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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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자와 히데아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1974년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났으며, 가시마 앤틀러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세레소 오사카, FC 도쿄, 알비렉스 니가타 등 일본 J리그 팀에서 뛰었다. 1994년 J리그 데뷔 후, 2010년에는 파라과이 스포르티보 루케뇨에서, 2011년에는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990년대에는 U-19, U-23 일본 대표팀으로 활동했으며, 2014년에는 지바현 나리타시에 축구 스쿨을 개교했다.

오자와 히데아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오자와 히데아키
본명오자와 히데아키
출생일1974년 3월 17일
출생지이바라키현 나메가타시
신장188cm
포지션골키퍼
利き발오른발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미토 주니어 칼리지 고등학교 (1989–1991)
클럽가시마 앤틀러스 (1992–1997): 3경기 출전, 0골
요코하마 F. 마리노스 (1998–2000): 2경기 출전, 0골
세레소 오사카 (2000, 임대): 0경기 출전, 0골
FC 도쿄 (2001–2003): 1경기 출전, 0골
가시마 앤틀러스 (2004–2009): 19경기 출전, 0골
스포르티보 루케뇨 (2010): 4경기 출전, 0골
알비렉스 니가타 (2011–2012): 20경기 출전, 0골
총 출전 수49경기
총 득점 수0골
국가대표 경력
청소년 국가대표일본 U-19 (1992)
일본 U-23 (1995-1996)
수상 내역
가시마 앤틀러스J1리그 우승 (1996, 2007, 2008, 2009)
J1리그 준우승 (1993, 1997)
J리그컵 우승 (1997)
J리그컵 준우승 (2006)
천황배 우승 (1997, 2007)
천황배 준우승 (1993)
요코하마 F. 마리노스J1리그 준우승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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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오자와 히데아키는 미토 게이메이 고등학교 졸업 후 1992년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94년 J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애틀랜타 올림픽 U-23 대표팀 후보로 발탁되었으나 추간판 탈출증 악화로 사퇴했다. 1997년 팀을 떠나 미국에서 재활했다.

이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1998년 10월 입단), 세레소 오사카 (2000년 임대), FC 도쿄 (2001년 이적) 등 여러 팀을 거쳤으나 주전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2004년 친정팀 가시마 앤틀러스로 복귀하여 백업 골키퍼로 활동하며 2009년 J리그 통산 최다 벤치 등록 기록(252경기)을 세웠다. 2009년 시즌 후 팀을 떠났다.

2010년에는 파라과이스포르티보 루케뇨에 입단하여 해외 무대를 경험했고, 이로써 1993년 J리그 출범 이후 일본 1부 리그에서만 활동했던 유일한 선수라는 기록은 끝나게 되었다. 2011년 알비렉스 니가타로 이적하며 일본에 복귀, 해당 시즌 개인 최다인 공식전 20경기에 출전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니가타를 떠났고, 2013년 J리그 합동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선수 생활 이후 2014년에는 지바현 나리타시에 축구 스쿨 "Arqueros"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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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성적리그리그 컵합계
시즌클럽리그출장출장출장출장
일본리그천황배 선수권 대회J리그컵합계
1992가시마 앤틀러스J1리그-000000
199300000000
199430100040
19950000-00
199600000000
199700000000
1998요코하마 F. 마리노스J1리그00000000
1999요코하마 F. 마리노스J1리그20100030
200000000000
2000세레소 오사카J1리그00003030
2001FC 도쿄J1리그10001020
200200000000
200300002020
2004가시마 앤틀러스J1리그40001050
200500001010
20061200080200
200730000030
200800000000
200900000000
파라과이리그리그 컵합계
2010스포르티보 루케뇨프리메라 디비시온4040
일본리그천황배 선수권 대회J리그컵합계
2011알비렉스 니가타J1리그1702010200
201230201060
합계|0||6||0||18||0||73||0

2.1. 유소년 시절

기타우라 중학교 2학년 때 전국 중학교 체육 대회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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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학교명
1980년 ~ 1985년기타우라 촌립 쓰즈미 초등학교
1986년 ~ 1988년기타우라 촌립 기타우라 중학교
1989년 ~ 1991년미토케이메이 고등학교

2.2. 가시마 앤틀러스 (1992-1997)

미토 게이메이 고등학교 졸업 후 1992년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했다. 당시 팀에는 후루카와 마사아키사토 요헤이 같은 골키퍼들이 있어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1994년 11월, J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무실점 승리에 기여했다.

애틀랜타 올림픽을 준비하는 U-23 대표팀의 니시노 아키라 감독은 그의 체격 조건과 향상심을 높이 평가하여 대표팀 후보로 발탁했다. 당시 가와구치 요시카츠와 주전 경쟁을 벌였으나, 추간판 탈출증이 악화되어 대표팀에서 물러나야 했다.

1997년 7월, 허리 수술을 권하는 구단 스태프와의 의견 충돌 끝에 팀을 자진해서 나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재활과 코어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2.3. 요코하마 F. 마리노스 (1998-2000)

1998년 10월,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당시 팀에는 일본 국가대표팀 골키퍼이기도 했던 가와구치 요시카츠가 주전으로 있었기 때문에, 오자와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2.3.1. 세레소 오사카 임대 (2000)

1998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 입단했지만, 당시 팀의 주전 골키퍼였던 가와구치 요시카츠에게 밀려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2000년 3월부터 8월까지 세레소 오사카로 임대 이적하였다. 세레소 오사카에서도 주전 골키퍼 시모카와 세이고와의 경쟁에서 밀려 리그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천황배에서는 3경기에 출전했다.

2.4. FC 도쿄 (2001-2003)

2001년 FC 도쿄로 이적했다. 그러나 반월판 부상으로 합류가 늦어진 탓도 있어, 주전 골키퍼 도이 요이치에게 밀려 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다. 이 해에는 팀이 큰 점수 차로 앞서던 2경기에 출전했는데, 그중 1경기는 경기 막판 교체 투입이었다.

2002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시즌 막바지까지 벤치에도 앉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정신적인 면과 전술적인 면에서 성장을 이루었고, 하마노 세이야 골키퍼 코치로부터 경기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상대 선수에게 정신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2003년에는 도이 요이치의 부상으로 프리시즌 매치와 리그 개막 전 컵 대회에서 계속 선발로 출전하며 좋은 선방을 보여주었으나, 리그 개막전에 도이가 복귀하면서 다시 후보 선수로 밀려났다. 결국 2003년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

2.5. 가시마 앤틀러스 복귀 (2004-2009)

2004년, 7년 만에 친정팀 가시마 앤틀러스로 복귀했다. 하지만 팀의 주전 골키퍼인 소가하타 히토시에게 밀려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다. 2006년 시즌에는 소가하타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리그 12경기에 출전할 기회를 잡았고, 나비스코컵 준준결승 감바 오사카전에서는 결정적인 선방을 여러 차례 보여주며 팀의 골문을 지켰다.

소가하타가 부상에서 복귀한 후에는 다시 후보 골키퍼로 돌아갔지만, 언제든 출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 꾸준히 훈련하며 준비했다. 이러한 성실함은 2009년 10월 17일 J1리그 29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와의 경기에서 빛을 발했는데, 이날 벤치에 이름을 올리면서 다테이시 도모키가 보유하고 있던 J리그 통산 최다 벤치 등록 기록(251경기)을 경신하는 252번째 벤치 등록을 기록했다.

2009년 시즌이 끝난 후, 가시마 앤틀러스는 오자와에게 계약 연장을 제안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팀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2.6. 스포르티보 루케뇨 (2010)

2009년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퇴단한 후,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해외 무대 진출을 위해 남미로 건너갔다. 2010년 1월, 파라과이 리가 파라과야 소속의 스포르티보 루케뇨 회장은 오자와의 2010 시즌 계약을 공식 확인했으며, 구단이 외국인 선수와 접촉할 때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를 통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공식 입단일은 2010년 2월 17일이다. 이 해외 이적으로 오자와는 J리그가 출범한 1993년부터 일본 1부 리그에서만 활동했던 유일한 선수라는 기록을 마감하게 되었다.

팀에 합류했을 당시 골키퍼 포지션에는 마리오 비야산티와 아리스티데스 플로렌틴이 있었다. 또한 카메룬 출신 조르주 누가, 브라질 출신 엘리엘 크루스와 에머슨 레바, 아르헨티나 출신 페데리코 카타루오촐로, 엑토르 올메도, 조나단 게르마노, 알프레도 카노, 루벤 체코, 칠레 출신 클라우디오 차바리아, 콜롬비아 출신 카를로스 발렌시아 등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오자와는 낯선 환경과 일본인에 대한 편견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0년 10월, 카를로스 하라 사기에르 감독과 하싱토 로드리게스 골키퍼 코치가 새로 부임하면서 편견 없이 실력을 평가받을 기회를 얻었다. 2010년 11월 11일, 올림피아 아순시온과의 원정 경기에서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스포르티보 루케뇨 소속으로 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이후 11월 21일 타쿠아리와의 홈 경기(3-1 승리)와 11월 28일 스포르트 콜롬비아와의 원정 경기(0-0 무승부)에서도 풀타임으로 골문을 지켰다. 2010년 12월 5일 솔 데 아메리카와의 홈 경기(1-1 무승부)가 스포르티보 루케뇨에서의 마지막 출전 기록이 되었다. 그가 출전한 경기들은 모두 2010 토르네오 클라우수라(후기 리그)에 해당한다.

2.7. 알비렉스 니가타 (2011-2012)

2011년 4월 8일,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했다. J리그는 선수 등록 기간 제한이 있지만, 골키퍼 부상 시 예외적으로 추가 등록을 허용하는데, 당시 니가타는 골키퍼 구로카와 다카야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 규정을 활용하여 오자와를 영입했다. 6월 30일 J1리그 16라운드 베갈타 센다이전 종료 직전, 부상당한 주전 골키퍼 히가시구치 마사아키를 대신해 교체 투입되며 4년 만에 리그 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히가시구치가 복귀하면서 잠시 후보로 물러났으나, 8월 히가시구치가 다시 부상으로 이탈하자 다케다 요헤이와 주전 경쟁을 벌이며 시즌 종료까지 골문을 지켰다. 이 시즌에 공식전 20경기에 출전하며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

2012년 시즌에는 리그 개막전 선발 자리를 구로카와 다카야에게 내주었으나, 2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는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5라운드부터 히가시구치 마사아키가 복귀하면서 다시 후보로 밀려났고, 결국 리그 3경기 출전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 니가타로부터 계약 갱신 불가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났다.

3. 은퇴 이후

2014년, 지바현 나리타시에 축구 스쿨 "Arqueros"를 개교했다.

4. 국가대표 경력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는 U-23 일본 대표팀 감독 니시노 아키라로부터 체격 조건과 향상심을 높게 평가받아 대표팀 후보로 발탁되었다. 당시 가와구치 요시카츠와 주전 골키퍼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추간판 탈출증이 악화되어 대표팀에서 사퇴했다.

5. 개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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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성적리그천황배J리그컵합계
시즌클럽리그출장출장출장출장
일본
1992가시마 앤틀러스J1리그-000000
199300000000
199430100040
19950000-00
199600000000
199700000000
1998요코하마 F. 마리노스J1리그00000000
1999요코하마 F. 마리노스J1리그20100030
200000000000
2000세레소 오사카J1리그00003030
2001FC 도쿄J1리그10001020
200200000000
200300002020
2004가시마 앤틀러스J1리그40001050
200500001010
20061200080200
200730000030
200800000000
200900000000
파라과이
시즌클럽리그출장리그 컵합계
2010스포르티보 루케뇨프리메라 디비시온4040
일본
시즌클럽리그출장천황배J리그컵합계
2011알비렉스 니가타J1리그1702010200
201230201060
통산|0||6||0||18||0||73||0


* 1994년 11월, J1리그 데뷔전에서 무실점 승리에 기여했다.
*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U-23 일본 대표팀 후보로 발탁되었으나, 추간판 탈출증 악화로 대표팀에서 사퇴했다.
* 2009년 10월 17일, J1리그 29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전에서 벤치 멤버로 등록되어 통산 252경기를 기록, 다테이시 도모키를 넘어 J1리그 최다 벤치 등록 기록을 경신했다.
* 2010년 파라과이 스포르티보 루케뇨로 이적하기 전까지, 1993년 J리그 출범 이후 일본 1부 리그에서만 활동한 유일한 선수였다.
* 2011년 알비렉스 니가타 소속으로 4년 만에 리그 경기에 출전했으며, 해당 시즌 공식전 20경기에 출전하여 개인 커리어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