 지역 농민들은 1934년, 1943년, 1948년에 다시 군사 지원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69][2][19][33] 대신 1923년에 시작되었던 현상금 제도는 계속 유지되었다.[6] 한편, 이 작전은 영국의 환경 보호론자들과 호주의 저명한 조류학자들로부터 에뮤를 몰살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70][20][49][71][72][73][21][22][23][50]
4. 1. 현상금 제도 시행
제거 작전에서 발생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농부들은 1934년, 1943년, 1948년에 다시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로부터 거절당했다.[2][19] 대신, 1923년에 시작된 현상금 제도가 지속되었고, 이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34년 6개월 동안 57,034건의 현상금 청구가 이루어졌다.[6]1932년 12월까지 에뮤 전쟁에 대한 소식이 영국에까지 퍼졌다. 그곳의 일부 보존주의자들은 이 제거 작전을 "희귀 에뮤의 절멸"이라고 항의했다.[20] 저명한 호주 조류학자인 도미닉 서번티와 휴버트 휘텔은 이 "전쟁"을 "대량의 조류 파괴 시도"라고 묘사했다.[21][22][23]
1930년대 이후로 배제 방벽 울타리는 농업 지역에서 에뮤를 ( 딩고와 토끼와 같은 다른 해충과 함께) 막는 대중적인 수단이 되었다.[12][24]
4. 2. 언론과 학계의 반응
1932년 12월까지 에뮤 전쟁에 대한 소식은 영국에까지 퍼졌다.[70][20][49] 그곳의 일부 환경 보호론자들은 이 제거 작전을 "희귀한 에뮤의 몰살" 또는 "희귀종 에뮤의 근절"이라고 항의했다.[70][20][49] 저명한 호주 조류학자인 도미닉 서번티와 휴버트 휘텔은 이 "전쟁"을 "새들의 대량 살상 시도" 또는 "대량의 조류 파괴 시도"라고 묘사했다.[71][72][73][21][22][23][50]4. 3. 에뮤 전쟁의 의의와 교훈
에뮤 소탕 작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 농민들은 1934년, 1943년, 1948년에도 군사 지원을 다시 요청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69][2][19][33] 대신 1923년에 도입되어 1932년부터 이어진 현상금 제도가 계속 유지되었는데, 이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실제로 1934년 6개월 동안 57,034건의 현상금이 청구되었다.[6]1932년 12월, 에뮤 전쟁 소식은 영국까지 퍼져나갔다. 영국의 일부 환경 보호론자들은 이 작전을 "희귀종 에뮤의 절멸 시도"라며 비판했다.[70][20][49] 호주의 저명한 조류학자인 도미닉 서번티(Dominic Serventy)와 휴버트 휘텔(Hubert Whittell) 역시 이 소위 '전쟁'을 "새들을 대량으로 살상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71][72][73][21][22][23][50] 이러한 비판은 군사력을 동원한 정부의 초기 대응이 성급하고 비효율적이었음을 시사한다.
결국 군사 작전보다는 다른 방식이 모색되었다. 1930년대 이후 해충 방지 울타리 설치는 딩고나 토끼 같은 다른 해충과 더불어 에뮤를 농경지로부터 차단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74][12][24]
하지만 에뮤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1950년 11월, 휴 레슬리는 연방 의회에서 다시 에뮤 문제를 제기하며 조시아 프랜시스 육군부 장관에게 농민들이 사용할 .303 구경 탄약 50만 발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고, 장관은 이를 승인했다.[75][25]
초기의 군사 작전은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국비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가 에뮤 소탕을 요청했던 농가에 군 작전 비용으로 총 24GBP (군 식량 9GBP, 군 이동 10GBP, 차량 수리비 등 5GBP)를 청구한 사실은 이러한 비판을 뒷받침한다.[48] 에뮤 전쟁은 인간의 무력 개입이 자연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지 못하며, 오히려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후 에뮤 개체 수는 감소하여 2018년에는 국제 자연 보전 연맹(IUCN) 적색 목록에 오르기도 했으나[51], 여전히 에뮤가 농작물이나 화단에 피해를 주는 일은 발생하고 있다.[31]
5. 관련 매체
2019년, 극작가 시미온 이알레로그로우와 작곡가 제임스 코트가 멜버른에서 이 이야기를 각색한 뮤지컬을 워크숍으로 제작했다.[26] 액션 코미디 영화 ''에뮤 전쟁''은 2023년 10월 22일 몬스터 페스트에서 초연되었다.[27][28] 존 클리즈, 몬티 프랭클린, 롭 슈나이더, 카밀라 클리즈, 짐 제퍼리스가 각본을 쓴 또 다른 액션 코미디 영화가 2023년 또는 2024년에 제작을 시작할 예정이었다.[29][2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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