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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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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미네산은 일본 나라현에 위치한 산으로, 8세기에 엔노교자에 의해 슈겐도 수행을 위한 사찰이 설립된 이후, 1300년 이상 슈겐도의 성지로 여겨져 왔다. 메이지 시대에 성별 금지령으로 폐쇄되기도 했지만, 1945년 해제 이후 슈겐도 수행이 이어져 왔으며, 1964년 일본 백 명산에 선정되었다. 2004년에는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미네산은 남성만 출입이 허용되는 여인 금제 전통으로도 유명하며, 산에는 세 가지 수행 코스가 존재한다.

2. 역사

8세기 엔노교자가 슈겐도 수행을 위한 거점으로 오미네 산 사찰을 설립했다.[1] 슈겐도는 "수행과 시험의 길"을 의미하며, ''슈교''라는 어렵고 엄격한 의례적 시험을 통해 영적 힘을 스스로 실현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2]

요시노에서 구마노에 이르는 오미네 오쿠가케도는 예로부터의 자연 신앙과 중국에서 건너온 신선 사상, 도교, 불교 수행이 혼합된 형태로, 후지와라쿄헤이조쿄에서 온 승려(수험자)들에 의해 개척되었다. 아스카 시대 말엽 몬무 천황 시기에 엔노교자에 의해 개산되었으며,[19] 조큐 연간(1040년 ~ 1044년)에는 수험자 기에이와 쵸엔에 의해 구마노에서 요시노까지의 길이 체계화되었다. 산복이 오미네에서 수행하는 것을 "봉입", "입봉"이라 하고, 구마노에서 요시노로 가는 것을 "순봉", 요시노에서 구마노로 가는 것을 "역봉"이라 부른다. 무로마치 시대 이후에는 교토 등에서 가까운 요시노에서 입산하는 역봉이 많아졌다.[20]

1872년 메이지 시대, 제국 정부는 요괴, 유령 등 민간 설화 속 존재에 대한 믿음과 후지산, 오미네 산 등 성스러운 산에서의 성별 금지령을 포함한 모든 "미신적 관행"을 금지했다.[1] 이 기간 동안 산은 폐쇄되었고, 슈겐도 수행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5년 일본 문화법이 이 칙령을 폐지하면서 산은 다시 개방되었고, 슈겐도 수행자들은 전통을 복원했다.

1964년, 산악인이자 작가인 후카다 규야는 오미네 산을 일본 백 명산 중 91번째로 선정했다. 후카다는 물리적 장엄함, 일본에 대한 역사적·영적 중요성, 독창성(독특한 형태, 현상, 사건)을 기준으로 명산 100개를 선정했다.[3] 1980년, 오미네 산과 오다이가하라 산 지역 36000ha가 유네스코 인간 및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4] 2004년에는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5]

1984년 오미네산 사찰 해체 수리 중 외진 주변 발굴 조사에서 황금불 2체가 발견되어 산악 종교사상 대발견으로 이어졌다. 오미네산은 엔노교자를 개조로 하는 수험도의 근본 도장으로 여겨지며, 나라현 산가케산은 현재도 여인 금제를 지키고 있다.

2. 1. 고대

8세기에 엔노교자가 슈겐도를 위한 거점으로 오미네 산의 사찰을 설립했다.[1] 슈겐도는 "수행과 시험의 길"을 의미하며, 용기와 헌신의 어렵고 엄격한 의례적 시험인 ''슈교''를 통해 경험적 형태로 영적 힘을 스스로 실현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2]

요시노에서 구마노에 이르는 오미네 오쿠가케도는 예로부터의 자연 신앙과 혼연일체가 된 중국에서 건너온 신선 사상이나 도교, 불교의 수행을 위해 후지와라쿄나 헤이조쿄에서 이곳을 방문한 승려(수험자)에 의해 개척되었으며, 아스카 시대 말엽 몬무 천황 시기에 엔노교자에 의해 개산되었다.[19]

2. 2. 중세

오미네 산의 사찰은 8세기에 엔노교자가 슈겐도를 위한 거처로 설립되었다.[1] 슈겐도는 문자 그대로 "수행과 시험의 길"을 의미하며, 용기와 헌신의 어렵고 엄격한 의례적 시험인 ''슈교''를 통해 경험적 형태로 영적 힘의 자기 실현을 기반으로 한다.[2]

조큐 연간(1040년 ~ 1044년)에는 수험자(기에이, 쵸엔)에 의해 구마노에서 요시노까지의 오미네 오쿠가케도가 체계화되었다. 산복이 오미네에서 수행하는 것을 "봉(峰)입(入り)", "입봉(入峯)"이라고 하며, 구마노에서 요시노로 나가는 것을 "순봉(順峯)", 요시노에서 구마노까지 참배하는 것을 "역봉(逆峯)"이라고 부른다. 무로마치 시대 이후, 교토 등에 가까운 요시노에서 입산하는 역봉이 많아졌다.[20]

2. 3. 근대

1872년 메이지 시대, 제국 정부는 요괴유령과 같은 민간 설화 속 존재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후지산과 오미네 산의 모든 의례와 같은 성스러운 산에 대한 성별 금지령을 포함한 모든 "미신적 관행"을 금지했다.[1] 이 기간 동안 산은 폐쇄되었고, 슈겐도 수행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5년 일본 문화법이 이 칙령을 폐지하면서 산은 다시 개방되었다. 슈겐도 수행자들은 재빨리 산을 되찾고 전통을 복원했다.

1964년, 산악인이자 작가인 후카다 규야는 오미네 산을 일본 백 명산 목록 중 91번째로 선정했다. 후카다가 명산 100개를 선정하는 데 사용한 세 가지 기준은 물리적 장엄함, 일본에 대한 역사적, 영적 중요성, 그리고 독창성이었는데, 이는 독특한 형태, 현상 또는 사건과 관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3] 1980년, 오미네 산과 오다이가하라 산 지역의 36000ha 면적이 유네스코 인간 및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4]

2004년에는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5]

2. 4. 현대

1872년 메이지 시대에 제국 정부는 요괴유령 같은 민간 설화 속 존재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후지산과 오미네 산의 모든 의례처럼 성스러운 산에 대한 성별 금지령을 포함한 모든 "미신적 관행"을 금지했다.[1] 이 기간 동안 산은 폐쇄되었고, 슈겐도 수행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5년 일본 문화법이 이 칙령을 폐지하면서 산은 다시 개방되었다. 슈겐도 수행자들은 재빨리 산을 되찾고 전통을 복원했다.

1964년, 산악인이자 작가인 후카다 규야는 오미네 산을 일본 백 명산 목록 중 91번째로 선정했다. 후카다가 명산 100개를 선정하는 데 사용한 세 가지 기준은 물리적 장엄함, 일본에 대한 역사적, 영적 중요성, 그리고 독창성이었는데, 이는 독특한 형태, 현상 또는 사건과 관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3] 1980년, 오미네 산과 오다이가하라 산 지역의 36000ha 면적이 유네스코 인간 및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4]

2004년에는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5]

3. 여인금제(女人禁制)

여성 등반 금지를 알리는 표지판


오미네산은 1,300년 동안 남성만 출입이 허용된 성스러운 산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산의 산조가타케(山上ヶ岳) 봉우리로 향하는 주 등산로에는 "여기부터 [여성은] 출입 금지 구역" (從是女人結界)이라고 적힌 4m 높이의 돌기둥과 "여성 출입 금지 구역 문" (女人結界門)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3.3m 높이의 쇠못이 박힌 나무 문이 있다. 문과 돌기둥 앞에는 약 1.8m 높이, 0.9m 폭의 표지판이 영어와 일본어로 " '여성 출입 금지': 종교적 전통에 따라 이 신성한 오미네산(Ominesan)에서는 어떠한 여성도 이 문을 넘어 등반하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적혀 있다.[6]

이러한 표지들은 일본에서 널리 퍼져 있는, 종교에 기반한 여성 금기라는 문화 현상을 보여준다.[7] 1872년 메이지 정부가 여성에게 산, 신사, 사찰 토지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허용하면서 대부분의 영토 제한이 해제되었지만, 오미네산과 같이 강력한 불교 사찰이 통제하는 일본의 많은 산에서 성별 배타적 관행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정된 남성 전용 구역 (''nyonin kinsei''; ''nyonin kekkai'')의 기원과 초기 발달은 종교적 이야기, 역사적, 물질적 기록, 그리고 현재의 관행 간의 불일치로 인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존하는 문헌 기록에 따르면, 히에이산고야산과 같은 지역의 독신 남성 불교 수행자 공동체는 10세기경부터 배제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8]

여성과 부정한 존재 또는 오염된 존재 사이의 연관성은 남성 신봉자들과 신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순수한 공간에서 여성을 영구적으로 몰아내기 위한 공간적 제한이 강화되면서 더욱 강해졌다.[9] 여성 배제의 현상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리고 상당 부분 불교적이고 kami와 관련된 여성 생리학에 대한 견해, 즉 본질적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광범위한 합의가 있다. 다만, 학자들은 일시적인 회피가 어떻게 영구적인 금지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경로에 대해 논쟁한다.[10]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아시아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에드윈 번바움(Edwin Bernbaum)은 오미네산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여성들을 금지한 이유가 그들이 수행하는 고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https://unesdoc.unesco.org/ark:/48223/pf0000243819] 1960년 TIME 기사는 번바움의 생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장한다.[11]

> 75세의 승려 가이교쿠 오카다(Kaigyoku Okada)는 "지나가는 게이샤들 틈에서 남자가 부처님을 묵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산의 고독을 추구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자들이 우리 산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고, 아마도 남자 친구들과 함께일 것입니다. 만약 절벽에서 수행하는 제자 중 한 명이 젊은 커플을 보게 된다면, 균형을 잃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산의 승려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여자는 500번의 환생으로도 죄를 씻을 수 없는 재앙의 근원이다"라는 말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금지 조치는 여러 번 이의가 제기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12] 지지자들은 성적 분리가 성차별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13] 또한 이 금지 조치가 1,300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14] 2004년 유네스코가 오미네산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금지 조치에 대한 비판가들에게 성별 금지 조치에 대한 승인을 부여한 것으로 여겨졌다.[15][16] 그리스의 아토스 산은 여성뿐만 아니라 암컷 동물에게도 적용되는 유사한 여성 금기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1929년에는 이미 여성이 등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한다.[21]

3. 1. 개요

오미네산(大峯山)은 나라현 요시노군 덴카와촌에 있는 표고 1,719m의 산으로, 일본 300 명산 중 하나이다.

이 일대는 예로부터 수험도의 수행 장소로, 야마부시(山伏)들이 수행하던 곳이었다. 오미네산은 단일 봉우리가 아니라 요시노 산에서 구마노까지 이어지는 긴 산맥 전체를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산조가타케(山上ヶ岳, 옛 이름은 금봉산) 정상 부근에는 수험도의 근본 도장인 오미네산지(大峯山寺) 산조 자오당(山上蔵王堂)이 있다. 산 전체가 성역으로 여겨져 현재까지도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여인 금제(女人禁制)"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6] 산조가타케로 이어지는 등산로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큰 문(여인 결계문)이 있고, 13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을 지켜달라는 내용의 간판이 설치되어 있다.[14] 이러한 표지들은 일본에서 널리 퍼져 있는 종교에 기반한 여성 금기 문화를 보여준다.[7]

1872년 메이지 정부가 여성에게 산, 신사, 사찰 토지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허용하면서 대부분의 영토 제한이 해제되었지만,[8] 오미네산과 같이 강력한 불교 사찰이 통제하는 일본의 많은 산에서는 성별 배타적 관행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정된 남성 전용 구역(''nyonin kinsei]''; ''nyonin kekkai'')의 기원과 초기 발달은 종교적 이야기, 역사적, 물질적 기록, 그리고 현재의 관행 간의 불일치로 인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존하는 문헌 기록에 따르면, 히에이산(Mt. Hiei)과 고야산(Mt. Kōya)과 같은 지역의 독신 남성 불교 수행자 공동체는 10세기경부터 배제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8]

남성 신봉자들과 신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순수한 공간에서 여성을 영구적으로 몰아내기 위한 공간적 제한이 강화되면서, 여성과 부정한 존재 또는 오염된 존재 사이의 연관성이 더욱 강해졌다.[9] 학자들은 일시적인 회피가 어떻게 영구적인 금지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경로에 대해 논쟁하지만, 여성 배제의 현상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불교와 kami와 관련된 여성 생리학에 대한 견해, 즉 본질적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광범위한 합의를 보인다.[10]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아시아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에드윈 번바움(Edwin Bernbaum)은 오미네산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여성들을 금지한 이유가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https://unesdoc.unesco.org/ark:/48223/pf0000243819] 1960년 TIME 기사는 번바움의 생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장한다.[11]

> 75세의 승려 가이교쿠 오카다(Kaigyoku Okada)는 "지나가는 게이샤들 틈에서 남자가 부처님을 묵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산의 고독을 추구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자들이 우리 산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고, 아마도 남자 친구들과 함께일 것입니다. 만약 절벽에서 수행하는 제자 중 한 명이 젊은 커플을 보게 된다면, 균형을 잃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산의 승려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여자는 500번의 환생으로도 죄를 씻을 수 없는 재앙의 근원이다"라는 말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금지 조치는 여러 번 이의가 제기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12] 지지자들은 성적 분리가 성차별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13]

1007년 (간코 4년) 8월,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오미네산 정상인 산조가타케에 자필 묘법연화경 등 15권을 구리 함에 넣어 매경(埋経)했다. 이를 계기로 귀족들의 오미네 등배와 매경이 성행했다. 미치나가는 1011년 (간코 8년)에 오타케 정진을 시작했지만, 촉예 (쇼쿠에)에 의해 오미네산 참배를 중지했다. 미치나가의 매경은 출토되었으며, 오미네 참배 기록을 포함한 일기 『어당관백기』도 전해지고 있다. 후지와라노 요리미치, 후지와라노 모로미치도 등산했으며, 모로미치는 일기 『후니조모로미치기』에 등배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산조가타케 기슭에는 몬젠마치(門前町)로서 도우가와 온천 마을이 있으며, 참배객을 위한 여관이 늘어서 있다. 도우가와에서 오미네 대교까지는 도로(나라현도 21호 오미네산 공원선)가 정비되어 있고, 바로 옆의 여인 결계문에서 산 정상까지 참배길이 설치되어 있지만, 쇠사슬 구간을 오르는 길고 험한 산길이 이어진다.

이나무라가다케(稲村ヶ岳)는 나라현 요시노군 덴카와촌에 위치한 해발 1,726m의 산이다. 다이니치산과 이나무라가다케의 2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정상에는 이나무라가다케 산장이 있다. 아고산 식물이 풍부하다. 오미네산에서는 여인 금제가 유지되고 있지만, 이나무라가다케에서는 여성 신자들을 위한 수행 장소로 1960년 (쇼와 35년)부터 개방되어 "여인 오미네"라고도 불린다.

3. 2. 기원과 논란



오미네산은 1,300년 동안 남성만 출입이 허용된 성스러운 산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산의 산조가타케(山上ヶ岳) 봉우리로 향하는 주 등산로에는 "여기부터 [여성은] 출입 금지 구역" (從是女人結界)이라고 적힌 4m 높이의 돌기둥이 서 있다. 이와 함께 "여성 출입 금지 구역 문" (女人結界門)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3.3m 높이의 쇠못이 박힌 나무 문이 있다. 문과 돌기둥 앞에는 약 1.8m 높이, 0.9m 폭의 표지판이 세워져 영어와 일본어로 " '여성 출입 금지': 종교적 전통에 따라 이 신성한 오미네산(Ominesan)에서는 어떠한 여성도 이 문을 넘어 등반하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적혀 있다.[6]

이러한 표지들은 종교에 기반한 여성 금기, 즉 일본에서 널리 퍼져 있는 문화 현상을 보여준다.[7] 1872년 메이지 정부가 여성에게 산 신사 및 사찰 토지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허용하면서 대부분의 영토 제한이 해제되었지만, 오미네산과 같이 강력한 불교 사찰이 통제하는 일본의 많은 산에서 성별 배타적 관행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정된 남성 전용 구역 (''nyonin kinsei''; ''nyonin kekkai'')의 기원과 초기 발달은 종교적 이야기, 역사적, 물질적 기록, 그리고 현재의 관행 간의 불일치로 인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존하는 문헌 기록에 따르면, 히에이산고야산과 같은 지역의 독신 남성 불교 수행자 공동체는 10세기경부터 배제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8]

남성 신봉자들과 신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순수한 공간에서 여성을 영구적으로 몰아내기 위한 공간적 제한이 강화되면서 여성과 부정한 존재 또는 오염된 존재 사이의 연관성이 더욱 강해졌다.[9] 학자들은 일시적인 회피가 어떻게 영구적인 금지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경로에 대해 논쟁하지만, 여성 배제의 현상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리고 상당 부분 불교적이고 kami와 관련된 여성 생리학에 대한 견해, 즉 본질적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광범위한 합의를 보인다.[10]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아시아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 에드윈 번바움(Edwin Bernbaum)은 오미네산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여성들을 금지한 이유가 그들이 수행하는 고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960년 TIME 기사는 번바움의 생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장한다.[11]

> 75세의 승려 가이교쿠 오카다(Kaigyoku Okada)는 "지나가는 게이샤들 틈에서 남자가 부처님을 묵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우리가 산의 고독을 추구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자들이 우리 산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고, 아마도 남자 친구들과 함께일 것입니다. 만약 절벽에서 수행하는 제자 중 한 명이 젊은 커플을 보게 된다면, 균형을 잃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산의 승려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여자는 500번의 환생으로도 죄를 씻을 수 없는 재앙의 근원이다"라는 말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금지 조치는 여러 번 이의가 제기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12] 지지자들은 성적 분리가 성차별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13] 지지자들은 또한 이 금지 조치가 1,300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14] 2004년 유네스코가 오미네산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금지 조치에 대한 비판가들에게 성별 금지 조치에 대한 승인을 부여한 것으로 여겨졌다.[15][16] 그리스의 아토스 산은 여성뿐만 아니라 암컷 동물에게도 적용되는 유사한 여성 금기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3. 3. 현대적 상황

오미네산은 1,300년 동안 남성만 출입이 허용된 성스러운 산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산조가타케(山上ヶ岳) 봉우리로 향하는 주 등산로에는 "여기부터 [여성은] 출입 금지 구역" (從是女人結界)이라고 적힌 4m 높이의 돌기둥과 "여성 출입 금지 구역 문" (女人結界門)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3.3m 높이의 쇠못이 박힌 나무 문이 있다. 문과 돌기둥 앞에는 약 1.8m 높이, 0.9m 폭의 표지판이 세워져 영어와 일본어로 " '여성 출입 금지': 종교적 전통에 따라 이 신성한 오미네산(Ominesan)에서는 어떠한 여성도 이 문을 넘어 등반하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적혀 있다.[6]

이러한 표지들은 일본에서 널리 퍼져 있는, 종교에 기반한 여성 금기라는 문화 현상을 보여준다.[7] 1872년 메이지 정부가 여성에게 산 신사 및 사찰 토지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허용하면서 대부분의 영토 제한이 해제되었지만, 오미네산과 같이 강력한 불교 사찰이 통제하는 일본의 많은 산에서 성별 배타적 관행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 금지 조치는 여러 번 이의가 제기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12] 지지자들은 성적 분리가 성차별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13] 또한 이 금지 조치가 1,300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14] 2004년 유네스코가 오미네산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금지 조치에 대한 비판가들에게 성별 금지 조치에 대한 승인을 부여한 것으로 여겨졌다.[15][16] 그러나 1929년에는 이미 여성이 등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한다.[21]

4. 수행(修行)

오미네산에는 세 가지 수행이 있는데, 각각 도전자의 정신력을 강화한다고 한다. 시험을 치르고 싶지 않은 등산객은 쉽게 우회할 수 있다.


  • '''뵤도 이와:''' 평등의 바위는 특별 요청 시에만 이용할 수 있다. 깊은 절벽을 내려다보는 암석 탑이다. 벽에서 튀어나온 몇 개의 돌출부 덕분에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다.
  • '''카네카케 이와:''' 매달린 바위, 또는 게 바위라고도 불리는데, 올라갈 때 취해야 하는 자세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약 약 9.14m 높이의 절벽으로, 대부분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꼭대기에는 돌출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오르려면 체인에 매달려 오버행 위로 몸을 흔들어야 한다.
  • '''니시노 노조키:''' 서쪽에서 바라본 통찰은 높이가 약 60m에 달하는 가파른 절벽이다. 초심자는 머리부터 절벽 아래로 매달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회적, 종교적 법률을 준수할 것을 맹세해야 한다.


요시노에서 구마노에 이르는 오미네 오쿠가케도는, 예로부터의 자연 신앙과 혼연일체가 된 중국에서 건너온 신선 사상이나 도교, 불교의 수행을 위해 후지와라쿄나 헤이조쿄에서 이곳을 방문한 승려(수험자)에 의해 개척된 데서 시작되어, 아스카 시대 말엽의 문무천황 시기에 엔노교자에 의해 개산되었다[19]. 구마노 수험이 세력을 넓히는 가운데 조큐 연간(1040년 - 1044년)에 수험자(기에이, 쵸엔)에 의해 구마노에서 요시노까지의 오미네 오쿠가케도가 체계화되었다. 산복이 오미네에서 수행하는 것을 "봉(峰)입(入り)", "입봉(入峯)"이라고 하며, 구마노에서 요시노로 나가는 것을 "순봉(順峯)", 요시노에서 구마노까지 참배하는 것을 "역봉(逆峯)"이라고 부른다. 무로마치 시대 이후, 교토 등에 가까운 요시노에서 입산하는 역봉이 많아졌다[20]

오미네산은 엔노교자를 개조로 하는 수험도의 근본 도장으로 여겨지며, 나라현의 산가케산은 현재도 여인 금제를 지키고 있다.

5. 주요 봉우리


  • 다이후겐 산
  • 교자이가에리 산
  • 미센 산
  • 하치쿄 산
  • 샤카가 산
  • 타마키 산

6. 산장

오미네산에는 유인 산장과 무인 대피소가 있다. 수원이 멀거나 화장실이 없는 곳도 많으며, 새 산장과 노후된 산장이 혼재한다. 가을에는 수원이 마르거나 겨울에는 폐쇄되기도 한다. 수원까지 내리막길 기준 소요 시간이므로, 오르막길은 1.5배 정도 더 걸릴 수 있다.

오미네산사 숙방(오미네산 호지인 숙방)

6. 1. 유인 산장


  • 미센 산장


미센 산정 바로 아래에 있다. 1990년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이 숙박했을 때 새롭게 단장되었다. 수용 인원은 200명이다.

  • 이나무라가타케 산장


이나무라가타케와 산조가타케의 분기점인 산조 쓰지에 있다. 시즌 중 토요일, 일요일에만 영업한다. 수용 인원은 30명이다.

  • 오미네산 산상의 숙방


오미네산지를 관리하는 5개의 사찰 숙방이 산정 바로 아래에 있다. 원래는 신자를 위한 숙박 시설이지만, 누구라도 이용 가능하다. 다만, 여자 금제 구역에 있기 때문에 숙박은 남성만 가능하다. 각 숙방은 150~200명 정도 수용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오미네산지 항목을 참조하라.

  • 젠키 숙방


"고나카보"가 있다. 오미네 오쿠가케 길의 종점 숙박소로서, 또는 샤카가의 등산 기지로서 이용된다.

6. 2. 무인 대피소

신구 야마비코 그룹이 관리하는 남쪽 오쿠가케의 대피 산장 3곳은 1인 1박당 2000JPY을 산장 내 납부함에 넣어야 한다.[1]

산장 이름위치특징비고
교센야도 산장석가봉 남쪽 교센다케 남쪽화장실, 자취장, 장작 난로, 실내 LED 조명, 휴대 전화 충전기관리인(시기별), 숙박만 가능, 30명 수용, 물은 도보 12분 거리
헤이지야도 산장전법륜봉 북쪽1991년 개축, 화장실, 물은 도보 5분(여름철 마르기 쉬움)10명 수용
지쿄야도 산장열반봉 남쪽2015년 개조, 화장실(산장 바닥 아래), 임도 옆(자동차 접근 가능), 판자+카펫관리인(시기별), 30명 수용, 물은 임도 따라 도보 5분



북쪽 오쿠가케의 대피 산장은 다음과 같다.

산장 이름위치특징비고
심센야도 대피 산장석가봉 남쪽2016년 개수, 실내 LED 조명, 휴대 전화 충전기, 수원(향정수, 200m 거리)8명 수용, 화장실 없음,
심센야도 대피 산장
요시야도(요시가야도) 대피 산장미산-석가봉 사이2층 통나무집풍, 물(도보 5분)20명 수용, 화장실 없음,
요시야도 대피 산장
이치노타와 대피 산장 (철거)미산-행자환봉 중간2014년 11월 해체 (황폐화)-
행자환 대피 산장행자환봉 남쪽 안부2003년 개축, 2층 통나무집풍, 화장실, 수원, 자취장, 담요30명 수용, 구 산장(1970년대까지 영업),
행자환 대피 산장
코자사야도산상가봉 남쪽수원은 산장 앞5명 수용, 화장실 없음
니조야도(백정차옥 산장)대천정봉 북쪽, 임도에서 5분1995년 건축 통나무집, 간이 화장실, 물(도보 5분)10명 수용
아시즈리야도사촌암봉 남쪽흙바닥, 좁은 걸상-



아마가와 카와아이 루트의 대피 산장은 다음과 같다.

산장 이름위치특징
늑대 평야 대피 산장미산 북쪽, 늑대 평야1999년 개축, 2층 통나무집풍, 물(옆 강)
토치오츠지 대피 산장늑대 평야-등산로 입구 사이노후화 (문, 바닥 없음, 흙바닥)


7. 사건

1945년 6월 1일, 태평양 전쟁오사카 대공습에서 귀환하던 미군의 B-29가 일본군기의 공격을 받아 오미네산 중턱에 추락했다[22]. 탑승원 11명 중 4명은 낙하산으로 탈출하여 포로가 되었고, 오사카 헌병대 사령부로 연행되어 옥음방송 직후 처형되었다[22]. 전후 미군 조사에서는 2명은 사살, 1명은 독살, 1명은 사인 불명으로 보고되었다[23]. 덴카와 촌립 자료관에는 2006년에 회수된 B-29의 엔진이 전시되어 있다.

1999년, 승려 시오누마 료준이 '오미네 천일 회봉행'을 달성했다[24]. 이 수행은 나라현 요시노 산에 있는 긴푸센지 자오도에서 24km 떨어진 오미네산 정상에 있는 다이센지 본당까지, 왕복 48km, 고저차 1355m의 산길을 1000일 동안 계속 걷는 것이다[24]. 오미네산 1300년 역사에서 이를 달성한 사람은 2명뿐이다[25].

8. 신앙 및 문화

오미네 산의 사찰은 8세기에 엔노교자가 세운 종교인 슈겐도의 수행 장소로 설립되었다.[1] 슈겐도는 "수행과 시험의 길"을 의미하며, ''슈교''라는 어렵고 엄격한 의례적 시험을 통해 영적인 힘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2]

메이지 시대인 1872년, 정부는 요괴유령 같은 민간 설화 속 존재에 대한 믿음, 후지산과 오미네 산 등 성스러운 산에 대한 성별 금지령을 포함한 모든 "미신적 관행"을 금지했다. 이 시기 동안 산은 폐쇄되었고, 슈겐도 수행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5년 일본 문화법이 이 칙령을 폐지하면서 산은 다시 개방되었고, 슈겐도 수행자들은 전통을 복원했다.

1964년, 산악인이자 작가인 후카다 규야는 오미네 산을 일본 백 명산 중 하나로 선정했다.[3] 1980년에는 오미네 산과 오다이가하라 산 지역이 유네스코 인간 및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고,[4] 2004년에는 ''"기이 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5]

오미네산은 1,300년 동안 남성만 출입이 허용된 성스러운 산이었다. 산의 산조가타케 봉우리로 향하는 주 등산로에는 "여기부터 [여성은] 출입 금지 구역" (ja)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다.[6] 이러한 표지들은 일본에서 널리 퍼져 있는 종교에 기반한 여성 금기 현상을 보여준다.[7] 1872년 메이지 정부가 여성에게 산 신사 및 사찰 토지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허용하면서 대부분의 영토 제한이 해제되었지만, 오미네산과 같이 강력한 불교 사찰이 통제하는 일본의 많은 산에서 성별 배타적 관행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여성 배제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여성과 부정적인 존재 사이의 연관성이 강화되면서 여성의 생리가 본질적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불교적, kami와 관련된 견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광범위한 합의가 있다.[9][10]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에드윈 번바움(Edwin Bernbaum)은 오미네산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여성들을 금지한 이유가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1]

이 금지 조치는 여러 번 이의가 제기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12] 지지자들은 성적 분리가 성차별과 같지 않으며,[13] 이 금지 조치가 1,300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14] 2004년 유네스코가 오미네산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금지 조치에 대한 승인으로 여겨졌다.[15][16]

요시노에서 구마노에 이르는 오미네 오쿠가케도는 아스카 시대 말엽 엔노교자에 의해 개산되었다.[19] 구마노 수험이 세력을 넓히는 가운데 조큐 연간(1040년 - 1044년)에 오미네 오쿠가케도가 체계화되었다. 오미네에서 수행하는 것을 "봉입", "입봉"이라고 하며, 구마노에서 요시노로 가는 것을 "순봉", 요시노에서 구마노까지 참배하는 것을 "역봉"이라고 부른다. 무로마치 시대 이후에는 교토 등에 가까운 요시노에서 입산하는 역봉이 많아졌다.[20]

오미네산은 엔노교자를 개조로 하는 수험도의 근본 도장으로 여겨지며, 나라현의 산가케산은 현재도 여인 금제를 지키고 있다. 오미네산 산록의 덴카와촌에는 일본 3대 변재천 중 하나인 텐카와 다이벤자이텐사가 있으며, 미센 산정에는 그 안궁이 있다.

1984년 오미네산 사찰 해체 수리 중 황금불 2체가 발견되어 산악 종교사상 대발견으로 여겨졌다.

9. 갤러리



오미네 산지 사찰의 정문


오미네 산지 사찰의 본당


오미네 산지 사찰로 가는 길 입구


오미네 산지 사찰로 가는 길의 종교적 물건


산조산 정상


산조산의 돌담


류센지 사찰의 본당

참조

[1] 웹사이트 “Yamabushi Monks of the Orient" http://members.shaw.[...] 2005-03-17
[2] 웹사이트 “Introduction to Shugendo" http://members.shaw.[...] 2007-05-09
[3] 웹사이트 “Making a Mountain of mountains" http://www.ata-divis[...] 2007-09-28
[4] 웹사이트 Biosphere Reserve Information - Mount Odaigahara and Mount Omine http://www.unesco.or[...] UNESCO 2011-04-29
[5] 웹사이트 “Sacred Sites and Pilgrimage Routes in the Kii Mountain Range" https://whc.unesco.o[...] UNESCO World Heritage 2019-12-22
[6] 서적 Nyonin kinsei Yoshikawa Kōbunkan, Kaihō Shuppansha 2002
[7] 서적 Nyonin kinsei Yoshikawa Kōbunkan, Kaihō Shuppansha 2002
[8] 문서 Ushiyama 2007; Katsuura 2009
[9] 문서 Miyazaki 2015, p. 60
[10] 문서 Suzuki 2017; Katsuura 2009; Tonomura 2007
[11] 간행물 Women on the Mountain 1960-07-18
[12] 학술 A Mountain Set Apart: Female Exclusion, Buddhism, and Tradition at Modern Ōminesan, Japan https://escholarship[...] UCLA 2015
[13] 뉴스 Some may call it discrimination, but in Japan there is a long tradition that some mountains are only for men and some mountains are only for women http://www.sfgate.co[...] 2022-07-08
[14] 뉴스 Peak's spiritual tradition raises hackles: No women allowed on Japan's holy Mount Omine http://www.sfgate.co[...] San Francisco Chronicle 2011-05-25
[15] 웹사이트 A mountain pilgrimage for men only: tradition bars female climbers http://www.williams.[...] Williams University 2006-08-28
[16] 서적 World Cultural Heritage and women's exclusion from sacred sites in Japan https://www.taylorfr[...] Routledge 2020-04-02
[17] 웹사이트 吉野・大峯 和歌山県世界遺産センター 2018-01-03
[18] 뉴스 エコパーク拡張 大台町全体に 活性化へ まず地元愛 中日新聞 2016-04-03
[19] 서적 大峰山・大台ヶ原山 -自然のおいたちと人々のいとなみ- 築地書館 2009
[20] 서적 わが内なる悪魔を降伏せよ 修験道・男の世界 山手書房 1980
[21] 서적 少年少女伝記文学館 第3巻 源頼朝 1989
[22] 웹사이트 天川墜落のB29 機密記録…米ジャーナリスト調査 https://web.archive.[...] 2022-03-13
[23] 웹사이트 霊峰に墜ちたB-29 https://www.nhk.jp/p[...] 2022-03-13
[24] 웹사이트 塩沼亮潤大阿闍梨 福聚山慈眼寺 https://www.jigenji-[...] 2022-03-03
[25] 웹사이트 1300年に2人だけ!千日回峰行を満行した塩沼亮潤大阿闍梨が得た学びとは? https://gendai.media[...]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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