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8세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8세기는 동아시아, 서아시아 및 북아프리카, 유럽,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다양한 사건과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에서 헤이조쿄와 헤이안쿄로의 천도, 발해의 전성기, 통일신라의 불교 문화 번성 등이 있었고, 서아시아와 유럽에서는 이슬람 세력의 확장과 콘스탄티노플 포위, 성상 숭배 금지령, 투르 푸아티에 전투, 프랑크 왕국의 교황령 기증 등이 있었다. 남아시아에서는 팔라 왕조의 성립과 불교 보호,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데칸 고원 지배, 해상 습격 등이 있었으며, 동남아시아에서는 샤일렌드라 왕조의 보로부두르 사원 건립, 스리비자야 왕국의 외교 활동 등이 있었다. 또한, 제지술의 전파, 중쟁기 사용, 말 목걸이와 말굽의 보급, 시계장치 기술 발전, 하프의 등장 등 문화와 기술 분야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날짜 - 12세기
    12세기는 서기 1101년부터 1200년까지의 기간으로, 유럽, 아시아, 중동 등지에서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잉글랜드의 알턴 조약 체결, 십자군 전쟁, 12세기 르네상스, 북송과 남송의 교체, 가마쿠라 막부 성립 등의 주요 사건이 발생했다.
  • 날짜 - 14세기
    14세기는 유럽과 아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변동, 즉 흑사병의 유행, 백년 전쟁, 명나라와 조선의 건국, 티무르 제국의 부상, 일본의 남북조 시대 등의 주요 사건들을 포함하며, 몽골 제국의 쇠퇴와 함께 새로운 지역 강국들이 등장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정치 지형을 재편하고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겪은 시기이다.
8세기
개요
기간701년 ~ 800년
세기8세기
주요 사건
정치 및 사회711년: 이슬람 군대가 서고트 왕국을 침공하여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점령함.
725년: 마야 문명의 붕괴가 시작됨.
750년: 아바스 왕조가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칼리파가 됨.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 군대가 당나라 군대를 격파함. 이 전투로 인해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이 확대됨.
754년: 피핀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됨.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상 숭배가 다시 허용됨.
793년: 린디스판 수도원 약탈을 시작으로 바이킹유럽 침략이 시작됨.
문화 및 예술8세기 초: 인도에서 칼룸갈라이 자이나교 석굴이 조성됨.
8세기: 수단의 파라스 대성당이 건설됨.
8세기: 마쿠리아에서 타라 여신상이 만들어짐.
8세기: 이소도가 중국에서 활동함.
기타성 베네딕토 규칙이 유럽 전역의 수도원에서 널리 채택됨.
지도자
유럽카롤루스 마르텔 (프랑크 왕국)
피핀 3세 (프랑크 왕국)
카를 대제 (프랑크 왕국)
아시아압드 알 말리크 (우마이야 왕조)
히샴 이븐 압드 알 말리크 (우마이야 왕조)
당 현종 (당나라)
종교요한네스 다마스쿠스 (기독교)
이맘 자파르 알 사디크 (시아 이슬람)
발명 및 발견
과학 기술종이 제조 기술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이슬람 세계에 전파됨.
기타두 황제 문제가 발생함.

2. 동아시아

8세기는 동아시아 각국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중국의 당나라는 초기 번영을 누렸으나 중반 이후 큰 혼란을 겪었고, 일본은 율령제 국가 체제를 공고히 하며 나라 시대를 거쳐 헤이안 시대로 이행했다. 발해는 영토를 확장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신라는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701년 일본에서는 다이호 율령이 완성되어 율령제 국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702년에는 약 40년 만에 견당사가 파견되어 국호를 ''에서 '일본'으로 변경한 것을 승인받고자 했다.[1] 710년 겐메이 천황헤이조쿄(현재의 나라)로 천도하여 나라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 712년에는 오노 야스마로가 『고지키』를 편찬했고, 720년에는 도네리 친왕 등이 『일본서기』를 완성하여 국가의 역사를 기록했다.

당나라에서는 705년 측천무후가 퇴위하고 중종이 복위했으며, 712년 현종이 즉위하여 '개원의 치'로 불리는 태평성대를 열었다. 수도 장안은 국제적인 대도시로 번성했으며, 713년에는 각국에 『풍토기』 편찬을 명하고, 714년 광저우에 시박사를 설치하여 해상 무역을 관리했다. 725년 현종은 태산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하여 황제의 권위를 과시했다. 문화적으로도 이백, 두보, 왕유 등 뛰어난 시인들이 활동했으며, 오도현과 같은 화가들이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당 현종의 치세 후반기에는 이임보, 양국충 등 권신들의 전횡과 양귀비를 둘러싼 사치로 점차 국정이 문란해졌다. 751년에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탈라스 전투에서 압바스 왕조 군대에 패배하여 서역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제지술이 서방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755년 절도사 안록산사사명 등이 안사의 난을 일으켜 763년까지 8년간 당나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난 중에 현종은 으로 피난했고, 수도 장안과 뤄양이 반란군에게 함락되었다. 763년에는 토번 군대가 일시적으로 장안을 점령하기도 했다. 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는 절도사(번진) 세력이 강해져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었고, 780년에는 조용조 세제를 폐지하고 양세법을 도입하는 등 큰 변화를 겪었다.

일본에서는 쇼무 천황 재위기(724년~749년)에 불교가 크게 융성하여 741년 국분사 건립 조서, 743년 도다이지 루샤나불 건립 조서가 내려졌다. 752년에는 도다이지 대불 개안공양이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754년에는 당나라 승려 간진이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일본에 도착하여 율종을 전하고 도다이지계단을 설치했다. 759년에는 간진에 의해 도쇼다이지가 창건되었다. 한편, 후지와라씨의 세력 확장 과정에서 나가야 왕의 변(729), 후지와라 히로츠구의 난(740), 다치바나노 나라마로의 난(757), 후지와라 나카마로의 난(764) 등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764년 난을 진압한 고켄 천황은 쇼토쿠 천황으로 중조하였고, 승려 도쿄태정대신 선사, 법왕의 지위에 오르며 권력을 장악했다. 770년 쇼토쿠 천황이 사망하자 고닌 천황이 즉위하며 도쿄는 실각했다. 784년 간무 천황나가오카쿄로 천도했으나, 785년 천도 책임자 후지와라노 타네츠구 암살 사건 등으로 인해 794년 다시 헤이안쿄(현재의 교토)로 수도를 옮겨 헤이안 시대를 열었다.

발해는 713년 국호를 '진'에서 '발해'로 변경했으며, 제3대 문왕 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당나라, 일본 등과 활발히 교류했다.

신라에서는 751년 재상 김대성의 발원으로 불국사석굴암이 창건되어 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승려 혜초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그 기록인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그 외 동아시아 주변 지역에서는 돌궐 제2제국745년 위구르에 의해 멸망했고, 위구르는 762년 마니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토번은 당나라의 혼란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여 763년 장안을 일시 점령하고 786년 둔황 지역을 장악하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 0. 1. 통일신라

722년경 신라의 승려 혜초인도를 순례하였다(727년까지).

2. 0. 2. 발해

발해의 제3대 왕인 대흠무(문왕)가 737년부터 793년까지 재위하였다. 문왕은 재위 기간 동안 율령 체제를 정비하고 수도를 상경 용천부로 옮기는 등 국가 체제를 강화하였다.

3. 서아시아 및 북아프리카

8세기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는 우마이야 왕조의 쇠퇴와 아바스 왕조의 흥기라는 큰 변화를 겪었다. 이슬람 세력은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반도까지 영향력을 확장했지만, 내부적인 갈등과 분열 또한 나타나기 시작했다.

711년, 우마이야 왕조의 장군 타리크 이븐 지야드베르베르인 중심의 군대를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서고트 왕국을 정복하고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장악했다. 이는 이슬람 세력의 유럽 진출의 중요한 시작점이 되었다. 타리크의 이름은 오늘날 지브롤터의 어원이 되었다. 한편, 동쪽에서는 715년까지 호라산 총독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이 마와라안나흐르(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을 정복하며 이슬람 세력권을 넓혔다. 같은 해, 다마스쿠스의 웅장한 우마이야 모스크를 건설한 칼리프 왈리드 1세가 사망했다.

우마이야 왕조의 확장은 717년부터 718년까지 이어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 동로마 제국의 레오 3세에게 저지당하며 한계에 부딪혔다. 또한 732년 프랑크 왕국과의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서유럽으로의 북진도 멈추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알 안달루스 총독 아브드 알 라흐만 알 가피키가 전사했다.

750년, 자브 강 전투에서 아바스 가문이 우마이야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하면서 아바스 왕조 시대가 열렸다. 초대 칼리프 아스사파는 우마이야 잔존 세력을 숙청하며 왕조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건국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부 살라마와 같은 인물들이 숙청되고 시아파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는 등 내부 갈등도 존재했다. 755년에는 아바스 혁명의 주역이었던 아부 무슬림마저 칼리프 알만수르에게 제거되었다.

751년에는 중앙아시아의 탈라스 강 유역에서 아바스 왕조 군대가 당나라고선지가 이끄는 군대를 물리쳤다(탈라스 전투). 이 전투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싼 중요한 충돌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757년 사마르칸트에는 이슬람 세계 최초의 제지 공장이 세워졌다.

우마이야 왕조 멸망 후, 왕족 중 한 명인 압드 알라흐만 1세는 이베리아반도로 피신하여 756년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우고 아미르를 칭했다. 이는 알안달루스 지역의 독자적인 발전과 함께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분열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슬람 지배 하의 스페인에서는 754년경 『754년의 모사라베 연대기』와 같은 기록이 남겨지기도 했다.

762년, 아바스 왕조의 제2대 칼리프 알만수르티그리스강 유역에 새로운 수도 바그다드를 건설했다. 원형 도시로 계획된 바그다드는 이후 '평화의 도시'로 불리며 이슬람 세계의 학문, 문화, 경제의 중심지로 크게 번영했다. 786년 즉위한 제5대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 시대에는 아바스 왕조의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며, 그의 궁정은 『천일야화』 이야기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 시기 이슬람 세계는 학문과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다. 아부 하니파(하나피 학파 창시자), 말리크 이븐 아나스(말리크 학파 창시자) 등이 활동하며 이슬람 법학의 기초를 다졌다. 시아파에서는 제6대 이맘 자파르 알 사디크(자파르 학파 창시자)가 중요한 인물이었으나, 그의 사후 765년 후계 문제로 12 이맘파와 이스마일파로 분열되었다. 또한, 아난 벤 다비드는 탈무드를 부정하고 성서 중심의 카라이파 유대교를 창시했다. 바스라의 여성 신비주의자 라비아 알 아다위야는 수피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이븐 이스하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기를 집대성했고, 이븐 알 무카파는 페르시아 문학을 아랍어로 번역했으며, 무함마드 알 파자리는 인도의 천문학 서적을 번역하여 이슬람 천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은 연금술과 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주요 인물

인물생몰년주요 활동 및 설명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669년 - 715년/716년우마이야 왕조의 장군, 호라산 총독, 마와라안나흐르 정복
왈리드 1세674년 - 715년우마이야 왕조 제6대 칼리프, 우마이야 모스크 건설
타리크 이븐 지야드689년 - 720년우마이야 왕조의 장군, 이베리아반도 정복, 지브롤터 어원
아브드 알 라흐만 알 가피키? - 732년우마이야 왕조의 장군, 알 안달루스 총독,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전사
아부 하니파699년경 - 767년이슬람 법학자, 하나피 학파 창시자
아부 무슬림700년경 - 755년아바스 혁명 지도자, 아바스 왕조 건국 공신, 알만수르에게 숙청됨
자파르 알 사디크702년 - 765년시아파 제6대 이맘, 자파르 학파 창시자
이븐 이스하크704년 - 761년/770년아바스 왕조 저술가, 『예언자의 생애』 저술
알만수르712년 - 775년아바스 왕조 제2대 칼리프, 바그다드 건설
말리크 이븐 아나스714년 - 796년이슬람 법학자, 말리크 학파 창시자, 『무와타』 저술
아난 벤 다비드715년경 - 795년유대교 철학자, 카라이파 창시자
라비아 알 아다위야717년경 - 801년바스라 출신 여성 신비주의자, 수피즘 선구자
알 할릴 이븐 아흐마드 알 파라히디718년 - 786년/791년아랍어 문헌학자, 아랍어 사전 편찬 및 정자법 확정
이븐 알 무카파721년 - 757년아바스 왕조 저술가, 페르시아 문학 번역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년? - 815년?아바스 왕조 철학자, 화학자
아스사파724년? - 754년아바스 왕조 초대 칼리프
압드 알라흐만 1세731년 - 788년후우마이야 왕조 초대 아미르,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음
아부 알 아타히야748년 - 828년아바스 왕조 시인
하룬 알라시드763년 - 809년아바스 왕조 제5대 칼리프, 아바스 왕조 최전성기
지야드 이븐 살리흐? - 752년아바스 왕조 장군, 탈라스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 격파
무칸나? - 783년페르시아 반란 지도자
무함마드 알 파자리? - 796년/806년천문학자, 인도 천문학서 번역 (『신드 힌드』)
로데릭687년 이후 - 712년서고트 왕국 마지막 국왕
펠라요? - 737년아스투리아스 왕국 건국자 (이슬람 세력에 저항)
엘리판두스718년경 - 802년톨레도 대주교, 그리스도 양자설 주창자 (이슬람 지배 하 기독교)
리에바나의 베아투스730년경 - 800년아스투리아스 왕국 수도원장, 『묵시록 주해』 저술 (이슬람 지배 하 기독교)


4. 유럽

8세기 유럽은 격동의 시기였다. 서쪽에서는 이베리아반도이슬람 세력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동쪽에서는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의 침공을 막아내는 한편 성상 파괴 논쟁으로 내부적인 변화를 겪었다. 한편, 프랑크 왕국은 카롤링거 왕조 아래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며 서유럽의 중심이 되었고, 북쪽에서는 바이킹 시대가 시작되었다.
주요 사건

5. 남아시아

8세기 남아시아에서는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가 있었고, 외부 세력의 침입과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세기 초반,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군대가 무함마드 이븐 알카심의 지휘 아래 북인도의 신드 지역을 침략했다(708년-711년[3]). 이후에도 아랍 세력의 인도 확장 시도가 있었으나, 712년부터 776년까지 이어진 인도에서의 칼리파 원정 과정에서 인도 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남인도에서는 기존 왕조들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팔라바 왕조의 나라심하바르만 2세는 728년경까지 통치하며 마하발리푸람에 해안 사원을 건립했다. 전기 찰루키아 왕조에서는 비크라마디티야 2세가 733년부터 744년까지 재위하며 파타다칼에 사원을 세웠다.

그러나 8세기 중반, 데칸 고원에서는 새로운 강자인 라슈트라쿠타 왕조가 등장했다. 753년, 단티두르가는 찰루키아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조를 세웠으며, 그의 뒤를 이은 크리슈나 1세(재위 756년-775년)는 엘로라 석굴에 웅장한 카일라사 사원을 건립하여 왕조의 위상을 높였다.

문화적으로는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며 발전했다.


  • 불교: 날란다 수도원의 승려 산티데바는 '보살도의 길잡이'(보디차리야바타라)를 저술하여 대승 불교 사상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많은 인도 승려들이 해외로 건너가 불교를 전파했다. 선무외는 당나라밀교를 전했으며(735년 사망), 샨타라크시타(787년경 사망), 카마라실라, 파드마삼바바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하고 닝마파의 기초를 닦았다. 프라즈나는 782년 장안에 도착하여 불경을 번역했다. 불교 설화인 자타카 이야기는 시리아어아랍어로 번역되어 칼릴라와 담나로 알려졌고, 고타마 붓다의 생애 이야기는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바르라암과 요사팟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 힌두교: 앞서 언급된 팔라바, 찰루키아,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왕들은 각기 마하발리푸람, 파타다칼, 엘로라 석굴 등에 힌두교 사원을 건립하며 힌두교 예술과 건축 발전에 기여했다.
  • 문학: 카슈미르에서는 재상이자 시인이었던 다모다라굽타가 풍속 서정시 『쿠타니마타』를 남겼다.


다음은 8세기 남아시아의 주요 인물과 업적이다.

인물활동 시기주요 업적관련 지역/종교
나라심하바르만 2세700년경 ~ 728년마하발리푸람 해안 사원 건립팔라바 왕조, 힌두교
비크라마디티야 2세733년 ~ 744년파타다칼 사원 건립전기 찰루키아 왕조, 힌두교
단티두르가753년 ~ 756년라슈트라쿠타 왕조 건국, 찰루키아 왕조 타도라슈트라쿠타 왕조
크리슈나 1세756년 ~ 775년엘로라 석굴의 카일라사 사원 건립라슈트라쿠타 왕조, 힌두교
선무외 (슈바카라심하)637년 ~ 735년중국 당나라밀교 전파인도 출신, 중국 활동, 불교 (밀교)
산티데바8세기보살도의 길잡이 저술인도 날란다, 불교
샨타라크시타? ~ 787년티베트에 불교 전파, 삼예 사원 건립인도, 티베트, 불교
카마라실라8세기티베트 삼예 사원 논쟁에서 승리인도, 티베트, 불교
파드마삼바바8세기 후반티베트에 불교 전파, 닝마파 시조인도, 티베트, 불교
프라즈나8세기 후반중국 장안에서 불경 번역인도, 중국, 불교
다모다라굽타8세기 후반풍속 서정시 『쿠타니마타』 저술카슈미르, 문학


6. 동남아시아

자바 섬에서는 716년 산자야가 왕위에 오르며 마타람 왕국의 역사가 시작되었고[4], 732년 찬갈 비문에 따르면 산자야 왕조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7] 힌두교를 기반으로 한 마타람 왕국752년 무렵 번성했다.[9] 한편, 수마트라 섬을 중심으로 한 해상 왕국 스리비자야는 718년 스리 인드라바르만 왕이 우마이야 칼리파조의 칼리프 우마르 빈 압둘 아지즈에게 편지를 보내 이슬람 세계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5]

760년경, 자바 섬에서는 실렌드라 왕조의 주도로 유명한 불교 유적인 보로부두르 사원 건설이 시작되었다.[10] 이 시기 실렌드라 왕조의 왕이었던 다르마퉁가(재위 755년 이전 - 782년)가 건립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렌드라 왕조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불교 왕국으로 9세기 초까지 번성했다.[7] 778년에는 칼라산 사원이[7], 792년에는 만주스리그르하(세우 사원)가 완공되는 등[7] 불교 건축 활동이 활발했다.

770년대부터 780년대에 걸쳐 자바를 기반으로 한 세력(아마도 실렌드라 왕조나 스리비자야의 마하라자 다르마세투 또는 다라닌드라가 주도한 것으로 추정[11])은 다이 비엣, 참파, 캄보디아 등 주변 지역 항구에 여러 차례 해상 습격을 감행했다. 이는 당시 동남아시아 해상 세력 간의 경쟁과 교류를 보여준다. 또한 748년 중국 승려 젠전의 기록에 따르면 보르네오,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배들이 광저우를 통해 활발히 교역했음을 알 수 있어, 이 시기 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이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7. 문화와 기술

제지술은 8세기 중반 중국에서 아랍인에게 전파되었으며, 이는 지식 전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757년 이슬람 세계 최초의 제지 공장이 사마르칸트에 세워졌고, 793년에는 바그다드에도 제지 공장이 들어섰다. 유럽에서는 농업 기술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라인강 유역에서는 땅을 깊게 갈 수 있는 중(重)쟁기가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770년경에는 말의 발굽을 보호하는 말굽이 널리 보급되었다. 8세기 또는 9세기에는 아시아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이는 말 목걸이가 북유럽에서 사용되어 말의 힘을 농업에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불교 승려이자 천문학자인 이행시계의 탈진기 구조를 응용하여 혼천의와 같은 천문 관측 기구를 자동으로 회전시키는 장치를 개발하는 등 기계 기술의 발전도 이루어졌다.

8세기 중앙 아시아의 실크 조각


건축과 예술 분야에서도 각 지역에서 중요한 발전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찰루키아 왕조 시대에 파타다칼 사원군이 건설되었고, 751년 신라의 재상 김대성이 경주에 석굴암불국사 건립을 시작하여 774년 석굴암이 완성되었다. 라스트라쿠타 왕조 시대에는 엘로라 석굴의 카일라사나타 사원과 엘레판타 석굴군이 조성되었다(756년 이후). 동남아시아에서는 778년 자바 섬에 칼라산 사원이 세워졌고, 780년경 샤일렌드라 왕조보로부두르 건설을 시작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장안707년-709년 사이 소안탑이, 742년에는 이슬람교 사원인 시안 대청진사가 세워졌고, 713년 쓰촨성에서는 러산 대불 조성이 시작되었다(803년 완성). 일본에서는 710년 헤이조쿄로 수도를 옮겼으며, 739년 호류지 동원(東院)이 건립되었다. 752년에는 도다이지청동 대불이 완성되어 개안공양 의식이 성대하게 치러졌고, 759년에는 중국에서 온 승려 간진에 의해 도쇼다이지가 창건되었다. 770년 쇼토쿠 천황의 명으로 제작된 백만탑 다라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794년에는 헤이안쿄로 수도를 다시 옮겼다. 발해에서는 792년 정효공주묘가 조성되었다.

중앙아시아서아시아에서는 710년경 불가리아에 마다라의 기마상이 만들어졌고, 이슬람 세계에서는 705년 다마스쿠스우마이야 모스크, 709년 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모스크가 완공되었다. 762년 아바스 왕조는 바그다드를 새로운 수도로 건설했다. 781년 장안에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전파를 기록한 대진경교유행중국비가 세워졌다.

유럽에서는 708년 프랑스 몽생미셸 수도원의 기원이 되는 예배당이 세워졌고, 724년 독일 라이헤나우 섬과 744년 풀다에 수도원이 창설되었다. 786년 카롤루스 대제아헨 대성당 건설을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의 픽트족은 유럽 최초의 삼각 하프를 설계했으며, 750년경 프랑크 왕국에서는 채색 필사본인 Sacramentarium Gelasianum|겔라시우스 성사집la이, 스웨덴 고틀란드 섬에서는 그림이 새겨진 룬스톤인 아르드레 이미지 스톤이 제작되었다.

학문과 기록 문화도 발전했다. 일본에서는 국가 체제 정비와 함께 역사서 편찬이 활발하여 712년 『고지키』, 720년일본서기』, 797년속일본기』가 차례로 완성되었다. 713년에는 각 지역의 정보를 담은 『풍토기』 편찬 명령이 내려졌고(733년 『이즈모 국 풍토기』 완성), 759년 이후에는 일본 고대 시가를 집대성한 『만엽집』이 편찬되었다. 중국에서는 727년 이행이 새로운 역법인 대연력을 만들었고, 8세기 후반 육우에 관한 모든 것을 집대성한 『다경』을 저술했다. 780년에는 조용조 세금 제도를 대신하는 양세법이 도입되었다. 유럽에서는 731년경 베다 베네라빌리스가 『잉글랜드인의 교회사』를 저술했고, 741년 동로마 제국에서는 로마법을 정리한 그리스어 법전 Ἐκλογή|에클로가grc가 공포되었다. 754년 이슬람 지배 하의 스페인에서는 『754년의 모사라베 연대기』가 쓰여졌다. 782년 프랑크 왕국카롤루스 대제는 학자 알쿠인을 초빙하여 궁정 학교를 열어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기초를 다졌다.

그 외 기술 및 사회 변화로는 708년 일본 무사시 국에서 구리가 발견되어 화폐인 와도카이친이 주조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세계적으로 온난화 현상이 나타나 로트네스트 해진, 헤이안 해진 등으로 불리는 해수면 상승이 관측되기도 했다.

참조

[1] 논문 Byzantine plate and Frankish mines: the provenance of silver in north-west European coinage during the Long Eighth Century (c. 660–820) https://www.cambridg[...] 2024-04
[2] 서적 History of the World Penguin
[3] 서적 History of the World Penguin
[4] 서적 The Indianized States of Southeast Asia University of Hawaii Press
[5] 서적 Islam in the Indonesian world: an account of institutional formation Mizan Pustaka
[6] 서적 The Chronology of British History Century Ltd
[7] 문서
[8] 웹사이트 A Mysterious Stranger in China | Masterpiece by Lee Lawrence http://online.wsj.co[...] 2011-09-03
[9] 문서
[10] 문서
[11] 서적 Early Kingdoms of the Indonesian Archipelago and the Malay Peninsula Editions Didier Millet
[12] 서적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Random House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